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시대의 종말의 풍경



<히로시마 내 사랑>의 시작은 그러하다. 껴안은 남녀 위로 흘러내리는 재. 반짝이는 재 아래로 애처로운 남녀의 몸은 이내 말라비틀어진 끝에 훅 불면 사라질 듯하다. 그들의 육체는 죽음을 기억한다. 이미 벌어진 죽음의 기억 위에 그들은 현재를 산다. <4:44 지구 최후의 날>의 도입부도 그러하다. 시스코와 스카이는 서로의 육체를 더듬다 곧 뒤엉킨다. 그들의 육체는 싱싱하다. 여자의 팽팽한 육체에 비해 남자의 그것은 시들었으나, 죽음의 기운이 두 사람의 육체에 스며들기 전이다. 그들에게도 죽음은 예고되어 있다. 4시간 44분 후 세계가 종말을 고하면, 죽음을 피할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그들에게 죽음은 기억된 무엇이 아니라 기억되어야 할 무엇이다. 미래에 기억될 무엇. 그런데 누가 그들의 죽음을 기억한단 말인가.


종말이 벌어진 후에 시스코와 스카이의 육체는 어떻게 될까. <히로시마 내 사랑>의 그들 혹은 우리처럼 부패의 과정을 밟을까. <4:44 지구 최후의 날>이 만들어진 21세기는 디지털의 시대다. 영화는 대략 26개의 클립을 가져와 종말의 날을 기리고, 사람들은 화상 통화를 통해 육체의 접촉 없이 사랑하는 자를 불러내며, 삶의 스승들은 아이패드에 기거하며 지혜의 말씀을 전한다. 그런 까닭에 여기에는 폐허도 없고 썩을 육체도 없고 아울러 어떤 기억도 없(을 것이). 시간이 마지막을 고하는 찰나, 세상은 디지털의 개별 조각처럼 완벽하게 사라질 것이라고 영화는 말한다. 영화가 순백의 화면으로 시작하고 끝을 맺는 건 그래서다. 아무것도 없는 제로의 상태. <4:44 지구 최후의 날>은 종말을 다룬 어떤 SF영화보다 무서운 작품이다.


<4:44 지구 최후의 날>은 같은 해 나온 라스 폰 트리에의 <멜랑콜리아>에 대한 대답이기도 하다. 숲에 동떨어져 사는 <멜랑콜리아>의 인물들은 점점 발작적인 상태에 빠지거나 초월의 순간과 대면한다. 마침내 <멜랑콜리아>는 거대한 종말의 이미지로 화면을 가득 채운다. <4:44 지구 최후의 날>의 인물은 뉴욕의 한 귀퉁이에 사는 보헤미안이다. 섹스하고 그림을 그리고 가족과 통화하는 것이 그들이 하는 행동의 거의 전부다. 거리의 사람들도 다르지 않다. 바에서 노래하거나 친구들과 놀거나 거리를 거닌다. 어떤 이는 자살을 택하지만, 난데없이 찾아온 종말에 그들은 대개 평소 살던 방식으로 대응한다. <4:44 지구 최후의 날>은 종말이 찾아온 시간조차 문득 다가온 낯설고 기괴한 방문자 정도로 처리한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는 9.11의 재현처럼 보인다.


“누가 종말을 초래했는가?”는 “누가 우리의 세상을 파괴했는가?”와 같은 의미로 통한다. ‘포스트 9.11’의 미국은 테러와의 전쟁을 가속화했고, 종말을 다룬 대개의 영화는 공격하는 자들과 전쟁을 벌인다. <4:44 지구 최후의 날>은 ‘모든 것이 실패했을 때, 모든 것을 망쳤을 때, 마지막 순간까지 타자를 공격하고 원망하는 게 대체 무슨 의미일까?’라고 묻는다. 대신, 보다 원초적인 질문들, 그리고 명상. 종말은 세상이 창조되면서부터 예고되었고,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죽음을 향한다면, 우리는 어디에서 존재의 의미를 찾아야 하는 걸까. 과연 인간은 존재해 마땅한 선한 존재일까. <4:44 지구 최후의 날>이 구한 진실은, 페라라가 예전 작품에서 추구한 주제와 사뭇 다르다. 초저예산으로 만들어졌음에도 <4:44 지구 최후의 날>은 가장 거대한 순간에 가장 거대한 진실과 마주하는 데 성공한 작품이다. 펑키하던 페라라의 세계는 바야흐로 소울풀한 지점으로 옮아가는 중이다. 인물에 내재한 악의 종착점에 집착하다 유한한 존재에 대한 질문으로 영역을 확장했으니 당연한 결과다. 페라라를 말할 때 더 이상 마틴 스콜세지를 떠올릴 필요는 없겠다.


글/ 이용철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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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로시마 내 사랑>은 누벨바그의 진정한 출발을 알리는 선구적인 작품이자 감독 알랭 레네와 누보로망 작가인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만남으로 유명하다. 관습적이고 선형적인 이야기에만 매달려온 기존의 영화 작업에 의문을 제기했던 레네는 새로운 형식과 기교를 구사하는 누보로망 작가인 뒤라스에게 직접 시나리오를 부탁했다. 뒤라스는 상식적인 전개 방식 대신 그녀의 소설에서나 접했을 법한 다양한 실험 구조를 영화에 적용시킨다. 뒤라스는 히로시마 원폭 투하 소식을 처음 접했을 때의 충격을 전하며 이후 시나리오를 쓰게 된 동기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한 바 있다. “<히로시마 내 사랑>의 시나리오를 주문받지 않았다면, 나는 히로시마에 대한 글은 아무것도 쓰지 않았을 것이다. <히로시마 내 사랑>의 시나리오를 쓰게 되었을 때, 나는 히로시마의 엄청난 사망자 수를 보고 내가 만들어 낸 유일한 연인의 죽음의 스토리를 쓰게 되었다.”

영화의 첫 장면은 밀착된 피부의 움직임에서 시작한다.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폭의 형상을 띠는 분진들이 시대를 덮는 상흔처럼 남녀의 살갗에 뿌려진다. 곧이어 히로시마에서 우연히 만나 사랑을 나누는 프랑스 여자와 일본인 남자의 관계가 드러나고, 단순한 우연을 가장하던 이들의 만남은 히로시마라는 공간과 밀접한 관계를 맺게 된다. 뒤라스는 “지리적으로, 철학적으로, 역사적으로, 경제적으로, 인종적으로 가능한 한 최대한 서로 동떨어진 두 인물에게 히로시마는 에로티시즘과 사랑, 불행의 보편적인 여건들이 강렬하게 조명될 수 있는 공통된 장소”라며, 히로시마가 이 세상에서 유일한 곳이라 말했다.


여자는 히로시마에서 모든 걸 다 보았으며 항상 히로시마의 운명에 대해 슬퍼했다고 말한다. 그녀는 영화 촬영을 위해 히로시마를 처음 방문했다. 하지만 히로시마는 이미 그녀의 의식에 깊이 각인된 공간으로 자리한다. 스무 살도 채 되기 전 느베르에서 적군 병사를 사랑했다는 이유로 삭발당한 채 지하실에 감금됐던 그녀에게는 몰래 파리로 떠나올 때 들었던 종전 소식이 아물지 않았던 아픔으로 남아 있다. 제2차 세계대전의 비극에서 기인한 히로시마와 그녀의 운명이 조응하면서 히로시마는 여자가 머물고 있는 현재의 공간이자 느베르에서 겪은 아픔에 어떤 보편성을 확인시켜주는 환상의 공간이 된다. 점차 여자는 기억을 매개로 과거와 현재를 무차별하게 넘나들며 시간이나 합리성의 경계를 망각한다. 이와 같은 의식의 흐름을 따르는 것이 바로 레네와 뒤라스가 주목했던 화법이다.

여자는 느베르에서 겪은 시간을 통해 ‘그럼에도 삶이 계속된다’는 엄숙한 진리를 알고 있다. 히로시마에서 여인들이 기형아를 낳거나 남자가 불임이 된다고 해도 그 역시 계속되는 삶이다. 그런 점에서 <히로시마 내 사랑>은 개별적인 모든 것이 보편적이던 시대의 상흔을 공간으로 은유하는 영화이자, 한 시대에 편입되어 기꺼이 살아가며 각자가 감당하고 있는 삶의 규모에 집중하는 영화다. 뒤라스는 당시 히로시마 원폭에 대한 엄격한 취재로 주목받았던 존 허시의 현지 보고 기사의 원문을 일부 이용해 다음과 같은 내용의 대본을 썼다. “보름째 되는 날 히로시마는 다시 꽃으로 뒤덮이게 되었다. 수레국화와 글라디올러스, 그리고 둥근잎 나팔꽃과 수선화들이. 그때까지 꽃들의 세계에서 알려지지 않았던 어떤 강한 생명력을 가지고 잿더미에서 다시 살아나고 있었다.”

(장미경 관객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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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7일 저녁, 알랭 레네의 <히로시마 내 사랑> 상영 후 이 영화를 추천한 김종관 감독과의 시네토크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김종관 감독은 일본 여행을 하는 동안 다시 봤는데 개인적인 위로를 많이 받았다며 추천의 말을 전했다. 공간과 인물의 내밀한 관계에 대한 지속적인 고민을 해 온 김종관 감독과 함께 이 영화를 본다는 것이 반가운 우연처럼 느껴졌던 시간이었다. 무거운 듯 가벼운 듯 다양한 맥락으로 이어지던 관객과의 대화 속에서 <히로시마 내 사랑>은 일상의 진동을 안고 사는 우리들에게도 작은 위로를 건네는 듯 보였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디렉터): 방금 상영한 <히로시마 내 사랑>은 김종관 감독이 선택한 작품이다. 이 영화를 선택하게 된 계기가 특별한데 그 경위에 대한 소개를 부탁 드린다.

김종관(영화감독): 제가 만든 영화도 아니고 어떻게 보면 이 영화는 이야기를 나누기에 적절한 영화가 아닐 수 있다. 보통 추천 영화라 하면 좋아하는 영화, 지배적인 영화에 대한 얘기를 하는데 그런 면에서 이 영화가 주는 인상이 강했던 것 같다. 저한테 어떤 지점에서 가장 강렬하고 필요하게 느껴졌던 영화라, 전반적인 것에 대해 말할 자신은 없지만 그래도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지난 늦가을에 3주 정도 혼자 일본 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었다. 영화에 나오는 여배우처럼 개인적인 컨디션이 좋지 않았고, 뭔가 마음의 광기가 있는 상태에서 혼자 돌아다니고 있었는데 그때 탔던 기차의 속도감이 느려서 굉장히 긴 여행을 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었다. 거기서 책 한 권을 읽고 영화 한 편을 봤는데 둘 다 이상한 우연처럼 그 여행에 대한 제 감상과 비슷한 느낌을 줬다. 공교롭게도 기차가 고장이 나서 후쿠시마에서 잠깐 정차했는데 그때 인상도 재미있었다. 밤에 여행을 하다 보니 로맨스 있는 낭만을 기대하기도 했는데 젊은 사람들이 많이 타질 않더라. (웃음) 어쨌든 그 공간을 보는 것 자체가 묘했다. 분명히 그 공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느낌과 어울려서 이 영화가 개인적으로 의미 있게 다가온 것 같다.

김성욱: 일본에서 이 영화의 제목은 <24시간의 정사>이다. 히로시마라는 제목이 뭇사람들에게 받아들이기가 그랬는지 개봉판 제목이 달랐는데, 이 제목에서는 영화가 그리는 시간을 명확하게 드러내고 있다. 이 영화는 낯선 도시에서 낯선 사람과 24시간 동안 연애를 하는 이야기이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불가능한 연애의 모습을 보여주는 영화이기도 하다. 김종관 감독도 낯선 도시인 일본에서 이 영화를 보면서 갖게 된 느낌이 있었을 것 같다.

김종관: 이러한 한시적인 로맨스가 기존에 장르적으로 존재하고 매력 있기는 하지만, 다년간의 여행을 해 본 결과 그런 로맨스가 잘 일어나지는 않는 것 같다. (웃음) 이 영화는 어떻게 보면 공간과 공간의 만남이지 않나. 어떤 공간과 만났을 때 겪게 되는 감정의 지점들과 이 영화가 주는 것들이 맞닿아있는 것 같다. 어떤 곳을 여행하는 것은 낯선 공간을 보는 것인데 혼자 여행을 할 때는 기억, 특히 유년에 대한 어떤 기억들을 건드린다. 이 영화가 어떤 면에서는 굉장히 정치적이고 그 시대의 상황들을 반영하고 있지만 개인적으로 읽으면 좀 통속적인 부분이 있다.


김성욱: 여주인공인 에마뉘엘 리바가 했던 대사 중 “이 도시가 나의 몸에 딱 어울린다”는 표현이 있다. 이처럼 영화의 첫 시작은 몸과 몸이 만나는 것이지 않나. 몸과 몸이 만나는 것과 느베르라는 도시와 히로시마라는 도시가 만나는 것이 교묘하게 영화에 섞여 있고, 경계지대가  무화되면서 혼합되는 느낌이 있다. <히로시마 내 사랑> 역시 출발점부터 2차적인 사랑, 즉 다시 사랑하게 되는 유부남과 유부녀의 이야기고 그런 관점에서 성인적인 영화라는 생각이 든다. 김종관 감독의 영화는 사랑에 들떠있거나 그러려고 하는 열병에 사로잡혀 있거나 헤어지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 다루고 있는데, 그런 관점에서 영화를 어떻게 느꼈는지도 궁금하다.

김종관: 기본적으로 치정극이나 불륜극을 좋아한다. 트뤼포의 <이웃집 여자>(1981) 같은 파괴적인 영화를 좋아한다. 무엇보다 각본을 뒤라스가 썼기 때문에 공간적인 것과 시간적인 것을 잘 접합시키지 않았나 싶다. 시나리오에서는 전체적으로 여자가 더 강하게 느끼는 관능이나 성적인 욕망이 있는데, 아마 뒤라스가 가지고 있는 개인적인 경험들에서 기인한 것 같다. 추억 속 공간은 이질적이고 그 안에 있는 본인은 외롭지만 바깥 대상들은 공포스럽고 하는 것들이 성적인 자극이나 욕망과 절묘하게 맞아 들어가는 부분이 있다. 그런 면에서 뒤라스가 공간과 관능에 대한 것을 유일하게 표현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한다.

김성욱: 이 영화에 대해 뒤라스는한 여인이 죽은 자와 사랑을 나누는 이야기라고 말했었다. 여자가 일본인 남자를 만날 때 여전히 아직 죽지 않았던 독일인 남자를 떠올리게 되면서 죽음과 삶이 혼동되어 있는 상태가 히로시마라는 공간 안에서 사랑 이야기로 진행이 되고 있다. 이런 것은 연애 이야기에서도 반복되는 틀일 수도 있을 것 같다.

김종관: 사회적인 상황이 있으니까 과거에 집착하고 못 벗어나는 부분이 격의 있어 보이는데 통속적인 연애담에서는 그런 모습들이 추하고 일그러지게 표현되기도 한다. 당시 만들어진 영화들 중에 <남과 여> 같은 작품도 과거에 대한 중요하게 이야기하는 비슷한 설정이 많은 것 같다.


김성욱: 영화 자체가 파편적인 느낌이고 영화적인 설정으로 보더라도 각각의 장면들이 분리되는 특징이 있는데, 사실은 전체가 서로 연결될 수 없는 것들이 연결되어 있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일종의 몽타주라고 볼 수도 있는데 그런 파격성이 느베르나 히로시마를 연결 짓는 가장 영화적인 방식이라는 생각이 든다. 불가능함이 이 영화의 기본적인 설정이 아닌가 한다.

김종관: 그렇다. 거창하거나 사소하게 풀어도 불가능한 것이 있는데 그것이 멜로 영화에서 중년의 사랑을 푸는 원칙 같다. 뒤라스가 쓴 시나리오는 거의 소설 같은데, 영상으로 구성하는 것 자체가 소설이 번역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고 그러면서 구조적으로 열려 있는 부분들도 있다.

김성욱: <히로시마 내 사랑>에서는 어떤 장면들을 인상적으로 기억하고 있나.

김종관: 처음에 다큐멘터리 장면도 기억이 난다. 그 소스를 기준으로 거의 내레이션과 같은 대화를 썼는데, 영화에 나왔던 그 공간의 이미지들은 제가 여행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더 와 닿았던 것 같다. 히로시마는 불이 꺼지지 않아서 좋다는 밤거리에 대한 대사도 기억이 난다. 이 여자의 심리 상태에서 보면 어둠을 무서워할 것 같은데, 히로시마라는 도시도 그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밤에도 불을 끄지 않는 어떤 심리가 히로시마가 가진 그런 상처와 닮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관객1: 유명한 영화라 굉장히 기대를 많이 했는데 중간중간에 심심하기도 하고 어려웠던 것 같다. 우선 영화를 보면서 음악이 좀 튄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는데 전반적으로 영화 음악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시는지 궁금하다. 또 이 영화가 원폭 투하 이후 14년이 지난 다음에 프랑스에서 만들어진 영화인데 남자 주인공이라든지 일본 사회에 대한 묘사 같은 것들이 모호한 느낌이 많았다. 제작자나 뒤라스가 일본, 혹은 히로시마라는 공간 자체에 갖고 있던 생각이 추상적이고 모호한 것 같은데 단지 개인적인 감성만 표출된 영화인지, 이 부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김종관: 일단 음악은 당시 영화에서 음악을 쓰는 스타일이 있고 관객들이 그 스타일이나 관습을 이해하는 것이 지금과는 다를 것 같다. 옛날 영화를 보면 음악을 사용하는 방식들이 다르긴 한데, 그 시대를 완전히 배제하고 음악을 아주 독특하게 쓴다고는 볼 수 없다. 그리고 남자에겐 초월적인 연인간의 무드가 있지만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은 다큐처럼 쓰이지 않나. 어쨌든 히로시마라는 공간에 대한 얘기를 하지만 여자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이기 때문에, 타자의 시선으로 이곳을 본다는 것을 확실히 인식하고 그 시선을 부정하지는 않는 것 같다.
김성욱 일본은 전범국가이면서 나치스 독일에 공조한 나라이기 때문에 파괴를 했던 나라가 동시에 파괴를 당했다는 이중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히로시마라는 장소는 여자에게는 여행을 떠나온 공간이면서 여자가 느끼는 정념과 상태 안에서의 도시이기 때문에 설정 상 현실적인 문제들이 빠진 부분도 있는 것 같다. 또 하나는 이 영화를 보는 프랑스 내부의 정치사회적인 관점들인데, 이 영화가 제작되던 58, 59년에는 독일 점령 당시 프랑스에 대한 언급이 금지되었던 시기였다. 프랑스 입장에서 보면 이 영화에서 히로시마 얘기를 하면서 독일 점령 당시 느베르에서 여자가 겪은 불편한 일들을 언급하는 지점들이 있었던 거다. 마찬가지로 알랭 레네의 전작 <밤과 안개> 역시 수용소에 대해 말하지만 당시 프랑스가 알제리에서 자행하고 있는 폭력적인 사태에 대한 얘기이기도 하다. 그렇게 간접적인 방식으로 프랑스 사회의 기억과 망각의 문제를 다뤘다는 입장도 있다. 전쟁이 끝난 이후 독일 병사를 처참하게 죽여버리는 것과 동시에 여주인공이 수용소에 수감된 유대인으로 형상화된 것처럼, 어떤 균형이 맞춰져 있다.


관객2: 통속적인 연애담이라는 말씀도 하셨는데, 독일 병사를 잊고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고 싶어 하는데 자꾸 그렇게 안 되는 것을 망각에 대한 죄책감으로 볼 수 있는지 궁금하다.

김종관: 영화의 스토리 라인에 정치적인 상황을 대어 보면 일치되는 않는 부분들이 있고 또 통속적인 연애담으로 보면 연결이 되는 부분이 있고 그렇다. 정리가 안 되는 정서들이 혼재되어 있다고 느낄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이런 것들에 대해 스토리 라인을 쫓아서 보려고 하면 힘들지 않을까 한다.

관객3: 이 영화에서 실제로 중요한 것은 여자와 히로시마와의 관계라고 본다. 여자가 독일인 병사를 사랑해서 겪게 되는 고통과 히로시마라는 도시와 그 안의 사람들이 겪는 고통이 동일시됐다고 생각한다.

김성욱: 말씀하신 것처럼 동일시라고 하는 게 이 영화의 큰 핵심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전쟁에 의해 이 여자도 상처를 입었지만 원폭으로 피해를 받은 사람들의 모습은 지리적, 상황적으로 달라서 국가에 의해 일으켜진 보편적인 상처로 연계되지는 않는 것 같다. 일본인 남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김종관: 영화에서는 여자가 화자고 그녀의 개인적인 심리를 따라가는 것이다. 과감하게 얘기하자면 말씀하셨던 대로 이 영화를 볼 수도 있지만 그렇게 상징적으로 놓아버리면 재미없어지는 부분들이 있다. 그런 부분들을 남녀간의 일상적인 플롯으로 보완을 하면서 더 모호해지고 재미있어지는 부분들이 있다. 통속 연애극으로서의 기능들도 그대로 보면 더 중의적이고 영화적으로 재미있어질 것 같다.

관객4: 마지막에 서로를 히로시마와 느베르라고 불렀던 대사가 생각이 나는데, 근사하고 결함이 없는 주인공 남자의 모습을 통해서도 히로시마가 생각했던 것과 달리 상처를 잘 치유하고 있다는 느낌을 보여주는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었다.

김종관: 이 영화가 낙관을 가지고 있는 것은 열린 결말에 따른 부분인 것 같은데 개인적으로 생각해보면 이 영화에서 낙관이라기보단 위로를 느꼈던 것 같다. 여자에게도 위로의 지점들은 있지 않았을까 한다.

관객5: 감독님의 <폴라로이드 작동법>에서도 여자가 기억하고 있는 장면은 폴라로이드 카메라에 안 담길 것 같고, <히로시마 내 사랑>에서 여자 주인공의 기억에 대한 모호한 장면은 다른 감독이 찍고 있는 그 영화에도 담기지 않을 것 같은 개인적인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연결점에 대해 여쭤보고 싶다.

김종관: 이렇게 레네 영화와 제 영화가 연결점이 있는 게 너무 좋다. (웃음) 그것을 또 연결 지어 얘기하려니 쑥스러운데 <폴라로이드 작동법>을 찍었을 때 애초에 개인적인 얘기들을 해보고 싶었다. 사진도 그렇고, 영화라는 게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순간을 담을 수 있는 거지 않나. 영화가 다루는 첫사랑도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감정의 한 부분이고, 그런 것들을 영화라는 장치로 담아볼 수 있다는 게 저한테는 가장 큰 의미인 것 같다. 소중한 공간들과 감정들, 그 시기들, 젊음들 같은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면 기억하기 싫은 부분들까지 떠올려야 하는데, 그런 부분에선 일정 부분 연결되어 있을 수도 있겠다.


김성욱: <히로시마 내 사랑>은 현대 영화 안에서 감정과 의식의 상태로 영화를 일관되게 만든 영화이기도 하다. 김종관 감독의 작품에서도 감정의 상태나 분위기, 인물의 느낌들이 많이 느껴지는데, 그런 영화들을 만들 때의 팁 같은 게 있나.

김종관: 저는 아주 작은 작업들을 많이 했고 대부분 두 사람이 주인공인 경우가 많았다. 그 관계 안에서 발생하는 것들에 초점을 맞추었다. 제가 여행도 좋아하고 공간에 대한 의미들이 크게 갖고 있어서 그런 공간에 대해 관찰을 하고 인물 간의 관계에 대한 고민을 하는 편이다.

김성욱: 올해는 굉장히 에로틱한 영화를 한 편 만들 거라고 말씀하셨는데 어떤 영화를 계획하고 있나.

김종관: 시나리오를 하나 써서 준비하고 있다. 서스펜스 애로물인데, 한시적인 시간 안에 서로의 성적인 욕망을 들여다보는 영화를 구상하고 있다.


 

정리│장미경 관객 에디터 사진│최용혁 자원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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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로시마 내 사랑>은 누벨바그의 진정한 출발을 알리는 선구적인 작품이자 감독 알랭 레네와 누보로망 작가인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만남으로 유명하다. 관습적이고 선형적인 이야기에만 매달려온 기존의 영화 작업에 의문을 제기했던 레네는 새로운 형식과 기교를 구사하는 누보로망 작가인 뒤라스에게 직접 시나리오를 부탁했다. 뒤라스는 상식적인 전개 방식 대신 그녀의 소설에서나 접했을 법한 다양한 실험 구조를 영화에 적용시킨다. 뒤라스는 히로시마 원폭 투하 소식을 처음 접했을 때의 충격을 전하며 이후 시나리오를 쓰게 된 동기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한 바 있다. “<히로시마 내 사랑>의 시나리오를 주문받지 않았다면, 나는 히로시마에 대한 글은 아무것도 쓰지 않았을 것이다. <히로시마 내 사랑>의 시나리오를 쓰게 되었을 때, 나는 히로시마의 엄청난 사망자 수를 보고 내가 만들어 낸 유일한 연인의 죽음의 스토리를 쓰게 되었다.”


영화의 첫 장면은 밀착된 피부의 움직임에서 시작한다.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폭의 형상을 띠는 분진들이 시대를 덮는 상흔처럼 남녀의 살갗에 뿌려진다. 곧이어 히로시마에서 우연히 만나 사랑을 나누는 프랑스 여자와 일본인 남자의 관계가 드러나고, 단순한 우연을 가장하던 이들의 만남은 히로시마라는 공간과 밀접한 관계를 맺게 된다. 뒤라스는 “지리적으로, 철학적으로, 역사적으로, 경제적으로, 인종적으로 가능한 한 최대한 서로 동떨어진 두 인물에게 히로시마는 에로티시즘과 사랑, 불행의 보편적인 여건들이 강렬하게 조명될 수 있는 공통된 장소”라며, 히로시마가 이 세상에서 유일한 곳이라 말했다.



여자는 히로시마에서 모든 걸 다 보았으며 항상 히로시마의 운명에 대해 슬퍼했다고 말한다. 그녀는 영화 촬영을 위해 히로시마를 처음 방문했다. 하지만 히로시마는 이미 그녀의 의식에 깊이 각인된 공간으로 자리한다. 스무 살도 채 되기 전 느베르에서 적군 병사를 사랑했다는 이유로 삭발당한 채 지하실에 감금됐던 그녀에게는 몰래 파리로 떠나올 때 들었던 종전 소식이 아물지 않았던 아픔으로 남아 있다. 제2차 세계대전의 비극에서 기인한 히로시마와 그녀의 운명이 조응하면서 히로시마는 여자가 머물고 있는 현재의 공간이자 느베르에서 겪은 아픔에 어떤 보편성을 확인시켜주는 환상의 공간이 된다. 점차 여자는 기억을 매개로 과거와 현재를 무차별하게 넘나들며 시간이나 합리성의 경계를 망각한다. 이와 같은 의식의 흐름을 따르는 것이 바로 레네와 뒤라스가 주목했던 화법이다.



여자는 느베르에서 겪은 시간을 통해 ‘그럼에도 삶이 계속된다’는 엄숙한 진리를 알고 있다. 히로시마에서 여인들이 기형아를 낳거나 남자가 불임이 된다고 해도 그 역시 계속되는 삶이다. 그런 점에서 <히로시마 내 사랑>은 개별적인 모든 것이 보편적이던 시대의 상흔을 공간으로 은유하는 영화이자, 한 시대에 편입되어 기꺼이 살아가며 각자가 감당하고 있는 삶의 규모에 집중하는 영화다. 뒤라스는 당시 히로시마 원폭에 대한 엄격한 취재로 주목받았던 존 허시의 현지 보고 기사의 원문을 일부 이용해 다음과 같은 내용의 대본을 썼다. “보름째 되는 날 히로시마는 다시 꽃으로 뒤덮이게 되었다. 수레국화와 글라디올러스, 그리고 둥근잎 나팔꽃과 수선화들이. 그때까지 꽃들의 세계에서 알려지지 않았던 어떤 강한 생명력을 가지고 잿더미에서 다시 살아나고 있었다.” (장미경 : 에디터)


1.17(화) 19:00 상영 후 김종관 감독 시네토크
1.29(일)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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