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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인터뷰

‘시네필’이라 이름 지어지는 우리, 관객들이 힘을 모았으면

서울아트시네마 열혈관객 박정도 씨

서울아트시네마 열혈관객인 박정도 씨와의 인터뷰는 게릴라처럼 진행되었다. <동경이야기>의 상영이 끝난 후 이명세 감독의 시네토크가 시작된 직후, 막 서울아트시네마에 도착한 박정도 씨를 만나기 위해 슬그머니 로비로 빠져나갔다. 정적이 흐르는 서울아트시네마의 로비에서 나눈 박정도 씨와의 수다는 그리 길지 않았지만, 그의 영화에 대한 열정을 엿보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강민영(웹데일리팀): 마이크 리 감독의 <네이키드>를 보러 오셨다고 들었다. 지난 번 <네이키드> 상영 때는 박찬옥 감독의 시네토크가 있었는데, 그날 사람들이 정말 많더라.

박정도(관객): <네이키드>는 예전에 비디오로 봤는데 그게 다 삭제된 버전이라 좀 아쉽다. 마이크 리의 <비밀과 거짓말>을 먼저 보고 나서 <네이키드>를 보려 했는지 아닌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예전에 잡지에서 스틸을 봤는데 그게 너무 인상적이었다. 그래서 비디오를 빌렸는데 별로 흥미롭지 않아서 중간에 관뒀다(웃음). <네이키드>는 제목처럼 감정적으로 날 것을 보여주는 영화로만 알고 있다가 이번에 완전 판을 상영한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왔다. 친구 하나가 굉장히 보고 싶어 하더라.

 

민영: 그럼 관람을 미뤄두었던 <네이키드>에 재도전하러 온 것인가.

정도: 사실 <네이키드>에서 나오는 여배우 때문이기도 하다. 정확하게는 모르겠지만 로저 미첼 감독의 <노팅힐>에서 장애인으로 나오는 여자가 인상이 엄청 강했는데 그 배우가 나오는 것 같더라. 확인도 할 겸, 또 주변에서 다들 좋다고 하니 기대가 되기도 해서 보고 싶다.

 

주말 시간대를 사수할 것

 

민영: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가 한창인데 이번 영화제에서 영화는 많이 보셨는지.

정도: 평일에는 시간이 잘 나지 않는다. 일 끝나고 오면 부랴부랴 7시 반까지는 도착할 수 있는데, 대부분 3회 타임의 영화는 그 이전에 시작하더라. 많이 보기가 힘들다. 그래도 너무 늦게 상영하면 관객과의 대화나 극장 측에서 정리하기도 힘들어지니까 편의상 그렇겠지 한다. 주말에 올인하기로 했는데 지금까지 하나밖에 못 봤다. 샤샤 기트리의 <어느 사기꾼의 이야기>. 영화 정말 골 때린다.

민영: 하긴 예전에 카페 서울아트시네마에도 직장인들을 대표해서 시간표에 관련된 이야기를 남기기도 하셨다.

정도: 주로 주말 위주로 시간표를 짜고 있다. 주말이 아니면 시간을 내기 어렵다.

 

민영: 그럼 어제도 극장에 오셨었나.

정도: 어제 배창호 감독의 <여행>을 봤다. 그러고 보니 아직까진 <어느 사기꾼의 이야기>와 <여행> 두 작품을 본 셈이다. 기대는 되게 많이 했는데 솔직하게 말하면 그냥 드라마라는 느낌이 강했다.

 

민영: 그 날 <여행>을 본 주변 분들은 영화가 참 좋다고 하더라. 원래 나도 배창호 감독의 영화를 좋아하기도 하고 워낙 오랜만에 나온 작품이라 내심 기대하고 있다. 배창호 감독 특별전 때도 열을 올리면서 보았다(웃음).

정도: 배창호 감독의 영화는 <고래사냥> 하나밖에 못 봤다. 특별전 때는 일이 있어 보지 못했다. 알고 보면 난 제대로 된 시네필이 아니지 싶다. 열심히 찾아봐야 하는데 말이다(웃음). 이번 배창호 감독의 영화가 원래 스타일과 조금 다른 형식이라고 하더라. 미학적인 욕심 없이 무난한 드라마였던 것 같다. 기억에 남는 장면도 있다. 첫 번째와 두 번째 에피소드에서 채플린의 장면을 따온 느낌이 드는 부분이 있더라, 상황은 물론 다르지만. 마지막 에피소드가 감동적이었는데 중년여인에 대한 묘사가 인상적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잔느 딜망>에서 나이 든 여배우가 아름답고 우아하게 등장하는 게 인상적이었는데, <여행>의 마지막 부분이 딱 그와 같은 느낌이었다.

 

문화학교 서울부터 이어진 영화와의 동거

 

민영: 시네마테크에 다니기 시작한건 언제부터였나.

정도: 문화학교 서울 때부터였다. 거기서 비디오로 좋은 영화 많이 봤다.

 

민영: 문화학교 서울 때부터 영화를 보았다면 참 오랜 기간 동안 시네마테크와 동거한 셈인데, 그럼 관객들이나 활동하시는 분들과 알음알음 안면이 있겠다.

정도: 사실 다 아는 분들인데 그냥 얼굴만 안다(웃음). 가까이 다가가려고 하면 약간 어색해서. 낯은 익는데 다들 조용하게 영화보고 집에 가고 그런 주의잖나. 나서서 이야기하는 게 나랑 좀 안 맞기도 하고.

 

민영: 아트 선재에서 낙원상가로 옮기는 과정에도 있었나.

정도: 솔직히 말하면 그 과정이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기억상실인가, 하하. 낙원상가로 옮겨오면서 마지막 상영으로 <안녕, 용문객잔>을 상영하지 않았나. 그때도 그렇고 낙원으로 옮겨 처음 상영할 때도 없었던 것 같다. 막상 개막식이나 주요행사들은 많이 빠진다. 사람 많은 걸 별로 안 좋아해서.

 

민영: 그럼 주로 시네토크 같은 행사가 없는 한적한 때를 선호하시나 보다.

정도: 꼭 그렇진 않다. 진짜 좋아하는 감독이라면 물론 기를 쓰고 시네토크를 들으러 온다. 예를 들면 홍상수, 혹은 외국 감독들의 GV가 있으면 빠지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민영: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는 올해로 5주년인데 매년 참석했는가.

정도: 영화는 계속 봤다. 프로그램이 나오면 다 봐야지 하지만 그렇게 많이는 못 보게 된다. 그래도 다양한 영화들과 최대의 행사들을 만날 수 있는 서울아트시네마의 주력 영화제니까 빠지진 않았다.

 

민영: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 상영작 중에 가장 인상 깊었던 영화가 있었나.

정도: 자크 베케르의 <구멍>. 보통 영화책에 나오는 감독들 많잖나, 고다르 등등 근데 나는 책을 제대로 안 읽어서 그런지 <구멍>의 상영 때 자크 베케르를 처음 알았다. 아마 친구들 영화제 전에 특별전을 했을 때 였던 것 같다. 너무 좋았다. 기대도 안했고 전혀 모르는 감독이었지만 관심이 갔던 이유는 많은 감독들이 좋아하는 감독이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소재가 거기 다 있더라. 디테일, 아이디어 하나하나가 진짜 장난이 아니더라. 장면 장면이 우아하다고 해야 하나.

 

모두가 뭉쳐 한 목소리를 낼 때

 

민영: 또 기억에 남는 영화가 있다면.

정도: 이번에 상영하는 영화 중 <마태복음>도 좋아한다. 마치 현대 영화를 보는 것 같기도 하고, 구스 반 산트의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 있다. 점프 컷도 있고 시간도 반복하고. 진짜 종교 영화 같다.

 

민영: 어떤 사람은 종교인이 아니면 이해를 못 할 수도 있는 영화라 말하더라.

정도: 어느 정도 널리 알려진 특정 종교의 역사 내에서도 영화가 만들어내는 것들이 감탄을 자아내었다. 감동적인 장면이 하나 있다. 예수에 관련된 영화를 만들면서 많은 사람들이 신경 쓰는 부분이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힐 때인데, 파솔리니의 <마태복음>은 그 장면을 완벽히 신적인 것으로 묘사했다. 역광이 비치면서 후광이 떠오르고, 너무 좋았다.

 

민영: 십자가 장면은 예수의 생애를 다룬 대부분의 영화에서 클라이맥스를 치고 들어가는 부분이기도 하다. 처음 <마태복음>을 보기 전에 파솔리니와 종교적인 영화가 어울리지 않을 거라 생각했지만 막상 보고 나니 영화가 너무 좋더라. 군더더기 없는 편집과 클로즈업도 인상적이었다.

정도: 예전에 정성일 평론가가 했던 말이 어렴풋이 기억난다. 파솔리니가 수많은 복음 중에 굳이 마태복음을 선택한 이유나 노동자와 비슷하게 느껴지는 예수의 모습, 그리고 그런 풍색의 지방 등을 선택하게 된 이유가 있다고 들었다. 파솔리니의 영화들은 기본 교양이 있어야 좀 더 잘 들어오는 것 같다.

 

민영: 마지막으로 묻고 싶은 것은 시네마테크 전용관에 관한 문제다. 예전에 관객 후원 릴레이로도 글을 써주셨는데, 이와 관련해서 시네마테크에 바라는 것이 있으신지 궁금하다.

정도: 어쨌든 시네마테크로서는 총력을 다하고 있지 않나. 이곳에 모인 감독들도 뭔가 하는 것 같아 힘이 난다. 모두가 최선을 다해야만 할 것 같다. 그런데 항상 느끼는 건 시네필이라 이름 붙여진 관객들끼리 잘 모이지 못한다는 거다. 물론 다들 어색하긴 하지만, 이 이야기는 예전부터 많이 거론되었던 것 같다. 시네필들이 같이 뭉쳐서 무언가를 할 수 있으면 좋겠다. 구체적으로 뭘 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뭉치는 것, 합동하는 것이 필요하다. 관객 후원 릴레이 같은 것도 그런 것의 일환이 아닐까. 모두가 목소리를 모았으면 좋겠다. (강민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