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11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Cine talk

"보는 재미를 위해 기가 막힌 재미라도 주고 싶었다"

[시네토크] 이두용 감독의 <용호대련>

‘영화의 즐거움을 나누다’를 테마로 한 ‘2011년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가 시작되었다. 올해도 어김없이, 시네마테크의 친구들과 관객들이 영화를 함께 보고 그 영화에 대해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누며 즐길 수 있는, 시네토크 시간이 다수 마련되어 있다. 그 첫 번째 시간으로 지난 1월 20일 저녁 7시, 이두용 감독의 <용호대련>(1974) 상영 후에 진행된 시네토크에서는 연출자인 이두용 감독이 자리하여 관객들에게 이 영화의 즐거움과 영화를 만들던 당시의 여러 추억담을 들려주었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디렉터): 장내에서 폭소도 많았고, 주옥같은 대사들도 많이 나왔다. 중간에 소리가 없는 부분도 많았는데 아마 예전 것이라 그런 것 같다. 복원한 영화를 다시 보신 감회를 듣고 싶다. 이 영화가 1974년 허리우드극장에서 개봉한 작품이라 굉장히 묘한 인연이기도 한데, 오늘 보시면서 어떠셨는지?
이두용(영화감독): 여러분과 똑같다. 저 정도밖에 못 만들었나 하면서 봤다. 이걸 정확하게 73년에 만들었으니, 40년 가까이 됐다. 필름에는 수명이 있는데 오래 돼서 그런지, 색깔이 물에 뽑은 것 같았다. 그나마 이렇게 살아 있는 게 다행이다. 그리고 영화에 등장하는 배우들은 전문배우가 아니다. 이 영화를 만들기 위해서 전국을 다니면서 액션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을 모집했다. 처음 뽑은 300명 정도의 인원 중에서, 30명으로 추리고 단기간에 연기훈련을 시켰다. 그렇기 때문에 연기들이 전부 서먹하다. 주인공은 괜찮다. 한용철 씨인데 당시 재미교포였다. 내가 무조건 다리 긴 배우를 데려오라고 했었다. 다리를 쓰는 영화를 만들기 위해서 다리 긴 배우를 회사에서 찾았는데, 결국 그 친구를 소개 받아 캐스팅하게 된 것이다. 당시에 오는 게 쉽지 않았는데 일주일 만에 왔다. 실제로 정말 다리가 길었다. 이 친구 나이가 미국나이로 19살이었다. 그래서 수염도 붙여서 앳된 청년을 나이 들어 보이게 한 거다. 영화에서 중요한 것이 귀뺨을 치는 장면인데, 이래서 '다리로 귀뺨을 친다.'라고 소문이 나게 된다. 홍보부가 이 영화를 어떻게 홍보할 것이냐고 묻길래, 태권도 영화라고 했다. 외국에선 태권도라고 하면 미친 듯 열광한다. 외국의 큰 체육관에서 격파 시범하니까 사람들이 박수를 치는데, 우리나라 대통령이 와도 그렇지는 않았을 거다. 그래서 우리영화의 소재로 좋겠다 싶어서 태권도 영화로 나가기 시작했다. 영화를 찍고 한용철 씨는 굉장히 유명해졌다. 당시 탑 스타의 개런티가 500만원 이었는데, 대 여섯 개 더 찍고 나서 2천만원까지 올랐다. 한 영화제작비 2천만원이 안될 때였는데 말이다.

김성욱: 영화를 보면 다양한 세트장이 나오는데, 중간에 세트장 내에서 사람들의 입김이 나오는걸 보면 실내가 아닌 것도 같다. 영화의 세트는 어떻게 준비하셨는지?
이두용: 액션영화 세트장을 저렇게 많이 지은 것도 처음이다. 만주벌판 이야기라고 해서 벌판만 갈수도 없어서 여러 세트를 지었다. 미술감독이 미술가 이봉선 씨인데 그 분이 만든 거다. 만주 반점 등 여러 가지 일제강점기의 풍경을 만들어냈다. 그러나 자본의 빈약, 테크닉 빈약 등 여러 가지 요소 때문에 허약하게 보이는 것이다.

김성욱:
야외촬영 장소가 궁금하다. 남산 같기도 하고 창경궁 같기도 하던데.
이두용: 철원이란 평야다. 지금은 골프장이 있고 논밭인데 예전엔 벌판이었다. 만주벌판 하면 무조건 거길 갔다. 우리 영화 이후 거기서 수백 편의 영화를 찍었을 거다. 한탄강이 묘하다. 흔히 벌판 하면 철원 가서 찍었다.

김성욱: 촬영을 주로 겨울에 하신 것으로 보인다. 촬영기간이 어느 정도 걸렸을지 궁금하다.
이두용: 당시 한국영화는 한 달 찍으면 오래 찍은 건데, 이건 두 달에 걸쳐 찍었다. 추운 겨울날 여러 군데 다니면서 찍었다. 화면은 단촐하지만, 그 생각하니까 뭉클했다.

김성욱: 이 영화를 보면서 80년대 <여인잔혹사 물레야 물레야>가 생각났고 동시에 편집이 특이하다는 생각을 했다. 영화에서 불공을 드리는 장면을 보면 타이트한 클로즈업에서 편집이 빨라진다. 또 일반적인 장면에서 전체적으로 줌, 클로즈업이 많기도 하다.
이두용: 와이어 액션 같은걸 몰랐다. 그래서 망원렌즈, 와이드 렌즈 가지고 찍었다. 베트맨처럼 되지는 않았지만, 배우들이 날아다니는 느낌은 렌즈로 만든 것이다. 실제로 배우가 약간 뛰고 그걸 렌즈로 커버 했다. 서너 발짝 뛰는 걸 20미터 날아간 것처럼 한 거다. 그걸 찍고 나니까 다른 감독들이 어떻게 했냐고 묻기도 했다.

관객1: 당시에 따로 무술감독이 없었을 텐데 감독님이 직접 액션의 합을 짜신 건지, 주연배우들이 짰는지 궁금하다.
이두용: 이 영화는 무술감독이 없었다. 나는 무술감독을 두면 중국영화를 흉내 내게 될까봐 무술감독을 쓰지 않았다. 홍콩에 무술지도 팀이 있으니, 그들을 데려와서 하라고 했는데 거절했다. 과장된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같이 합을 맞춰주고 액션지도를 한 사람은 있다. 복면 쓴 사람이 그 지도자인데 태권도 7단이다.

김성욱: 마지막에 금이 있는 지하실에서 이상한 검은색 스타킹 쓴 그 캐릭터는 영화에서 굉장히 뜬금없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하다.
이두용: 그런걸 보는 재미가 있어야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기가 막힌 짓을 한 거다. 음산한 장소니까 그런 사람이 있을만해서 넣었다. 영화라는 건, 보는 재미가 있어야 하니까 기가 막힌 재미라도 주자, 싶어서 그렇게 한 것이다.
김성욱: 기가 막힌 재미라는 표현이 영화에 딱 어울리는 것 같다. (웃음)

관객2:
자료를 찾다 보니 감독님이 회고하시기를 한용철 씨가 초단자 보다 못한 실력이라고 하시는 것을 봤는데, 그런 경우라면 감독님께서 머릿속으로 그린 액션과는 차이가 나지 않는지. 그럴 때 어떻게 했는지. 액션 영화를 찍으면서 롤 모델로 삼으신 영화가 있으신지?
이두용: 롤 모델은 없었다. 이전에 태권도 영화가 없었기 때문이다. 한용철 씨는 빨간띠였다. 그러나 그것도 실력이 있는 거다. 요즘에 3단 5단 이러는데, 나는 5년 해서 초단을 땄다. 그렇게 힘들었다. 확실히 어색한 부분이 많이 보인다. 실제로 운동하는 친구들이라서 굉장히 빠르다. 그렇다 보니 일반 배우인 상대가 합을 맞추질 못하게 되는 애로사항이 생겼다. 같이 빠르든지 같이 느리든지 해야 하는데, 그렇게 되지 않았다. 그러나 여러 번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액션영화 찍는 법이 많이 몸에 붙어서, 잘하는 사람과 못하는 사람들이 싸워도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눈치 채지 못하게 할 수 있었다.

김성욱: 저렴한 제작비로 진지하게 찍었다는 생각이 든다. 감독님의 액션영화는 저희 극장에서 처음 틀었다. 이미 30년 전 영화고 굉장히 허약하게 보인다고 하시는데, 그 시절의 즐거움도 보이고 여러모로 좋은 시간이었다. 그리고 감독님이 영화를 준비한다는 이야기도 들었는데, 마지막으로 관객들에게 이야기 하실 것이 있으신지?
이두용: 액션영화에 대한 미련은 있다. 지금 두 편 기획하고 있는데, 큰 자본이 들어가게 된다면 하지 않을 생각이다. 액션배우에 관한 이야기를 좀 더 하고 싶다. 앞서 말했듯이, 이 영화를 찍으려고 300명중 30명을 간추려서 했다고 했는데, 영화사에서 그 배우들을 '으악새 배우'라고 했다. '으악'은 다른 나라말이 아니라 배우들이 엎어지고 자빠질 때 '으악' 하니까 '으악새 배우'라고 무시했던 거다. 그런 식으로 돌아오는 시선이 참 슬펐다. 그래서 관뒀다. 한국영화는 모든 게 발달하고 수준이 굉장히 높아졌다. 그런 수준을 충족시키려면 외부에서 자본이 들어와야 하는데, 외국 자본이 들어올 수 있는 영화는 액션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외국인들이 돈을 내고 보는 영화는 99퍼센트 액션영화다. 예전에 극장에 <람보>나 <터미네이터>가 개봉하면 새벽 6시부터 줄을 섰다. 액션영화가 좋다는 게 아니라 나쁘지도 않다는 거다. 지금 홍콩영화는 거의 사라지는 느낌인데, 그런 것이 한국영화에게는 기회다. 한류 같은 일시적 현상에 기대지 말고, 액션영화를 찍었으면 좋겠다. 어쨌든 오래된 영화 봐주신데 감사드린다. (정리: 정태형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 관객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