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들> 상영 후 황덕호 재즈평론가 시네토크 현장 스케치 

 

지난 5월 15일, 존 카사베츠의 데뷔작인 <그림자들> 상영에 이어 “재즈와 영화: 존 카사베츠와 찰스 밍거스”라는 제목으로 재즈 평론가 황덕호씨와 함께 하는 시네토크가 진행되었다. 이 날 시네토크 시간에는 제목처럼, 찰스 밍거스의 음악적 태도나 작업 방식, 카사베츠 영화와의 유사한 지점들에 대해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으며, 특별히 찰스 밍거스의 음악을 함께 듣는 시간도 마련되었다. 재즈와 영화 이야기가 함께 했던 이날의 이야기를 일부 옮긴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디렉터): 존 카사베츠는 데뷔작 <그림자들>을 만들면서, 그 무렵인 50년대 후반에 프리 재즈에 깊은 영향을 많이 받았고, 동시대적으로 그런 음악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던 거의 첫 번째 감독으로 이야기된다. 프랑스의 비평가 티에리 주스가 카사베츠의 영화와 재즈와의 연관성에 대해 얘기한 부분이 있다. “카사베츠의 <그림자들>은 오넷 콜맨의 프리 재즈를 최초로 경험한 동시대의 영화였다. 단지 찰스 밍거스가 영화 음악에 참여했기 때문만이 아니라, 카사베츠와 재즈 사이에는 많은 유사성이 있다. 살아있는 시간을 기입하고, 쇼트의 중심에서 여기와 지금을 보여주고 있고, 굴절에 대한 불가능한 예측이 있다. 카메라와 마찬가지로 대사에 스윙이 있고, 이미지와 마찬가지로 소리의 우연성과 독특성에 대한 우월성이 있으며, 마지막으로는 악보의 우월성에 순종하는 데에 대한 거부가 있다.” 50년대 후반의 프리 재즈, 특히 찰스 밍거스나 오넷 콜맨이 카사베츠와 관련해서 많이 언급된다. 프리 재즈란 어떤 것이었고, 두 음악인이 당시 어떤 영향성을 갖고 있었는지 궁금하다.

황덕호(재즈 평론가): 프리 재즈에 국한해서 설명하기보다는, 오히려 찰스 밍거스 음악의 특징을 놓고서 카사베츠 영화와의 공통점을 생각해 볼 수 있겠다. 오늘 보신 <그림자들>과 관련해서 이야기를 시작하자면, 의도했던 바는 아니었겠지만 영화의 주인공들이 혼혈 부모 밑에서 태어난 세 남매인데 밍거스 역시도 똑같은 환경에서 자랐다. 밍거스의 아버지는 흑인 하사관이었고, 밍거스를 낳기 전에 백인여성과 결혼해 두 딸을 낳았다. 그 중 한 명은 완전히 엄마를 닮아서 백인처럼 보이고, 다른 한 명은 아버지를 닮아 완전히 흑인처럼 보인다. 밍거스의 아버지는 이후 밍거스 어머니와 재혼했는데, 그녀는 중국인이었고, 밍거스를 낳고 곧 죽게 된다. 밍거스가 어린 시절에 집 안 거실에는 이상하게 백인 엄마의 사진만 걸어놨었다고 한다. 그래서 밍거스는 그녀가 자기 엄마라고 생각하고 자랐었고, 큰 누나와 함께 둘째 누나의 피부가 검다고 놀렸다고도 한다. 영화에서의 벤과 비슷했던 셈이다. 벤 역시 혼혈인데, 그가 늘 같이 돌아다니는 친구들은 백인친구들이다.

밍거스는 고등학생에 되어서야 흑인이라는 아이덴티티를 갖게 되었다고 한다. 자신의 피부가 검은 색인데도 자기가 흑인이라는 생각을 별로 갖지 못했던 것이다. 고등학생이 되고 나니까 자기 근처에 다 흑인친구들만 모이는 것을 보고 비로소 내가 흑인이구나 생각했다고 한다. 그런 생각을 갖게 되기까지 이미 많은 시간이 걸렸고, 어린 시절에 자신의 미적 체험이나 취향이 결정되는 과정 속에서 백인문화에 대한 일종의 콤플렉스를 갖고 있었다. 밍거스는 처음에는 첼로를 연주하다가 콘트라베이스로 악기를 바꿨는데, 열심히 첼로를 해서 교향악단에 들어가고 싶다고 하자, ‘미안하지만 흑인을 뽑는 교향악단은 없다. 콘트라베이스로 바꿔서 재즈를 해보라’ 는 권유에 충격을 받은 것이다.

이후에 재즈 뮤지션이 됐지만 클래식 작곡 기법으로 일일이 악보에 모든 음들을 써서 하는 작품들을 50년대 초반까지도 쓰게 된다. 그러다 어느 순간 일정정도 반성을 하게 된다. 아무리 자신이 재즈 작품이라고 썼지만 막상 연주자의 연주를 들어보면 뭔가 어색하고, 이 음악도 저 음악도 아닌 스타일로 들린다는 느낌을 받고 나서 그 해답을 듀크 엘링턴에게서 찾게 된다. 일단은 음악을 듣고서 좀 더 이야기를 할까한다. <그림자들>이 나왔을 무렵인 1959년에 발표된 곡이다. “수요일 밤의 기도회”이다. 수요일이 되면 흑인들이 모여서 신도들이 열띤 예배를 보는 장면을 묘사한 작품이다. 선곡한 음악이 있으니 함께 들어보고 얘기를 계속 나누면 좋겠다.   

 

♬ Charles Mingus - Wednesday Night Prayer Meeting ♬

 

 

보통 재즈에서 16마디나 12마디의 테마를 연주한 뒤, 솔로 연주자들이 차례로 연주하고, 다시 다 같이 테마를 연주하는 것이 기본적인 포맷이었다. 찰스 밍거스는 이러한 방식이 불만이었다. 대신 그는 더 많은 음악적인 내용들을 작곡을 해서 만들어내려고 했는데, 그가 작곡한 내용을 일일이 악보에 써서 연주자들은 그 악보를 보고 연주하다보니 재즈 특유의 즉흥성이나 에너지가 표현이 안됐던 것이다. 그런 면을 가지고 많은 시행착오를 하다가, 듀크 엘링턴의 방식에서 해답을 얻게 된다. 작곡자는 기본적인 작품의 테마를 가지고 리허설을 하면서, 멤버들에게 떠오르는 멜로디를 묻고, 그렇게 다른 연주자들과 연주를 해가면서 곡을 완성해 간다. 사실 재즈에서의 작곡이라는 것은 집단적인 창작이다. 그래야 보다 풍부한 것을 담아낼 수 있고 연주자들의 즉흥성과 자발성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카사베츠가 영화를 찍는 방식도 그런 면에서 일치되는 부분이 있었던 것 같다.

카사베츠은 1957년 4만불의 저예산으로 <그림자들>을 찍기 시작했는데, 굉장히 소규모 자본을 가지고 스스로 모든 결정하며 창작한다는 데에서 밍거스도 많은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밍거스 역시도 카사베츠 만큼이나 메이저 음반사와 많은 갈등이 있었고, 그래서 결국 자기 음반사를 직접 차리기도 했는데, 그런 면에서 카사베츠와 밍거스의 태도에는 공통점이 있었다. 57년에 <그림자들>의 촬영을 마치고, 58년에 음악 제작에 들어갔는데, 찰스 밍거스가 쓴 작품이 영화에 거의 반영되지 않았다. 베이스나 드럼 솔로를 한 정도만 들어가있다. 크레딧에도 색소폰 솔로에 샤피아 하디, 그 외에 추가적인 음악에 찰스 밍거스 이렇게만 나온다. 찰스 밍거스가 실제로 이 영화를 쓴 작품들은 거의 반영이 안돼서 굉장히 화가 났었다고도 한다.

찰스 밍거스 같은 뛰어난 거물이 어떻게 이런 독립영화의 음악을 맡게 되었을까 궁금해하시는 분들이 계실지 모르겠지만, 신화적 존재였던 찰리 파커나, 미국무부 지원 아래 해외 투워를 했었던 디지 길레스피, 콜럼비아사와 계약했던 마일즈 데이비스 정도를 제외하고는, 사실 대부분의 재즈 뮤지션의 사회경제적 입지라고 하는 것이 굉장히 어려운 위치에 있었다. 몇몇 메이저 음반사가 아니라면 음반을 제작해도 사실 배포망이 거의 없기 때문에 판매가 어려웠던 것이다. 자신이 직접 음반사를 만들기도 했던 찰스 밍거스는 어려운 상황이 계속되자, 50년대 초에는 전업 뮤지션의 길을 벗어나서 우편배달부가 되기도 했다.

찰스 밍거스는 흑인으로서의 아이덴테티를 늦게 가지면서, 흑인성에 대한 굉장히 강렬한 태도를 갖게 되고, 정치적으로도 확고한 표현을 하기도 했다. 예를 들어 콜럼비아에서 녹음한 <Fables of Faubus>은 남부의 포버스라는 인종주의적인 주지사를 비꼰 음악이다. 당시에 포버스는 흑인과 백인의 학교를 통합해 운영하라는 법령을 지키지 않고, 주의 독립된 군대를 가지고 정부군과 대치하기도 했었다. 원곡에는 가사가 있는데, 콜럼비아사가 이를 못 싣게 해서 보컬 부분이 빠지게 된다. 나중에 밍거스가 독립 음반사를 차린 뒤 보컬을 입혀서 포버스를 조롱하는 가사를 그대로 실어 다시 발표하기도 했다.

 

김성욱: 정확하게 프리 재즈 스타일이라는 게 어떤 것인가?

황덕호: 프리 재즈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바로 그 이전의, 찰리 파커로 대변되는 비밥을 이해해야 할 것 같다. 프리 재즈는 비밥의 조성적 특징, 리듬과 같은 규칙들을 다 벗어던지는, 그래서 보다 자유로운 재즈를 추구한다는 의미였고, 59년도 무렵에 오넷 콜맨을 통해서 본격적으로 선언처럼 등장했다. 사실 밍거스는 프리재즈와 태도가 상당히 가까우면서도, 자기 음악을 프리 재즈라고 부르는 것에 대해 거부감을 갖고 있었다. 특히 밍거스는 작곡이라는 측면에 굉장히 많은 열정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프리 재즈와 거리를 뒀었다. 그렇지만 비밥을 넘어셔려는 태도에 있어서 프리 재즈와 상당히 가까웠다. 불협화음을 굉장히 적극적으로 사용하고, 조성에서 탈피하고, 기존의 천편일률적인 스윙감에서 벗어나서 리듬에서도 파격성을 주는 점들이 프리 재즈와 가까웠기 때문에 프리 재즈로 오인받기도 했었다. 하지만 밍거스는 오넷 콜맨의 음악에 대해서 비판적이었다. 밍거스는 무조건 조성을 버리는 것이 과연 음악적으로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생각했다.

 

관객1: 들려주신 음악의 느낌도 그랬고, 영화에서는 인종적인 문제가 나오지만, 결국엔 벤이라는 캐릭터가 그냥 잊어버리자는 느낌으로 끝나는데...

황덕호: 비트 세대라는 말이 영화에도 등장하는데, 사실 케루악이나 버로우즈, 긴스버그 같은 비트 세대의 작품들에 대해 흑인 재즈 뮤지션들이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리고 비트 세대의 작품들을 대부분의 작가들이 백인이어서 그런지 동시대를 살면서도 의아할 정도로 인종문제에 대한 관심이나 고민이 없다. 그런데 카사베츠의 <그림자들>을 보면서, 카사베츠가 흑인도 아닌데, 어떻게 이렇게 인종문제를 정면에서 바라보고 예리하게 파헤쳤을까 싶어서 깜짝 놀랐다. 마지막에 벤이 인종문제를 잊는다기보다는 뮤지션으로서의 새로운 삶을 살아야겠다는 필요성을 느낀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인종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에 대해서는 재즈도 범위가 넓기 때문에 단적으로 말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고, 뮤지션에 따라서도 달랐던 것 같다. 하지만 흑인 뮤지션들이 인종문제를 정면으로 바라봤던 부분은, 사실 일반 대중들이 혹은 백인 재즈 평론가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적극적이었다. 예를 들어, 아트 블레이키의 <Freedom Rider>라는 음반이 있다. 당시에 인종차별 철폐를 위해서 미국의 남부를 순회하고 다녔던, 우리로 치자면 희망버스 같은 운동이 있었는데, 바로 그 운동을 위해서 쓴 작품이었다.

 

관객2: 영화 마지막에 이 영화는 즉흥적으로 촬영된 것이라는 자막이 뜨는데, 어디까지가 즉흥적인 것인가.

김성욱: 즉흥적으로 느낄 수 있도록 만들어진 부분들이기 때문에 사실 굉장히 계획된 연기를 하는 것이다. 여기에 나오는 대부분의 배우들은 카사베츠가 운영하던 일종의 액터즈 스튜디오의 수강생들이었다. 매일 연기수업을 진행하다가, 조금 더 실제적인 방식으로 해보자는 의도에서 시작된 것이다. 연기를 무대가 아닌 실제 현실에서 진행해보자는 의도였기 때문에 이 것을 영화로 만들어서, 개봉하거나 배급하려는 계획은 애초에 없었다고 한다. 로메르의 영화도 즉흥적이고 우연적인 요소를 개입시킨다고는 하지만, 100퍼센트 완성된 대사에 따라서 끊임없이 액팅들을 해나가는 과정 안에서 굉장한 자연스러움에 도달하면서 발생한 것이기 때문에 한 번에 해서 생기는 그런 방식의 즉흥성은 아니다.

 

정리: 장지혜(관객 에디터) | 사진: 주원탁(자원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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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에서 <자스 시티>를 추천한 황덕호 재즈평론가

“<캔자스 시티> O.S.T는 단 한곡도 빼놓을 수 없는 명반이다.”
‘2011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에서 로버트 알트먼 감독의 1996년작 <캔자스 시티>를 추천한 황덕호 재즈평론가는 영화를 보기 전에 음반부터 들었다. 당시 젊은 재즈 연주자들이 극중 전설의 뮤지션들을 연기했던 까닭에 황 평론가는 영화 대부분의 장면을 좋아한다. 그중 그에게 유독 기억에 남는 장면은 “극중 재즈클럽에서 색소폰 연주자 레스터 영이 <Moten Swing>을 연주할 때 10대 흑인 꼬마가 이를 지긋이 바라보는 신”이다. 그 꼬마가 바로 찰리 파커다.

<캔자스 시티>를 대형 스크린으로 경험하는 건 황덕호 평론가에게 처음은 아니다. “1998년 아트선재센터에서 개봉한 적이 있다. 그때 <씨네21> 기자로 있던 김영진 영화평론가와 관객과의 대화를 했는데, 시간 관계상 재즈 얘기는 많이 못 했다. (웃음)” 그렇다면 1월29일 오후 3시 반 상영 뒤 진행예정인 관객과의 대화는 예전의 아쉬움을 훌훌 털어놓을 절호의 기회가 아닐까. “2007년 시네바캉스 서울에서 박찬욱 감독, 손관호 파고 뮤직 대표와 함께 <라운드 미드나잇> 관객과의 대화를 진행한 적이 있는데, 수많은 관객 앞에서 혼자서 얘기하는 건 좀 부담스럽다. (웃음) 그래서 이번에 함께 <캔자스 시티>를 추천한 손관호 대표와 함께 영화 속 재즈 이야기를 나눌 예정이다.” 최근 서울아트시네마가 겪고 있는 어려움이 비단 영화인에게만 해당되는 문제가 아닌 것 같아 참여했다는 황덕호 재즈평론가가 이번 영화제서 보고 싶은 작품은 무엇일까. “<캔자스 시티>는 물론이고, 에릭 로메르의 <모드 집에서의 하룻밤>(1969)과 이두용 감독의 <용호대련>(1974)을 볼 계획이다.”
 
글: 김성훈 씨네21 기자 / 사진제공: 황덕호

* 이 글은 2011년 1월 24일자 영화전문주간지 씨네21에 게재된 것을 발췌한 것입니다. 글 자료 원본은http://www.cine21.com/Article/article_view.php?mm=005002003&article_id=64608 에서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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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재즈와 캔사스 시티를 연결하여 생각한다는 것은 왠만한 재즈 팬이 아니고서는 조금은 생소한 일이다. 그리고 그것은 일반인들뿐만 아니라 재즈를 평론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상대적으로 뒤늦게 인식된 부분이기도 하다. 캔사스 시티와 미국 남서부 지역의 재즈에 관한 선구적인 연구를 남긴 바 있는 프랭크 S. 드릭스는 1959년에 발표한 글 <Kansas City & Southwest>의 첫 머리에서 “이 지역의 재즈는 재즈역사의 중요한 원천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전적으로 무시되어 왔다”고 말한 바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지역의 재즈의 중요성이 학자들과 평론가들 사이에서 널리 인식된 것은 1980년대에 와서나 가능했다.

로버트 알트만의 <캔사스 시티>에서 재즈가 매우 중요한 요인이라는 주장에 선뜻 동의할 용기는 없지만 재즈가 너무도 큰 재미를 선사한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한마디로 이 영화에서 재즈는 1930년대 미국 음악에 대한 고증적인 부활이자 일찍이 없었던 1990년대 재즈의 가장 화려한 축제이다. 이 영화가 1996년 개봉되었던 당시에 외국의 언론들은 여기에 등장하는 현역 연주자 아무개가 1930년대 재즈맨 중 아무개 역을 맡았다는 등의 기사를 경쟁적으로 냈던 적이 있었다. 그것은 1930년대 거장의 이름들과 현역 연주자들의 연주상의 유사성을 고려할 때 꽤나 설득력 있으며 흥미로운 지적이었다. 그러나 정작 영화에서 테너 색소픈 주자 조슈아 레드먼이 그 역을 맡은 레스터 영 외에는 명시적으로 호명되는 인물은 단 한명도 없다. 어쩌면 이 모든 것을 상상에 맡기는 것이 영화의 재미인 것이다.

재즈 팬이라면 영화 전반부, ‘헤이헤이 클럽’ 창문에 붙어있는 포스터를 잠깐이지만 유심히 볼 필요가 있다. 그곳에는 ‘재즈의 전쟁’이라는 제목 밑에 ‘레스터 영 v.s. 콜맨 호킨스’라는 부제가 달려 있다. 실제로 1934년 콜맨 호킨스가 소속되어 있던 플레처 헨더슨 악단은 캔사스 시티에 투어를 왔었고 이미 뉴욕을 중심으로 테너 섹소폰의 일인자로 꼽히던 콜맨 호킨스는 서브웨이 클럽에서 캔사스 시티 주자들과 일대 격전을 벌였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레스터 영 역을 맡은 조슈아가 한 이방인 테너맨과 일대 격전을 벌이는 장면은 바로 1934년 서브웨이 잼 세션을 묘사한 것으로 추측되는데 역시 크레이그 핸디는 연주나 외모 모두에서 젊은 시절 콜맨 호킨스와 유사한 점이 많다.

캔사스 시티 재즈는 영화 속의 찰리 파커가 말해주듯 모던재즈의 씨앗이었다는 사실과 함께 우리에게 아주 중요한 재즈의 본질을 전해준다. 그것은 재즈가 태어나고 자라났던 환경 속에서 얻어진 재즈의 깊은 속성에 대한 재확인이다. 재즈는 결코 18세기 유럽 귀족들이 누렸던 디베르티메토와 같은 우아한 실내악이 아니며 그렇다고 블루스처럼 고단한 노동현장 속에서 꽃 피울 수 있는 민중성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다. 재즈는 뉴올리언스의 사창가 스토리빌을 자신의 고향으로 기억하고 있듯이 이후에도 도시의 어두운 환락 속에서 함께 자랐으며 그 환경을 음악 속에 내면화하였다. 그것은 결코 건강하지 않은 20세기 미국 도시문명의 한 단면이다. 그것의 가치가 무엇이냐는 다소 이념적인 질문은 잠시 유보하자. 그것은 어쩌면 음악을 듣기 전에 들여다봐야 하는 골치 아픈 꼼꼼한 악보일 수 있으니까. 그보다는 그저 편안하게 영화 속의 음악에 젖어보자. 그리고 윤리나 미학에 강박되지 않는, 그래서 때로는 우울한 범죄자의 화간 속에서 꽃을 피워야 했던 이 음악이 가끔은 인간적이라고 느껴진다는 사실에 은밀한 쾌감을 느껴보자. 제발 악보와 윤리를 벗어 던지자. 그것이 캔사스 시티 재즈다. 그것이 재즈다. (황덕호_재즈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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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토크] 황덕호 재즈평론가와 손관호 파고뮤직 대표의 선택작 로버트 알트먼의 ‘캔자스 시티’

지난 29일 토요일 오후, 서울아트시네마에 특별한 친구들이 방문했다. 이번 영화제를 통해 새로운 친구가 된 황덕호 재즈평론가와 손관호 파고뮤직 대표다. 그들은 재즈 음악이 가득 담긴 로버트 알트먼의 <캔자스 시티>를 추천했다. 상영 후에는 그들과의 시네토크가 이어졌다. 두 사람은 서로 농담을 주고받으며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이끌었고, 1930년대 중반 미국의 캔자스 시티 재즈의 역사와 함께 그 당시의 사회적 배경을 영화 이야기에 곁들여 들려주었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디렉터): 예전부터 재즈와 관련된 상영을 시도하려 했는데 여의치 않다가, 올해 특별히 두 분을 친구로 모시면서 진행하게 됐다. 이 영화를 어떤 점에서 좋아하시는지?
손관호(파고뮤직 대표): 30년대 재즈의 정수들이 90년대에 아주 촉망받던 젊은 재즈 연주가들에 의해 재연된 점이 매우 흥미로웠다.
황덕호(재즈평론가): 사실 사운드트랙을 먼저 들었다. 음반이 매우 훌륭했고, 해외에서도 평이 무척 좋았다. 당장 음반사에 연락해서 국내 발매를 하자고 이야길 했더니 안 팔릴 것 같다고 못 내겠다고 하더라. 그런데 어느 영화사에서 그 영화 수입 계획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돼서 음반도 냈다. 오늘 다시 보니 너무 황홀했고 개인적으로 알트먼 영화 가운데에서 아주 훌륭하다는 생각이 든다.
손관호: <캔자스 시티> 영화의 배경은 30년대 중반 정도인데, 그 때는 경제 대공황이 끝나가는 시기인 듯한데.
황덕호: 29년에 대공황이 터졌고, 그 이후에 민주당의 루즈벨트가 뉴딜정책을 통해 정부 주도로 경기를 살리려는 노력을 했었다. 미국 중서부에 위치한 캔자스 시티는 교통망들이 연결되는 하나의 중요한 거점이었다. 그러다 보니 당연히 거기에 여러 가지 사업들이 몰리고 위락 시설이 많이 생기고, 중서부 지역의 재즈가 한 곳으로 집결되는 중심이 된다. 실제로 기록을 보면 재즈 클럽이 24시간 영업을 했다고 한다. 밤이 지나고 아침이 와도 늘 연주를 했던 것이다. 손님들이 항상 들어오고 성황을 이뤘던 시기였다. 영화중에 탐 펜더게스트라는 사람의 이름이 자주 언급되는데, 그 사람이 바로 캔자스시티 뒷골목의 경제 실권을 쥐고 민주당에 정치자금을 대던 사람이었다. 문헌에 보면 그 사람은 저녁 9시에 잠자리에 들었는데, 그 사이에 모든 돈을 다 벌었다고 한다. 영화를 보면 그가 그 시간에 자고 있다가 전화를 받는 모습이 사실적으로 묘사된다. 펜더게스트가 모든 위락시설을 장악하고 그와 관련된 새로운 업주들이 등장해서 30년대 내내 잘 해먹었고, 민주당도 그로 인해 정치적 이득을 얻는다. 알트먼은 신민주당 쪽의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의 악행에 대해서도 이런 식으로 거리를 두고 묘사하고 있다는 점이 인상 깊다.

김성욱:
이 영화가 갖고 있는 시간적 맥락도 굉장히 큰 것 같다. 영화 전체는 24시간 정도진행되고, 재즈공연이 계속해서 나온다. 전체적인 음악 편성에 있어 대여섯 번 정도의 구분점이 있고, 이 연주의 흐름과 영화의 흐름과 리듬이 잘 맞는 것 같다. 또한 캔자스 시티는 알트먼의 고향이기도 한데, 소년으로 나오는 찰리 파커의 시선이랑 자신을 어느 정도 동일시 한 것 같은 느낌도 든다. 재즈는 뉴욕이나 시카고가 유명한데, 캔자스 시티 재즈는 다른 지역의 음악들과 어떤 차이가 있는가?
황덕호: 사실 캔자스 시티 재즈에 대해 생각할 기회는 흔치 않은 것 같다. 미국에서의 상황도 비슷하다. 영화 속 소년이 찰리파커라는 사실을 묘사해주는 부분이 재미있다. 찰리 파커의 어머니가 실제로 그 웨스트 유니언 역에서 청소하는 일을 하셨고, 찰리 파커는 재즈 클럽을 많이 돌아다녔다고 한다. 찰리 파커가 55년에 약물 중독으로 갑자기 세상을 떠나고 나서, 레스터 영이 59년에 예순 정도의 나이로 알코올 중독으로 세상을 떠난다. 그 시점에, 프랭크 드릭스라는 유명한 재즈역사연구가가 캔자스 시티 재즈에 대해 자세히 연구한 아티클을 발표하면서, 비로소 캔자스 시티라는 지역이 부각되기 시작했다. 영화 속에 카운트 베이시라는 사람이 잠깐 나온다. 원래 뉴저지 사람인데 캔자스 시티에 왔다가 눌러 앉아, 이후에 빅밴드를 형성하면서 캔자스 시티 재즈의 왕이 된 사람이다. 그의 밴드는 곧 미국을 대표하는 빅밴드 재즈오케스트라가 된다. 거기에서 찰리 파커가 등장하고, 레스터 영, 벅 클레이튼 등 유명한 사람들이 쏟아져 나왔다. 뉴욕이나 동부에 있던 사람들이 얕잡아 보고 클럽에 와서 배틀을 했다가 다 나가떨어지고 가는 곳이 캔자스 시티였다. 재즈 배틀 사건도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우연한 계기로 시작된 콜맨 워킨스와 레스터 영 간의 재즈 배틀은 밤새도록 진행됐다고 알려져 있다.
손관호: 알트먼 영화에는 일반적인 영화문법이 적용이 안 된다. 재즈계에도 화성이나 하모니의 기본적인 틀들을 다 무시하고 나타난 워냇 콜맨이라는 색소폰 주자가 있는데, 알트먼 영화의 전개방식은 마치 이 사람의 연주 같다. <캔자스 시티>도 처음에 갑자기 납치가 벌어지고 그 이후에 이전의 시간대가 나오는데, 특별한 논리적 맥락 없이 수많은 인물들이 파편화되고, 사건들이 가지를 치는 것처럼 퍼져나가다가 그것이 연결된다. 여기서 나오는 힘이 있다. 이런 점에서 알트먼 영화가 가장 재즈적인 영화가 아닐까 생각해봤다.

김성욱:
알트먼 영화를 그랜드 호텔 영화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야기적으로는 일관적이지 않지만 구조적으로는 일관된 면도 있는 것 같다. 아까 말씀하신 두 명의 재즈 배틀이 극적 맥락과도 접점이 잇는 것 같다. 블론디와 캐롤린이 티격태격 하며 벌이는 사건의 전개와 재즈 배들 장면을 의도적으로 교차하여 보여준 것 같다. 영화에서도 초반 15분 정도는 매우 다양한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그리고 납치극이 벌어지면서 재즈 배틀이 벌어지고, 마지막에 인물들의 죽음과 함께 'Solitude'라는 음악이 흘러나온다. 마지막 부분의 전개가 캔자스 시티 재즈의 역사가 가진 단명성을 보여주는 것 같다. 캔자스 시티 재즈는 결과적으로 어떤 식으로 흘러갔나?
황덕호: 50년대 재조명되기 이전까지 잊혀졌다는 점에서 분명 단명으로 끝났다고 봐야 할 것이다. 20년대 미국이 전반적으로 갖고 있던 거품경제가 30년대 캔자스 시티 한 곳에서 정치적 음모와 맞아 떨어지며 확 불탔다가 갑자기 사라져버리는 상황과 재즈의 역사가 맞물린 것이다. 말씀하신대로 캔자스 시티의 역사와 이 납치사건의 결말과 잘 맞아떨어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알트먼은 왜 이렇게 다양한 인물이 나와서 이야기를 쏟아내는 이야기를 좋아하는지 생각해 봤다. 궁극적으로 이야기 하고 싶은 것은 시공간적으로 한 도시나 지역에서 살아가는 다양한 군상들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미국인들의 삶의 풍속을 보여주고 싶은 것이 아닌가 싶다. 극적인 네러티브보다는 그런 것들을 영화적으로 잘 얽어내는 재주가 있었던 것 같다.

김성욱: 알트먼이 인터뷰에서 영화에는 사람 수만큼의 관점이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래서인지 많은 사람을 등장시키려는 욕구가 있는 것 같다. 영화가 전반적으로 예술영화처럼 보이면서도 대중문화에 대한 관점이 많이 드러난다. 재즈의 역사와 향락산업, 부정부패와 같은 것들을 서로 연관 지을 수 있는 뿌리 깊은 속성이 있었던 건가?
황덕호: 뉴욕의 클럽 소유주들 중에는 마피아가 많았다. 재즈는 물론이고 전반적으로 예술이라는 게 다 그렇지 않나. 예술이라는 것이 아주 순결할 수는 없다고 생각이 든다.
손관호: 생각해보니 마지막 장면에서도 재즈연주 뒤편에 셀덤 신이 돈을 세고 있는 등 그런 면이 있었던 것 같다.

관객1: OST가 두 장으로 나왔는데, 두 번째 디스크는 무엇인가?
황덕호: 두 번째 디스크는 B사이드 트랙들을 모은 것이다. 또한 이 영화의 연주 씬만 따로 모은 <로버트 알트먼 재즈 '34>라는 이름의 영화가 있다.
손관호: 캔자스 시티에 대한 다큐멘터리가 나온 걸로 아는데.
황덕호: 캔자스 시티 재즈를 상징하는 이름인 '블루 데블스'라는 밴드가 있다. 브루스 릭커스라는 감독이 70년대에 블루 데블스 멤버를 포함한 전설적 인물들을 모아 <The Last of the Blue Devils>(1979)라는 다큐멘터리를 찍는다. 인터뷰를 하고 연주도 하고, 과거에 활동했던 자료화면들이 나온다. 가장 늦은 시간에 옷을 잘 차려입은 카운트 베이시가 나타나서 같이 연주한다. 밤을 꼬박 샌 연주 후, 아침에 클럽에서 나오는데 밖에 눈이 내려서 하얗게 쌓여 있다. 그 할아버지들이 서로 악수하며 뿔뿔이 흩어지면서 영화가 끝난다. 참 감동적이 다큐멘터리였는데, 기회가 되면 볼 수 있으면 좋겠다.


관객2: 재즈음악이 배경이 되는 영화가 많은데 왜 특별히 알트먼을 선택하셨는지?
황덕호: 음악이 단지 사운드 트랙으로 사용된 것만이 아니라 뮤지션들이 영화의 극적인물로 등장해서 연주하는 모습을 직접 볼 수 있다는 게 매력적이었다. 그리고 여기 모인 연주자들이 평소에 각자 모여서 연주하는 사람들이 아니고 음악 스타일도 다 제각각이다. 알트먼은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여 연주하는 모습을 연출해 보고 싶었다고 하는데, 이는 아마 재즈적인 입장에서도 기록적 가치가 있을 것이라 본다.
손관호: 알트먼 영화에 사람들이 놀라는 것이 화려한 캐스팅인데, 이 영화에도 새로운 시대를 열 것이라고 기대 받았던 많은 재즈 뮤지션들이 등장한다. 사실 이 자리에 재즈 뮤지션을 불러서 짧은 공연을 할 까도 기획을 했는데, 사정상 못하게 됐다. 김성욱 프로그래머가 여름 정도에 음악 영화제를 해보자고 했기에 많은 기대를 하고 있다. 영화를 상영하고 인디밴드에 모여서 연주도 하면 좋겠다. (웃음)
김성욱: 이번에는 여러 문제로 못했지만, 올해 여름에는 구체적인 실현을 위해 노력해 보겠다. 즐거운 시간들을 많이 마련하자는 모토도 있고 하니. 두 분을 객원프로그래머로 모셔서 올해는 음악 영화제를 꼭 실현하도록 하겠다. 많은 기대 부탁드린다.

(정리: 박영석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 관객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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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로버트 알트먼의 ‘캔자스 시티’


<캔자스 시티 Kansas City>(1996)는 1934년에 미국 동부의 캔자스 시티에서 일어난 며칠 동안의 사건을 중심으로, 그 시대의 공기를 사실적으로 담아낸 작품이다. 이 사실성은 무엇보다도 1925년생인 로버트 알트먼이 캔자스 시티에서 태어나 십대를 보냈다는 점에서 기인한다. 그가 포착해낸 그 시대는 부정선거, 살인, 절도, 마약 등이 판치는 어두운 세계다. 아무래도 그 배경은 경제 대공황이 가중시킨 총체적 사회 모순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뉴딜 정책을 내세운 프랭클린 D. 루스벨트가 새롭게 대통령이 된 해가 1932년이었고, 1934년에 열린 선거는 그 중간 평가와도 같았다. 서민들은 뉴딜 정책을 지지했고, 대자본가들은 비판했다. 그들 간의 분리는 더욱 양극화되었으며, 힘없는 자들은 여전히 핍박받고 희생당하고 있었다.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가죽 자켓을 걸치고 입을 씰룩거리며 내뱉듯 말하는 블론디(제니퍼 제퍼슨 리)라는 여성이, 총을 겨누는 것만으로 기절 직전까지 이르는 심약한 상류층 여성인 캐롤린(미란다 리차드슨)을 납치한다. 남편이 갱단의 보스인 셀덤 신(해리 벨라폰테)을 잘못 건드렸다가 붙잡혀 있기에, 블론디는 루스벨트 대통령 보좌관의 아내인 캐롤린을 납치함으로써, 정치인들의 힘을 이용하여 남편을 구해내려 한 것이다. 범죄영화의 여주인공을 흉내 내며, 정치인과 갱단을 대립시켜 곤경을 벗어나고자 한 블론디의 생각은 일견 참신해 보이지만, 실상 현실은 더욱 냉혹하다. 그 납치는 대상을 잘못 찾은, 무언가 어긋난 행위가 되고, 두 여성의 동행의 여정은 점점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게 된다. 이와 함께 영화 자체의 전개도 미묘하게 흐른다. 무언가 느슨한 가운데 뒤틀린 시선을 품고 다층적 함의들로 구축된 영화의 구성은, 알트먼이 왜 할리우드의 이단아라고 불리는 지 충분히 느끼게 한다.

이 시대에 서민을 핍박하는 악의 축들은 정치가 및 자본가들, 그리고 갱단이다. 선거 유세를 벌이는 정치인들이 끊임없이 민주주의를 외치는 가운데, 그 뒤편에서는 부정 선거가 자행된다. 부랑자들을 트럭에 태워와 투표를 시키며, 이에 저항하는 시민을 아무렇지 않게 쏴 죽이는 장면은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한편 모든 이의 마음속에 존재하는 인종차별은 너무 깊숙한 곳에 뿌리박혀 있어서, 심지어 흑인들 자신조차 그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흑인 갱스터들은 아무런 잘못도 없었던 흑인 택시기사를 무차별한 칼질로 죽이고 짐승의 시체처럼 내버려둔 후, 마치 그 행위를 잘 즐겼다는 듯이 웃으며 손수건으로 손과 칼의 피를 닦아낸다. 마약을 입에 달고 사는 그들은, 약에 취한 듯 무감각하게 비인간적인 행위들을 저지른다. 인간의 생명은 참으로 무가치하고 비루하다.


이 어두운 시대의 어두운 도시에서, 가장 핍박받는 대상인 힘없는 흑인들이 자신을 표출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수단은 재즈 음악이다. '캔자스 시티 재즈'는 블루스의 영향을 강하게 반영한 빅 밴드와 블루스 보컬 위주의 재즈 스타일로서, 1930년대에 전성기를 맞이한 바 있다. 알트먼은 영화의 내러티브 부분을 다 찍은 후, 유명한 재즈 뮤지션들을 다수 불러들여 그 시절의 '캔자스 시티 재즈' 연주를 온전히 재연하려 했다. 재즈 연주 장면들은 영화 전체 걸쳐 내러티브의 틈에 파고들면서, 미묘한 정서를 자아낸다. '캔자스 시티 재즈'의 뜨거운 열기와 감미로운 선율만이 이 시대의 상처를 감싸준다. 하지만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도 드러나듯이, 이 재즈의 선율 바로 뒤에 위치하는 것 또한 범죄 조직의 폭력과 자본의 힘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박영석_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 관객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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