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사 강좌③] 지난 11월 17일 <크메르 루즈- 피의 기억> 상영 후 ‘크메르 루즈: 학살의 기억’이라는 주제로 김성욱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의 강연이 열렸다. 크메르 루즈 학살을 중심으로 영화에서 홀로코스트의 재현과 표상의 문제에 대해 심도 깊은 이야기를 들려준 그 시간을 전한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 개인적으로 홀로코스트의 재현과 표상과 관련된 문제에 큰 관심을 갖고 있고 그와 관련해 논문을 쓰기도 했는데, 그때 클로드 란츠만의 <쇼아>와 장 뤽 고다르의 <영화의 역사(들)>에 나오는 홀로코스트의 문제들을 주로 다루었다. 그에 따라 비슷한 역사적 재앙들을 다룬 영화들을 많이 보게 되었고 그 중 하나가 오늘 보신 <크메르 루즈-피의 기억>이었다. 대량학살이 있었던 이후에 이것을 어떻게 영화적으로 표현하는가 하는 문제로 이 영화에 관심을 갖고 있었고, 캄보디아의 크메르 루즈 학살에 대한 역사적 사실보다는 그것을 어떻게 기억하고 어떻게 영화적으로 표현하는가 하는 표상적 문제들에 집중했다. 이 영화와 관련해서 제가 느끼고 생각했던 몇 가지의 중요한 지점들을 말씀 드리고, 일반적인 홀로코스트 영화들에서 재앙을 다루었던 방식들과 이 영화를 연관 지어 이야기 하려고 한다.
그러나 이 세 가지의 증거만으로는 과거에 벌어졌던 일을 헤아릴 길이 없다. 사진에 있는 사람들은 과거에 죽은 사람들이지만, 그들이 왜, 어떻게 죽었는지는 알 수가 없다. 서류로 남겨진 취재물들은 실제로 당사자가 작성한 것도 있고, 강요에 의해 쓰여진 것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증거 자료가 사건 모두를 환기시키기에는 부족하다. 그리고 남아있는 공간은 말을 할 수가 없다. 사진도, 문서 기록들도, 그리고 수용소의 벽들도, 과거에 있었던 흔적을 감지하고는 있지만, 그 어떤 것도 말할 수 없다. 침묵의 상태에 빠져있는 것이다. 유일하게 생존자들과 간수들만이 말을 할 수 있는데, 그들은 말하기를 회피하거나, 왜 그렇게 했는지에 대해서 정확하게 말하지 못한다. 또한 너무 큰 고통을 겪은 사람들은 그 사건을 정확하게 술회할 수 없다. 그 가운데 리씨 팡이 유일하게 선택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사람들을 대면시키는 것이고, 과거의 장소에 그 사람들을 모으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에게 자백을 요구하며 추궁하기 보다는, 그들이 어떤 일을 했는지를 재연하도록 했다. 그들은 자신이 무슨 일을 어떤 이유로 했는지에 대해서 정확하게 이야기 하지 않고 말하기를 회피하거나, 강요에 의해 어쩔 수 없이 그런 일을 할 수 밖에 없었다고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일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를 재연시키는 것이다. 영화의 상당부분은 과거에 가해자였던 간수들이 사람들을 어떻게 다루었는지의 과정을 보여준다. 그것은 과거에 벌어졌던 사건을 현재의 시간 안에서 재연하는 것이다. 그리고 동시에 지금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비가시적인, 죽은 죄수들을 어떻게 처리했는지 보여주고 있다. 마치 죄수들이 거기 있는 것처럼 간수들은 태연하게 과거의 행동들을 재연한다. 그들이 수없이 매일 동일한 행동들을 반복 해왔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그들의 의지나 생각과는 무관하게 그들의 신체적인 행동 안에서 그것이 재현되고 있는 것이다. 리씨 팡은 카메라를 통해 이를 보여주면서 부재하는 가운데 마치 눈앞에서 무언가가 생생하게 진행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으로 이 장면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가시적으로 드러나는 것이 없기 때문에, 처음에는 끔찍하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 그러나 시간을 거듭하며 그런 반복적 행동이 진행되어 갈 때, 그 상황 안에 마치 우리가 입회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된다. 여기서 입회자들은 보이지 않는 두 부류로 나뉘는데, 하나는 감독이고, 하나는 관객이다. 그리고 또 하나를 덧붙인다면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거기서 죽은 자들이다. 영화의 서두에서도 ‘위령제’라는 표현이 등장하지만, 재연의 과정은 죽은 자들을 불러들여서 그 장소에서 그 행동들을 다시 반복하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그런 과정들을 통해서 가해자들에게 책임을 묻기 보다는 그들이 저지른 범죄를 인식시켜간다. 그리고 그러한 재연의 과정 안에서 기억들을 도래하게끔 만들어가는 것이다. 과거의 행동을 현재에 진행시키며 끔찍한 기억의 편린들을 떠올리게 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는 전적으로 현재형으로 진행된다. 과거의 재앙과 학살을 다루는 영화는 크게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첫 번째는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역사적 재현극이다. 이것은 과거에 벌어졌던 사건을 과거의 시간대 안에서 역사적으로 영화화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쉰들러 리스트> 같은 영화를 꼽을 수 있다. 두 번째로는 그 사건을 철저하게 현재의 관점 안에서 다루는 영화들이 있다. 이는 재현이 아니라 현전이다. 현재 안에서, 현재 안에 남아있는 것들 가운데 다루어가는 방식이다. 란쯔만의 <쇼아> 같은 영화가 그렇다. 넓게 보자면 오늘 보신 영화도 마찬가지로 지금 눈앞에 생생하게 과거를 입회시켜 나가고 떠올리게 만들면서 진행되는 영화다. 대부분의 다큐멘터리가 이런 방식을 취하고 있다. 그리고 세 번째 유형이 있다. 훨씬 더 복잡한 계열이고, 고다르 같은 감독들이 여기에 해당된다고 생각한다. 현재의 관점 안에서 그것들을 몽타주해가며, 몽타주를 통한 역사 이해에 도달해가는 것이다. 두 번째와 세 번째 부류의 영화들이 영화적 재현과 표상이라는 부분에서는 상당히 흥미롭다. 그리고 한 편으로는 관객들에게 고통을 주고, 다른 한 편으로는 그런 방식의 영화적 표현에 대해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작품군을 이루고 있다. 이 영화는 현재의 관점 안에서 단편적인 증거 자료들을 이용하고 있다. 그런데 그 단편적인 증거들, 즉 문서자료, 사진자료, 공간, 그리고 증인, 이 네 부류의 흔적들은 사실상 전체를 포괄하기엔 부족하다. 전체는 헤아릴 수 없는 숫자의 사람들이 죽었던 사건인데, 살아남은 세 명의 생존자와 남겨진 몇 가지 증거로는 그 수백만이 죽었던 사건들을 완벽하게 환기시킨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그 적은 흔적들과 증거들을 어떤 방식으로 활용할 것인가, 하는 고민에 따라 란쯔만이나 고다르 같은 작가군의 작품들이 다양한 형태로 진행된다. <쇼아>의 경우에는 어떠한 아카이브 자료도 사용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했다. 왜냐하면 첫 번째로 그것이 상이었기 때문이다. 그것을 사용하지 않았던 두 번째는 그 단편적인 상들이 전체를 은폐시킨다는 특징 때문이었다. 그와 비교해보자면 리씨 팡은 아카이브 자료를 어느 정도까지는 충실하게 활용하고 있다. 이 영화에서는 생존자들이 간수들에게 몇 가지의 증거들을 보여주면서 도대체 어떠한 일들이 일어났었는가를 말하고 있지만, 그 모습은 오히려 그것이 말해질 수 없고 표현될 수 없음을 보여준다. 말할 수 없는 것, 하지만 말해야만 하는 것, 리씨 팡은 그것을 자기가 갖고 있는 영화적 책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쇼아>처럼 홀로코스트의 기억에 대해서는 절대 말해질 수 없다, 결코 이해될 수 없다는 불가지론을 전개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런 표상 불가능한, 절대적인 악이라고 할 수 있는 것들을 영화 안에서 표현해나가며 거기에서 발생했던 끔찍한 사건들을 환기시키고, 동시에 관객들에게 윤리적인 문제들을 환기시켜 나가는 것이다.
과거에 벌어졌던 역사적 재앙을 현재의 관점 안에서 담아낼 때, 그리고 그것이 영상작가에 의한 작업일 때 그것은 상을 만들어가는 작업이다. 상을 만들고 그 상을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것은 영상작가로서의 필연적이고 숙명적인 책임이다. 그러나 리씨 팡이 인터뷰에서 이야기 했던 것처럼 그것은 뭔가를 벗어나기 위함이다. 끔찍한 재앙은 결코 말할 수 없고, 제시 불가능하고, 표현할 수 없다는 불가능성의 영역을 갖고 있지만 동시에 그 끔찍한 것을 벗어나고 다시 반복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직시한다는 것은 눈으로 보는 것을 말한다. 직시해서 눈으로 볼 수 있는 상을 만들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 영화는 볼 수 없음과, 그러나 직시해야 한다는 두 가지 지점이 혼재한 상황 안에서 만들어진 영화라고 볼 수 있다. 동시에 직시한다는 것은 끔찍한 고통 안에서 벗어나기 위한 것이고, 그 끔찍한 고통이 반복되지 않게 않기 위한 하나의 저항인 것이다. 최종적으로 말씀드리자면 사라지고 소멸된 것, 결코 보여질 수 없는 것에 저항해서 만들어진 하나의 상이 이 영화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 관점 안에서 홀로코스트를 다루었던 여러 편의 영화들과 비교하고 견줄 수 있는 특별한 작품 중에 하나가 오늘 보신 <크메르 루즈-피의 기억>이라고 생각한다. (정리: 박예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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