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 못 드는 밤> 장건재 감독과의 대화 지상중계

 

지난 9월 2일 <잠 못 드는 밤> 상영 후 영화를 연출한 장건재 감독과 주연 배우 김주령 씨가 함께 하는 시네토크가 이어졌다. 감독과 배우의 삶이 반영되고 녹아든 영화였던 만큼 시네토크 역시 영화 안팎을 오가며 흥미롭고 진솔하게 이야기 나눈 시간이었다. 이 날의 이야기를 일부 옮긴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디렉터): 장건재 감독의 첫 번째 영화 <회오리 바람>이 청소년기의 성장담을 다뤘다면 <잠 못 드는 밤>은 좀 더 성숙한 일상의 문제들이 담겨있다. 어떻게 이 영화를 생각하게 되었고, 실제로 시나리오 작업은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궁금하다.

장건재(영화감독): 이 영화는 작년 봄 쯤 기획했다. 제 아내이기도 한, 김우리 프로듀서와 이 영화에 대해서 맨 처음 이야기할 때 사실은 논외의 프로젝트 같은 것이었는데,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삶을 반영한 작업을 해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당시에 종종 느꼈던 것 중 하나가 사진이든 글이든 무언가로 우리의 삶을 남기고 싶다는 것, 수면 위로 드러내는 이슈들은 아니지만 우리가 갖는 일상적인 고민들이 담겨진다면 더할 나위 없었다. 단편이나 중편 정도라면 우리가 작업을 해볼 수 있겠다 싶었다. 보통의 순서는 배우에게 시나리오를 보내고 어떤 역할로 함께 작업하고 싶다고 얘기하는 것일 텐데, 이 영화를 함께 하면 좋겠다고 생각한 배우를 일단 만나서 아직 아무것도 정해진 건 없고, 일상적인 삶과 고민을 담은 영화를 찍어보고 싶다고 얘기하면서 작업이 시작되었다.

 

김성욱: 오늘 같이 자리해주신 배우 분의 얘기도 듣고 싶다. 장건재 감독이 <잠 못 드는 밤> 같은 영화를 만들겠다고 제안했을 때 어떤 느낌이었을 지가 궁금하다. 영화의 장면들이 굉장히 긴데 특히나 싸울 때의 장면은 배우들 간의 호흡도 정말 중요했을 것 같다.

김주령(영화배우): 먼저 이런 자리에서 관객들을 만날 수 있게 돼서 영광이다. 사실 배우 입장에서는 연기로 작품을 보여드리면 그게 다인데 이런 자리에서 영화를 이야기 한다는 것이 굉장히 부담스럽다. (웃음) 결혼한 지 일 년 반 되던 차에 장건재 감독님이 이런 영화를 찍겠다 해서 만났는데, 내용도 내용이지만 <회오리 바람>을 제가 너무 잘 봐서 감독님이 어떤 영화를 하든 흔쾌히 찍겠다고 했다. 일반영화처럼 시나리오가 다 나와 있는 것이 아니었고, 감독님이 배우들과 함께 만들어보고 싶다고 말씀하셔서 작업하면서 상대배우와도 얘기를 많이 했지만 늘 감독님과 얘기를 많이 했고, 찍는 과정에서 찾아갔던 것 같다. 그런 면이 저에게는 새로운 경험이었다. 저도 결혼을 했기 때문에 함께 고민을 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김성욱: 영화의 첫 장면들의 이미지들은 어디에서 떠올렸을까 궁금하다.

장건재: 아이들이 사진 찍는 장면은 영화 처음 크랭크인 하던 날 저 역 주변에서 촬영했는데, 저희 영화가 100% 동시녹음이라 아이들 때문에 촬영이 계속 지연되었었다. 연출된 것이 아니라 실제로 아이들이 저렇게 놀고 있었다. 촬영감독한테 일단 찍어두자고 했고, 사실 영화에 쓸 것이라고는 생각 못했던 장면이었는데, 편집 후반부 때 저 장면을 쓰면 어떨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제가 생각했던 오프닝의 느낌이 번잡한 도로의 느낌에서 아파트 단지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라, 왔다갔다하는 차라든가, 길가의 아이들로 시작해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김성욱: 이 영화의 가장 과격한 씬은 꿈 장면이었던 것 같다. 현장소리들이 굉장히 적극적으로 활용이 되고 있어서 롱 테이크의 화면 안에서도 내부와 외부의 느낌이 같이 연결된다. 꿈 장면은 이 영화에서 가장 이질적인 순간이기도 한데, 그럼에도 이 꿈 장면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신 이유가 있었을 것 같다.

장건재: 원래 이 영화는 꿈 장면 같은 것들이 들어오지 않고서 시간 순으로 쭉 진행되는 이야기였고, 두 사람의 일상에서 시작해서 어떤 결심의 순간을 다루자고 생각했었다. 작업 초기에 남자와 여자 두 사람이 꾸는 꿈 장면들을 삽입을 해보자 싶었다. 그러면서 남자는 어떤 것을 이야기하지 않고 꿈으로 꿀까, 여자의 무의식은 어떻게 꿈으로 드러날까를 생각하면서 지금과 같은 구성을 떠올리게 되었다. 남자가 계속 걱정하는 생활의 불안함이 있을 것이고, 여자의 경우는 관계에 관한 고민들이 저럼 느낌으로 꿈에서 나타나지 않을까 생각했다.

 

김성욱: 이 영화에서의 부부의 묘사가 어떻게 보면 굉장히 이상적이다. 나란히 자전거를 타는 장면이나 대화를 나눌 때도 그렇고 심지어 싸울 때조차도, 부부라기보다는 굉장히 친한 친구 같은 느낌이 있다. 부부의 관계를 묘사하는 것이 이 영화의 거의 대부분이고 영화를 볼 때 굉장히 인상적이라고 생각되었다. 그런 관계의 묘사에서 느낌을 만들어가는 데에 어떤 점들을 염두에 두었나.

장건재: 기본적으로 대화 씬이 굉장히 많았다. 만약 밥을 먹으면서 대화하는 장면을 찍는다고 했을 때, 배우들에게 내가 담고 싶은 액션은 밥을 먹는 것이고, 그러면서 어떤 것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라고 얘기를 드리는데 그게 대화의 주제로 드러나는 방식이 아니라 아주 일상적인 톤 안에서 희미하게 드러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제 의견과 배우들 의견을 듣고 톤을 조절해가며 한 씬 한 씬씩 찍었다. 그렇게 한 컷을 찍고 나면 거의 하루가 가는 경우가 많았고, 한 3일 정도에 한 컷을 찍고 못 쓰게 된 장면도 많았다. 배우들과 얘기 하면서 같이 만들어간 장면들이기 때문에, 배우들의 실제 본인들의 고민도 영화 속에 많이 들어와 있다. 그러면서 이 영화의 방향성이 영화를 찍어가면서 좀 더 흐릿해진 부분이 있다. 사실 원래 계획은 여자는 아이를 갖고 싶어 하고, 남자는 그걸 거부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일 수 있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지금보다 색깔이 강했다. 결과물은 훨씬 옅게 나온 것 같고, 어떤 주제의 영화라기보다 저희 두 사람에 관한 영화 쪽으로 방향을 가져갔던 것도 있었던 것 같다.

김주령: 일단 부부 이야기이기 때문에 상대 배우와 친해지는 것이 급선무였다. 사실 만나서 대화를 많이 나누고 시간을 나눌 여유가 많지 않았고, 짧은 시간 내에 정확한 시나리오가 없으니까 서로 만들어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다른 것보다 상대배우와 어떻게든 가까워져야된다는 목표가 뚜렷했기 때문에 거기에 집중을 했던 것 같고, 다행히 상대배우도 함께 노력해 주어서 그런 부분에 있어서는 괜찮았다. 사실 이렇게 대화를 많이 나누면서 사는 부부는 없지 않나. 알고 보니 장감독님 부부가 그렇게 사시더라. 저도 그렇고 상대 배우도 그렇고 평소에 그렇게 얘기를 많이 하는 편은 아니어서, 그런 부분이 처음에는 서로 좀 힘들었던 것 같다. 사실 영화를 찍으면서 이게 과연 어떻게 영화가 될까 싶었는데, 중요한 건 감독님이 생각하시는 구체적인 주제를 믿고 따라가는 것이었고, 감독님이 워낙 배우들한테 많이 열어놓으셔서 함께 얘기하고 고민하고 그런 시간들이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작품이 나온 것 같다. 저에게 정말 의미 있는 작업이었고, 영화를 보고나서도 정말 좋았다.

장건재: 이 영화에서의 대화 장면에서 촬영된 쇼트/리버스 쇼트는 없지만, 한 프레임 안에 대화에서의 쇼트/리버스 쇼트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좀 더 역동적으로 보이길 원했다. 그렇지 않고 그냥 일상적인 대화라면 표현적으로 굉장히 지루해질 수 있다.

 

 

관객1: 영화 속 부부는 제 주변에선 보기 힘든 커플의 모습이다. 사실 언제 이 커플이 어긋나게 될까를 생각하면서 봤는데, 싸우는 장면도 결국 꿈이었고, 그러면서 결말도 부드럽게 끝나서 전체적으로 영화가 판타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건재: 사실 세상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고 행복하다는 느낌으로 찍은 건 아니었다. 그 안에도 첨예한 어떤 것이 있을 것이고, 그런 것들이 찍으면서 발견될 수 있겠다는 기대감도 있었다. 이런 톤으로 영화가 나온 것에 대해선, 어쨌든 이 영화가 다큐멘터리가 아니니까, 어떻게 보면 저를 반영하고 있기도 하지만, 어떤 바람이 깃든 영화일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든다.

 

김성욱: 실제로 현실 안에서 아이를 낳는 것에 대해서 고민을 많이 하셨을 것 같고, 이 영화의 대사 안에서도 어느 정도 녹아있다고 생각된다. 최종적으로는 아이를 낳겠다는 결정을 내리게 되는데, 거기에는 이 영화 속에서의 인물의 결정도 있고, 영화를 찍어나갔던 감독의 결정도 있었을 것 같다.

장건재: 이 영화를 찍기 전에 아내와 아이를 낳을 것인가 말 것인가 그 선택 안에서 또 어떤 삶을 선택해서 살 것인가를 가지고 끈질기게 매일 밤을 몇 달에 걸쳐 얘기했던 기억이 난다. 늘 결론이 잘 안 나더라. 얘기 끝에 아이를 낳는 삶 속으로 뛰어들자고 결정을 하게 됐고, 그 즈음에 영화를 만들게 됐던 것 같다. 이 영화를 만들면서 저의 삶 안에서 그런 문제들을 훨씬 더 깊게 얘기 나눴던 것 같다. 이 영화의 부부가 마치 봉합되듯이 해피엔딩의 선택으로써 아이를 낳기로 결심하는 뉘앙스를 주고 있을 수도 있지만, 만든 사람의 입장에서는 두 사람이 결혼기념일에 사랑을 나누고 어쩌면 그 날 아이가 생길지도 모르겠다는 짐작으로 영화가 끝나는 것이 단순히 해피엔딩의 방식이라기보다 좀 더 저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좀 더 궁금증을 자아내는 식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저의 삶 안에서도 결론의 방식이 아니라 과정 안에서 선택이라는 생각이 있었다.

 

관객2: <회오리 바람>에서도 그렇고 이 영화의 마지막에 꿈 장면을 정확하게 얘기해주지 않고 지나가는데 어떤 의도셨는지 궁금하다.

장건재: 제가 바라보는 세상인 것 같다. 저는 저의 무의식이 정직하게 투영되는 꿈을 꾸는데, 그래서 꿈을 보면 제가 숨기고 있던 감정들이 다 드러난다. 꿈 장면이 현실적인 느낌으로 찍는 것에 대해서 종종 질문을 받는다. 저 뿐 아니라 많은 영화들에서 그런 방식을 쓰는데, 저의 영화에서는 꿈으로 들어가는 장면은 없고 나오는 장면만 있다. 제가 꿈을 꾸는 방식이기도 하다. 보통 언제 꿈이 시작되는지는 잘 모르고, 꿈의 끄트머리에서나 깼을 때서야 꿈을 인식하게 되는데, 영화에서의 꿈을 인식하는 관객들의 방식도 그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김성욱: 영화가 표현하기 굉장히 어려운 것 중의 하나가 일상적인 친밀함인데, <잠 못 드는 밤>은 일상적 친밀함들을 굉장히 잘 표현한 영화라는 생각이 든다. 작업자체도 일반적인 영화와는 다른 방식으로 만들어졌다는 점에서도 굉장히 예외적이라는 생각이 들고, 영화가 소비되는 방식 안에서 또 다른 방식으로 사람들과 만나는 기회가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하실 얘기가 있다면.

김주령: 배우는 본인이 출연한 영화가 좀 더 많은 관객과 만날 수 있기를 가장 바라게 된다. 앞으로 이 영화가 개봉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좀 더 더 많은 관객들이 와서 봐주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오늘 이렇게 함께 공감하시는 모습들을 보니까 저도 기분 좋게 돌아갈 수 있을 것 같다. 감사드린다.

장건재: 서울아트시네마는 저에겐 남다른 공간이다. 여기서 관객들을 만나 얘기할 때 어쩔 수 없이 제 얘기를 할 수밖에 없는데, 영화와 저를 어떻게 받아들이실까 생각하면서 많이 긴장을 했었다. 영화를 찍을 때마다 계속 저에 대한 얘기를 함께 해야하고, 삶 안에서의 저의 고민을 영화와 계속 같이 가져가는 부분이 한편으로는 잘됐다는 생각도 들었고, 관객들과 만나 부딪혀보자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얘기가 어떤 분들에게는 다가올 삶에 대한 얘길 수도 있고, 또 어떤 분들에게는 지나간 삶의 얘기일 수도 있을 것이다. 저나 여러분이나 멈추지 말고 계속 삶에 대해 얘기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다.

 

정리: 장지혜(관객 에디터) |사진: 황초희(자원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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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감각을 선보이는 작가 3인의 신작을 만나다!

 

무더운 여름을 ‘2012 시네바캉스 서울’와 함께 시원하게 보낸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는 가을의 문턱에서 현실의 감각을 새로운 방식으로 포착하는 감독들의 주목할 만한 신작을 묶어 ‘현실의 새로운 감각: 주목할 3인의 작가전’을 개최한다. 이번에 만날 3인의 작가는 이미 자신만의 개성 있는 영화들로 주목을 받고 있는 오멸, 임흥순, 장건재 감독으로 이들이 독립적인 방식으로 제작한 신작 <이어도>, <비념>, <잠 못 드는 밤> 3편을 8 31일부터 9 9일까지 열흘간 상영한다.

상영작 중 <이어도> <비념>은 제주도를 배경으로 한 영화로 제주의 아픈 역사를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고, 장건재 감독의 <잠 못 드는 밤>은 제13회 전주국제영화제 한국장편경쟁 섹션에 초청되어 대상에 주는 JJ스타상과 관객들의 성원을 받은 JIFF관객상 등 2관왕을 차지하며 호평을 받은 작품이다.

 이 세 명의 감독들은 이번 신작에서 현실과 일상의 미학을 새롭게 구축하려는 시도를 보여주며, 우리에게 익숙한 방식과는 다른 화법으로 현실을 낯설게 재현해낸다. 또한 이들은 ‘영화’라는 장르의 경계를 넘어 다른 장르의 문법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이기도 하며, 정지 사진에 가까운 이미지들로 천천히 내러티브를 쌓아 올리고, 언뜻 익숙한 영화문법을 통해서 일상 뒤에 숨은 서늘함을 길어 올리기도 한다.

 또한 이번 주목할 3인의 작가전에서는 세 편의 신작 외에도 주로 인스톨레이션 작업을 통해서 만나볼 수 있었던 임흥순 감독의 단편 9편을 모아서 선보이는 임흥순 단편선도 특별상영하며, 이번 3인의 작가전에 참여한 감독들이 그들 각자의 신작 상영 후에 관객과 만나 영화에 대한 깊이 있는 이야기를 나누는 감독과의 대화 시간도 준비되어 있다.

이번 '현실의 새로운 감각: 주목할 3인의 작가전'을 기획한 김성욱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디렉터는 이번 기획전은 영화가 각기 어떤 방식으로 현실의 감각을 영화적으로 형상화시키는지 확인해 볼 수 있는 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를 둘러싼 현실을 새로운 시선으로 볼 수 있는 기회가 될 '현실의 새로운 감각: 주목할 3인의 작가전’에 관한 상세한 정보 및 상영시간표는 서울아트시네마 홈페이지(www.cinematheque.seoul.kr)에서 확인 가능하고, 맥스무비, 티켓링크, 예스24 등 지정 인터넷 예매처에서 예매도 가능하다.

 

★ 시네토크 Cinetalk

9 1() 19:00 <비념> 상영 후

감독과의 대화│임흥순(영화감독)

 

9 2() 16:00 <잠 못 드는 밤> 상영 후

감독과의 대화│장건재(영화감독)

 

9 8() 18:00 <이어도> 상영 후

감독과의 대화│오멸(영화감독)

 

■ 감독 소개

오멸 Omeul

2003, 단편 <머리에 꽃을>로 본격적인 영화 연출을 시작한 오멸 감독은 2009년과 2010년에 각각 제주도를 무대로 한 장편영화 <어이그, 저 귓것> <뽕똘>을 발표했다.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했으며 현재 극단 ‘자파리 연구소’의 대표로 활동하며 한국과 일본을 오가는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현재 제주 43 사건을 다룬 <지슬>의 후반작업을 진행 중이다.

 

임흥순 Im Heung-soon

미술을 전공한 임흥순 감독은 주로 장소-공간, 그리고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작업을 해왔으며, 특히 근대화 과정과 신자유주의의 풍경에서 소외당한 역사와 기억을 재조명하는데 관심을 보여 왔다. 일찍이 <내 사랑 지하>(2000) 등의 단편을 통해 다양한 형식과 소재의 영상 작업을 지속적으로 해왔으며 현재 <비념>의 막바지 편집 작업을 하고 있다.

 

장건재 Jang Geon-jae

한국영화아카데미를 졸업한 후 한예종 영상원과 중앙대학교에서 촬영과 연출을 공부했다. 단편 <학교 다녀왔습니다>(1998)로 본격적인 연출을 시작해 <진혼곡>(2002), <꿈속에서>(2007)등의 단편을 찍었으며, 2009년에 발표한 첫 장편 <회오리바람>이 벤쿠버영화제 등에서 초청을 받아 국내외 영화계의 큰 주목을 받았다. 최진성, 김종관 감독의 영화에서 촬영을 맡기도 했으며 현재는 10대 청소년들의 성장담을 다룬 차기작을 준비하고 있다.

 

■ 상영작 소개

이어도 Wind of Island

2010 80min 한국 Color+B&W HDCAM 15세 이상 관람가

연출: 오멸

출연: 최은미, 김민혁

어린 엄마 영이의 이야기인 동시에 제주도의 아픈 역사에 대한 기록. 영이는 힘든 삶 때문에 갓난아이를 버리려고 하지만 차마 그렇게 할 수 없어 단지 돌과 바람뿐인 섬에서 하루하루 고된 노동을 계속한다. 그러나 아픔은 쉽게 사라지지 않고 이를 털어내는 유일한 방법은 나지막한 울음뿐이다. 제주도에 대한 영화를 계속해서 만들어온 오멸 감독의 신작으로서 흑백의 정적인 풍경에 담긴 자연과 인간의 모습이 깊은 인상을 남긴다.

 

비념 Jeju Prayer

2012 90min 한국 Color+B&W HDCAM 12세 이상 관람가

연출: 임흥순

출연: 강상희

1947, 국가 공권력에 의해 2만 명이 넘는 민간인 사상자가 발생했던 제주 43 사건으로 남편을 잃은 강상희 할머니는 여전히 그 날의 고통스런 기억을 안고 있다. 영화는 강상희 할머니의 삶을 따라가면서 자연스럽게 제주도의 아픈 역사를 되살려낸다. 또한 해군기지 건설을 둘러싼 최근의 강정마을까지 담아내며 제주도의 과거와 현재를 같이 생각하게 만든다.

 

잠 못 드는 밤 Sleepless Night

2012 65min 한국 Color DCP 청소년 관람불가

연출: 장건재

출연: 김수현, 김주령

식품 공장에서 일하는 현수와 요가 강사인 주희는 결혼 2년 차의 부부이다. 이들은 주말 근무나 아이를 가지는 문제, 이웃과의 관계 등 일상 속의 이런저런 일들에 대해 때로는 가볍게, 때로는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눈다. 주인공들의 곁을 떠나지 않는 카메라는 이들의 작은 일상까지 세세하게 기록하고, 평온해 보이는 그들의 삶 속 불안함까지 예리하게 포착해낸다.

 

임흥순 단편선 Im Heung-soon Shorts

1988-2011 83min 한국 Color+B&W DV+HDCAM 15세 이상 관람가

지하 단칸방에서 임대아파트로 이사하는 날의 풍경(<내 사랑 지하>), 사진관에서 가족 사진을 찍기 위해 모인 가족들의 모습(<추억록>), 또는 아버지의 장례식(<잘 가시오>) 등 개인의 사적인 기억을 기록하는 동시에 대한민국 사회의 한 단면을 슬그머니 불러오는 임흥순 감독의 작품 세계가 담긴 단편들.

 

*단편선 상영작 목록

태평동아리랑 Teapyeung Arirang (1988, 6min, DV)

내 사랑 지하 Basement My Love (2000, 17min, DV)

건전비디오1-새마을노래 Inspirational Video 1- A New Community Song (2001, 2min 30sec, DV)

추억록 Memento (2003, 15min, DV)

환영 Illusion (2006, 4min, DV)

잘 가시오 Goodbye (2006, 20min, DV)

승리의 의지 The Will of Triumph (2004, 4min 30sec, DV)

꿈이 아니다 It's not a Dream (2010, 10min, HDCAM)

긴 이별 Long goodbyes (2011, 4min, HDC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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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토크] 장건재 감독의 ‘회오리바람’

‘한국영화, 새로운 작가 전략’ 기획전이 거의 끝나갈 무렵인 지난 4월 3일 이른 오후에 자신의 경험담이 잘 녹아 있는 청춘영화 <회오리바람>의 상영 후 이 영화를 연출한 장건재 감독과의 대화가 이어졌다. 시나리오 쓸 때의 고민부터 제작과정상의 여러 가지 체험, 감정들을 진솔하게 들려준 소중한 자리였다. 그 시네토크 현장의 일부를 여기에 옮긴다.


허남웅(서울 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 영화를 보면서 시나리오가 정교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시나리오는 어떻게 썼나?
장건재(영화감독): 일단 한 커플이 여행을 가고, 여행에서 돌아와 여자의 아버지에게 혼나는 이야기를 담은 시나리오를 오래도록 품고 있었다. <회오리바람> 전에 중학생이 주인공인 시나리오를 쓰고 있었는데(원작소설이 있는), 그 작업이 잘 풀리지 않아서 다른 것을 찾다가 <회오리바람>의 원형 격이 되는 시나리오를 다시 꺼내 한 달 정도 재작업을 했다. 제가 일반화 할 순 없지만 팍팍한 현실에서 떠나고, 해갈의 기쁨과 자유로움을 느끼는 것이 대개 영화들의 감정선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난 오히려 그러한 해갈과 자유, 이후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시나리오엔 개인적인 경험담도 많이 넣었다. 중국집 배달일 같은 경우 내가 가장 오래 했던 일이다. 가장 애착을 가지고 했던 일이기도 하고. 18년 전 그 때 지금보다 돈도 잘 벌었다. 그래서 배달묘사 씬에 애착을 가지고 있다. 십대면 피자배달이 더 자연스럽지 않겠나하고 스태프들의 질문도 받았었는데 내 생각엔 직업을 묘사할 때는 경험해보지 않으면 피상적인 묘사밖에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여튼 시나리오 작업은 이 영화 할 때 어떻게 끝낼까에 고민을 많이 했다. 태훈이가 학교에 다시 끌려가서 맞고 수업을 다시 받은 씬도 내가 직접 경험했던 것인데 태훈이가 방에 들어오면 선생님이 방에 있는데 스태프들이 선생님이 어떻게 들어온거냐 하고 물었다. 나도 사실 그 때 선생님이 어떻게 들어 온지 모르겠다. 그냥 방에 계셨었다. (웃음) 그렇게 학교에 가서 선생님께 20분정도 맞고 교실로 가기 싫어서 학교 뒷담을 넘고 산에 올라갔을 때, 이 산을 다시 내려가면 사막 같은 허허벌판을 만나겠다는 감정을 느꼈다. 이 영화의 마지막이 그런 감정으로 끝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마지막 엔딩 씬을 썼던 기억이 난다.

허남웅:
사실은 첫 번째 장면도 그렇고 마지막 장면도 그렇고 굉장히 태훈이나 미정이 어느 한쪽으로도 쏠리지 않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마치 오토바이를 몰고 가는 첫 장면이 목적지는 없지만 계속해서 나아가는 청춘의 이미지를 갖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 장면에서 미정이가 태훈이 힘들게 번 월급으로 산 목걸이를 달고 잇는 장면들도 많은 의미를 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첫 장면과 마지막 장면의 이미지를 어떻게 생각하고 그려낸 것인가?
장건재: 원래 오프닝의 주유소 씬과 체육관 씬은 시나리오상 엔딩에 해당되는 에필로그 씬이였고 실제적인 완전 엔딩에 해당하는 장면이 원래는 오프닝이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찍었는데 나중에는 영화의 에필로그가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산에 올라갔을 때 이미 감정적으로 끝났는데 미정의 3개월 후, 태훈의 3개월 후의 이야기들을 추가로 담는 것이 뭔가 나를 망설이게 했다. 너무 결론 내어지는 것은 아닐까하고. 그래서 첫 오프닝의 주유소 씬은 삭제하려고 몇 번 시도를 했었다. 근데 어느 순간 태훈의 이야기로 시작해서 미정의 이야기로 닫히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되서 영화전체가 플래시백이 되는데 그것이 어른이 되서 과거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고 기껏해야 고3정도가 되서 지난겨울을 회상하는 구조로 만들었다. 그리고 시나리오 상에서는 오토바이 씬에 내레이션이 있었다. 고3이 된 태훈의 입장을 설명하는 것인데 그것도 너무 규정짓는 것 같아서 그만두었다. 배우들이 그 장면을 찍을 당시가 실제로 그들의 마지막 촬영이였는데, 그 친구들이 영화를 찍으면서 점점 사랑하고 헤어지고 하는 느낌을 정말로 아는 듯한 눈빛을 발견했다. 그래서 그 얼굴만 잘 담아낼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허남웅:
사실 청춘영화라면 약간은 경쾌한 것을 떠올리기 쉬운데 이 작품은 굉장히 잠잠하다. 청춘영화가 가진 클리셰들을 피해보고 싶은 의도가 있었던 것은 아닌가?
장건재: 청춘영화의 클리셰는 크게 두 가지라고 생각한다. 하나는 폭발할 것 같은 에너지로 세상을 부수려고 하는 청춘을 담고 있는 영화와 정말 현실에 무기력하기 짝이 없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만약에 입장에서 본다면 이 영화도 그것들에 자유롭지 못하다. 영화의 스타일을 정해 놓고 찍지는 않았다. 배우의 감정을 담아내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촬영했다. 그리고 어떠한 영화처럼 보이고 싶다던가, 어떤 영화의 감성을 흉내 내고 싶다던가하는 의도를 내비치지 않았다. 물론 레퍼런스로 삼은 영화들이 있었지만 그것이 극적으로 표현되진 않았다. 십대들이 나온 영화들을 워낙 좋아해서 영화 곳곳에 내 스스로가 알지 못하는 카피들이 있는 것 같다. 아마 영화 좋아하시는 시네필들은 눈치 채실 수도 있다.

허남웅: 참조로 삼은 영화들은 어떤 것인가?
장건재: 이거 영업비밀인데. (웃음) 말하면 순간 자유롭지 못하긴 하지만 기타노 다케시의 <그여름 가장 조용한 바다>는 강렬한 스토리가 없어도 감성을 전달할 수 있다는 확신을 준 영화였고, 차이밍량의 데뷔작인 <청소년 나타>라는 영화에서 공간성 같은 것들은 참조했다. 스타일적으로 그 영화가 준 감동을 표현하고 싶었다. 또 잘 생각나지 않지만 많은 영화들을 참조했다.

관객1: 목욕탕 갔다 와서 라면을 끓이는 장면이 인상 깊었는데 어떤 뜻으로 넣은 장면인지 듣고 싶다.
장건재: 고맙다. 목욕탕 갔다 와서 라면 끓이는 장면은 시나리오를 쓸 때 가장 머릿속에 선명하게 떠오르는 장면이었다. 현장에서 그 장면을 찍을 때 너무 기분이 좋았다. 데자뷰처럼 생각했던 이미지와 너무 똑같은 그림과 느낌이 나와서. 중학교 때 학교를 잘 다녔는데 고등학교 때는 학교를 생각나면 갔었다. 한번 빠지는 게 어렵지 두 번째부터는 쉬운 일이였다. 그때부터 십대가 어지럽게 펼쳐졌다. 어쨌든, 학교에 빠졌던 오전 10시, 11시 정도에 동네를 어슬렁 배회했는데 전에 한 십년 전에는 본적 없었던 풍경을 보았다. 남편 회사 보내고 골목에 나온 아주머니들, 할머니들, 옥탑방에서 빨래를 너는 사람들, 유치원 가는 아이들, 그 시간대에 동네에 재잘거리는 소음 등 이런 것들이 너무 강렬했다. 내가 못 봤던 풍경인 이유는 전에는 그 시간대에 학교에 있었기 때문이다. 근데 그 시간대의 정서와 공기가 여전히 내겐 너무 강렬하게 남아 있다. 물론 라면 끓이는 장면은 실외장면은 아니지만 그 시간대에 밖에서 들리는 소음들, 낮 시간대의 텅 빈집의 고요함, 혼자 남겨져 빈둥거리는 컷을 꼭잡아내고 싶었다. 롱테이크에 대한 욕심보다 그 느낌을 전달하고 싶었다.


관객2: 감독의 청춘시절 경험이 담긴 영화이다. 본인에게 청춘이란 무엇이고, 그 때 자신에게 돌아간다면 어떤 조언을 해주고 싶은지.
장건재: 청춘 시절을 낭만적인 느낌으로 접근하기 보단, 제 어린 시절을 반추하는 정도였고, 그때로 돌아가면 절대로 영화를 하지 않을 것이다. 극장에 다니지 말라는 조언을 해주고 싶다. 영화를 하는 게 재밌지만 지금 나는 너무 고통스럽고 힘들다. 지금이라도 나에게 다른 재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내일이라도 당장 영화 일을 그만둘 수 있다. 진심으로.
(정리: 배준영 시네마테크 관객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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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 새로운 작가 전략' 기획전에 맞춰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는 이번에 상영하는 데뷔작들을 만든 감독님들과 함께하는 두 차례의 포럼을 마련했다. 그 두 번째 자리가 지난 3월 27일 오후에 ‘지속 가능한 영화 제작에의 질문’을 주제로 열렸다. 최근 2년 사이 동안 데뷔작을 선보인 김기훈, 박진성, 백승화, 신수원, 장건재, 오영두, 홍영근 감독 등 8명의 작가들이 패널로 참여하고 김성욱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디렉터의 진행으로 열린 이날 포럼에서는 데뷔작을 선보인 이후 다음 영화, 또 그 다음 영화를 지속적으로 만들기 위한 이들의 고민과 전략을 들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 현장의 일부를 여기에 옮긴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디렉터): 이번에 ‘한국영화, 새로운 작가 전략’이라는 타이틀과 연동하여 두 차례의 포럼을 마련했는데 ‘지속 가능한 영화 제작에의 질문’이라는 주제로 8명의 작가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도록 하겠다. 데뷔작으로 극영화를 만든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새로운 방식의 기획, 혹은 새로운 방식의 작가 전략을 고민하는 것이다. 이는 서로 다른 생각과 고민을 갖고 있는 개별적인 작가들의 영화가 어떤 특정한 시기에 모여 하나의 연대비행을 할 수 있는가 하는 질문도 갖고 있다. 오늘 이 자리에서는 데뷔작을 만들며 어떤 환경 속에서 어떤 영화에 대한 기획들을 하게 됐는지, 그리고 앞으로의 작업을 지속해 나가기 위한 자구책은 어떤 것들인가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박진성(영화감독): 관객으로서 원래 장르영화, 그 중에서도 공포영화를 굉장히 좋아한다. 개봉된 웬만한 공포영화는 모두 보는 편이고, 그게 즐겁다. <마녀의 관>에는 인형극 이야기가 나오는데, 제가 아주 어렸을 때 TV에서 일본에서 하는 분라쿠라는 인형극을 보고 굉장히 충격을 받았다. 인형을 조종하는 사람들을 가리려는 어떠한 시도도 없이 오히려 그것을 즐거운 경험의 일부로 활용하는 것이 무척 놀라웠다. 그런 기억과 함께 어렸을 때 읽었던 <마녀의 관>이라는 작품이 결합되어 이런 영화가 나오지 않았나 싶다. 1억 미만의 예산에 비해 효과가 볼만하게 나왔다면 다행이지만, 여러 가지로 요령이나 눈속임 같은 것을 적극적으로 사용했던 것 같다.

김성욱
: 또 다른 공포영화인 <이웃집 좀비>의 경우 특이하게도 집단창작의 형식을 취하고 있는데 집단을 구성되게 된 과정은 어떤가? 
오영두(영화감독): 사실 창작집단이라기 보다는 영화를 만들고 나니 이름이 필요했는데, 제 아내가 망고스틴을 좋아해서 그냥 그 앞에 키노만 붙여서 키노 망고스틴을 만든 것이다. (웃음) 일단 저와 장윤정 씨는 부부사이고, 홍영근 씨는 군대에서 만나게 되어 쭉 같이 지내다가 작업을 하게 되었다. 류훈 씨는 <텔 미 썸딩>이라는 영화를 할 때 처음 만났는데 뒤에 다시 만나서 같이 작업을 하게 되었다. 처음부터 의기투합해서 뭔가를 해보자고 한 것은 전혀 아니고, 그 시기에 다들 일이 없어서 집에 있다가 만들게 된 경우라서 크게 계산을 했던 부분은 없다. 저희는 정기적으로 모여서 뭔가 한다거나 하지도 않고, 캐주얼하고 심각하지 않은 관계다. 옴니버스 형식 역시 처음부터 그런 기획을 했던 것이 아니라, 류훈 씨와 시나리오 작업을 하다 투자가 잘 되지 않아서 집에서 간단하게 단편을 찍되 그것을 한 대여섯 편 묶으면 개봉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출발했다. 막상 이야기를 시작했는데 아이디어들이 굉장히 많이 나왔다. 그 중에서 좀비 아이디어를 채택하게 된 것이다.
홍영근(영화감독): 정말 영화를 좋아하기 때문에 같이 모여서 노는 식구들이 영화 한 번 만들어 보자고 시작한 것이다. 참여하고 싶으면 적극적으로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고, 아이디어도 공유하고, 언제든지 개인적으로 다른 영화를 준비하면 도와줄 수도 있고. 일종의 품앗이 같은 개념이다.

김성욱
: 김기훈 감독의 경우에는 <이파네마 소년> 이전에 다큐멘터리나 실험적인 영화들을 만들었다. 그런데 첫 번째 장편 데뷔작은, 완전히 장르적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일종의 청춘 로맨스물이다.
김기훈(영화감독): 개인적으로 영화 마니아로 감독의 영감이나 동기를 받은 것이 아니라 영화가 갖고 있는 종합 예술이라는 매체적인 특성 때문에 영화를 좋아하게 되었고, 공부하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기존에 있는 장르나 관습을 그대로 받아들이기 보다는 내가 매체 안에서 표현할 수 있는 부분들을 포괄적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데 계속 영화 작업을 하고 관객들을 만나면서, 관객들은 역시 영화를 장르로 이해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그래서 영화 장르나 관습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그렇게 고민하다가 시나리오를 쓰게 된 것이 스릴러 작품이었다. 그런데 1년 정도 시나리오를 쓰다 보니 너무 지겨웠다. 칙칙한 스릴러의 서스펜스만 생각하다보니 더 늙기 전에 샤방샤방한 멜로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성욱: 조금 경우가 다르기는 하지만 장건재 감독의 <회오리 바람>도 일종의 청춘물이다. 청춘영화라는 특정한 카테고리의 영화를 만든다는 생각이 강했을 것 같은데.
장건재(영화감독): 사실은 전에 준비하던 시나리오도 일종의 성장물이었다. 그리고 이 영화를 준비하기 전에는 소설을 각색해보고 있었는데 잘 풀리지 않았다. 그 와중에 원래 제가 갖고 있었던 <회오리바람>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는 중편 규모의 시나리오를 버전 업 시켜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다. 고등학생들의 이야기, 그리고 개인적 체험이 아주 많이 반영된 이야기인데 기본적으로 관심이 있었던 형태의 이야기였다. 수많은 데뷔작들이 감독 스스로의 어린 시절이나 청춘기를 그리는데 그런 영화들을 개인적으로 좋아했다. 작은 규모로 자신의 이야기를 첫 장편으로 만들면 스스로 어떤 면에서 충족이 될 것 같은 생각이 있었다. 사실 <회오리바람>은 처음 생각했던 것 보다는 제법 꼴이 갖추어진 영화로 나온 편이다. 사실 기획을 할 때는 <이웃집 좀비> 감독님들께서 말씀하셨듯이 주어진 조건에서 찍을 수 있는 영화를 만들어보자는 생각을 했다. 시나리오를 쓸 때부터 계절감 같은 것들을 염두에 두었고, 시나리오와 제작까지 오랫동안 준비를 하는 방식이라기보다는 쓰고 바로 찍을 수 있는 방식으로 만들어보자는 게 최초의 기획이었다.

김성욱
: 신수원 감독님의 <레인보우> 역시 자전적인 요소가 강한데, 동시에 음악이 부분적으로 매개되어있고 영화를 만든다는 자각이 포함되어 있다. 전체적인 장편 극영화로 맞춰나가면서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었을 것 같은데.
신수원(영화감독): 34살에 영상원에 들어갔으니 굉장히 늦게 영화를 시작한 편이고, 그 이후로 충무로 생활을 오랫동안 했다. <레인보우>는 제작방식이 독립영화이긴 하지만 영화 자체는 상업영화 같다는 이야기도 동시에 듣고 있다. 어쩔 수 없는 부분인 것 같은데 저는 애초에 영화사에서 작가로 영화를 시작했다. 그러다가 시나리오가 투자사에 팔리면서 감독 명함이 두 번 정도 생겼었다. 2006년에 충무로에 붐이 일면서 많은 영화들이 제작될 때 제 영화도 들어가게 될 줄 알았는데 그게 안 되었다. 그 이후에 바로 거의 쓰나미처럼 신인 감독들이 데뷔하기 힘든 상황이 왔는데, 써두었던 고등학생 밴드에 대한 시나리오를 들고 그나마 돈이 있다고 소문이 난 영화사로 갔다. 재미있게 보셔서 일단 계약을 하고 다시 감독으로 준비를 하게 되었는데 그 영화사 역시 상황이 안 좋아졌고 결국 다른 데 가서 그 시나리오로 만들어보겠다고 하고 1년 후에 그곳을 나왔다. 그런데 나와 보니 제가 있었던 영화사는 거의 섬 같은 공간이었다. 다른 영화사들이 줄줄이 문을 닫는 가운데 감독들에게 월급까지 줬다. 그런 상황을 전혀 몰랐던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다시 돌아갈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1년 정도 그 시나리오를 혼자 다시 고쳤다. 당시가 막 2009년이 된 시기였는데, 올해 안에 영화를 찍겠다고 스스로 마지노선을 정한 거다. 그렇게 시작했고 작업을 준비하면서는 그냥 자유롭게 열어두었다. 그리고 이런저런 고민을 하다가 내 이야기를 써보자는 생각을 했다. 첫 번째 작품을 하면서 생긴 한 가지 원칙은 의미 없이 수정하지는 않겠다는 거다. 앞으로 상업영화를 찍고 싶은 생각도 있고 독립영화를 찍고 싶은 생각도 있지만 어떻게 되든 스스로의 기준이 생긴 것 같다.

김성욱
: 또 다른 음악영화인 <반드시 크게 들을 것>의 백승화 감독은 원래 음악을 하시는 분으로서 음악 다큐작업을 했는데 어떻게 작업을 시작하게 되신 건지.
백승화(영화감독, 뮤지션): 저는 하는 일이 두 개인데 영화랑 음악이다. 취미도 두 개인데 영화랑 음악이다. 그냥 자연스럽게 음악 다큐를 찍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음악을 하니까, 좋아하고 몸담고 있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또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진 음악 다큐나 음악 영화에 만족하지 못하고 목마른 부분이 있었다. 다 별로 재미가 없었다. 그런 이야기를 한 번쯤 해보고 싶어서 시작한 것 같다. 저는 인터뷰 할 때마다 스스로 근본이 없는 놈이라고 이야기 한다. 영화를 전공한 것도 아니고 음악을 전공한 것도 아니고, 좋아서 하는 것들이기 때문에 오히려 크게 부담을 가지고 만들지 않았다. 꼭 개봉을 해서 보여줘야겠다는 생각도 없었고 만들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했었다. 음악과 영화가 다른 점이, 음악은 사실 적은 돈으로 혼자서도 할 수 있지만 영화는 큰돈이 드는 작업이다. 누군가 투자를 해주고 그걸로 작업을 하는 경우라면 그냥 즐기는 걸 넘어서서 더 잘할 수 있는 걸 찾아서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제 경우에는 음악 다큐가 잘할 수 있는 것이었고, 음악 영화도 잘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다음 영화로 음악 영화를 준비하고 있다. 잘할 수 있는 것 먼저 해보려고 준비하고 있다.

김성욱: 신수원 감독님의 표현대로 요즘의 상황은 데뷔 감독들에게 엄청난 쓰나미나 마찬가지인 것 같다. 이전보다 장편 데뷔를 한다는 것이 굉장히 어려운 상황인데, 결과적으로만 보자면 여기 계신 분들은 그래도 장편 데뷔를 했으니 어떤 의미에서는 선택된 위치에 올랐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사실은 그 자리가 갖는 어려움도 있을테고, 동시에 어떤 제도 안에 들어간 것으로 그것이 작동하는 틀을 보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될 것 같다. 관객들과 만날 때는 또 다른 고민이나 느낌들이 있었을 것 같은데.
장건재: <회오리바람>을 기획하고 민들 때는 이 영화를 시장에 소개하자는 생각이 더 컸다. 그래서 이 영화가 만들어지고 나서 영화제들로 유통되는 것에 대해서는 사실 조금 의아하게 생각했었다. 그래서 프리 프로덕션 때나 시나리오를 쓸 때, 회의 할 때도 손익분기점을 넘긴 비슷한 규모의 영화 몇 편을 롤 모델로 삼고, 그런 영화에 참여했던 분들께 이런 저런 고민을 하며 전략을 짜보았다. 사실 영화제로 너무 유통이 되면 어떤 아트하우스용 영화처럼 비쳐지게 될 것 같았고, 저는 그것을 그리 원하지 않았다. 관객들과 만나고 싶다는 강한 욕망이 있었다. 영화가 완성된 후 이야기를 하자면 마케팅과 배급이 이루어지는 과정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부분이었다. 그래서 독립영화의 장점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던 부분인데, 직접 제작과 연출을 했기 때문에 이 영화가 극장까지 가는 과정을 볼 수 있겠구나, 하는 공부하는 자세가 있었다. 고민스런 부분은 배급이다. 당시에 멀티플렉스들의 상영 시설이 디지털 영사 시스템으로 바뀌는 시기였기 때문에 파일로 배급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배급 비용을 조금 줄을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고 했지만 그렇지도 않더라. 또, 이전에는 독립영화 편수가 지금보다는 적어서 독립영화 전용관 같은 공간에서 관객들과 조금 더 지속적으로 만날 수 있었는데 지금은 그마저도 어렵다. 10개관에서 10명씩 보는 것 보다는 1개관에서 100명의 관객과 만나는 것이 조금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오영두
: 개봉관이 8, 10, 15개관 되더라도 교차상영 시스템 자체의 문제가 심각하다. 저는 이번에도 영화를 하나 찍었는데, 장건재 감독님 말씀대로 단관이나 한두 개 상영관을 쭉 가는 것이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교차상영을 하게 되면 특정 시간에 맞춰 특정 극장에 가야 하는데, 그보다는 차라리 어느 극장에 가면 그 영화는 볼 수 있는 것이 훨씬 낫다. 계속 상영해줄 수 있는 환경이 더 필요한 것 같다. 또 지금 상업영화도 그렇지만, 마케팅비의 개념 자체가 과거와 너무 달라졌다. 전에는 사람들이 영화를 찾아서 보지 않았나. 하지만 지금은 길을 걷거나, 집에서 TV를 보거나, 극장에 가면 또 다른 영화들의 광고를 볼 수 있다. 그것 자체가 다 돈인데 그렇게 광고를 뿌리는 영화들이 굉장히 많기 때문에 반대로 그럴 수 없는 영화들은 다 묻히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관객들은 더 이상 영화를 찾아서 봐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게 되고, 소위 자본의 논리로 조금 더 가게 되는 현상이 생기는 것이다. 그런 상황 자체를 우리가 바꿀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작은 영화들의 꼭 개봉관이 아니어도 100인치, 200인치짜리 스크린을 놓고서라도 지속적으로 상영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고 본다. 또한 국가의 공적지원이 필요한 것 같다.
박진성: 말씀하신대로 촬영하고 개봉 준비할 때까지는 사실 그것만 목표로 삼고 달려오다가, 막상 <마녀의 관>처럼 전국 2개관 개봉, 전국 관객 수 500명, 이렇게 되면 이게 괜찮은 건가 하는 생각이 들게 된다. 그런데 제가 고민이 너무 부족했던 것 같다. 지속 가능한 영화 제작이라는 것의 단초가 도대체 뭔지 모르겠다. 나라에서 더 많은 지원을 해줘서 해결이 되는 문제인지조차 사실은 자신이 없다. 정부 지원이 많아지면 어떤 부분에서는 기초가 잘못 되어서 극단적으로는 부패할 수 있다는 생각도 든다. 사실 더 많은 지원이 주어져서 제가 혜택을 보면 좋겠다는 속마음도 있지만, 원칙적으로 생각하면 그게 해답이 될까 하는 의구심이 생긴다.
김기훈: 앞선 감독님들 말씀에 많이 공감했다. 저 혼자만 그런 것이 아니라 역시 다들 비슷한 고민들을 하면서 영화를 시작하고 만들었구나 싶다. 자연스럽게 배급의 문제로 고민들이 귀착되는 것 같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우리가 감독으로서 포괄적인 전체 시스템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게 버거운 일이기는 하지만, 지금의 선순환 구조로는 지속 가능한 영화 제작이 사실상 힘들 것 같다. 데뷔작을 만들면서 체험적으로 느낀 부분이고, 어떤 것이든 간에 한국영화에 지금 상당한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보다 저예산영화나 독립영화를 배급하는 것이 더욱 어려워지고, 그 영화들 끼리 더 치열한 경쟁을 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극장개봉에 모든 수익을 의존해야 하는 것 자체에도 문제가 있다. 창작자들의 고민을 대변해줄 어떠한 조합이나 단체도 없다는 것도 문제다. 지금 시스템이 계속 유지된다면 어떤 결단을 해야 할 것 같다. 시스템 안에서 그냥 그런 영화를 만들든지, 자신의 색깔이 확실히 할 수 있는 영화를 시스템 밖에서 만들든지.


백승화: 사실 마케팅과 배급에 그렇게 많은 돈이 드는 줄 몰랐다. 장편 개봉을 하면서 저 역시 처음 그런 방식이나 시스템을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다. 그냥 지속적으로 영화를 만드는 것은 별로 문제가 되지 않을 것 같은데, 먹고 사는 게 지속되어야 한다는 것이 문제일 것 같다. 사실 이런 논의를 한다고 해서 크게 달라질 것은 없으리라고 생각한다. 꼭 영화뿐만이 아니라 다른 문제들 역시 쉽게 달라지는 건 아니라고 생각하고, 예전부터 논의들은 계속 있어왔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다양하게 생각했으면 좋겠다. 저는 다음 작품으로 음악 영화를 하다 보니 투자를 받아야 한다. 그래서 공동체 라디오 같은 곳에서 시나리오로 라디오 드라마를 진행하다가 사람들이 들을만한 것이 되면 투자자나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면 어떨까 하는 식으로 여러 가지 생각을 해봤다. 만드는 사람 역시 끊임없이 다른 방법들을 고민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김성욱
: 데뷔를 하신 분들이니 차기작에 대한 고민이 있을 거다. 지속가능한 제작이 어떻게 가능할지, 끝으로 데뷔 작가로서의 향후 전략이나 차기작에 대한 계획을 듣고 싶다.
오영두: 어차피 지금뿐만이 아니라 영화 시장 안에서 늘 힘들었다. 예나 지금이나, 독립영화나 상업영화나 힘들다. 물론 그 안에서 살아남는 사람이 있고 죽는 사람이 있지만 한편으로는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단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열심히 하고, 끊임없이 꿈틀거리면서 영화를 만들어내는 것이 최선이 아닌가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어느 순간 상업영화로 올라가서 어느 정도 성공을 이루었을 때, 할 수 있는 일들이 있고 바꿀 수 있는 힘이 될 때, 잊지 말고 무언가를 바꿀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스스로 도태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저예산에서 시작을 했다가 50억짜리 영화를 찍고 나면 다시 또 60억을 찍으려고 6, 7년 정도를 마냥 기다리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보면 어느 순간 명함만 감독이지 영화를 10년 이상 찍지 않는 감독이 되어버리는 경우도 많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가진 베이스를 잊지 않고, 왜 영화를 시작했는지 잊지 않고, 계속 영화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고 소중하다고 생각한다면 계속 영화를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백승화: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해주신 것 같다. 말씀하신 것처럼 계속 만들면 되는 것 같다. 그냥 자신이 할 수 있고 하고 싶은 것을 계속 하다보면 어느 순간 자신이 원하는 것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김기훈: 사실 신인감독들이 대부분 시나리오 작업을 굉장히 오래한다. 예전에는 계약을 하고, 진행비를 받으며 진행했지만 이제는 그런 경우가 드물어진 상황이고, 그런 면에서 계속적으로 생존하기 힘든 점이 분명히 있다. 이런 부분은 충분히 제도적으로 개선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결국 영화라는 것이 시스템 안에서 작동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 내부의 창작의 의지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 어느 정도 한계가 있다. 지속적으로 영화를 하려면 배급이나 부가판권, 기타 여러 가지 어떤 방식으로든 저변 확대가 필요한 것 같다.


장건재
: 저는 여전히 저예산 작업에 관심이 많은 편이다. 예전에 <낙타들>이라는 영화를 연출하셨던 박기홍 감독님으로부터 들은 조언이 생각난다. 스스로의 영화에 대한 주체로서의 권리를 행사한다는 점, 저작권이나 판권의 문제에 단순히 창작자나 예술가로서의 태도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세일즈를 하는 사람의 마음가짐, 또는 마케터로서의 입장을 적극적으로 생각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개인적으로는 비전 안에서 자기 시스템을 고민해가면서 일단은 각개격파를 해나가야 하지 않을까 싶다. (정리: 박예하 시네마테크 관객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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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녀들의 저녁식사>로 데뷔한 임상수 감독 편

 

지난 16일부터 19일까지 나흘간 서울아트시네마에서는 ‘한국영화아카데미, 그들의 데뷔작을 만나다’라는 제명으로 영화아카데미 출신 감독 4인의 데뷔작을 상영하고 매 저녁마다 관객과 아카데미 출신 선후배 감독들이 함께 만나는 특별 대담 행사를 가졌다. 마지막 날이었던 19일 저녁에는 임상수 감독의 <처녀들의 저녁식사>를 상영한 후, 임상수 감독과 그의 후배인 <효자동 이발사>의 임찬상 감독, <회오리 바람>의 장건재 감독이 참여하여 대담을 벌였다. 며칠 전 여섯 번째 연출작인 <하녀> 촬영을 끝냈다던 임상수 감독의 솔직하고 거침없는 입담이 눈길을 모았던 그 현장을 전한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
영화아카데미를 졸업하고 나서 데뷔작으로 이 영화를 만들었는데, 그 과정을 간단하게 들려 달라.

임상수(영화감독): 사실은 <눈물> 시나리오를 먼저 썼는데 투자자, 제작자들로부터 거절당해서 잠시 좌절의 시기를 보냈다. 그때 극장에서 혼자 <초록물고기>를 보면서 성묘사가 강한 영화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처녀들의 저녁식사> 시나리오를 쓰기 위해 오랫동안 많은 독서와 취재를 했다. 자기 섹스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 여자들이 이 영화를 많이 비난했는데,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여자들이 쓴 책, 여자들이 고백한 것들에 대해서 취재를 상당히 많이 했었다.

임찬상(영화감독): 영화를 다시 봤는데 지금 봐도 그렇게 촌스럽거나 담론이 뒤떨어진 영화가 아니었다. 감독님의 다른 영화와 비교해 봐도 이 영화가 고유한 영역을 차지하고 있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계사회를 추구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고, 당시는 불편한 면도 없지 않았는데 오늘 다시 보니 너무 좋다.

장건재(영화감독): 뒤에 만드신 <바람난 가족>이 많이 생각났다. <바람난 가족>이 <처녀들의 저녁식사>와 <눈물>을 거치면서 못 다한 이야기를 풀어내려고 했던 것인지 궁금하다.

임상수: 나는 뜻대로는 안 되지만 포부, 야심이 큰 사람이다. 내 영화가 한국 사회 젊은 남녀들의 성생활 패턴의 변화에 영향을 끼쳤다고 우기고 싶다. 나는 상업적으로 아슬아슬한 감독이고 거대한 혁명적인 영화를 찍는 감독은 아니지만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영화를 찍어보려고 했는데, 결과는 잘 모르겠지만 <처녀들의 저녁식사>가 일정 정도 영향을 미쳤다 생각한다. 가령 어린 여자들이 내 섹스는 무엇이고 내가 상대할 남자의 섹스는 뭐냐를 이 영화를 보면서 생각했다면 더 이상의 영광은 없다. 그것이야말로 내가 꿈꿨던 거다.

 

장건재: 당시 배우들도 이런 연기를 하기가 쉽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카메라도 인물에 밀착되어 있고. 또한 당시 진희경 씨나 강수연 씨 같은 경우 자기 위치를 갖고 있었던 여배우 같은데, 프로덕션 과정에서의 어려움은 없었는지 듣고 싶다.

임상수: 진짜 어려웠다. 여배우들이 옷을 벗어야 했는데, 제대로 된 작품에서 벗으면 괜찮지만 영화를 찍는 동안에는 그게 제대로 된 작품인지 아닌지 알 수 없었기 때문에 불안해했다.

 

관객1: 정작 담론은 여성의 입장에서 얘기하고 있지만 여자들이 대상화된다는 불편함도 있다. 하지만 여전히 신선한 영화라는 생각이 들고, 재미있게 봤다.

임상수: 여성을 대상화했다는 비판은 영화를 찍었을 때부터 들었는데, 여자들과 마찬가지로 남자들의 육체를 찍기 위해서도 대단히 노력했다. 그런 비판에 대해서는 신경 쓰지 않는다.

 

김성욱: 노출은 약한데 카메라 움직임이 의식적으로 가릴 수밖에 없는 위치로 이동하고, 그게 오히려 더 불편했다. 검열이나 영화를 찍는 환경이 그 정도를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오히려 그런 점들이 더 부자연스럽고 불편한 느낌이 있었다.

임상수: 영화를 완성했을 때 공연윤리위원회에서 심의필이 안 나와 문제가 되었다. 위원회를 찾아갔는데 이른 아침이고 아무도 우리를 만나주지 않았기 때문에 (웃음) 제작자였던 차승재 대표와 함께 벤치에서 술이 덜 깨 자고 있었다. 그런데 옆에서 학생들이 고다르에 대해 열심히 토론을 하고 있더라. 상당히 미묘한 경험이었다. <처녀들의 저녁식사>가 비디오 출시되었을 때 멋대로 편집된 경험도 있고. 사실 오늘 내가 완결한 것과 얼마나 다른 판본이 틀어졌는지도 모르겠다. 이런 게 한국 사회에서 사는 슬픔 중의 하나다.

 

관객2: 연구를 많이 하셨다고 했는데, 기존 영화들도 많이 연구하시는지. 그리고 야망이 크다고 하셨는데 지금까지 야망을 다하신 영화를 만드셨는지 궁금하다.

임상수: 예술가들은 다른 예술가들을 베끼는데, 중요한 것은 어떻게 들키지 않고 베끼는가가 관건이다. 나는 영화를 베끼지 않는다. 야망이나 야심에 대한 얘기는 간단한 거다. 나는 <처녀들의 저녁식사>가 어떤 사회적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한다. 제 작품이 예술 작품인지 아닌지에 대한 판단은 유보하겠지만 위대한 예술 작품이란 당대 사람들의 의식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위대한 거라고 생각한다. 거기에 한 발 끼고 싶은 욕망이 있다.

 

장건재: 혹시 필생의 프로젝트가 있으신지.

임상수: 나는 사회적인 베이스를 갖고 계속 작품을 찍어왔는데 이제는 한국 사회에 대해 그만 이야기하고 싶은 생각이 있다. 너무 뻔하기 때문에. 한국이란 굉장히 작은 나라인데, 거기서 태어난 예술가가 세상에 대해서 무슨 얘기를 할 수 있을 것인지, 아무 얘기도 할 수 없다는 게 정답이겠지만 그래도 우리는 얘기를 해보려고 꿈틀거리고 있지 않나 싶다.
(정리: 홍성원)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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