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와 화용론

2011. 2. 28. 13:232011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Cine talk

[시네클럽] 윤성호 감독의 말, 말, 말

2011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의 일환으로 마련된 시네클럽 행사가 끝을 맞이했다. 그 마지막 주자는 개성 있는 커리어를 쌓아가고 있는 윤성호 감독. 특유의 재치 있는 입담과 농들을 통해서 직접 현장에서 겪었던 실질적이고 실무적인 팁들을 전달하는 시간이었다. 그 일부를 여기에 전한다.


윤성호(영화감독):
늦게 입문한 탓인지 막연하게 예술 하는 사람들에 대한 동경이 컸다. 정확히 말하자면 거리감, 고산식물처럼 보는 것? 어쨌든 대학 다닐 때 친구들과 콩트 같은 것을 만들었는데, 지금은 없어진 10만원 비디오 페스티벌이라는 행사를 통해 아트선재센터에서 틀게 되었다. 그때 고맙게도 10만원상과 관객상을 받았다. 그러면서 문화예술계에 종사하시는 분들과 살짝 처음 인사를 나누었는데 영화를 틀면서 두근거렸을 때 이상으로, 와 출세했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 지나칠 정도의 경외감에서, 오히려 내가 지금 여기서 독특한 존재가 되었다는 것이 가끔 신기하다. 나는 문맹에서 국어도 배우고, 문학도 배우고, 사회문화도 배우면서 시를 쓰게 되었다기보다는 문맹에서 갑자기, 문법도 모르고 시를 쓰게 된 경우인 것 같다. 그래서 의도치 않았던 소소한 문법적 일탈들이 개성으로 인정받는 사이드 이펙트가 있었던 것 같고, 이제 조금 뭔가 알 수 있을 것 같은 상황이다. 어쨌든 지금 생각난 거지만 팁 일번. 배우나 스태프들에게 두 가지를 말하는 것. ‘여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는데요’라고 말을 시작하면 좋다. 왜냐하면 일단 시간을 벌 수 있기 때문이고, 또한 대개 모든 문제는 진짜 두 가지다. (웃음) 이번. 이건 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데, 배우들에게 은유를 쓰지 말 것, 현장에서 동사를 사용할 것. 나는 영화에 입문한 것도 늦었지만 연기를 업으로 하는 사람들과 작업하는 건 더 늦었다. 전편을 연기자들과 작업한 것은 2007년에 <은하해방전선> 작업할 때가 처음이었던 것 같다. 그 이후로 다른 장치들을 제거하고 배우의 연기만으로 가는 방식에 관심이 생겼다. 그러면서 많이 써먹었던 게 비유였다. 배우가 약간 헤매고 있으면 ‘자, 형, 생각해봅시다. 초등학교 때 집에 왔는데 어머니가 안 계셔서 당황하는 느낌 어떨까요?’ 이런 식이었다. 그런데 사실 이게 최악의 연출법이었다. 각본상에서 애초에 상황을 제시하고, 연출할 때 그 상황에 맞는 행위를 주는 게 가장 좋다. 누군가 다쳤다는 소식을 듣고 급하게 집에서 나가야하는 상황에서 허둥대는 연기를 끌어내려면 비유로 군살을 늘리는 게 아니라 열쇠를 감추는 게 맞다.

관객1: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그냥 책상에 앉아 한 번에 작업을 시작하시는 편인지, 아니면 다른 메모라든가 하는 것들을 통해서 시나리오를 쓰시는 건지 궁금하다.
윤성호: 사실 나는 참 애매한 경우인데, 처음 만든 단편 외에는 자발적으로 구상해서 만든 작품이 거의 없다. 그래도 대답을 드리자면, 평소에 메모는 굉장히 많이 해두는 편이다. 그냥 생활 속에서 기승전결이 아주 짧게 해결되는 순간들이 있다. 그게 영화적으로 현신될 수 있을 것 같을 때는 얼른 메모를 해두는 거다. 그런데 그게 지금 내가 주로 하고 있는 단편, 콩트 작업에는 유리하지만 장편의 미션이나 내 안의 욕구가 있었을 때 거기에 맞추기란 굉장히 힘들다. 장편이 서울에서 부산을 가는 것이고 단편이 가회동에서 안국역까지 한 바퀴 산책하는 것이라고 치면, 단편은 큰 지도가 없이도 완만한 산보를 할 수 있지만 서울에서 부산까지 갈 때는 어떤 플랜이 필요하다. 그럴 때는 메모들로 접근하기는 힘든 면이 있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디렉터):
지금까지 작업하면서 본인의 돈을 한 푼도 쓰지 않았다고 했는데 그게 어떻게 가능했는지?
윤성호: 사실 예산 내역서에 들어간 돈이 없는 거고 밥이나 술은 많이 산 것 같다. (웃음) 방금도 말씀드렸지만 어디서 의뢰가 들어오지 않는데 영화를 만들어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딱 하나 제가 처음 기획한 게 작년에 만들었던 인디 시트콤 <할 수 있는 자가 구하라>였다. 그때도 돈 없이 찍을 수도 있었지만, 내가 그런 걸 못 견딘다. 일단 잘 먹어야 된다. 나는 김밥 먹으면서 못 찍는다. (웃음) 다른 감독님들보다 내가 윤리적이거나 해서가 아니라, 안온한 중산층 가정에서 자랐기 때문에. (웃음) 어쨌든 그게 내가 처음으로 먼저 돈을 달라고 한 경우였다. 그런데 계속해서 이렇게 작업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이런 식의 순환이 아직까지는 흥미로운데, 배우나 스태프들한테 못할 짓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럴 때 남는 건 연출자인데, 사실 내가 도움을 엄청 많이 받은 같이 작업한 스태프들이 성장하거나 다른 기회를 받지 못하는 것 같다.

(정리: 박예하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 관객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