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필름 영화는 영화 뒤에서 누군가 바삐 움직이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이해하게 한다”

-대전아트시네마 장승미 프로그래머와의 대화





김성욱 대전아트시네마에서는 언제부터 일하게 됐나? 주로 어떤 일들을 하고 있나?

장승미 2011년 8월부터 아르바이트로 일하다 2012년부터 직원으로 일하기 시작했다. 대전아트시네마와 인연을 맺은 건 그전의 일이었지만 일한 걸로만 치면 5년 정도 되었다. 다른 지역의 예술영화전용관들도 마찬가지일 거라고 생각하는데, 극장에 직원이 한두 명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매표, 영사, 청소, 홍보 등등 회계를 제외한 극장의 거의 모든 일을 하고 있다.


특별히 영화 쪽의 일을 하게 된 계기가 있나? 영사기사 자격증도 갖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필름 영사기사로서의 꿈을 품고 있었던 것인지.

-극장에서 일하다 보면 관객분들이 꼭 묻는 얘기가 대학에서 영화를 전공했냐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영화 전공을 하지도, 어렸을 적부터 ‘씨네키드’로 자라지도 않았다. 오히려 극장에 가거나 영화를 보는 것은 명절 또는 특별한 날의 행사 같은 것이었다. 영화를 보는 것보다 보고 나서 부모님이 사주실 돈까스에 더 관심이 많았다(웃음).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일을 시작했는데 그때 손님으로 온 한 여성분이 자신을 영사기사라고 소개를 했다. 그래서 <시네마 천국>에서 봤던 알프레도 할아버지를 떠올리며 ‘우리나라에도 영사기사라는 직업이 있다니, 그리고 여자도 영사기사를 할 수 있다니’하고 무척 충격을 받았었다. 그 뒤 일을 찾다가 영사 스태프를 뽑는 공고를 보고 지원했고, 결과가 좋게 나와 영사기사가 되었다. 그 후에 여러 극장을 거치다 대전아트시네마까지 왔다.


대전아트시네마는 최근 필름 영사를 많이 하지 않고 있는데, 필름 영사가 갖는 특별한 감회가 있다면? 지역 극장에서의 필름 상영이 어떤 것이라 생각하나.

-처음에 영사 스태프로 일할 때 함께 일하던 동료들이 다들 좋은 분들이셨다. 그때 내 나이가 21살 정도였는데, 나이가 어린 게 귀여워 보였는지 아니면 서울에서 혼자 자취하는 게 딱해서인지 몰라도 나를 굉장히 잘 대해 주셨다. 언니, 오빠들과 6개월 정도 영사일을 공부하면서 “여기는 사운드가 좋다더라”, “여기는 완벽한 시네마스코프 비율을 유지한다더라”하면서 서울의 이곳저곳 극장에 많이 데려가 주셨다. 그 기억들이 고맙고 신기하고 재미있게 남아있다. 아마 그분들도 영사일에 애착을 많이 갖고 있었기 때문에 그랬던 것 같다. 심지어 영사기와 대화하는 분도 있었다. 그러면서 더 배우고 싶고, 영사에 대한 애착도 많이 생겼다. 영사기사 자격증을 따서 오래도록 이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운 좋게 자격증을 잘 따서 본격적으로 기사 생활을 해보니 썩 그렇게 좋은 것만은 아니었지만 말이다(웃음).

처음으로 기사 생활을 접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이 필름에서 디지털로 넘어가는 과도기의 한가운데에 있을 때였다. 그 과도기가 너무 지치고 힘들었다. 그때는 디지털에 익숙해지기 전이라 필름이 더 좋고 애착이 갔다. 특히 편집 과정에서 영화의 한 장면을 훔쳐보면서 갖는 감정들이 마음에 많이 남아있었기 때문에 2~3시간짜리 릴들이 들어와도 별로 힘들지 않았다. 왜 바꿔야 하나? 그런 생각을 많이 했다. 하지만 디지털이 갖는 경제적 이득이 너무 강했다. 특히 필름에서 디지털로 바뀌면서 생긴 가장 큰 문제는 영사기사의 거취 문제였다. 내가 일하던 극장은 영사기사가 중요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없어 보였다. 제일 먼저 사라진 분들이 오래된 실장님들이었으니 말이다. 그 과정에서 그렇게 애착을 갖던 일들에 대한 자존감이 많이 상했고, 더 이상 일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아직도 필름에 애착을 느끼는 것은 필름이 곧 사람의 문제와도 직결된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필름 영화를 볼 때면 누군가 영화 뒤에서 바삐 움직이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사실 영화를 볼 수 있다면 어느 곳에서나 어떤 방식으로든 볼 수 있는 요즘에는 그리 중요한 문제는 아닐 테지만 말이다.

이제 극장 일은 안 해야겠다고 생각하면서 그만두었는데, 또 일하려고 하면 영사실에서만 부르고 다른 곳에서는 부르지를 않았다. 아니면 불러도 영사실에서만 일했다는 이유로 떨어졌다. 그러다가 대전아트시네마와 인연이 닿아서, 그래도 필름은 많이 만지겠구나 싶어 덥석 일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필름 상영이 많진 않더라(웃음). 처음 와서 배운 것이 다시 디지털 영사기 작동법이었다.

무서운 것이 예전에는 필름만 만지니 필름 작업이 왜 힘들다는 건지 이해를 못했는데, 이제는 필름이 들어오면 한숨부터 나오기도 한다. 하지만 오래된 친구처럼 반가운 느낌도 분명히 있다. 내게는 어쨌든 영화 쪽에서 일을 하게끔 도와준 것이고, 한편으로는 사람들과 매우 강한 연결고리를 가지고 있는 것이고, 많은 추억들을 만들어 준 것이니 말이다. 지역에서는 아마 필름 상영에 대한 인식을 갖고 있는 사람이 별로 없을 것 같다. 요즘의 예술 영화처럼 필름으로 영화를 본다는 게 어떤 메리트처럼 작용한다면 바뀌긴 할 테지만, 아직까지는 지금 본 것이 어떤 상영본인지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다.

그런데 관객들에게 ‘필름이다’라는 인식을 갖게 하는 기획전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많이 한다. 개관 10주년을 기념해 지금 준비 중인 <극장전 part 1. 꽃의 왈츠>를 촬영하다가 편집씬을 마치고 스태프들에게 편집한 영화를 보여주니 무척 좋아했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히 뭔가 다르다고 하더라. 사실 필름이 상당히 아름다운 빛깔을 보여준다. 디지털의 픽셀로 구현한 색이 아닌 필름에 입혀진 색들은 정교한 그림자로 보면 사물과 사람의 경계가 굉장히 자연스럽고 색 자체의 빛깔이 다르다. 한편으로는 디지털로 변하면서 디지털이 주는 장점들이 있을 것이다. 그런 차이점들을 설명하며 진행하는 기획전을 만들어 보고 싶은 생각이 있다.



대전아트시네마가 올해로 10년을 맞았다. 일을 하면서 느끼는 특별한 감회가 있다면?

-대전아트시네마의 10년 동안 반절을 함께 지냈다. 달리 말하자면 내 20대의 절반을 대전아트시네마와 함께 보낸 것이다. 이렇게까지 깊은 인연이 되어줄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10주년이다. 나도 이제 30대이다. 내가 처음 일했던 해에는 정말 손님이 없어서 만날 고양이랑 놀다 가니까 월급을 받아도 되나 했을 정도였다. 그나마 재작년까지는 관객이 좀 늘어서 북적북적하면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즐거웠는데, 지금은 다시 관객이 줄었다. 게다가 영화진흥위원회의 지원도 끊겼다. 위기라는 생각과 다시 시작이라는 생각이 복잡하게 공존하는 한 해다. 그리고 그동안 강민구 대표가 여러 부분들을 감당하면서 극장을 여기까지 운영해 왔는데 정말 축하드리고 싶다. 조금 더 같이 일할 수 있으면 좋겠다. 조용한 극장을 함께 지켜주었던 고양이 린투에게도 고맙다.


지역 극장을 운영하는 일은 꽤 어려운 일이다. 프로그램의 편성, 관객들의 참여의 저조함, 시네마테크에 대한 몰이해, 정부지원의 중단 등, 어떤 점이 가장 어렵다고 느끼는지?

-모든 부분에서 지역에 있다는 것만으로 늘 한계점이 존재한다. 지역 특성에 따라서 어려움의 정도야 조금씩 다르겠지만, 영화에 대해서 혹은 극장에 대해서 강력한 애착을 형성한 관객들이 적어도 50명 정도 있으면 좋겠다. 사람들의 마음을 끄는 것이 정말 어려운 일 같다. 내가 좀 외향적이고 활달한 성격이었다면 대전아트시네마 정기 모임 같은 걸 유지하면서 극장의 응원군을 더 많이 만들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에 미안한 마음도 갖고 있다.

요즘 극장은 계속 나이를 먹어 가는데 이에 대한 관객의 이해심이 점점 줄고 있어 걱정하고 있다. 좀 극단적으로 이야기하자면 관객들은 이제 오래된 것들에 대한 이해를 하려 하지 않는 것 같다. 가치 있다는 생각을 해도 실질적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일은 극히 드물고, 온다 해도 이벤트의 성격으로 찾는 분들이 많다. 필름이 그렇게 사라졌듯이 현대의 편리성 앞에서 낡은 것들은 언제나 불편함으로 다가온다.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영화가 언제 어디서든 볼 수 있는 것이 되어버렸기 때문에 영화를 보는 것이 더 이상 극장에 가는 것과 동일할 수 없으니 말이다. 이렇게 ‘극장’이라는 이미지조차 시대에 뒤떨어진 것으로 보이니 우리 극장은 그야말로 과거의 산물 같은 느낌일 것이다. 영화를 극장에서, 그것도 대전아트시네마에서 봐야 한다는 의지가 없다면  점점 관객들의 관심에서 밀려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대전아트시네마를 찾는 관객들은 주로 어떤 층들인가? 관객들의 영화적 성향, 어떤 영화나 문제들에 관심을 갖고 있는지, 혹은 어떤 부분들이 여전히 부족하다고 느끼는지 궁금하다. 그리고 극장을 운영하면서 관객과의 경험에서 특별하게 기억하는 일이 있다면?

-우리 극장을 찾는 관객분들은 예전에는 고등학생에서 대학생, 그리고 30대 여성이 대다수였는데, 최근은 40대 여성이 늘어나고 있다. 그러면서 자연히 중년 남성들도 많이 찾는 편이다. 이른바 ‘아트버스터’라고 일컫는 영화군들을 선호하는데, 일부러 그런 영화들을 상영하지 않을 때가 많다. 최근에는 그런 영화들이 멀티플렉스에도 편성이 되니 좀 더 개성 있는 영화나 놓치면 안 될, 그리고 상영 기회를 받지 못한 영화들을 더 편성하려 한다. 어차피 멀티플렉스 영화관에 편성이 된 영화를 상영하면 관객이 적게 들기 때문에 큰 손실이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관객들의 선택은 ‘좀 더 편한 극장’이거나 ‘좀 더 특별한 영화’ 둘 중 하나일 테니 말이다.

요즘에는 새로운 관객들, 그러니까 다른 극장에서 영화를 보다가 예술 영화에 흥미를 느낀 관객이 우리 극장을 찾는다. 그러다 보니 영화의 어떤 부분들에 대한 해석을 원하시는 분들이 꽤 생겼다. 대부분은 스토리가 어떻게 된 것인지 물어보는 관객들인데, 생각보다 영상 언어에 익숙하지 않은 분들이 많구나 싶다. 그래서 이를 채워줄 부가적인 행사나 강의들을 더 많이 가지려 한다. 고전 영화부터 시작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어떤 영화들에 매혹을 느끼는지 궁금하다.

-자기만의 방식으로 이야기를 하는 영화들이나 마음이 쓰이는 몇몇 장면들을 가진 영화를 좋아하는 편이다. 그리고 그때 읽는 책이 무엇이냐에 따라 조금씩 관심 분야가 달라진다. 최근에는 『이미지 시대의 역사 기억』(남수영)이라는 책을 읽고 영화가 역사나 개인의 역사를 얼마나 담아낼 수 있는가에 대한 문제에 대해 꽤 관심이 많아졌다. 특히 사담으로 시작해서 거시적인 것으로 다가가는 영화들, 또는 사담으로 그치더라도 어떤 쟁점을 보이는 영화들을 흥미롭게 본다. 극장 일이 바쁘지만 틈틈이 영화를 봐야겠다는 마음은 여전하고, 보다 전문적으로 영화에 대해서 공부해 보려 한다. 그래서 보다 좋은 영화들을 관객들에게 소개하고 싶다.


앞으로 어떤 상영이나 교육 프로그램을 계획하고 있는지 듣고 싶다.

-일단은 이번에 찍은 영화를 통해 극장이 자생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 보려 한다. 정부 지원도 물론 필요하지만 결국에는 관객과 함께 극장을 유지해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영화 제작을 통해 공동체를 만들고, 이를 지속해 나갈 수 있는 극장을 만들고 싶다. 내년에는 감독이나 영화의 소재, 또는 장르를 통해서 단일한 기획전을 만들기보다는 같은 주제 안에서 새로운 것들을 조금씩 발견할 수 있는 기획을 만들고자 한다. 이를테면 얼마 전에 루이스 부뉴엘의 작품을 보았는데 그 초현실적인 이미지를 구현하는 데 있어 촬영감독인 가브리엘 피구에로아의 역할에 대해 고민해 보게 되더라. 그런 지점들을 다양하게 배치해두고 관객들의 영화에 대한 시각을 넓혀줄 수 있는 것들을 풀어내고 싶다.

인터뷰 진행 및 정리 / 김성욱 프로그램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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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아트시네마,  10년의 극장전


올해로 대전아트시네마가 개관한 지 10년이다. 이미 90년대 후반부터 시네마테크 대전에서 활동하던 현 강민구 대표는 지역상영회를 개최하다 2006년 지역의 예술영화관으로는 처음으로 민간예술영화관 대전아트시네마를 시작했다. 몇 년 전부터는 협동조합 형태의 영화관을 구상 중에 있고, 개관 10주년을 맞아서는 <극장전 part 1. 꽃의 왈츠>라는 영화를 제작하고 있기도 하다. 지난해, 대전아트시네마는 영화진흥위원회의 예술영화전용관 지원 사업에서 시설 낙후 등의 이유로 지원을 받지 못했고, 그럼에도 일 년이 지난 지금까지 영화관의 불빛을 꺼뜨리지 않고 있다. “영화는 영화다”, “사라지는 극장의 풍경”, “지역 안의 영화”라는 세 가지 섹션으로 10월 10일 개관 10주년 특별전 “시네마: 영화 혹은 영화관”을 개최할 예정인 대전아트시네마 강민구 대표를 만나 소회를 들었다. 아울러, 영사기사로 출발해 대전아트시네마의 프로그램 기획을 하고 있는 장승미 씨에게도 10년의 감회를 물었다.


“늘 흔들리며 여전히 일하고 있다”

- 대전아트시네마 강민구 대표와의 대화


김성욱 먼저 개관 10주년을 축하한다. 10년의 감회가 있다면?

강민구 특별한 감회는 없다. 10년의 세월 동안 사람도 극장도 극장의 영사장비도 늙어가는구나라는 생각이 들고 있다. 서로가 서로에게 삐걱대며 서로 기대고 있다는 생각 때문에 어느 순간 그 한 축인 사람이 사라지면 금방 무너질 것 같다는 생각이다.

예술영화에 빠진 게 대학시절이었다고 예전에 말했었다. “당시는 미국과 홍콩의 상업영화가 국내 영화계를 주름잡던 시절이었는데, 그런 때에 유럽의 예술영화를 접하고 이전의 상업영화에서는 맛볼 수 없는 무언가를 느끼면서 문화적 충격에 휩싸였다”고 말했었다. 원래 전공은 철학인데 어떤 계기로 영화에 빠져들게 됐나? 어떤 영화를 인상적으로 기억하나?

-당시로 이야기하자면 극장보다는 EBS의 영향이 더욱 컸다고 생각한다. 물론 극장을 전혀 안 간 것은 아니지만 즐기지는 않았다. 오히려 EBS의 ‘세계의 명화’, ‘일요시네마’ 등을 많이 본 편이다. 함께 미학을 공부하던 선배 때문에 문학평론을 공부해 보자는 생각으로 휴학을 했었다. 그런데 당시에 워낙 문화적으로 한국사회가 요동을 치던 시기였다. 『창작과 비평』이나 『문학과 사회』에서도 영화평론 글들이 실렸었고 문학평론보다는 영화평론이 더욱 호기심을 자극했다. 물론 그 덕분에 문학평론을 하겠다고 공부를 하던 것은 바로 정리가 되었다. 평론이라는 것이 좀 더 분석적으로 보일지 몰라도 사실 어떤 기준에 대한 상상력이 무한하지 않으면 하기 힘들더라. 다른 이들이 보기에는 분석적이고 이성적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평론이라는 글 자체는 상상력이 만들어 놓은 기준이 있어야 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상상력이라고 하면 역시 영화가 더욱 호기심을 자극하고 판타즘을 주기에 더욱 매력적으로 느꼈던 것 같다.

계간 『리뷰』나 『문화과학』에서도 심도 있게 문화 현상을 다뤘었다. 그리고 영화잡지 『키노』의 탄생부터 『씨네21』까지 대단했다. 그런데 이런 잡지에서 언급되는 영화들을 지역에서 볼 수 있는 것은 당시로서는 EBS밖에 없었다. 계속 녹화를 하면서 영화를 보곤 했는데, 고다르의 영화가 확실히 문화적 충격을 주었다. 다른 방식의 영화 제작, 연출에 대한 소개도 많았고, 미학 공부를 하면서 아도르노부터 브레히트나 루카치의 책들을 읽으며 영화를 지적으로 소화하려던 시기였다. 그런 게 멋있어 보이기도 했다(웃음).

그러다 미국 고전영화들을 보면서 영화에 대한 또 다른 눈과 태도가 생긴 것 같다. 영화를 지적으로 소화하는 것과 영화적으로 소화하는 것은 또 다른 즐거움을 주었으니까. 그래도 아직까지 최고로 자주, 반복적으로 본 영화는 고다르의 <미치광이 피에로>이다. 이후의 아시아 영화들도 너무 좋아한다.

지역의 극장들도 마찬가지로 대부분 사라지거나 멀티플렉스화되었을 텐데, 어릴 적 대전 지역에서 영화관을 다녔던 기억이 있다면? 특별히 기억하는 영화관이 있나?

-특별히 기억하는 영화관이라는 것이, 사실 당시의 특별했던 어떤 상황과 마주했을 때 기억에 남는 것 같다. 극장을 정해놓고 다니지는 않았기 때문에 특별하게 기억하는 영화관은 없다. 물론 상황에 따른 기억이 남아 있는 극장은 몇 군데 있다. 그런 점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극장은 “고려극장”이라는 옛 극장이다. 극장의 외관부터 상영관까지 정말 예스럽고 멋스러웠다는 생각이 든다.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다니던 시절에는 동시 상영관으로 전락하기도 했다. 극장 옆의 만화방과 번갈아가며 다니던 극장이라 그나마 어린 나이에 꾸준히 다녔다. 이 극장의 외관을 사진으로 남겼으면 좋았을 텐데 사진을 구하기도 힘들더라.

대전아트시네마를 개관하기 이전인 1997년부터 시네마테크 대전 활동을 한 것으로 알고 있다. 초기 시네마테크는 어떤 방식으로 활동을 했나?

-시네클럽 형태의 동아리였다. 대다수 사람들이 함께 영화감상의 취지로 모였는데, 내가 좀 오기를 부렸다. 스터디 모임을 만들어 함께 공부하고 시네마테크를 이야기하면서 전업으로 일할 수 있는 조직으로 나아가길 희망했다. 당시 서울의 “문화학교 서울”에서 자료를 얻기도 했고 부산에서 시네클럽을 하던 친구들과 자막작업을 하기도 했다. 이리저리 자료를 얻어서 복사를 많이 했었다. 물론 EBS나 NHK에서 녹화한 자료들도 꽤 있었다. 그래서 초기 비디오테크의 형태를 갖추었는데 이러한 상황 때문에 사회 초년병 시절 감당하기 힘든 빚에 시달리기도 했다(웃음). 특별히 돈벌이가 없어서 함께하던 친구와 노점에서 계란빵 장사도 했는데, 구청에서 리어카를 밤 사이에 가져간 기억이 있다.

대전아트시네마 개관이 2006년 4월의 일이다. 서구 월평동 옛 선사시네마 자리에 196석 자리였다. 어떻게 극장을 오픈하게 됐나? 개인으로서 극장을 지역에서 개관한 것은 꽤 드문 일이다. 어떤 믿음이 있었고, 어떤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나.

-가능성을 보고 시작하진 않았다. 단지 시네마테크 활동을 하면서 지역 순회상영전 및 기타 영화제를 진행할 때 장소가 늘 고민이었다. 장소를 옮기며 하는 것이 무척 피로했다. 극장을 처음 시작할 때도 ‘혼자는 무리다’라는 생각을 많이 했었고, 때문에 협동조합 방식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극장에 대한 멤버쉽 정도로 생각하던 회원들을 데리고 협동조합에 대한 교육을 몇 번 했는데 결과가 좋진 않았다. 너무 아마추어적이었고 비즈니스라는 것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스스로에게 많았다. 아직도 그렇긴 하지만.

2007년에 지금의 현 자리인, 대훈서적 건물 3층 옛 동보극장 자리로 옮겨왔다. 옮기게 된 배경은 어땠나?

-전에 있던 극장 건물이 노인요양병원으로 업종변경을 했다. 세들어 살던 세입자들이 다 나왔다. 세입자가 얼마 있지는 않았지만 망하거나 쫓겨나거나 했다. 그때의 상처 때문에 남의 건물에 투자하고픈 생각은 없다.



개관 십 년을 맞는 감정이 ‘약간의 우쭐함과 낙담’이라고 했는데, 자부심을 느끼는 부분과 낙담하는 부분은 어떤 것인가.

-우쭐했던 것은 그래도 젊은 나이에 할 만큼 했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사회 생활을 한 것도 아니고 대학 졸업 후 친구와 함께 지하실에서 시네클럽을 시작했다. 그러다 신용불량자도 되어 봤지만 이 모든 것을 극복하고 극장까지 하게 되었으니 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충만했고 스스로에 대한 믿음도 강했다. 그런데 사람들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라는 사실을 알고 낙담을 한 것이다. 극장을 하면서 만나는 사람들의 폭이 넓어지니 아주 다양한 사람들이 무슨 생각으로 사는지에 대한 나름의 정리도 되어간다. 오히려 내가 반대로 변해가는 것에 초조해하기도 한다.

개관 10주년 기념행사의 전체 콘셉트가 “시네마: 영화, 혹은 영화관”이다. 개관 기념으로 만든 영화도 극장과 관련이 깊다. 여전히 영화관을 운영하는 것이 당신에게는 어떤 의미인가?

-보고 싶었던 영화를 누군가와 함께 볼 수 있다는 것, 그리고 한편으론 극장 영업이 끝난 후 혼자 여유롭게 영화를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의미는 충분한 것 같다. 구조적이고 사회적인 의미는 별로 나에게 와닿지 않는다. 물론 전체 예술영화관에 대한 정책이나 영화 관람 문화의 변화, 극장의 변화는 또 다른 의미가 있겠지만 말이다. 지금의 나와 대전아트시네마라는 극장은 극장운영의 문제로 볼 때는 처절한 애증관계이다.

당신의 (흔들리는) 마음을 잡아주고 여전히 일하게 하는 음악, 책, 혹은 영화가 있다면 어떤 것이고, 어떤 여전한 믿음을 갖고 있나?

- 허수경 시인의 『혼자 가는 먼 집』은 대학시절 연애 실패 후, 외우다시피 읽었던 시집이다. 연애를 할 때 상대방은 세상의 모든 것이다. 그래서 세상에서 버려졌다라고 느끼는 것은 실연과 유사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허수경 시인의 시 중 “혼자 가는 먼 집”을 읽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아... 저렇게 아파하는 사람이 또 있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마치 우산을 버리고 함께 비를 맞아주는 느낌이랄까. 그래서 예전의 고다르 영화보다는 차이밍량의 영화를 좋아하게 된 것 같다. 물론 <애정만세>에서 <구멍>까지만. 그리고 <안녕, 용문객잔> 정도까지. 마음 다잡고 일한 적은 별로 없다. 늘 흔들리며 일한다. 그게 내가 함께 일하는 사람들을 힘들게 하는 요소일 것이다.

특별히 기억하는 관객이 있다면?

-조용히 왔다가 영화만 보고 조용히 사라지는 관객들이 있다. 스스로의 존재감을 드러내지 않기에 극장을 채울 수 있는 관객들이다. 그런 몇 분이 있다. 이름도 모르고 얼굴도 잘 모르지만 그런 분들을 기억한다.


인터뷰 진행 및 정리 / 김성욱 프로그램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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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월 서울극장에서 재개관하는 '시네마테크 서울'의 '관객회원 라운지' 조성을 위한 크라

      우드 펀딩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관객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참여를 기다립니다. 

<span style="font-family: Tahoma; font-size: 14pt;">Untitled Document</sp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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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발언]


우리는 어떻게 시네마테크에서 영화를 사랑하게 되었는가?

서울시의 시네마테크 지원을 촉구하는 관객운동의 일환으로 관객들의 지지 발언이 온라인(atthecinema2014.wordpress.com)에서 이어지고 있다. 대부분은 시네마테크에 대한 그들의 생각과 순수한 애정고백들이다. 모든 글의 전문을 실을 수 없을 만큼 많은 글들이 있었다. 우리는 관객들의 글이 단지 어떠한 목적을 위한 지지의 발언을 넘어선 시네마테크에서의 영화적 체험에 관한 중요한 기록들이라 생각했다. 지면 관계상 전문을 실을 수는 없지만 그 일부를 소개한다. 전문은 위의 사이트에서 확인할 수 있다. (편집자)



♣ 나는 우리 관객들 모두가 ‘영화’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 모두에게는 각자가 마주한 ‘그 영화(들)’로 우리 각자의 ‘영화’를 정의내릴 권리가 있다. 멀티플렉스에서만 영화를 보는 것은 그 권리를 누리기도 전에 미리 차단해 버리는 것이다. 따라서 시네마테크는 ‘영화’라는 권리가 행사되는 장소이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영화’를 정의내릴 수 있을 때까지, 그리고 친구들의 ‘영화’가 뻣뻣하게 굳어버리지 않도록, 시네마테크는 언제든지 찾아갈 수 있게 안정된 공간으로 지속되어야 한다. (마루코)

♣ 장 르누아르 회고전에선 <프렌치 캉캉>을 발견했다. 색채와 빛과 소리의 축제 같았던 영화. 가슴 벅찬 설렘으로 극장 문을 나섰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내 오직 그 한 편의 영화 때문에 한없이 행복했다. 서울아트시네마의 ‘감독 회고전’ 프로그램이 아니었다면 어쩌면 일생 동안 내가 보지 못했을, 잘 알려진 거장의 덜 알려진 작은 영화, 하지만 너무나 사랑스러운 영화였다. 서울아트시네마는 내게 기억과 그리움의 저장고이자 앞으로도 계속 찾아가고 싶은 휴식처이다. 그 공간의 기억과 고유한 감성은 무엇으로도 대체불가능하다. 그 빛과 소리의 감동이 언제나 내 곁에, 우리 곁에 있길 진심으로 소망한다. (정경진)

♣ 지난 몇 년 동안 아끼던 여러 극장을 과거에 두고 왔다. 수건돌리기의 수건처럼 그 위기가 이번에는 서울아트시네마에 점점 다가오고 있다. 서울아트시네마에서 만난 영화와 그에 대한 경험은 말로는 설명하기 어렵다. 수치화해서 그래프로 그리기도 어렵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서울아트시네마가 비효율적인 것이라, 사치라 여기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도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지 않은가. 다시 한 번 바란다. 서울아트시네마가 과거에 것이 되지 않기를, 내가 나이가 들어도 언제나 내 몸과 마음 위로해 주기를. (임유정)

♣ 스크린 가까이 앉아서 보는 영화가 다 좋은 건 아니지만 앞쪽에 앉아 스크린 아래 위를 그윽하게 쳐다보면 황홀하고 그렇지. 스크린의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천천히 눈을 옮기다 보면 자막도 막 놓치고 그러면 재밌고. 그냥 나는 그렇게 영화를 본다. 영화가 끝나고 다시 불이 켜지면, 뒷목을 주무르며 낙원을 나선다. 낙원을 나서며 왜 또 넷째 줄 티켓을 받았는지에 대해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낙원을 나선다고 생각한다. 그럼 이제 어디로 가는가. 밤이 되었네. 저기는 낙원이었는데 이젠 어디로 가지. 그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면 횡단보도가 나오고 길을 건너고 어디든 가게 된다. 어디든 가면 나는 또 낙원에 오겠지. 낙원이 저기 있으니까. 그렇게 나는 낙원을 뒤로한 채 낙원을 향한 채 어디로 간다. (김홍구)

♣ 위로받고 싶고 온기를 느끼고 싶으면 나는 영화관에 갔다. 그 곳에서 영화를 보기 시작하면 영화는 다른 사람들과 공유함으로써 느끼는 그 무언가가 아니라 그 영화와 내가 서로를 탐닉할 수 있는 그 무언가로 존재한다. 그 어둠 안에서 나는 무엇에 떨렸는지, 울었는지, 혹은 전율했는지. 나는 조금씩 그 감각을 잊고 살았다. 그리고 그러한 공간들을 점점 잃어가고 있다. 유토피아가 어디 저 너머에 존재하는 게 아니라, 사실 우리 사이에 이미 존재하는 것이라 한다면 아름다운 것들이 사라져가는 것에, 사랑했던 것들이 죽어가는 것에 더 이상 무기력해지고 싶지 않다. (관객 1)

♣ 서울, 도쿄, 상하이… 십 년 넘게 떠돌아다니다 보면 나고 자랐던 곳이나 살아 봤던 곳에 딱히 귀속감일랑 느끼지 않게 된다. 그도 그럴 것이 제주도든 홍대든 서촌이든 이제 여기가 그때 거기가 아니니까. 이쯤 되면 고향이란 나면서 정해진 어딘가가 아니라 마음 속에 품은 어딘가가 된다. 내가 어디에 있건 늘 마음 한구석에 그리는 그런 곳. 서울아트시네마는 내게 그런 곳이다.

언제부턴가 귀국 일정을 잡으면서 꼭 서울아트시네마의 상영 일정을 체크하게 되었다. 몇 년 이렇게 지내다 보니 서울아트시네마가 없는 서울은 서울 같지 않다. 이런 도시의 실향민이 어디 나뿐일까. 비옵건대, 부디부디 거기에 오래오래 남아 반겨 주시기를, 언제나 그리운 고향, 서울아트시네마. (홍)

♣ 언제쯤 직업인으로서의 영화감독으로 살아갈 수 있을지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불확실한 시간들을 살아가며 행복하게 영화를 생각할 수 있는 힘 또한 시네마테크에서 얻었다. 영화학교 졸업 후 막스 오퓔스의 <미지의 여인에게서 온 편지>를 보고 나오며 ‘맹목적인 어떤 믿음과 사랑에는 이해하기 힘든 아름다움이 있다’ 라는 요지의 메모를 남겼던 일이 기억난다. 지금은 그런 맹목적인 사랑을 시네마테크에 보내줄 때인 것 같다. 앞으로는 ‘바빠서 잘 못 갔어’ 라는 핑계를 줄이고 더 자주 갈 테니 이런 게으른 관객을 봐 주고 조금 더 힘을 내어줘. 그 자리에서 오래 잘 버텼으니 이젠 더 좋은 집으로 이사 갈 때도 되었지. 전용관이 생기는 그 날까지 멀리서라도 힘을 보탤게. 사랑한다, 서울아트시네마. (강연하)


♣ 저는 열아홉, 스물에 여기서 영화를 본 게 계기가 되어 영화를 하게 되었고, 제가 아는 꽤 많은 친구들이 그런 계기로 영화에 입문을 하게 되었습니다. 지금 영화를 하고 있지는 않지만 회사를 다니는 동안은 고독을 보장해주는 유일한 장소였기도 했어요. 아마 많은 분들에게 비슷하면서 또 다른 의미로 영화관이 존재하고 있으리라는 생각을 합니다. 철저히 혼자였던 시간에 영화관을 다녔어요. 그런데 그 시간을 통해 영화는 장소를 통해 성립된다는 걸, 그리고 그 장소를 지속한다는 것은 결국 ‘나’에서 시작된 우리 자신이 누구인지를 기억하는 일이기도 하다는 것을 몸으로 느꼈던 것 같습니다. 우리가 역사를 폐기한다면 결국 그 근원을 찾아 끊임없이 떠돌 수밖에 없게 된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어요. 그러니, 우리가 자신의 존재를 폐기할 것인가의 문제가 작아 보이지만 큰 선택들에 달린 문제라는 생각을 하게 되네요. (준)

♣ 사실 하루종일 같은 영화를 트는 멀티플렉스 극장들은 누군가를 구원하기에 적합하지 않다. 위로가 필요해서 찾아온 사람에게 같은 조언만 수없이 반복한다면, 듣던 이는 자리를 박차고 뛰쳐나가면서 이렇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결국 세상에 내가 편히 숨을 곳은 없었어!’ 그러니 기껏해야 일 주일에 두세 번 같은 영화를 트는 시네마테크가 부디 오래 남아주었으면 좋겠다. 나와 같은 어린 청년들이 구원받을 수 있다면, 응당 정부가 복지 차원에서라도 지원해 주어야 하지 않을까? 아직 내가 있던 어둠 속을 헤매는 사람들에게서 빛을 앗아가지 않기를 바란다. (한동균)

♣ 우리는 어느 순간들을 붙들기 위해 기억을 반복한다. 마치 세상에 존재하는 게 이곳밖에 없다는 듯 무작정 발걸음을 옮겼던 것은 아마 그 기억들이 이곳에서 나를 항상 기다려줄 것이란 막연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언제건 기꺼이 그 어두운 공간에 놓여 세상에는 없을 것만 같았던 위안의 시간들을 만나고 싶고 영화가 우리를 구원할지도 모른다는 믿음을 재차 확인해보고 싶다. 친구와 함께 서툰 고백을 주고받으며 그 영화의 일부가 되기 위해 오늘도 온 마음을 다해 이 공간에 우리의 모든 애정을 표하고 싶다. (최미연)

♣ 만약 내가 잠시 떠나 있다가 다시 돌아왔을 때 그 자리에, 우리의 극장이 그대로 있어줄까? 이미 사라져버린 많은 것들처럼 그렇게 되지는 않을까? 불안하고, 슬프고, 때로는 화가 난다. 극장 변두리에서 흘낏거리던 한 명의 관객인 내가 이 공간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라는 고민을 그것도 다른 관객들과 할 수 있어서 참 다행이다. 우리의 극장은 제자리에 있어야 한다. (관객 2)

♣ 영화는 어떤 점에서 저에게 위로를 해 주고 삶을 이해하도록 도와주었습니다. 이 모든 과정은 저에게 있어 대부분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진행되어 왔습니다. 그리고 이 공간이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마음 한 편에 자리 잡아 불쑥불쑥 튀어 오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관객으로서 저의 권리를 이야기하기 위하여 2014년 관객운동 모임을 지지합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에게 시네마테크에서 상영하는 영화의 가치와 소중함을 전해주고 싶습니다. (김윤슬)

♣ 사실 처음 이곳을 찾았을 때의 모습과 지금의 모습은 이미 많이 다르다. 탁 트인 옥상에는 텔레토비 동산이 생겼고, 키 작은 나에게는 까치발을 해야 겨우 보이도록 옥상의 턱은 높아졌다. 주말이면 옆 극장과 위 공연장의 소음과 인파가 조용히 앉아서 책 읽을 여유를 주지 않는다. 내 영화 취향의 팔 할을 만들어준 극장을 위해 극장에서 만난 우리들이 할 수 있는 일을 해보기로 했다. 물론 관객들의 소리가 어떤 힘을 발휘할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건 극장은 관객이 있기에 존재한다. 그러니 극장을 위해 가장 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람은 관객일 것이다. 튼튼하고 견고한 영화의 집에서 불안에 떨지 않으며 친구들과 오래오래 영화를 만나고 싶다. (임미라)

♣ 노스탤지어, 오래전에 어떤 스위스 의사가 병의 증상을 설명하기 위해 만들었다는 이 단어는 장소가 주는 고역 - 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장소에 대한 진한 애착이 만들어내는 슬픔. 나는 아트시네마, 시네마테크를 생각하면 요즘 마음이 좀 아프다. 정말 막연히 이곳에서 영화를 상영하지 않는 날이 올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불면증’, ‘이상식욕’, ‘발열’을 동반한 깊은 슬픔이 밀려온다. 그리고 계속해서 극장과 관련된 내 오랜 기억들, 친구들을 내 방으로 밤새 불러들인다. 18세기 의사들은 이 병을 집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죽는 병이라고 불렀단다. 나에게 영원히 돌아갈 영화의 집이 있기를 희망한다. 아주 강하게 희망한다. 이유 없이 눈물이 나는 이상한 영화들을 앞으로도 만나고 싶다. 두서없는 글이지만 나는 정말이지 서울아트시네마를 사랑한다. (임효진)



♣ 그러니까 내게 극장이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사실은 이 사람들의 지도가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위협과도 같은 것이다. 그리고 조금은 감상적으로 보이는 이 생각이 나에게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하게끔 한다. 지난날의 기억이 지금의 나에게 어떤 의지를 준다는 사실이 아주 신기하다. 또 다른 사람들이 또 다시 그들만의 지도를 갖게 되는 모습을 상상한다. 그렇게 우리의 지도들이 겹겹이 쌓여가는 한, 우리의 극장은 튼튼할 것이다. (김경민)

♣ 개인적으로 시네마테크에서 올해 <사탄탱고>를 본 것이 저에겐 가장 큰 기억으로 자리 잡았네요.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막연히 스크린에서 상영되길 기다리며 <사탄탱고>를 미루고 있었는데 “2014 친구들영화제”에서 상영되어 더욱더 기쁩니다. 시네마테크라는 곳은 과거 속으로 향한 느낌이 강합니다. 막막한 현실에서 명분 없는 고전 속으로 가는 느낌이 들기에 더욱더 애착이가고요. 시네마테크를 지지하는 한 사람으로서 잘될 겁니다! (김원태)

♣ 내가 이곳에서 처음 봤던 영화 <충격의 복도>의 주인공 조지는 스스로를 볼모로 삼아 진실에 다가섰다가 다시는 제자리로 돌아오지 못한다. 진실은 대개 비용이 높고, 그 비용을 지불하기 위해 우리는 때로 자신의 존재마저 내던져야 할 때가 있다. 영화는 무엇보다 체험의 행위이고, 관객은 그 체험 속에서 난반사되는 질문들을 통해 인간의 진실과 삶의 의미에 다가서려 노력하는 사람들이다.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우리들은 이 체험의 과정을 동행하는 친구가 된다. 모르는 사람과도 공통감각으로 엮여 있다는 믿음은 우리를 하나의 세상으로 이끌어 주었던 영화들이 있었기 때문이고, 그것을 상영할 수 있는 공간이 있었기 때문이고, 그것을 상영하기 위해 애를 썼던 이들의 노고가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런 서울아트시네마에 앞으로도 계속 가고 싶다. 그리고 먼 미래에도 그곳에서 사람들과 함께 영화를 보기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무엇이든 하고 싶다. 내 연약한 무의식의 공동체가 저항의 진지가 되어야 한다면 기꺼이 굳은 마음으로 동참하고 싶다. 우리의 꿈이 오래 지속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우리의 소망이 멀리 나아갈 수 있도록 지켜달라고. (관객 3)

♣ 세상의 모든 영화를 볼 수는 없겠지만 우리가 여전히 도스토예프스키와 포크너를 찾듯 영화도 그래야 한다. 그리고 그 영화를 볼 기회와 공간이 우리는 필요하다. 나는 오늘 무슨 영화를 상영하는지도 모르는 채 서울아트시네마에 간다. 꼭 무엇을 보기 위해서보다는, 말 그대로 영화의 집에 놀러가는 기분으로 간다. 자본주의는 비어있는 공간을 참지 못하지만 서울아트시네마는 텅 빈 공간이기에 더없이 아름답다. 언제나 감사하고 언제나 소중한 나의 아름다운 서울아트시네마. (이승원)

♣ 아무튼 그 인간들한테 붙잡혀 끌려간 곳이 안국동(인지 소격동인지 원. 둘 다 써서 늘 헷갈린다) 시절 서울아트시네마였다. 천성이 무지하여 “아트”라는 말에 지레 겁부터 먹었던 나이니, 정말로 마지못해 끌려갔던 셈이다. 그때 그렇게 가서 최양일의 <친구여 조용히 잠들라>를 보다가 조용히 잠들었을 때 당장 때려치우고 하던 공부나 해야 했는데. 망할 구로사와 기요시, 버스터 키튼, 에른스트 루비치, 장-피에르 멜빌에게 붙잡혀 오늘에 이르렀다. 세상에 그런 영화들이 있을 줄 어디 알았나. 그런데 이제 와서 그놈의 극장까지 나를 배신하고 손 털고 가버릴 수는 없는 거다. 나도 너만큼 미래가 잘 안 보이거든? 제발 하나쯤은 도의를 지키며 좀 같이 계속 망해보자. “너 죽으면 확 죽여 버린다!” 2009년 사무엘 풀러 회고전에서 상영한 <철모>에 나오는 대사다. (홍지로)

♣ 일을 하지 않는 날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영화를 보면 정말 기분이 좋다. 아늑한 의자에 파묻혀 큰 화면으로 영화를 볼 때면 모든 고민을 잊는다. 사실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얻은 가장 큰 선물은 사람이다. 영화관에서 일하면서 정말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났다. 요즘도 서울에서 처음 일한 곳이 이곳이라서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을 한다. 많은 것을 가르쳐 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려요. (우제인)

♣ 처음 서울아트시네마를 찾은 건 2007년 여름이었다. 나는 열다섯 살이었고 진해에 살고 있었다. 나는 그해 말 상경했고, 극장은 내가 서울에서 유일하게 안도하는 공간이 되었다. 나는 입을 꾹 다물고, 아는 사람 하나 없이 영화들이랑 그 공간이랑 이렇게 십대의 말을 지나쳤다. 그 공간이 없어질지도 모른다고 했을 때는, 그때도 그렇게 썼지만, 내내 토할 것 같은 기분이었다. 할 수 있는 온갖 지랄을 다 했다. 2014년이다. 열다섯이었고, 열여덟이었고, 이제 스물셋이 되어서 다시 이 짓을 해야 한다는 것이 너무 역겹고 화가 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오래 알아온 사람들이 아주 익숙한 운동을 다시 시작하려고 한다. 우리는 앞으로도 아주 오래 이미 스러진 시공간에서 함께 살아갈 것이다. 한없이 흔들리는 우리를 어쩌면 유일하게 안도케 하는 곳에서. 그 스러진 시공간이 머물러 줄 공간이 필요하다. 그것을 시네마테크라고 부른다. 서울아트시네마라고. (박예하)



♣ 행동이 얼마나 중요한지 느끼는 요즘이다. 늘 언저리만 헤맸던 나였지만, 그래서 조금은 이런 이야기를 하기가 쑥스럽지만 그래도 뭔가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따뜻한 마음으로 지지와 응원의 메시지를 보낸다. 변명하자면, 내가 늘 영화보다 잿밥에 관심이 많아 서울아트시네마를 찾았던 그 순간들은 이곳이 사라지지 않고 그곳에 늘 있어줄 것이라는 안도감에서 생겨난 게으름이었다. 그런데 그 공간이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소식이 나를 부지런하게 만들고 있다. 굳이 기억하지 않아도 그곳에 있어주는 공간으로 남길 바란다. 옥상도, 스크린도, 사람들도, 영화가 끝나고 걸어 나오며 나누던 반가운 인사도, 영화를 보러 온 건지 끝나고 술을 마시러 온 건지 모르겠던 순간들도, 아련한 추억이 되어 기억 저편으로 사라져버릴 기회가 사라지길 바란다.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 이렇게 보낼 수는 없다. 모두의 마음으로, 모두의 마음처럼 남아주길. (이상준)

♣ 나에겐 그리고 ‘우리’에게 서울아트시네마는 영화를 상영하는 영화관이라는 이름에 담기엔 넘치는 뭐랄까, 하나의 문화다. 서울아트시네마의 기획전을 챙기는 일, 낙원상가로 향하는 걸음, 그곳에서 스치는 인연들, 그 순간이 나에겐 모두 ‘서울아트시네마’이다. 이 서울아트시네마라는 우리가 있다는 ‘사실’과, 지금 서울 종로라는 땅에서 우리가 만들어 가고 있는 서울아트시네마라는 ‘현상’은 잊지 말아야 할, 기록해 두어야 할 내 20대의 사건! (이영인)

♣ 사실 나는 시간이 갈수록 영화 안에서 친구를 만나고, 함께 영화를 이야기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느끼게 된다. 본래 쉽지 않은 일인지, 나의 문제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래도 여전히 영화에 힘입어 맺어지는 관계를 꿈꾼다. 그런 관계가 가능하다는 것이야말로 내가 이 공간에서 경험한 가장 반짝이는 기억들이다. 그래서 극장이 위태하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마음이 너무 답답해진다. 어느 날 극장이 사라진다고 생각하면, 내 이십대의 기억들이 한순간에 부서져 헐리는 것만 같은데, 그렇게 헐리는 것이 단지 ‘과거’만은 아닐 거다. 서울아트시네마와 관객을 두고 서로를 보살피는 관계 같다던 말이 맴돈다. 오랜 시간 아트시네마를 다니며 절절하게 느꼈다. 영화도, 관객도, 극장도 친구를 필요로 한다. 이제는 함께 불안이 아니라 행복을 나눌 수 있었으면 좋겠다. (앞줄의 관객)

♣ 우리 극장, 극장 친구. 우리는 우리 극장을 시네마테크라든가 영화관이라고 잘 부르진 않는다. 극장이라고 하면 으레 낙원에 있는 극장으로 통했다. 마치 ‘극장’이라는 이름을 가진 친구가 있는 것처럼. 거기서 만난 친구들은 몇 년이 지나도 극장 친구였다. 그런 극장이 사라질 수도 있다니 친구가 많은 친구의 장례식 소식을 들은 기분이다. 부디 비통한 심정으로 육미에 모여 옛 친구를 회상하는 일이 없기를 바라고 또 바란다. (김성주)

♣ 서울아트시네마를 통해서 우리가 오랫동안 기뻐할 수 있는 관객으로 남을 수 있기를 바란다. 스크린 앞에 앉아서 보낸 많은 시간들을 인생에서 가장 값진 시간들로 기억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이것은 영화 탄생 이후의 인류가 가질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경험 중 하나라고 나는 확신한다. 서울아트시네마가 그러한 믿음을 주었다. 부디, 서울아트시네마를 지지해 주세요. 영화의 친구가 되어주세요. 영화의 친구가, 되어주세요. (한상희)

♣ 나의 일정보다 너의 시간에 맞춰야 마주할 수 있는,

나는 애가 타도 너를 만날 생각에 설레는.

시네마테크의 모든 영화들!

서울아, 내 사랑을 지켜줘(곽혜원)

♣ 일직선 고속도로에 네비게이션까지 붙인 채로 달리던 자동차를 빼앗고는, 드넓기 짝이 없는 망망대해에 나를 내팽개쳐 버리고는 ‘이게 인생이다 바보 멍청아’라고 말하며 약 올린 것도, 영화였다. 쉽진 않지만 그래도 즐겁지 아니한가. 서울아트시네마가 있어야 나 같은 바보멍청이가 더 나와서 같이 바보짓하고 놀 텐데, 걱정이 많다. (이또킹)

♣ 나는 여전히 방으로 돌아오는 길에 내 몸이 건너게 될 한강의 다리 이름을 알지 못한다. 허나 서울아트시네마가 계속 나를 도와준다면 언젠간 알 수 있을 것 같다. 해서, 이기적인 목소리로 부탁한다 : 아직은 사라지지 말라. 내 집을 마련하여 그럴듯한 서울의 특별시민이 되는 날까지만 내 곁에 있어라. 근데 어쩐지 너 때문에 나 돈 못 벌 것 같거든? 그러니 내가 내 집 마련을 못 하거든 네 놈이 나를 책임지고는, 내 방에는 없을 게 분명한 베란다 노릇만큼은 계속 해주어라. (홍은진)

♣ 그저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만으로 고마운 공간들이 있다. 내게 종로에서 그런 공간을 꼽으라면 서울아트시네마를 들 수 있다. 시시각각 변하는 도시의 경관 속에서 오랫동안 제 자리를 지키며 영화를 사랑하는 이들의 발길을 기다리는 곳. 내가 그곳에서 본 영화는 많지 않지만 종로 거리를 거닐 때면 언제나 그 자리에서 같은 얼굴을 하고 있어 익숙하고 편안한 기분을 느끼게 해준다. 세련됨이나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지만 좋은 영화를 상영한다는 것 외에 아무것도 고려하지 않는 듯한 무심함과 고집스러움이 가득 묻어나는 공간. 그리고 그런 공간을 닮은 사람들이 찾아와 함께 영화를 보고 소소한 위안을 얻어가는 곳. 이곳을 지켜야 할 이유는 이미 차고도 넘치지 않는가. (최철웅)


♣ 서울아트시네마를 더 오랫동안 열렬하게 사랑해온 분들에 비하면 내 모습이 조금은 초라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나에게도 나만의 서울아트시네마에 대한 추억이 존재하며, 그것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 홀로 극장을 처음 찾았을 때 나에게 특별한 경험을 선사해준 영화들, 그리고 극장에서 새롭게 만난 소중한 인연들, 어느 날은 친구와 함께 영화 보면서 둘 다 꾸벅꾸벅 졸기도 하고, 또 어느 날은 술 한 잔하며 영화에 대해 얘기를 나누고. 나는 앞으로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이보다 더 많은 시간을 보내야만 하며, 또 다른 추억을 쌓아가야만 한다. 나에겐 이미 소중한 공간이 되어버렸고 나 이외에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경험을 할 수 있도록 해야만 한다. 아직 데려오지 못한 친구들이 너무 많다. 앞으로 집 밥을 못 먹게 된다면? 상상도 하기 싫다. (봉수지)

♣ 더 이상 서울아트시네마 근처에서는 길을 잃지 않는다. 그러나 근래 들어 좀처럼 빈 시간을 내지 못하거나 게을러져 한동안 서울아트시네마를 찾지 못했다. 하지만 그곳은 여전히 나에게 있어 더 가야 할 곳, 더 담아둘 곳이고 아직 더 많이 찾아가야 하는 그런 곳이다. 더 많은 영화를 보고 싶고 좋은 영화들을 보고 싶고 그곳의 사람들을 만나고 싶다. 그곳의 그 자리에는 내 기억들이 아직까지 쌓여 있고, 다른 이들에게도 그럴 것이다. (짱큰콩)

♣ 귀찮음 때문에 영화를 보고 익숙하지 않고 불편한 사람들이 영화를 쉽게 볼 수 있는 곳은 이제 많이 없는 것 같다. 영화를 조금이라도 귀찮게 익숙하지 않게 볼 수 있게 하는 곳 중 하나가 나에게 시네마테크였다. 계속해서 귀찮게 그리고 익숙하지 않게 영화를 보고 싶다. (강민호)

♣ 나는 극장에서 시공간을 초월한 경험을 한다. 생각지도 못한 여러 시대에서 사랑하고 고민하고 배신도 당했다가 또 여러 나라에서 한바탕 어울려 논다. 그리고 다시 현실로 돌아온다. 보다 단단한 나로 살 수 있는 힘을 얻고서. 한 편의 영화가 끝나면 서울아트시네마가 있는 낙원상가 옥상에는 지금 막 같은 꿈을 꾸고 나온 사람들이 서성인다. 일행이든, 얼굴만 몇 번 본 사람이든, 처음 보는 사람이든 이들에겐 왠지 알 수 없는 동질감 또는 공모감이 감싸고 있다. 각자의 하루가 시작되면 그 꿈은 희미해지겠지만 근사한 경험을 한 것임은 분명하다. 종로 한복판 이 작은 극장의 존재가 서울을 조금은 더 낭만적인 도시로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서울시에 서울아트시네마의 안정적인 운영을 위한 지원을 요청한다. (나캉)

♣ 한국을 알고 싶어 하고 서울의 생활을 궁금해 하는 외국인 친구들에게 서울과 한국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줄 때마다 서울아트시네마에 대해 자랑스럽게 애기했다. 그곳에서 만났던 영화와 친구와 이야기들은 정말 평범하지만 매우 특별했던 것이다. 단순한 공간이 아니다. 그곳에서 일어나는 일들,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은 모든 곳에서 가능한 것은 아니다. 이번엔 어떤 영화를 만나고, 어떤 사람들을 만나서 어떤 일이 벌어질까 설레어하며 발걸음하는 그 길이 부디 추억 속에만 남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외국인 친구에게 자랑스럽게 소개시켜 줄 수 있는 곳이 사라진다면 정말 안타까운 일일 것이다. (황선영)

♣ 집 밖을 나서면 언제든 손쉽게 멀티플렉스에서 최신 영화를 챙겨볼 수 있다. 참 내 입맛에 맞게 러닝타임도 짧고 쌈박하기도 하다. 그렇게 테트리스처럼 틈새 시간에 영화를 끼워 맞추다, 친구 따라 서울아트시네마를 처음 만났다. 서울아트시네마에는 느리고 유려하게 흘러가는 강처럼 긴 러닝타임의 영화도 있었고, 짧게 들이마신 숨처럼 압축적인 영화도 있었다. 정말이지 다양한 시간의 기록들이 서가에 꽂혀 있었다. 그때 조막만한 친구 따라 종로 가기를 참 잘했지.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시간을 들여 영화를 보는 법을 배울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서울시도 시네마테크의 시간들을 존중해 주었으면 좋겠다. (관객 4)

♣ 혼자서 극장을 찾았던 날, 약속도 없이 두 명의 친구를 그곳에서 만난 적이 있습니다. 비가 내렸고, 우리는 우연한 만남이 조금 쑥스러워서 웃었습니다. 한때 좋아했던 것들, 그리고 여전히 좋아하는 것들에 대한 기억을 차곡차곡 만들어나가고 싶습니다. 시간이 지난 후에도 친구들과 그런 기억을 펼쳐 보이다가 그래, 그럼 다음엔 거기서 만나, 그렇게 약속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것이 바로 나의 기억이고 우리들의 기억일 테니까요. 시네마테크를 지지합니다. (차한비)

♣ “존재는 그 자체로 숭고하지는 않다. 그것을 숭고한 것으로 만드려는 의지에 의해서만 숭고해진다”고 시인 김정란은 말했습니다. 오늘도 전 이미 숭고한 ‘영화’에 제 의지의 꼬리표를, 사랑의 꼬리표를 달아주러 ‘거기’에 갈 것입니다. 달다가 누군가가 이미 달아놓은 수많은 꼬리표를 보면서 오히려 더 감동받을 게 분명하지만요. 오늘 못 가면 내일, 내일 못 가면 모레 가서 ‘친구들’과 같이 눈물 흘릴 겁니다. ‘영화’를 사랑합니다. ‘거기’,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를 사랑합니다. ‘친구들’을 사랑합니다. 이것이 저의, 그리고 우리들의 변치 않는 ‘지지성명’이 되길 기도합니다. (하월)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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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토론]


서울시의 시네마테크 지원을 촉구합니다

지난 5월 10일, 서울아트시네마에서는 매년 열리는 개관기념 행사 대신 관객토론회가 열렸다. 최근 서울시의 지원을 촉구하는 시민청원과 시네마테크 전용관 마련과 관련한 내용들을 논의하는 자리였다. 관객과의 열띤 논의가 한시간 반 정도 진행됐고 이어 켄 로치의 <랜드 앤 프리덤>의 무료 상영이 이어졌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디렉터)│올해는 개관기념 행사를 마련하지 못했다. 매년 개관일에 맞춰 개관영화제를 했었는데, 올해는 우리가 처한 상황 자체를 알리는 게 더 좋겠다고 판단했다. 시네마테크의 지원에 대한 문제, 전용관 마련에 대한 이야기들을 들으셨을 텐데, 오늘은 이에 대해 관객에게 보고하는 시간을 가지려 한다. 아울러 지난달부터 시네마테크 관객운동이 시작됐는데, 이를 진행하는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려 한다. 먼저 손소영 사무국장의 이야기를 들어보겠다. 지원과 전용관 마련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손소영(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 사무국장)│올해가 시네마테크 12주년이다. 많은 분들이 시네마테크의 존재에 대해 알고는 있지만, 영화를 상영하는 데 얼마나 많은 돈이 들어가는지, 어떤 구체적인 어려움이 있는지는 잘 모르더라. 지금 저희가 연 10억 정도 지출을 하는데, 30%는 영진위의 지원금이고 70%를 자체 부담한다. 하지만 우리가 비영리단체이고, 상영하는 영화들에는 비용이 많이 든다. 그래서 우리는 원칙적으로 적자가 날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다른 나라들은 정부나 시가 전폭적인 지원을 하거나 직접 운영을 한다. 하지만 우리는 그렇지 않다.


간단하게 말해 우리가 300편의 영화를 튼다고 했을 때, 한 편 트는 데 들어가는 돈이 대략 530만 원이다. 그런데 284석이 매진이 되어도 총 티켓 수익은 170만 원이다. 매진이 되어도 수익이 나지 않는 것이다. 적자만 내고 있는 것인데(웃음), 2010년에는 영진위가 공모제를 진행하면서 지원금이 중단됐는데, 다행히 한 기업의 광고를 찍으면서 운영비를 메워왔다. 하지만 그 돈도 이제 거의 다 썼다. 어려운 상황에서 서울시의 지원을 받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2012년 12월에 시네마테크 지원을 포함한 조례 개정안이 시의회를 통과했다. 그 내용 중 하나가 고전예술영화관, 혹은 독립영화관 같은 극장을 지원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니 서울시가 마음만 먹으면 지원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 후로 서울시에 지원을 제안했지만 서울시는 ‘고민 중이다’는 말만 했었다. 하지만 1년 뒤 결과는, 우리가 지원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왜 시네마테크는 지원에서 밀리는 걸까, 고민하며 그 후로도 계속 서울시를 찾아갔다. 그때마다 돈이 없다는 말을 3년째 들어왔다.


얼마 전에는 서울시 홈페이지에 ‘온라인 청원’을 넣었다. 1,000명의 청원을 받으면 시장과의 만남을 할 수 있다고 했는데, 이번 지방선거 때문에 그것도 어려워져 버렸다. 서울시는 공무원이 대략 2년마다 바뀐다. 그 과정에서 우리가 담당 공무원을 설득시켜도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는 상황에 처해버렸다. 문화산업과를 포함한 서울시에서는 영화를 상영하는 문제에 대해 이해가 높지 않다. 그 기본적인 문제를 설득하면서 좀 지치기도 했다. 지원에 대한 문제를 이야기했지만, 또 다른 하나는 전용관 건립과 관련한 문제다. 지난해 시장님과의 청책토론회가 있어 전용관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고 공감을 이끌어냈다. 그래서 ‘자문회의’가 만들어져서 전용관 건립 타당성 조사도 거쳤다. 결과는 ‘타당하다’로 나왔다. 거기에 따라서 TF팀이 꾸려져 계속 회의를 하고 있다. 부지는 어디에, 상영관은 몇 개로, 어떤 단체가 들어갈 것인가, 이런 문제를 이야기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시네마테크 전용관이 만들어진다 하더라도 지금으로부터 3~4년 뒤의 일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그동안 버틸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웃음). 희망고문 같다.


김성욱│올해 예산은 이미 지난해에 책정된 것이라 어렵다는 말을 들었다. 다만, 지방선거 이후 추경예산을 통해서 지원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전용관에 대한 논의는 시네마테크를 포함한 복합상영관에 대한 논의의 형태로 나오고 있다. 지난해 이와 관련해서 1안으로 시네마테크 전용관과 독립영화관을 포함한 안, 2안으로 여러 상영 공간이 들어가는 복합관으로 좀 더 큰 규모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 최근에는 2안에 무게가 더 실리고 있다. 규모가 커지다 보니 여러 가지 문제가 따라오고 실현가능성의 문제도 제기된다. 사실 2004년부터 시네마테크 전용관을 새로 마련하자는 제안을 했는데, 전 세계적으로도 시네마테크의 새 공간을 마련하는 일이 있었다. 파리의 시네마테크, 뉴욕의 아메리칸 링컨센터, 토론토, 등이 새 공간을 마련했다. 우리는 시네마테크의 새 공간을 제안한 것이지만, ‘서울시가 전용관을 건립한다’는 말에는 개념 차이의 혼란이 있다. 서울아트시네마의 이전 논의와 서울시가 새로운 극장을 만드는 것 간의 차이이다.


손소영│사실 회의를 하다보면 허무할 때가 있다. 어떤 성격으로 만들어지든 간에 새로 만들어질 공간에 정작 시네마테크가 들어갈 수 있는지가 확실하지 않다. 사실 처음에는 시네마테크 전용관을 짓는 문제에서 시작했는데, 나중에는 이게 ‘시네마테크 전용관’인지 ‘영화복합센터’인지 성격이 불명확해졌다. 어쨌든 2안, 즉 큰 규모의 ‘복합센터’ 쪽으로 이야기가 모이고 있다. 그래도 시네마테크가 강조하는 건 ‘이전’이다. 프로그래밍과 운영에 대한 독립을 보장받는 건 물론이다. 참고로 대만은 정부가 땅을 사고 기업이 건물을 리노베이션해서 허우 샤오시엔 감독이 대표로 있는 민간단체에 기증을 했다. 그런데 우리가 이 경우를 모범 사례로 제시하면 다들 불가능하다고 말한다(웃음).

김성욱│관객 운동을 하는 친구들과도 이야기를 해보자. 처음에 “정말 할 거냐”라고  물었다(웃음). 쉽지 않은 일을 하는 것이니. 플리마켓도 그렇고 잘 안될 거라고 이야기했는데 오늘 보니 관객들이 많이 오셨다. 색다른 방식의 관객운동이란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 어떻게 이를 결심했는지 궁금하다.


최혁규(관객)│최근에도 정말 할 거냐고 물어보셨다(웃음). 오프라인 관객운동은 오늘이 처음이다. 일단 2010년 이야기부터 시작하고 싶다. 2010년에 영진위가 시네마테크를 ‘공모’하겠다고 했다. 그래서 ‘관객이 사겠다!’며 모금 운동을 했다. 관객이 극장에 상주하며 모금도 받고 서명도 받고, 영진위에 항의 방문도 했었다. 올해 시민청원을 하는 걸 보면서 우리도 뭔가를 하자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관객운동’ 식의 거창한 건 아니었다. 문제의식은 새 건물만 짓는다고 하고, 지금 서울아트시네마에 지원을 하지 않는 게 아이러니하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서울시에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 계속 우리의 목소리를 전하는 것은 물론이고, ‘예비 관객’에게도 서울아트시네마를 알리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참고로 “우리 모두는 어느 영화의 관객이었다”란 슬로건은 너무 딱딱하게 관객운동을 하지 말자고 해서 만들었다. <건축학개론>의 카피를 빌려와 이걸 만들었다(웃음).

김경민(관객)│지금 하고 있는 건 트위터나 페이스북, 블로그 등을 통한 홍보이다. 그리고 오늘부터는 플리마켓을 시작으로 해서 오프라인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할 생각이다. 다음 주 토요일(17일)에는 관객 모임이 있다. 다 같이 모여 앉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해 보자는 것이다. 영화도 같이 찍어보려 하고 있다.


최혁규│지지영상도 받을 계획이다. 이런 것들을 단순히 모으고 끝나는 게 아니라 서울시에 전달하거나 다 같이 공유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려 한다. 블로그 보면 지지의 글도 많이 올라왔는데 그것도 작은 책자로 만들 생각이다. 그리고 서울시에 보내는 지지 요청 메시지를 다음 주에 집중적으로 해볼 계획이다. 지원을 못 받으면 우리가 영화를 볼 기회도 줄어든다. 그런 맥락에서 대학로나 홍대, 이태원 등 유동인구가 많은 곳에 서울아트시네마의 홍보물을 배포하려 한다. 또한 서울시에는 전화도 막 해서 압박을 줄 생각이다(웃음). “시네마테크의 친구가 되어 달라” 같은 메시지와 함께 말이다.

관객 1│저는 전용관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서울시는 약속한 대로 시설을 개선하는 데 지원을 하면 좋겠다. 서울시가 ‘전용관’을 만들면 지금 서울아트시네마의 ‘순수성’이 훼손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우려가 있다. 소위 멀티플렉스 같은 복합상영관 같은 모습으로 가면 다른 곳의 간섭을 받을 것 같다. 나는 이 장소가 영원히 가면 좋겠다.


손소영│외국도 영국의 BFI 같은 곳을 보면 관을 늘리고 IMAX관까지 만들었다. 하지만 각 관의 성격은 잘 유지해나가고 있다. 우리도 ‘서울아트시네마’로만 남아 있으면 좋겠지만 장담은 잘 못하겠다. 그리고 나도 지금 이 낙원상가라는 공간이 좋다. 그런데 여기에 오랫동안 있으려면 여러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영사기도 안 좋고 디지털 상영 시스템도 안 좋다. 새로 시스템을 갖추려면 비용만 1억 원이 넘는다고 한다. 서울시에 계속 얘기하고 있는 중이다.


김성욱│나도 이 공간이 안 좋다고 생각하는건 아니다. 시네마테크가 좀 올드한 건물에 있으면 좋은 건 있다. 새로운 공간에 추억이 쌓이려면 몇십 년이 또 지나야 한다. 하지만, 관객이 이 곳에 와서 할 수 있는 게 영화 보는 거밖에 없다. 시네마테크 공간에서 관객들의 커뮤니티를 만들어가야 하는데 그런 걸 할 수 없다. 그 문제만 해결된다면 나도 이곳이 좋다고 생각한다. 복합관에 대한 우려는 우리도 공감한다. 그런데 우리의 요구만 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영화계의 전체적인 요구가 있으니 그걸 조정해야 한다. 개인적으로는 ‘왜 이 공간을 만드느냐’에 대한 질문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지금 서울시는 시네마테크의 공적 성격에 대해 어떤 판단을 못 내리고 있다. 그 판단을 요구해야 한다. 오늘 자리를 했으니 관객들에게 1-2개 정도의 전용관과 5개관 정도의 큰 규모의 복합관에 대한 의견을 듣고 싶다. 1,000만 정도의 서울인구가 있으니 큰 규모의 복합관도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규모가 커지면 재정, 운영, 관리의 문제가 복잡해지고 ‘커뮤니티’로서의 성격을 유지하기 어려워진다.


관객 2│그냥 내가 상상하는 걸 이야기하고 싶다. 공사만 2, 3년 넘게 걸릴 것이다. 그 과정에서 또 물거품처럼 사라질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오히려 지금 열악한 상황의 시네마테크에 지원을 해야 한다고 본다. 이 공간의 ‘공적 성격’에 대한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이 우선이라고 본다. 위험부담을 안고 거창하게 시작해도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것 아닌가. 가장 기본적으로, 지금 이 공간에 지원을 할 것을 합의하자. 그것도 시장이 누가 되더라도 그 지원이 흔들리지 않을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고 본다.


관객 3│시네마테크라는 곳이 시간성을 갖고 있는 곳이다. 예전의 영화를 불러오는 곳이다. 그래서 그 공간의 형식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서울 신청사나 동대문공원의 공간에 우리가 다들 불만을 갖고 있지 않은가. 김중업 건축가가 지은 ‘서 산부인과’ 같은 건물이나 발전소를 고쳐 미술관으로 만드는 등의 그런 경우가 좋은 예라고 생각한다. 그런 식이라면 그렇게 큰돈이 들지도 않을 것이다. 그런 옛 공간을 찾아보면 어떨까.


손소영│참고로 서울시가 새로운 건물의 부지 후보를 찾았었다. 정독도서관, 당인리발전소 등등. 그런데 그 ‘후보 건물’들이 다들 여러가지 이유로 적절하지 않아 지금 신축 건물을 짓는 쪽으로 가닥이 잡힌 것이다.

관객 4│영화는 작품 그 자체로서 상영되고, 보존되고, 복원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안타깝게 생각하는 것 중 하나는, 문화가 콘텐츠 그 자체로서 생각되어야 하는데 정책을 만드는 분들이 ‘상품’으로만 보는 것 같다. 복합관으로 가더라도 관별로 그 성격이 특화됐으면 좋겠다. 연극은 ‘오픈런’이란 것이 있다. 영화도 그와 마찬가지로 꾸준히 상영될 수 있는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 개인적으로 생각해본 건 극장에서 규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음식도 자유롭게 먹고 술도 먹고, 어린이들도 데리고 오고, 담배도 피우고(웃음), 그런 식의 운영도 필요할 것 같다. 그런 공간만 잘 만들어지면 교통 같은 건 좀 불편해도 괜찮을 것 같다. 마음 같아서는 이 건물을 그냥 인수하고 싶다!


김성욱│간단하게 최근의 상황에 대해 보고를 드렸다. 주변에 좋은 공간이 있으면 제안을 해주어도 좋겠다. 핵심적인 논의들은 이번 선거가 끝난 뒤 진행될 것 같다. 올해는 개관영화제가 열리지 못해 미안한 마음을 전한다. 내년에는 좋은 영화들과 함께 개관영화제를 꼭 하고 싶다. 그리고 다음에도 이런 기회를 만들어보겠다.


정리│김보년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팀

사진│장혜진 자원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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