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사강좌④] 우리 시대의 아시아 영화 특별전이 한창이던 11월 21일 일요일 오후. 필리핀의 젊은 감독이자 이미 세계적인 감독으로 성장한 라야 마틴의 <인디펜던시아> 상영 후, ‘라야 마틴과 필리핀 영화의 현재’를 주제로 유운성 전주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의 강연이 있었다. 미리 준비해 온 영상과 함께 필리핀 영화계 전반에 대한 통찰을 들을 수 있던 그 시간을 전한다.


유운성(전주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최근 필리핀 영화는 국제적 주목을 받아왔다. 필리핀 영화를 살펴보기 위해, 알렉시스 티오세코라는 평론가의 이야기로 시작하려한다. 그는 지금 우리가 보는 필리핀 영화들의 진가를 가장 빨리 알아차리고, 외국의 평자들이나 영화제 프로그래머들에게 필리핀 영화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를 알려주었던 훌륭한 평론가였다. 작년에 마닐라의 저택에서 총기 강도 사건으로 사망했다. 그는 2006년에 당시의 필리핀 독립영화를 진단하는 "혁명은 노래 속의 후렴처럼 일어난다."라는 제목의 글을 하나 쓴다. 지금 읽어봐도 통찰력이 있고 재밌으며, 4년 사이에 이렇게 많이 변했구나 하는 인식을 주는 글이다. 필리핀에는 두 거대 방송국이 운영하는 영화사에서 시나리오 공모를 통해 감독을 선발하여 시드머니를 주는 제도가 있다. 따라서, "필리핀의 가장 부유한 두 방송국의 돈을 받아서 제작되는 독립영화란 대체 무엇인가? 독립영화를 어떻게 정의해야 하는가?" 라는 질문과 함께, 이런 식의 지원제도에 의해 만들어지는 필리핀의 새로운 독립영화라 하는 것들이 부유한 방송국들에 의해 촉발된 거짓 인디펜던트일 뿐이라는 비아냥이 존재했다. 이런 인디펜던트만 가능한 것인가? 티오세코는 감독들 스스로 자금을 대고 내용과 형식에 있어서도 매우 급진적인 사람 셋을 언급하는데, 이는 라야 마틴, 존 토레스, 라브 디아즈 였다. 그때 당시, 그리고 지금에도 필리핀 영화계의 가장 중요한 인물들이다. 거기에 더하자면 <도살>이라는 영화로 칸 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한 브리얀테 멘도사 같은 감독도 있다. 이 사람의 영화의 제작비나 만들어진 방식으로 볼 때는 사실 메인 스트림이라고 볼 수 있을 정도다. 그 이후에 등장한 작가들로 중요한 사람이라면, <하수구>의 쉐라드 안토니 산체스, 티오세코가 마지막으로 발굴한 사람이라고 할 크리스토퍼 고줌을 들 수 있겠다.

필리핀 영화의 젊은 세대는 4~5년 전부터 국제영화계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그 이전의 필리핀 영화는 어떠했을까. 적어도 필리핀 바깥에서는 딱 한 사람의 이름만으로 기억되고 있었다. 그 이름은 '리노 브로카'로, 1970~80년대 굉장히 중요한 영화를 만들었다. 그가 91년에 세상을 뜨면서, 동시에 필리핀 영화도 국제 영화계에서 잊혀져가고 있었다. 우리나라에 소개된 것은 그의 대표작 중의 두 편인 <네온 불빛 속의 마닐라>(1975)라는 작품과 <인시앙>(1976)이라는 작품이다. 필리핀에서도 리노 브로카 영화의 프린트를 찾기는 어려운데, 요즘 조금씩 복원되어 소개되는 중이다. 그의 영화가 서구의 관심을 끌었던 것은 주로 필리핀 하층민들의 삶에 대한 리얼리즘적 묘사가 두드러지는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면모 때문이다. 리노 브로카의 계보를 이었다고 생각되는 사람이 데뷔 4년 만에 필리핀을 대표하는 감독으로 국제무대에 알려지게 된 브리얀테 멘도사이다. 브로카의 영화들은 동시대 필리핀 인디펜던트에 큰 영향을 주긴 했지만, 그래도 결국은 영화 산업 내에서의 작업이었으며, 실제로 독립영화라고 할 만한 작업을 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런데 1977년에 갑자기 필리핀 독립영화가 만들어진다. 그 감독이 바로 키드랏 타히믹이다. 그의 <향기로운 악몽>이 베를린에서 국제 비평가상을 받았는데, 이 영화와 더불어 필리핀 독립영화는 사실상 발명됐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는 <투룸바>, <무지개 가운데는 왜 노란색일까> 등의 작품을 만들고 영화 학교에서 가르치면서 후대의 독립영화작가들이 양성되는데 크게 기여했다. 최근에 발간된 카븐의 '뉴 필리핀 시네마: 이것은 영화운동이 아니다"라는 책에는 동시대의 가장 창조적인 작업들을 모두 소개하는데, 젊은 감독들 사이에 훌쩍 나이 차이가 나는 타히믹이 끼어있다. 동시대 필리핀의 대안적 감독들에게 타히믹이 얼마나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라야 마틴의 영화학교 재학 시절의 스승 중의 한명이 키들락 타히믹이다. 타히믹적인 비타협적인 독립영화의 계보에 속한다고 할 수도 있지만, 타히믹의 에세이적인 스타일을 계승한 사람이라면 역시 존 토레스일 것이다. 그는 이상한 방식으로 허구적인 내러티브를 만들어 나간다. 리노 브로카의 영향과 키드랏 타히믹의 영향, 거칠게 말하면 이것이 필리핀 영화의 두 계보라 할 수 있다.

라야 마틴의 <필리핀 인디오에 대한 짧은 필름>과 <인디펜던시아>는 동시대 아시아 역사에 대한 영화다. 라야 마틴의 영화를 비롯한 동시대의 몇몇 혁신적인 아시아 역사영화들의 특이한 점은, 세대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우리가 흔히 역사의 특정한 시기를 다루고 있는 영화를 볼 때, 대개는 그 시대를 충실히 재현하는, 재현으로서의 역사 영화를 보게 된다. 한편 이미지라는 담론 자체의 분석으로서의 역사 영화, 예컨대 스트라브와 위예의 영화가 있다. 90년대 가장 중요한 역사 영화는 사적이며 공적인 추억과 기억을 뒤섞는 영화들이다. 가령, 후 샤오시엔, 라브 디아즈의 영화 같은 것들. 한편, 라야 마틴의 경우는 왠지 역사라는 것과 직접적으로 접촉해본 적이 없거나 그럴 기회를 갖지 못한, 역사의 강렬한 순간과 중요한 순간을 경험하지 못한 세대라는, 즉 '나는 역사의 바깥에 있는 세대'라는 인식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 그는 역사에 대한 지극히 개인적이고 모호하며 파편적인 인상을 담아낸다. 그리하여 일반적인 역사 영화였다면 누락되었을 아주 사소한 일상의 경이들을 스크린에 투영하는 역사영화를 만들어낸다. 역사와의 직접적 관계에 대한 상실감, 그 상실감을 그대로 방치하는 경우는 없다. 상실에 대한 보상으로 무언가를 끌어들이게 된다. 시각적, 청각적, 촉각적인 것들. 가령 <필리핀 인디오에 대한 짧은 필름>의 앞부분 디지털 부분에서 들려오는 아주 강렬한 엠비언트 사운드, <인디펜던시아>의 세트임에도 불구하고 실제 만큼이나 관능적인 자연의 풍광 등. 라야 마틴, 아피찻퐁 위라세타쿤의 '프리미티브 프로젝트', 비묵티 자야순다라의 <두 개의 세상>에는, 역사에 대한 직접적 감각을 상실한 세대의 보상으로서의 자연에 대한 관능성이 존재한다. 라야 마틴의 영화 <오토 히스토리아>는 역사로부터 벗어나고 빗겨난, 직접적 체험을 상실한 세대의 자연에서, 뭔가 보상이 될 만한 것들을 찾아나서는 과정을 다루는 영화처럼 보인다. 나의, 개인적인, 히스테리로서의 역사. 역사와의 불편한 관계를 갖고 있는 자기 자신에 대한 입장이 고스란히 반영된, 우리 세대의 정신병의 근원에 대한 성찰이 담긴 제목이다.

이제 <필리핀 인디오에 대한 짧은 필름>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 한다. 이 영화의 배경이 되고 있는 것은 '카티프난 혁명'이라고 불리는, 필리핀의 혁명이다. 카티프는 안드레스 보니파쇼 등에 의해 1892년에 설립된 독립운동 단체로 평화적인 독립운동이 아닌 무력항쟁을 통한 독립 쟁취를 목표로 한 단체였다. 앞부분을 제외하고 이 영화는 흑백 무성영화의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라야 마틴은 어떤 시기를 다룰 때는 그 시기의 아주 지배적이었던 이미지를 차용한다는 원칙을 갖고 있다. 배경은 스페인 식민통치 말엽으로 1890년대이다. 따라서 영화가 발명되었던 시기의 스타일과 미학을 차용하여 찍기로 결정을 한 것이다. 개념적인 구성원칙인 셈이다. 영화는 19세기 말엽에 발명됐지만, 20세기 초엽에 이르기까지 필리핀을 기록한 영상은 거의 남아있지 않으며, 이 영화가 그 상실을 보완하는 역할을 하기를 바랐다고 한다. 그 꼼꼼함은 거의 경이롭다 못해 과하다 할 정도다. 무성영화의 음악 자체는 물질적으로 필름과 분리되어 있었다. 마틴은 그것 까지를 영화에 가져왔는데, 이 영화의 35mm 필름에는 사운드트랙이 없으며, 그 대신 감독이 따로 녹음한 씨디를 영화 상영에 맞춰 플레이해야 한다. 한편으로는 이 영화는 다른 음악을 현장에서 연주해서 틀어도 되고 원한다면 관객들 각자가 자신이 원하는 음악을 들으며 봐도 상관없는 영화라고 한다.


필리핀이 겪었던 식민시기, 스페인, 미국, 일본 시기에 대한 삼부작을 기획했고 두 번째 파트가 바로 <인디펜던시아>다. 모조리 가공된 인공적 스튜디오 안에서 촬영된 영화다. 흥미로운 점은 미학적, 내용적 측면에서 '혼혈' 이라는 모티프가 이중화되어 나타난다는 점이다. 매우 상상적인 역사를 다루면서 정작 마틴이 끌어들이고 있는 것은 그 식민 시기의 지배적인 영화 스타일, 즉 지배자였던 자들의 영화 스타일이다. 그런데 그것이 일상의 풍경과 인공적 자연을 포착하는 매우 현장감 넘치는 액츄얼한 장면들과 뒤섞인다. 미국식의 스튜디오 촬영이 박탈한 자연을 거꾸로 그 스튜디오 안에서 되찾으려는 숭고한 아름다운 같은 게 빛나는 영화이다. 여기에 첫 번째 혼혈이 있다. 지배자의 미학을 가져오면서 그런 스타일이 억압하는 자연이라는 것을 되살려내는 방식. 정치적 독립으로서 뿐만 아니라 감독 자신의 미학적인 인디펜던스. 여기에는 필리핀이 실제 역사적으로 성취했던 정치적 독립에 대해서는 감각적으로 이해할 수 없다는 자괴감이 깃들어 있다고 보여진다. 두 번째 혼혈의 모티프는 주인공 아이다. 미국에게서 성폭행당한 원주민 여성에게서 태어난, 20세기 이후의 다수의 필리핀인들. 300년이 넘는 스페인 통치와 미국을 거치면서 갖게 된 혼혈 이라는 자각. <상영중>에서도 그것이 우회적인 방식으로 보여진다. 리타라는 이름은 리타 헤이우드의 이름을 따서 지어진 것이며, 이 영화는 결코 리타 헤이워드와는 닮을 수 없는 주인공의 여정을 보여주는 영화가 된다.

정리하자면, 라야 마틴의 영화는 20대~30대만이 진짜로 이해할 수 있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어른들이 공유하는 역사 앞에서 항상 아이처럼 버려진 것 같은 느낌을 갖고 살아온 세대만이 진짜로 이해할 수 있는 특권적인 역사 영화라는 것. 역사적 진공상태에서 유년기를 통과했다는 것이 얼마나 괴로운 일인가를 뒤늦게 깨달은 세대의 영화다. <오토히스토리아>의 37분간의 공백을 보며 '맞아 저건 내가 거리를 저렇게 걸었던 방식이야' 라는 생각이 드는 것. 우리보다 뒤늦게 올 후세들에게 딱히 들려줄 수 있는 후일담이 없는 세대들이 만든 성장 영화인 것이다. 그 정점이 <상영중>이라고 생각된다. (정리 : 박영석)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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