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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인터뷰

“시네마테크엔 사람들 사이 공명하는 어떤 느낌이 있다”

조조영화로 아침을 맞는 남자, 오다온 씨


시네마테크의 오랜 관객인 오다온(필명) 씨는 성큼성큼 걷는 걸음걸이와 활짝 웃는 표정이 인상적이다. 영화를 다시 보고 발견하는 시네마테크 같은 사람. 시네마테크의 관객들에게선 특유의 동질감이 느껴져 편안하다고 얘기하는 그는 마법과도 같은 영화적 체험을 가능하게 해 준 이 공간이 좀 더 좋은 환경을 가질 수 있기를 진정 소망한다고 전했다.




장지혜(웹데일리팀): 시네마테크를 찾게 된 건 언제부터인가.

오다온(관객): 낙원상가로 옮겨오기 전에 소격동에 있을 때부터 다녔다. 그 무렵 봤던 영화들 중에서는 허오 샤오시엔의 <해상화>와 특히 히치콕의 <오명>이 기억에 남는다.

 

지혜: 혹시 지금 영화를 공부하고 있거나 영화와 관련된 일을 하고 있는지.

다온: 지금은 모 영상대학원에서 촬영전공으로 공부하고 있다. 앞으로 연출을 희망하고 있고, 현재 다큐멘터리를 준비하는 게 있다. 쓰고 있는 시나리오도 하나 있다. 동기나 다른 분들의 촬영을 돕기도 한다. 극영화를 하면서 다큐멘터리는 평생 놓지 않는 영화인이 되고 싶다. 그런 면에서 헤스켈 웩슬러 같은 신념있는 영화인은 좋은 롤모델이다.

 

조조 영화로 아침을 시작하다!

 

지혜: 작업을 하게 되면 많이 바쁠 텐데, 틈틈이 극장도 자주 찾는 편인 것 같다.

다온: 최근에는 학교생활하고 작업을 하다보니까 예전만큼은 많이 못보고 있다. 대학교 들어가서 영화를 많이 봤던 것 같다. 특히 학부 졸업 후 3년 정도가 그랬다. 극장에서만 많이 볼 때는 한 달에 백 편 이상 보기도 했었으니까. 영화 티켓을 모으는 습관이 있는데, 언젠가 한번 티켓들을 세어보니, 그 때는 일 년에 천 편 이상 봤더라. 영화제나 개봉영화, 시네마테크 가리지 않고, 영화를 많이 봤었다. 아침에 눈 뜨면 조조영화를 한 편 보는 걸로 하루를 시작했으니까(웃음).

 

지혜: 영화는 어릴 때부터 좋아한 건가.

다온: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은 어렸을 때부터 했던 것 같다. 중학교 때 까지만 해도 보통 학생들이 보는 정도의 수준이었는데, 고등학교 때부터 애니메이션 영화를 좋아해서 찾아보기 시작했고, 그 때부터 영화를 많이 보게 된 것 같다. 그리고는 미야자키 하야오 같은 애니메이터가 되겠다는 생각으로 미대에 들어갔었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영상 쪽에 관심이 가기 시작했고, 어느 순간 영화를 공부하고 있었다(웃음). 영화 전공을 하게 된 것이 잘 된 일이었던 것 같다. 영화 연출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으면 나중에 애니메이션 연출도 하고 싶은 바람이 있다. 제가 촬영과 조명을 했던 클레이 애니메이션이 있는데, 부천영상제에서 우수상을 받기도 했다.

 

지혜: 애니메이션 중에서 특별히 좋아하는 작품들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

다온: 역시 미야자키 하야오를 좋아하고, 지브리 스튜디오의 애니메이션들을 좋아한다. <빨간머리 앤>, <추억은 방울방울>, <반딧불의 묘>같은 작품을 만든 다카하타 이사오,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귀를 기울이면>의 콘도 요시후미 등이 좋다. 지브리 스튜디오의 작품은 <게드전기>만 빼고는 다 좋다(웃음). 미야자키 하야오가 가장 많은 영향을 작가가 <게드전기>의 원작자인 어슐러 르 귄이었고, 그의 작품을 영화화하기 위해 오랫동안 원작자를 설득했었다고 알려져 있다. 하야오가 아닌 그의 아들이 연출을 하게 되어서 결과적으로 많이 못 미치는 작품이 되었다. 오시이 마모루도 좋아하고, 그의 실사 영화들도 좋아한다. 애니메이션을 특히 좋아하던 때가 있었고, 지금은 내가 하고 있는 것도, 꿈꾸는 것도 영화가 되었다. 가끔씩 새 애니메이션이 개봉하거나 할 때면 어린 시절 그 감성을 떠올리며 보러 가는 정도이다. 전처럼 많이 보게 되지는 않는다.

 

“누구나 완벽한 사람은 없다”

 

지혜: 좋아하는 영화나 감독이 궁금하다. 그리고 시네마테크의 특별전들 중 특별히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면.

다온: 좋아하는 영화나 작가는 워낙 많아서(웃음). 마흐말마프 집안 사람들의 영화를 좋아한다. 사미라 마흐말마프 감독의 <두 발로 걷는 말>을 재작년 부산영화제에서 봤는데, 정말 놀랐다. 김경묵 감독의 <얼굴 없는 것들>이나 <청계천의 개>도 좋았다. 그리고 시네마테크에서 본 영화들 중에는, 지금 딱 생각나는 건, 마를린 먼로가 나왔던 <뜨거운 것이 좋아>. 마지막에 “누구나 완벽한 사람은 없다”는 대사가 나온다. 그 때 워낙 관객들 분위기가 워낙 좋았다. 관객들이 모두 동화가 되어서 영화에 빠져들었던 것 같다. 모두들 정말 즐겁게 웃으면서 영화를 봤다. 배창호 감독님 특별전도 좋았고, 할 하틀리 영화들도 좋았다. 할 하틀리 영화는 예전에 전주에서 <걸 프롬 먼데이>를 봤었는데, 사실 그 땐 감흥이 별로 없었다(웃음). 서울아트시네마에서 본 <트러스트>나 <바보 헨리>같은 영화들은 너무 좋았다. 시네마테크의 특별한 행사인 만큼, 매해 친구들 영화제가 기억에 많이 남는다. 실은 서울아트시네마 측에 잊기 힘든 불만이 하나 있다(웃음). 몇 해 전 친구들 영화제 때, 모 감독의 시네토크를 보려고 했는데, 바로 전의 상영은 시간이 안 맞아서 못 봤었다. 대신 다른 날 상영 때 보고, 그 날은 시네토크만 들으려고 했는데, 입장을 안 시켜 주시는 거다. 사실 그 해 친구들 영화제 상영작을 전부 봤었는데, 그 날은 쓸쓸히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웃음). 그런데 그 이후로 제 일 때문에 내부에서 얘기가 되어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언제부턴가 해당 영화제 티켓을 소지하고 있으면 GV를 들을 수 있도록 바뀌었더라. 그래서 주변 친구들이 GV만 들으면, 그게 다 나 덕분에 혜택을 입는 거라고 얘기하기도 한다(웃음).

 

지혜: 평소 서울아트시네마에서 보고 싶은 영화나 프로그램이 있다면.

다온: 물론 있다. 그런데 이미 예전에 상영했던 영화들이기도 해서, 개인적인 욕심일 수도 있겠다(웃음). 부끄럽지만 영화팬이라면 꼭 봤을 감독들의 영화들을 많이 못봤다. 오늘 <동경이야기>를 봤는데, 오즈 야스지로 영화나, 부뉴엘, 테오 앙겔로풀로스, 그리고 안토니오니의 영화들이 정말 보고 싶다.

 

지혜: 오늘 본 <동경이야기>는 어땠는지 궁금하다.

다온: 너무 좋았다. 사실 노리코가 시계를 받는 장면에서 눈물이 났다. 쿄코와 노리코가 대화를 나누는 장면도 그렇고. 관객 중에 어떤 분이 지루했다고 말했는데, 이해가 안 간다(웃음). 이명세 감독님 얘기처럼 어떤 영원성이 담겨 있는 것 같다. 마치 사진을 찍듯이 그 시대성을 그대로 담아낸 것 같은데, 고스란히 지금의 나에게도 와 닿는 어떤 느낌들이 있다. 인간 내면의 감정과 그 시대의 모습을 동시에 담아내는 것에서, 이런 영화를 볼 때마다 정말 놀라운 것 같다.

 

숨결이 담긴 영화 만들고파!

 

지혜: 앞으로 만들고 싶은 영화는 어떤 건가.

다온: 실은 줏대가 없는 건지(웃음), 아직 명확하게 두고 있는 기준은 없다. 만들고 싶은 장르가 다양해서 뭔가 하나를 꼭 집기는 힘들다. 오즈 야스지로에서 허오 샤오시엔이나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걸어도 걸어도>로 이어지는 어떤 특징들, 숨결들이 인상적인데, 평범한 사람들, 가족의 이야기를 그런 방식으로 다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할 하틀리의 <트러스트>같은 영화도 만들어 보고 싶고, 이안 감독의 <와호장룡>처럼, 발차기 하나부터 철학이 담겨있는 그런 무협영화도 찍어보고 싶다(웃음). 히치콕 같은 영화를 만들고 싶기도 하고, 사랑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싶기도 하다. 너무 많은 것 같다(웃음).

 

지혜: 끝으로 당신에게 시네마테크는 어떤 공간인지 나름의 정의를 내려 본다면.

다온: 특별했던 영화적 경험들을 이곳에서 많이 겪었다. 그래서 많이 편한 곳이기도 하다. 영화를 보고 나올 때 사람들 사이에서 공명하는 어떤 느낌이 있다. 김성욱 프로그래머님도 그런 말씀을 하셨는데, 영화가 끝나고 존재하는 침묵의 언어들, 묘한 동질감, 바이러스처럼 퍼지는 어떤 것들이 있다(웃음). 그런 것들이 너무 소중하다. 이곳에서만 유독 많이 느낄 수 있는 것들이다. 부산영화제나 전주영화제 같은 큰 영화제들과 비교했을 때도 그렇다. 시네마테크는 왜 영화를 극장에서 봐야 하는지 느끼게 해 준 곳이자, 마법 같은 영화적 체험들을 한 곳이다. 안정적인 시네마테크 전용관이 필요하다고 본다. 얼마 전 영상자료원에서 세르지오 레오네의 영화들을 봤는데, 서울아트시네마에서 봤을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지금 이 공간의 느낌도 좋긴 하지만, 시네마테크가 적어도 영상자료원 정도의 규모와 설비를 갖추어서 좀 더 나은 환경에서 영화가 상영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장지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