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Review(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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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초 스릴러 영화의 진경 - 로버트 알드리치의 ‘북극의 제왕’
로버트 알드리치는 반골기질로 똘똘 뭉친 할리우드의 이단아였다. 무엇보다 착상하는 소재부터 남달랐고 선과 악의 경계가 모호한 캐릭터들은 마치 감독의 디렉팅 바깥에 존재하는 것처럼 자유분방하게 행동했다. 그렇게 늘 흥행영화를 만들었음에도 영화에는 불균질한 요소들이 넘쳐났다. 2차 대전 중 무능한 상관을 사살하면서까지 미군 내부의 항명을 다뤘던 (1956), 역시 2차 대전 중 12명의 서로 다른 죄수가 독일군 기지를 습격하는 임무를 수행하는 (1967), 일련의 집단이 핵미사일 기지를 점령하고는 미국이 베트남전에서 저질렀던 비리와 잘못을 인정하도록 요구하는 (1977) 등 그는 철저히 스튜디오에 종속된 상업영화 감독이었음에도 자기만의 확고하고 독특한 비전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다보니 처럼 비판적 묘사로 인해..
2011.02.16 -
말의 영화 - 에릭 로메르의 '나무, 시장, 메디아테크'
에릭 로메르의 영화를 두고 '말의 영화'라 말한다면 이 영화는 그런 특징을 가장 분명하게 보여주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인물들의 말의 속도가 빠를 뿐만 아니라 말이 영화의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방데에 있는 작은 마을의 젊은 사회주의 시장은 공유 녹초지에 거대한 스포츠 문화센터를 만들기 위해 정부의 승인을 얻으려 한다. 환경주의자인 문법 선생은 이 계획을 반대한다. 파리의 저널리스트는 마을에 내려와 사람들과 인터뷰를 하며 사람들의 의견을 듣는다. 시장의 딸과 선생의 딸이 친구가 되면서 이야기는 예견치 않은 결말로 향한다. 는 7개의 우연에 관한 영화로 '만약... 하지 않는다면'으로 시작한 7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로메르적인 우연이 영화의 전체를 좌우하고 있는 것이다. 영화의 모두에 학교의 교..
2011.02.16 -
자존심의 강박에 사로잡힌 인물들의 강렬한 초상 - 로버트 알드리치의 <북극의 제왕>
로버트 알드리치의 (1973)은 에이 넘버원이라는 이름을 갖고 무임승차로 미 전역을 떠돌았던 레오 레이 리빙스턴의 「잭 런던과의 대륙횡단 From Coast to Coast with Jack London」과 잭 런던의 「길 The Road」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다. 로버트 알드리치는 이 무임승차자들의 이야기를 통해 자신의 명성과 자존심을 유지하는 데 사로잡힌 인물들의 초상을 강렬하게 그려낸다. 1933년, 몇 년째 지속되고 있는 대공황으로 인해 속출한 부랑자들은 달리는 기차에 무임승차하여 미국을 떠돌아다닌다. 무임승차 실력으로 명성을 얻은 에이 넘버원(리 마빈)은 악명 높은 차장 샤크(어네스트 보그나인)가 운행하는 19호 열차에 오르게 된다. 시가렛(케이스 캐러다인)은 그를 따라 열차에 오르다 샤크에..
2011.02.15 -
사치와 격정에서 비롯한 처연한 슬픔 - 막스 오퓔스의 <롤라 몽테스>
1800년대 초중반, 유럽은 롤라 몽테스라는 예명의 아름다운 여성으로 떠들썩해진다. 이 무희는 피아노의 거장 프란츠 리스트를 포함한 수많은 고위층 인사들과 연애 사건을 일으켰으며, 심지어 바바리아 왕국의 루드비히 1세의 정부가 되어 혁명의 발단이 되었다. 그 결과 루드비히 1세는 결국 퇴위하고 만다. 화려함의 극치를 달리는 프로덕션 디자인으로 비극적인 여성의 생애를 그려낸 막스 오퓔스가 그녀의 이야기에 매료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내러티브의 대부분을 실화를 바탕으로 하는 대신, 혁명 이후의 그녀의 삶을 각색한 오퓔스는 영화 를 바바리아에서의 혁명 이후 모든 것을 잃고, 자신의 일생과 연애사를 공연으로 선보이는 서커스 무대에 선 롤라 몽테스의 이야기로 만들었다. 이 영화는 화려함을 넘어서서 사치라는 단어..
2011.02.12 -
장 르누아르의 만년의 걸작 - <탈주한 하사>
장 르누아르 만년의 걸작 (1962)는 2차 대전 당시, 독일지역에서 포로로서 수용된 프랑스 군인들의 생활을 그린다. 뉴스릴 필름을 통해 간략하게 당시의 상황이 설명되고 영화는 곧바로 수용소 내부와 그 주변 지역에서의 그들의 삶의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한다. 주된 인물은 파리에서 자신을 기다리는 가족에게 돌아가기 위해 끊임없이 탈주를 시도하는 하사(장 피에르 카셀), 그의 절친한 친구이며 몽상가처럼 보이는 동그란 안경을 쓰고 다니는 바롤셰(클로드 라쉬), 그리고 가장 쾌활하면서도 현실의 씁쓸함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인물인 파테(클로드 브라쇠르)다. 군인이 되면 이전의 신분이나 직업들은 지워진다. 전쟁터 혹은 수용소는 그들에게는 거의 유일하게 인간 대 인간으로 동등한 위치에서 만나는 장소가 된다. 그러나..
2011.02.12 -
시원적인 공간, 인간의 신체 - 필립 가렐의 <내부의 상처>
모든 것이 비워진 새하얀 풍경, 시간과 공간을 추측할 수 없는 신화적 혹은 시원적인 느낌의 풍경이 펼쳐진다. 그곳을 돌아다니는 여자와 남자, 그리고 아이가 있다. 성서의 마리아와 요셉, 그리고 아기 예수 같기도 하며, 그보다도 이전의 인류 태초의 인간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 인간들은 그곳을 무작정 걸어 다니거나 울부짖고 다투거나 무언가 알 수 없는 행위를 한다. 끊임없이 등장하는 불과 물이라는 질료, 양과 말 등의 동물들, 그리고 원형의 구도는 영화의 시간성을 자꾸만 태곳적으로 이끌고 간다. 모든 것이 새하얗고 흐릿한 풍경에서 지평선은 무한히 확장되며 하늘과 땅의 경계조차도 사라지는 것처럼 보인다. 이 모호하고 추상적인 영화 (1972)는 필립 가렐이 니코와 결혼한 후 만든 첫 작품이다. 영화음악을 담당..
2011.0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