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과 결혼이라는 주제를 끊임없이 탐구해온 오즈 야스지로 감독 자신은 평생 독신이었다. 일본 소시민 가정의 소소한 일상을 보여준다는 평가는 맞는 말이지만 이것만으로 오즈 영화의 세계를 설명하기는 무리다. ‘무리’(無理)라는 단어는 오즈의 대사에 자주 등장하는데 어쩌면 오즈가 ‘이치’(理致)란 무엇인지 항상 고민했던 증거인지도 모른다. 평범한 삶에서 그가 발견한 이치는 결혼을 하고 가정을 이루어 주어진 시간을 보내는 인간 조건이다. 단지 일본적인 삶의 풍경만을 잘 그려냈다면 오즈가 이토록 오래 많은 이들의 찬사를 받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오즈는 인간이 선택할 수밖에 없는 결혼과 가정이라는 조건을 존중하고 예의 바르게 그 표면과 이면을 관찰하고 기록하면서도 결코 그 조건에 매몰된 적이 없다.

그의 유작 <꽁치의 맛>(1962)에서 딸을 시집 보낸 아버지는 빈집에 홀로 앉아 “외톨이가 되었군”이라고 읊조린다. 본래 오즈 영화에는 계단이 잘 등장하지 않는다. 계단 입구에 있는 인물들에 이어지는 숏은 보통 마지막 계단을 올라온 모습이다. 그런데 아주 드물게 <꽁치의 맛>에서는 텅 빈 계단을 화면 가득 담고 있다. 그의 영화에서 낯선 이 이미지는 오즈 영화세계의 마침표처럼 느껴진다. 존재하되 보이지 않았던 계단은 생각보다 넓고 공허하다. 겉으로 보기에 오즈의 영화는 결혼에 필사적이다. 그러나 결혼에 뒤따르는 결말은 가족의 이별이다.

역시 딸을 시집 보내는 아버지가 등장하는 <만춘>(1949)에서 아버지는 결혼 자체가 행복이 아니라 행복은 새로운 사람을 만나 새로운 삶을 엮어가는 것이라고 충고한다. 이 말에 깊은 울림이 느껴지는 것은 딸의 결혼으로 아버지의 가정이 해체되는 전제가 깔려 있기 때문이다. 딸의 결혼이라는 경사가 “젊은이는 떠나고 늙은이만 남는” 현실을 받아들이는 쓸쓸함을 바탕으로 성사된다는 것을 오즈는 꿰뚫고 있다. 그래서 오즈는 지독한 허무주의자이자 철저한 현실주의자이다. 홀아비인 아버지가 딸을 시집 보내는 이야기에는 몇 가지 공식이 있다. 아버지를 혼자 두고 떠나기 가슴 아픈 딸은 결혼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며, 아버지는 딸을 시집 보내야 하는 줄 알지만 역시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주위의 권유로 뒤늦게 혼처를 찾아보지만 처음 낙점한 사람에게는 이미 정혼한 상대가 있고 아버지는 모든 일에 때가 있음을 각성하고 혼사를 서두른다. 딸은 결혼하고 아버지는 홀로 남는다.

40, 50년대 대표작과 후기 컬러영화 14편 상영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열리는 이번 오즈 야스지로 회고전에는 총 14편의 작품이 상영된다. 무성영화부터 흑백영화, 컬러영화에 이르기까지 총 53편의 영화를 만든 것으로 알려진 그의 필모그래피 중 40, 50년대 대표작과 후기 컬러영화들이 상영 목록이다. 칸 영화제에서 대상을 받은 <동경이야기>(1953)를 비롯해 그의 대표작인 계절 시리즈 <만춘> <이른 봄> <맥추>가 모두 상영된다. 이번 회고전의 특징이라면 상영작의 절반이 후기 작품이라는 점이다. 흑백영화 마지막 작품 <동경의 황혼>(1957) 이후, <피안화>(1958)부터 이어지는 컬러영화 시대 작품 6편이 모두 상영된다. 오즈의 컬러영화를 볼 기회가 없었던 관객이라면 이번 행사는 전체를 볼 수 있는 기회다. 이 시기 작품은 이전 영화에서 이미 다루었던 것을 반복하되 시대의 변화를 수용하는 차이를 보여준다. <피안화> <가을햇살>(1960), <꽁치의 맛>은 모두 딸을 시집 보내는 이야기인데 <가을햇살>은 아버지 대신 남편과 사별한 엄마가 등장한다. 오즈 영화의 히로인이자 <만춘>에서 혼기를 놓친 딸 노리코로 나왔던 하라 세쓰코가 엄마로 나와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물론 당시 여성의 결혼적령기가 24살이라는 영화 속 묘사도 인상적이다. 이 세 영화는 아버지 동창들이 등장한다는 공통점도 있다. 같은 배우에 극중 인물의 이름도 되풀이될 뿐 아니라 술집 주인도 같은 여배우가 등장한다. 장년이 된 남자 동창들은 단골 술집에 모여 딸들의 혼사문제를 걱정하고 젊은 시절 로맨스를 추억하거나 새 장가든 친구를 골려 먹는다. 술집 여주인에게 던지는 짓궂은 농담까지도 늘 비슷하다. 오즈 영화에서 아버지의 초상은 이들 후기작에 가장 진하게 표현된 것 같다. 아버지의 모습이 좀더 세속적이 된 만큼 아버지의 회한도 깊어진다.

<부초>(1959)와 <고하야가와가의 가을>(1961)은 둘 다 나카무라 간지로가 주연으로 등장하는데 그가 맡은 배역의 성격도 흡사하다. 초기작 <부초 이야기>(1934)를 다시 만든 <부초>는 유랑극단 배우가 자신의 옛 애인과 아들을 다시 만나는 이야기다. 오즈 영화에 종종 보였던 가부키 공연은 여기서 더 자세히 묘사된다. <부초>가 부자 상봉과 화해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면 <고하야가와가의 가을>은 훨씬 유아적이고 이기적인 양조장 주인의 삶 자체가 흥미롭다. 몰락해가는 양조장을 소유한 그는 젊어서부터 난봉꾼으로 유명하다. 죽는 순간에도 “이게 끝인가?”라는 자기 말만 한 그는 옛 애인과 딸을 다시 만나지만 부녀간의 진정한 화합은 없다.

<안녕하세요>(1959)는 이번 상영작 중 가장 초기작 <태어나기는 했지만>(1932)과 같은 계열의 영화로 아이들을 이야기의 중심에 놓고 옹기종기 모여 사는 소시민의 가정을 들여다본다. 동네 아이들은 카바레에서 일하는 젊은 부부 집에 TV를 보기 위해 드나들고 아이들의 부모는 그런 아이들을 야단친다. 일본 최초의 리얼리즘영화라는 평가를 받기도 한 <태어나기는 했지만>에서 소시민 가장의 권위는 여지없이 무너진다. 아이들은 가장 존경하는 아버지가 사회에서는 말단이라는 사실에 충격을 받지만 이를 계기로 가족은 서로 이해하고 아이들은 자란다. <이른 봄>(1956)과 <오차즈케의 맛>(1952)은 젊은 부부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들로 부부관계의 본질을 질문한다. 항상 믿었던 남편의 다른 모습을 발견한 권태기의 아내가 자신에게 정작 중요한 사람이 누구였는지 깨닫고 중심을 찾는 이야기다. <오차즈케의 맛>의 아내는 처음으로 남편과 부엌에 들어가 소박한 밥상을 차리면서 부부에게 중요한 것은 오차즈케의 맛처럼 특별할 것은 없지만 질리지 않는 편안함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음식을 먹는 행위는 오즈 영화의 가장 핵심적인 액션이다. 너무나 일상적이고 그래서 아무것도 아닌 이 행위를 끝없이 반복해 보여주면서 오즈는 문자 텍스트로 표현할 수 없는 영화적 성취를 이룬다. 가족이나 친구가 모여 음식을 먹고, 퇴근 뒤 목욕을 하고, 때로 산책을 나서는 일상이 모여 인생이 되고 우주가 되는 순환의 원리를 일깨워주기에 그렇다. 

이번 상영작 중 <무네카타 자매들>(1950)과 <동경의 황혼>(1957)은 다소 예외적인 작품이다. 신문연재소설이 원작인 <무네카타 자매들>은 오즈의 다른 영화들에 비해 감정 절제가 덜하다. 동시대 나루세 미키오 영화의 히로인이 총출연하는 이 영화는 자매가 주인공인데 불행한 결혼생활을 하는 언니의 옛 애인이 돌아오면서 갈등이 심화된다. <동경의 황혼>에는 가출한 엄마, 이혼한 큰딸, 혼전 임신한 막내딸 등 오즈 영화의 어떤 여성들보다 파격적인 인물들이 나온다. 흑백영화 시대를 마감하는 이 영화는 이후 펼쳐지는 컬러영화들보다 훨씬 우울한 분위기다.

이번 회고전 기간에는 세번의 강좌가 포함되어 있으며 <태어나기는 했지만> <무네카타 자매들> <동경이야기> <이른 봄> <부초> <고하야가와가의 가을> 등 6편의 영화는 무료 상영된다. 

글/이현경_영화평론가

* 영화전문주간지 씨네21에서 발췌 게재한 글입니다.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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