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10. 14. 14:38ㆍ회고전/오즈 야스지로 회고전
[영화사 강좌] 오즈 야스지로를 말한다!
‘오즈 야스지로 회고전’ 기간 중에는 오즈 야스지로의 영화세계를 좀 더 깊이 있게 알 수 있는 세 차례의 영화사 강좌가 마련되었다. 그 첫 번째로 지난 9월 18일 오후 <동경의 황혼> 상영 후 시네마테크부산 관장을 맡고 있는 허문영 영화평론가의 강연이 이어졌다. ‘오즈의 이면’이란 주제로 펼쳐진 열띤 강연 현장의 일부를 여기에 옮긴다.
허문영(영화평론가, 시네마테크부산 관장): <동경의 황혼>에는 오즈 야스지로의 유성영화 중에는 유일하게 겨울이 배경이고, 눈이 내린다. 오즈는 포커스 잡는 게 어려워지거나 하는 영화의 기술적인 부분들 때문에, 영화에서 비나 눈이 오는 것을 싫어했다. 그래서 오즈의 대부분의 영화들은 봄, 여름, 가을에 찍혀졌고 굉장히 밝다. 분위기나 주제에 있어서 밝다는 것이 아니라, 조명을 쓰는 데에 있어서 인물의 표정은 그늘이 없도록 가능한 밝게 처리한다. 그래서 일본의 평론가 하스미 시게히코는 오즈의 촬영 방식의 특징을 가리켜서 ‘백주의 작가’, ‘한낮의 작가’라고 말하기도 했다. 물론 무성 영화시절에 겨울 장면이 나오는 영화들이 간혹 있었다. 예를 들어, <어머니를 사랑하지 않아서야>에서 눈이 나오는 장면은 의도하지 않은 장면이긴 했지만, 비애감을 시적으로 나타내는 것으로 <동경의 황혼>과는 다르다. 이 영화에서 또 하나 특징적인 것은 밤 장면이 유난히 많다는 것이다. 오즈의 영화에서 이렇게 밤 장면이 많은 것은 이례적이다. 전후의 오즈의 영화에서 화면이 이만큼 어두운 느낌을 주는 영화도 없는데, 밤 장면이 많을 뿐 아니라 실내 장면에서도 얼굴에 약간의 그늘이 드리우도록 광원의 개수를 제한하고 있다. 마지막에 하라 세츠코와 류 치슈가 얘기를 나눌 때는 얼굴에 반쯤 그늘이 드리워져 있다.
<동경의 황혼>에서 오즈는 사건을 던져놓고도 자신의 고유한 내러티브 구조로 완강하게 버텨내고 있다는 점에서 이야기의 맹렬한 요구와 자신의 완강함이 충돌하고 있는 것 같은 긴장을 준다. 이 긴장이 오즈 영화의 많은 부분들을 변화시킨다. 그 많은 것들이 아마도 눈, 겨울, 밤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된다. 오즈의 영화에서 날씨에 관한 말이 빠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런데 추운 겨울에는 너무 춥기 때문에 그러한 대화를 나눌 수가 없다. 하스미 시게히코는 오즈의 영화에서 날씨에 관한 말들은 의미 전달을 위한 대화가 아닌, 교화적 기능의 대화라고 표현한 적이 있다. 겨울에는 이러한 교화적 대화를 할 수 없다. 이 모든 끔찍한 사태를 초래한 이유는 이 영화를 겨울에 찍었기 때문이다. 대화를 할 수 없음이 오즈의 영화에서 많은 것들을 변화시킨다. 먼저 공간의 기능을 변화시킨다. 오즈의 영화에서 중요한 공간은 술집과 집이 있다. 그리고 대부분 술집은 남자어른들이 친구들 동창들 동료들과 만나서 남자들의 일종의 유사 공동체를 확인하는 공간이다. 집은 두 종류의 공간이 있다. 1층은 남자들이 집으로 돌아왔을 때 자신의 존재를 확인시키는 공간이다. 집에 돌아오면 가족들을 불러내 인사를 하거나 밥을 먹는다. 딸들은 대부분 2층에서 잔다. 대부분의 경우에 아버지는 2층에 가지 않는다. 2층은 딸들의 공간이다. 그래서 남자가 집으로 돌아올 때 가족들은 1층에 다 소집이 되어야 한다. <동경의 황혼>에서는 이러한 공간의 기능 분담이 완전히 깨져버린다. 오즈의 모든 영화 중, 술집이라는 공간이 이 영화만큼 범죄의 분위기로 가득 찬 것을 본적이 없다. 이 영화에서 술집은 비공식적·공식적 매춘이 일어나는 공간이며, 따라서 두 남녀의 은밀한 성적 거래가 잠복해있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오즈의 다른 영화들에서라면 술집이란 공간은 류 치슈와 친구들이 뭔가 얘기를 나누는 공간이었는데, 이 영화에서는 전혀 다르게 등장하는 것이다. 이 영화에서만큼 류 치슈가 일관되게 불행한 영화가 없다. 그는 완전히 고립된 존재로 그려진다. 어떠한 자신의 공간을 가지지 못한다.
오즈의 영화에는 원인이란 없다. 인과관계 대신 다만 어떤 계열이 있을 뿐이다. 이 영화에서 자각성의 계열을 구성하는 최초의 자리에 눈이 있다. 눈이 내리고 추위가 닥치자 모든 것이 불가능해진다. 친구는 사라지고, 공간의 기능은 무너지고, 아버지는 완전히 무기력해지고, 대화 상대가 사라지고, 모든 것은 실패한다. 그리고 등장인물들은 중간에 사라져버린다. 마지막에 남겨진 두 인물, 류 치슈의 전 아내와 그녀의 새 남자, 이 두 사람은 홋카이도로 떠난다. 오즈의 영화에서 홋카이도로 떠난다는 것은 마치 유배를 가는 듯한, 멀리 떠나서 이제 도쿄의 사람들과 만날 수 없을 것 같은 그런 것이다. 이들이 떠나는 장면에서 제일 중요한 존재는 스키를 들고 기차에 오르는 젊은이들이다. 나이든 세대들은 마치 영원히 떠나기라도 하듯 비장함을 보여주는데, 젊은 세대는 놀러가듯 스키를 들고 떠난다. 여기에 오즈의 영화적 공간 안에서 생기는 이상한 이질성의 충돌이 존재한다. 이 익명의 젊은이들이 기차에 타는 순간, 두 남녀이 보여주는 비장함이라는 것은 굉장히 우스워진다. 딸이 죽었는데 류 치슈는 눈물조차 보여주지 않는다. 그냥 그렇게 시간이 흘러갈 뿐이다. 어떠한 해결 없이, 모든 것들이 인과관계 없이, 무언가 정해진 길을 가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그래서 오즈의 영화에서 가장 잔혹한 것은 시간이라는 사실을 이 영화는 아주 강하게 상기시킨다. 이 영화를 체험하는 데에 있어 중요한 것은 눈이 내리고,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공간은 어떻게 변해 가는가, 사건들은 어떤 방식으로 자기의 운명을 맞이하는가, 그리고 그것을 담아내는 구조는 어떤 것인가, 하는 측면들이라고 할 수 있다.
정리: 장지혜(관객에디터) 사진:정은정(자원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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