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전/우리 시대의 프랑스 영화 특별전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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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클레르 드니의 <35 럼 샷>
부조리한 삶의 조건을 드러내는 시선 클레르 드니 감독은 어린 시절 서아프리카에서 자랐다. 거주지역이 세네갈, 카메룬 같은 주로 과거에 프랑스의 식민지 국가들이었는데, 공무원인 부친이 이곳에서 일했기 때문이다. 대학에 갈 때쯤 프랑스로 돌아왔으니, 그의 정체성은 아프리카와 프랑스 사이에 걸쳐 있다. 아니, 유아기의 중요성을 감안한다면 드니는 아프리카 쪽에 더 가까운 사람이다. 드니의 영화를 설명할 때 자주 언급되는 탈식민주의 테마는 이런 성장배경에서 나온 것이다. (2008)도 프랑스에 사는 아프리카계 사람들의 이야기다. 감독 자신이 밝혔듯, 이 영화는 그가 흠모하는 오즈 야스지로의 (1949)을 응용한 작품이다. 곧 아버지와 딸의 지극한 사랑 이야기다. 아버지(드니 감독의 아이콘인 알렉스 드카)는 기차의..
2012.12.06 -
[리뷰] 아녜스 바르다의 <아녜스의 해변>
자화상, 혹은 행복의 기억 은 바르다가 유년기를 보낸 브뤼셀 근처의 해변에서 시작한다. 해변에 설치된 거울은 세계를 비추는 영화의 비유이지만 동시에 그녀의 자화상을 드러내는 장치이기도 하다. 일종의 설치작품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이는 바르다가 카르티에 현대미술재단의 의뢰로 2006년에 했던 ‘섬과 그녀’라는 작업을 떠올리게 한다. 그런데 왜 해변인가? 바르다는 ‘사람의 마음속에는 반드시 심상의 풍경이 있다. 나의 경우 그것은 해변’이라 말한다.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은 해변에서 시작해 그녀의 삶에서 소중한 사람들과 보낸 기억들을 더듬어가는 자화상 작업이라 할 수 있다. 징 뤽 고다르가 에서 말하듯이 자화상은 회화에서는 비교적 많이 있는 장르이지만, 문학에서는 자전, 회상, 회고록과 같은 형태로 비교적 적은..
2012.12.06 -
[리뷰] 자크 리베트의 <도끼에 손대지 마라>
사랑의 미스테리 는 오노레 드 발자크의 연작소설 중 을 영화화한 것이다. 원작의 배경은 의 핵심시기인 ‘왕정복고 시절’이며, 발자크는 원래 ‘도끼에 손대지 마라’를 소설제목으로 정하면서 ‘위기에 처한 인간’을 청교도혁명에 빗대려했다. 발자크의 의도를 따른다면 영화는 정치적인 알레고리이자 18세기 프랑스 사회의 풍속도로 기능해야 하겠으나, 는 사랑과 열정을 탐구하는 데 더 매혹을 느낀다. 아르망 장군은 무도회에서 공작부인 앙투아네트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첫사랑에 흔들리는 전쟁영웅과 사교계 유명인의 관계는 전쟁처럼 진행된다. 남자는 서툰 방식으로 애정을 표현하고, 여자는 도덕적 우월감과 강요된 정숙함 때문에 속마음을 감추기 일쑤다. 급기야 앙투아네트를 납치하면서까지 사랑을 구하려던 아르망은 끝내 진실하지 ..
2012.12.06 -
[리뷰] 클로드 샤브롤의 <둘로 잘린 소녀>
피를 부르는 사랑 클로드 샤브롤은 히치콕처럼 거의 매번 범죄영화만 만들었다. 그래서 샤브롤은 브라이언 드 팔마와 더불어 흔히 히치콕의 대표적인 후예로 지목된다. 범죄물을 만든다는 점에서는 그런 설명이 맞다. 그러나 스타일에서 보자면 샤브롤은 히치콕과 대단히 다른 작품들을 내놓았다. 샤브롤의 후반기 작품인 (2007)도 그의 전형적인 범죄 드라마다. 그의 영화가 늘 그렇듯 이 영화도 시작하자마자 아름다운 전원도시를 보여주고, 그런 평화로운 풍경에 어울릴듯한 아름다운 저택을 등장시킨다. 말하자면 샤브롤의 범죄물은 살벌한 도시보다는 자연과의 조화가 완벽해 보이는 평화로운 시골에서 주로 진행된다. 그러니 눈에 보이는 평화는 거짓이라는 것이다. 게다가 프랑스의 전원도시는 얼마나 아름다운가. 여기는 프랑스 동부의 ..
2012.12.06 -
[리뷰] 자비에 보부아의 <신참 경찰>
장르 속에 침투한 일상의 순간들 (2005)은 제목만 보고 예상할 수 있는 경찰물의 만듦새를 완전히 벗어난다. 경찰의 일상이 중심에 놓이는 까닭에 사건 위주의 동(同)장르가 지향하는 긴장감 넘치는 전개는 애당초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으로써 액션의 리듬 대신 일상의 지리함이 그 자리를 차지하지만 비극적인 결말이 느슨해 보이는 앞서의 전개를 상쇄함으로써 영화가 주는 충격은 상당하다. 앙트완(자릴 레스페르)은 경찰학교 졸업 후 곧바로 파리 발령을 받는다. 사건에 투입된 날을 기다리며 지급받은 총을 애지중지하지만 별다른 사건이 터지지도 않을 뿐더러 신참인 그는 사건이 접수되어도 사무실을 지킬 뿐이다. 한편 상사 캐롤린(나탈리 베이)은 알코올 중독으로 2년간 휴직 끝에 업무에 복귀한다. 마침 센 강변에서 어느 노..
2012.12.06 -
[리뷰] 필립 가렐의 <평범한 연인들>
거역할 수 없는 시간의 흐름 프랑스영화는 그들이 ‘68의 적자라고 말해왔다. 올해 베니스영화제에도 ’68에 관한 또 한 편의 프랑스영화가 등장했다. 올리비에 아싸야스의 가 그것이다. 영화평론가 닉 제임스는 이 영화가 혁명의 ‘행동주의와 쾌락주의’를 대비하는 방식에서 필립 가렐의 과 비교했다. ‘68을 해석하고 기억하려는 프랑스영화의 노력은 전쟁에 가깝다. 하지만 2005년에 을 발표할 당시의 가렐은 다르게 생각했던 것 같다. 그는 1968년을 역사의 지도로부터 지우려는 경향이 프랑스에서도 엄연하다고 보았다. 그는 영화란 소중한 것들에 대해 이야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68년에 대한 날것의 기록을 에 남겼다. 그런 점에서, 여주인공 릴리가 옆의 남자에게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1964)를 봤냐..
2012.12.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