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영작 리뷰

이들의 찰진 사랑

장선우의 '우묵배미의 사랑' 



<우묵배미의 사랑>은 장선우라는 한국영화사에서 가장 격렬한 논쟁을 야기했던 감독의 이력에서 예외적인 작품에 속한다. 상징 우화의 형태를 빌었던 데뷔작 <서울황제>(1987)와 후속작 <성공시대>(1988) 이후 발표한 이 영화는 급작한 변신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우묵배미의 사랑>은 코리안 뉴웨이브의 주요한 성과 중에서도 시선의 폭과 성찰의 깊이를 확보하고 있다는 점에서 남다르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서울 변두리 쪽방촌의 주민 배일도(박중훈)와 최공례(최명길)이다. 치마 공장 재단사와 미싱사로 호흡을 맞추게 된 두 사람은 첫 대면부터 품게 된 호의로 인해 사적인 애정관계에서도 호흡을 맞추게 된다. 허구한 날 공례를 두들겨 패는 폭력적인 남편, 일도의 일거수일투족을 시비하는 억센 아내는 그들의 사랑을 더욱 찰지게 만든다. 일도의 플래시백에 의해 추억되는 내러티브는 가난한 연인의 관계, 삶의 정황들에 의해 멍들어가는 그들의 상처, 도망가려 하지만 발목을 잡히고 마는 운명, 지지고 복고 아등바등 살아가는 공동체적 삶의 아름다움을 사실적으로 묘사한다. <우묵배미의 사랑>은 변두리 동네에서 벌어지는 통속적인 불륜 혹은 사랑에만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니라 격동의 1980년대에서 1990년대로 이행하는 당대적 상황에 대한 논평으로 또는 회고형 성장영화로서 그 진가를 드러낸다. 여기서 장선우는 새로운 시각으로 당대의 한국 사회를 조감하려 한다. 일도 부부의 이삿짐 트럭이 서울을 빠져나가면서 펼쳐지는 풍경은 자본주의의 고도화로 인해 변모해가는 서울의 지정학적 위상을 효과적으로 요약한다. 구성진 뽕짝 가락에 실린 천변만화(千變萬化)하는 이미지들의 트래킹 쇼트는 막 조성된 단단해 뵈는 아파트촌과 우뚝 솟은 마천루, 현란한 벽 그림이 그려진 백화점, ‘우리의 서울’이라는 도로 간판, 아파트 재개발 공사가 한창인 공사 현장을 차례로 비춘다. 이 파노라마적 이미지의 모음은 서울의 변화를 압축적으로 제시한다. 궁벽한 서울 달동네에서 경기도 쪽방 촌으로 쫓겨가는 일도의 이동은 도시화, 산업화의 과정에서 주변으로 밀려나는 하층민들의 처지를 암시한다. 몇몇 인상적인 묘사를 통해 장선우는 밑바닥 인생들의 연대와 도시화, 현대화, 자본주의화의 힘들에 대한 비판적 인식을 심어놓았다. 

고도 자본주의로 인해 파생된 소외를 다룬 영화로서 <우묵배미의 사랑>의 백미는 빈민 혹은 서민 생활의 실상과 애환에 대한 사실적인 묘사에서 찾을 수 있다. 실제 삶에서 길어 올린 생생한 대사, 일체의 꾸밈을 배제한 정직한 이미지, 은유나 상징으로 환원되지 않는 생기 넘치는 캐릭터들은 극적인 효과를 위해 인위적으로 연출되지 않았다. 이대근이 연기하는 남편 석희가 공례를 곤죽이 되도록 두들겨 패는 신에서의 살기, 세인의 시선을 피해 숨어 든 비닐하우스 거적때기 위에서 나누는 사랑은 당대 한국영화에서 볼 수 없었던 빛나는 사실성의 성취이다. 주변화된 개인의 절망에 대한 심금을 울리는 묘사들도 도처에서 발견되는데, 특히 허름한 여인숙에서 눈물을 흘리며 나누는 섹스는 가난으로 헐벗은 그들의 내면적 정황을 육체의 제스처를 통해 절감시킨다.


장병원 /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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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토크
“이제는 잘 아는 사람, 살면서 마주쳤던 사람들 같다”
- 윤성호 감독이 말하는 장선우의 '우묵배미의 사랑'

 

지난 2월 3일, 장선우 감독의 <우묵배미의 사랑> 상영 후 이 영화를 선택한 윤성호 감독과의 시네토크가 열렸다. 케이블TV에서 <우묵배미의 사랑>을 본 뒤 갑작스레 선택작을 바꾸게 되었다고 밝힌 윤성호 감독은 영화에 대한 세세한 감상을 들려주었다. 그 현장을 전한다.

 

 

윤성호(영화감독): <우묵배미의 사랑>을 스크린으로 보고 싶었다. 제가 많이 좋아하는 영화이긴 하지만 여러 번 본 건 아니다. 총 세 번 봤는데 한 번은 96년 대학생 시절 공강시간에 학교 도서관에서, 또 한 번은 케이블 방송에서, 마지막은 오늘 극장에서 본 거다.

김숙현(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코디네이터): 이 영화는 90년에 나온 영화인데, 90년이라는 해는 한국영화에서 새로운 장이 펼쳐지고 새로운 감독들이 드러나서 신호탄을 강하게 쏘아 올리던 해인 것 같다. 80년대하고는 약간 다르다.
윤성호: 저는 이번에 보면서 조금 감상이 달랐다. 오히려 80년대 영화 같았다. 장선우 감독님은 90년대부터 화제에 오른 감독인데, 이 영화를 자신의 필모그래피에서 좋아하실지 궁금해졌다. 그리고 만드시는 동안 여러 애로사항이 있었을 텐데 감독의 자의식이나 선택이 얼마나 반영됐을지 궁금해졌다. 이 영화의 원작 「우묵배미의 사랑」은 박영환 작가의 『왕룽일가』라는 6편의 연작소설 중 하나의 중편소설이다. 80년대 중반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근대와 현대가 묘하게 혼재되어 있다. 원작 소설이 80년대에 베스트셀러에 오르면서 먼저 TV 드라마로 만들어졌다. 이게 브랜드가 있다 보니까 배일도의 친구 역할로 최주봉 씨가 쿠웨이트 박으로 나오는데, TV에서 히트한 캐릭터를 하나 넣어달라고 부탁받은 느낌이 약간 있다. 그리고 시어머니와의 화해도 이상하게 비중이 많이 할애되어 있다. 그런 장면들을 보면서 과연 장선우 감독의 모든 선택이 반영이 된 것인지 의문이 든다. 모든 걸 장악했다기보단 제작자나 투자자의 요구와 적절하게 수렴을 하면서 노력한 결과가 아닌가 싶다.

 

김숙현: 장선우 감독이 그 이전 세대 감독들의 자장 아래 있으면서 본인의 스타일을 찾던 시기였던 것 같다. 이후에 만들어진 영화들, <너에게 나를 보낸다>, <경마장 가는 길>은 이 영화와 굉장히 다르다. 오늘 보면서 여자 캐릭터들이 강하다는 생각을 했다. 배일도의 아내로 나오는 새댁 역 유혜리 씨의 에피소드가 그렇게 비중있게 나오지 않아도 될 텐데 12살 때 과거도 나오고, 시어머니와 화해하는 과정도 길고 섬세하다. 90년대는 민주화 이후 이런저런 창작을 하고 싶어하는 젊은 인재들이 영화로 모여들고 대학가에서는 페미니즘도 폭발하는 시기였다. 남녀묘사는 80년대 여성을 그리던 식과는 좀 다른 것 같다. 특히 여성 캐릭터를 그리는 방식이 다르다.
윤성호: 그땐 저도 여성학 수업을 많이 듣던 시절이었고, 영화가 웃기고 묘하긴 했는데 불편했다. 배일도가 미싱 공장에 첫 출근하던 날, 사장이 민공례에게 성희롱에 가까운 농담을 던지고 배일도도 덩달아 더한 농담을 던진다. 그런데 민공례는 좋아 죽으려고 한다. 그런 상황에서 아줌마들이 굉장히 걸쭉하게 리액션을 던진다. 이게 너무 낯설었다. 그런데 보다 보니까 오히려 저게 더 현대적인 것 같다. 왜냐면 가난하고 인정받으려는 욕구를 제한받은 여자가 자기 스토리를 만들어하고 싶어 하는 거니까. 구질구질하더라도 자신을 세팅한다는 게 이제야 오는 것 같다. 작년 한해 한국영화들은 나름 흥해도 되고 특별히 흠 잡을 게 없는 것 같아 부러웠다. 그러고 있다가 케이블에서 <우묵배미의 사랑>을 보고 생각이 달라졌다. 지금은 이런 영화 한 편을 대중영화로 만들 수 없구나, 하면서 뭔가 각성이 되고 기운을 수여받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보니까 저때도 나름의 영세한 자본이나 마케팅 홍보가 작용을 했고 저때의 감독님들도 외롭게 자기 것을 지켰겠구나, 해서 지금 한탄할 일만은 아닌 것 같다.

 

김숙현: 영화 보는데 박중훈 씨가 밥 먹는 씬이 인상 깊었다.
윤성호: 밥 먹는 장면에 테이크를 다섯 번만 갔다고 생각해보면 장선우 감독님이 박중훈 씨 괴롭히는 데에서 즐거움을 느끼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웃음). 제가 인상 깊게 본 장면은 배일도와 민공혜가 기차에서 가위바위보 하면서 술 마시는 장면이다. 묘하게 귀여우면서 어설프다. 그런데 그 장면은 사실 원작에서 쉽게 지나간다. 배창호 감독님, 장선우 감독님, 이명세 감독님 이렇게 세 분을 보면, 각각 비슷한 영화인 것 같으면서도 스타일의 차이가 느껴진다. 배창호 감독님의 <꼬방동네 사람들>이 훨씬 위험한 설정이 많은데 절대 망측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이명세 감독님은 <나의 사랑 나의 신부>에서 예쁜 문방구를 만드시는 것 같고, 장선우 감독님은 망측한 걸 보여주길 좋아하시는 것 같다. 민공례와 배일도가 비닐하우스에서 밀회하는 장면도, 거기서 굳이 민공례의 팬티를 보여주시고 호떡이 팬티까지 젖어있다고 하면서 웃는 모습을 보여주신다. 사람의 어떤 부분을 내가 아름답다고 생각하느냐의 차이인 것 같다.

 

관객1: 감독이 영화 속 인물을 냉정하게 비판하는 것 같지만, 애정 어린 시선으로 보는 것 같기도 하다. 장선우 감독의 다른 작품에서도 그런 게 보이는지 궁금하다.
윤성호: 솔직히 말해서 비주류에 대한 따뜻한 감성은 한국영화가 다 갖고 있는 것 같다. 장선우 감독만의 시선은 아닌 것 같고, 시선이나 설정 말고 캐릭터의 터치를 봐야 하는 것 같은데 장선우 감독님은 즐거워하시는 것 같다. ‘저 사람들 저렇게 굴러가는 거지, 재밌지 않냐?’ 하시면서 자기가 그린 인물들을 귀여워하시는 것 같다.

 

관객2: 한국영화가 르네상스를 맞이한 지금 이 시기에도 이 영화 같은 걸 못 만들 것이라고 하셨는데 그 이유를 구체적으로 들려주셨으면 좋겠다.
윤성호: 못 만든다는 게 아니라 대중 상업영화로는 못 만들 것 같다는 얘기다. 옆에 있을 것 같은 궁상맞은 캐릭터를 다루고 해결되지 않는 서사를 다루는 영화들은 기획 단계에서 폐기될 것 같다. 일단 제목부터가 ‘우묵배미의 사랑’이 안 될 것 같다(웃음). 이건 한국영화 산업이 발전하면서 데이터가 증가했기 때문이다. 투자자들이 잘 모르고 배팅했던 것들은 시행착오 같지만 그게 쌓여서 스펙트럼을 낳았다. 이젠 투자자들이 연출자들의 ‘썰’에 속지 않는다. 그런데 지금 산업 문제는 문제고, 괜히 엄살떨지 말아야겠다는 생각도 많이 했다. 이 영화도 찍으면서 고민이 많았을 테고, 촬영조건도 훨씬 열악했을 것 같다. 어느 시대건 자본과의 줄다리기는 당연히 있었겠구나, 그럼 나는 어떻게 균형을 잡을지 그런 고민을 한다.

 

관객3: 영화 속 민공례라는 캐릭터는 순수한 것 같다가도 결국엔 엄청난 선택을 한다. 공례 캐릭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윤성호: 이 영화를 고른 가장 큰 이유가 민공례 캐릭터 때문이다. 이제는 잘 아는 사람, 살면서 마주쳤던 사람들 같다. 그리고 순수하다고만 요약할 수 없는 ‘밀당’의 고수다(웃음). 자기를 발현할 만한 도구가 너무 없어서 아무것도 못 잡을 것 같은 상황에서 어떻게든 자기 스토리 하나 만들어 보려고, 나도 뭐 하나 잡아보려고, 내 인생에서 선택 하나 있어본 척 하려고 하는 것 같다.

 

정리: 송은경(시네마테크 관객에디터) | 사진:  문지현(시네마테크 자원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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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과 함께 감정을 공유하는 공간, 시네마테크

2013 친구들 영화제, 성황리에 개막!

 

1월 17일, 어느덧 여덟 번째를 맞는 ‘2013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가 그 성대한 막을 올렸다. 이번 영화제의 개막작은 ‘관객들의 선택’을 통해 선정된 우디 알렌의 <카이로의 붉은 장미>. 여느 때 보다 뜨거운 관객들의 호응으로 객석은 모두 매진되었고, 극장은 개막작과 영화제에 대한 기대들로 가득 찼다. 성황리에 열린 ‘2013 친구들 영화제’ 개막식 현장의 이모저모를 전한다.

 

 

영화의 친구들과 함께하는 시간

지난 1 17, 저녁 7 30분 종로 3가 낙원동에 위치하고 서울 유일의 민간 비영리 시네마테크전용관 서울아트시네마에서 ‘2013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개막식이 열렸다. 추운 날씨였음에도 불구하고 극장 앞 매표소에는 표를 구하려는 관객들로 가득 찼고, 올해의 친구들을 비롯한 영화문화계 인사들이 극장을 찾았다. 이날 행사의 사회는 2006년 첫 영화제 때부터 한 해도 빠지지 않고 함께해준 권해효 배우가 맡았다. 사회자 권해효 배우는 첫 영화제 때 이 공간은 참 춥게 느껴졌지만, 오늘 관객으로 꽉 찬 이 극장을 보면서 8년의 시간 동안 조금씩 지평을 넓혀가고 있다는 안도감을 느낀다는 말로 영화제의 시작을 알렸다. 이어서 지난 한 해, 서울아트시네마가 10주년을 맞이해 다채롭게 진행했던 부대행사들을 소개했다. 여러 스폰서들의 다양한 재능기부와 참여로 시네마테크의 발전 기금이 마련되었고, 시네마테크의 활동을 알리는데 보다 큰 힘이 되었다. 특히 지난해 말에는시네마테크 어워즈를 개최해 지난 10년 동안 시네마테크에 꾸준한 애정을 보여줬던 감독과 배우, 단체들에베스트 프렌즈상을 수여하기도 했다. 

후원보고가 끝난 후 최정운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 대표의 개막 선언 인사가 이어졌다. 그는오랫동안 함께해준 시네마테크의 친구들이 선정해주신 영화 하나하나가 모두 귀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영화인들이 같은 공간에서 같이 영화를 보고 대화를 나누는 것 자체가 뜻 깊은 시간이 아닌가 한다. 영화제 기간 동안 좋은 영화, 영화의 친구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우리들의 이상한 우정

다음 순서로는 영화제 상영작의 하이라이트 영상과 함께 트레일러 상영이 이어졌다. 2012, 시네마테크 10주년을 맞이해 만들어진 김종관 감독의 트레일러에 이어 올 한 해 동안 상영될 새로운 트레일러의 연출은 윤성호 감독이 맡았다. 권해효 배우는충격적인 트레일러였다앞으로 모든 관객들이 이상한 기분으로 극장을 나서지 않을까 싶다며 농담을 던졌고, 트레일러에 출연해열연을 보여준 정우열 작가는그냥 그림 하나 그리면 된다고 해서 왔다가 현장 분위기에 휩쓸렸다고 설명했다. 윤성호 감독은현장에 와 준 연기자들이 할 수 있는 제일 값어치 있는 일을 시켰던 것 같다. 싫어도 어쩔 수 없다. 제가 1년 동안 극장에 앉아 두고두고 보려고 만든 트레일러다라고 말해 관객들의 웃음을 자아냈다. 윤성호 감독은 트레일러의 자막에 대한 질문에, 중간의 자막들은 <전함 포템킨>의 대사, 마지막에우리들의 이상한 우정은 시네마테크가 후원을 필요로 하는 것처럼, 어느 작가가 자신의 후원자에게 보낸 편지의 마지막 구절을 옮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영화제에 참여하는친구들을 대표해 무대에 오른 김태용 감독은 추천작인 마스무라 야스조의 <세이사쿠의 아내>를 소개하면서, “옛날 영화를 볼 때마다 격정적인 감정을 다루는 법에 대해 계속 배워가는 것 같다. 60년대 영화를 보면 감정을 어떻게 추스르는지, 그리고 그것이 어떤 비극적 결말을 가져왔는지를 느낄 수 있게 된다고 말했다.

 

 

극장에서 영화를 만나는 매혹

마지막으로 영화제 개막작인 <카이로의 붉은 장미>에 대한 김성욱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디렉터의 소개가 이어졌다. “관객들의 선택작이기도 한 이 영화와 시네마테크의 선택작은 모두 1930년대 대불황기를 살아가던 사람들의 이야기다. 지금이 꽤 어려운 시기이기도 해서 이 영화가 선택된 데에도 어떤 의미가 있지 않을까 한다. 역사적으로 보면 1930년대에 미국에선 영화관을 영화를 보러 가는 공간만으로 여기진 않았다고 한다. 할 일 없을 때 어떤 사람들은 잠을 자기 위해, 젊은 친구들은 부모님의 눈을 피해 연애를 하기 위해서 영화관을 찾기도 했었고, 거리가 추울 때 영화관은 사람들의 휴양소로서 기능하기도 했다. 오늘 보실 <카이로의 붉은 장미>는 그런 영화관에 대한 매혹을 담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현실과 환상 간의 선택이라는 어려운 질문이 담겨 있는 영화,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늘 부딪히는 질문을 담고 있는 영화라고 말한다. 저는 이번에 보면서 조금 다른 생각을 했다. 정말 어려운 건 자신들이 살고 있는 삶의 조건에서 일탈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영화관이라는 공간은 사람들에게 그나마 삶의 조건에서 벗어날 수 있는 아주 예외적인 일탈의 장소였고, 지금 여기에서 다른 위치와 장소를 찾을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 아니었을까 생각이 든다. 이 영화를 통해서 슬픔과 기쁨을 같이 공감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올해로 11년을 맞고, 8번째를 맞은 친구들 영화제가 이런 기쁨과 슬픔, 감정들을 같이 공유할 수 있는 영화관으로서 꾸준히 진행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개막식이 끝나고 우디 앨런의 <카이로의 붉은 장미>가 상영되었다. 객석을 가득 메운 관객들은 영화를 보며 함께 웃었고, 슬픔 또한 함께 공감하고 있음이 전해졌다. 극장에서 영화를 만나는 기쁨과 매혹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던 이 날의 상영이 모두 끝나고, 극장 근처의 공간에서 진행된후원 파티에서 관객들은 다시 삼삼오오 모여 술과 이야기와 음식을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_송은경, 장지혜(시네마테크 관객에디터) | 사진_김윤슬(시네마테크 자원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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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7일, 윤성호 감독의 <도약선생> 상영 후 대화가 있었다. 추운 날씨임에도 불구, ‘방어적으로 굴지 않고 재밌게 해주겠다’는 감독의 트윗 때문인지 적지 않은 수의 사람들이 극장에서 모였다. 윤성호 감독뿐 아니라 전영록 코치 역의 박혁권, 재영 역의 박희본, 원식 역의 나수윤 배우와 함께한 자리였다. 영화 상영 내내 터져 나오던 웃음소리는 시네토크 현장으로도 이어졌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디렉터): 이 영화는 주문제작 영화인데, 윤성호 감독은 주문제작 영화에 굉장히 능수능란하다. 자기 식대로 바꾸고 해석하는 데 재능이 있다. 장대높이뛰기를 원래부터 좋아했었다고 들었다. 제안을 받고나서 장대높이뛰기 선수 이야기를 그리겠다고 처음부터 생각을 한 건지 궁금하다.
윤성호(영화감독): 아리랑 TV에서 “영화, 한국을 만나다”라는 프로젝트로 한국의 한 고장을 중심으로 하는 TV영화 제안이 왔다. 원래 배경은 순천이었다. 순천 송광사에 법정스님을 좋아하는 흑인 랩퍼가 찾아오는 이야기였다. 그런데 대구에서 열리는 세계육상선수권대회의 원조를 받을 수 있을 것 같다고 전달받아서 대구로 바꾸게 됐다. 처음엔 안하겠다고 했는데 앞으로 육상을 소재로 영화를 만들 일도 없을 것 같고, 극장에서 흥행해야 할 영화도 아니어서 남에게 피해를 줄 것 같지도 않고, 마음 편하게 작업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승낙했다. 더운 여름에 오래 뛰는 영화는 찍고 싶지 않아서 도움닫기가 최대한 짧은 장대높이뛰기를 선택했다. 원래 여자 장대높이뛰기를 좋아하기도 했다. 그런데 생각했던 것보다 예산이 절반 아래로 작아지는 문제가 생겨서 시트콤을 스크린에 옮기는 느낌으로 작업했다. 견적에 맞춰서 포부를 축소시킨 거다. 원래 기획한 장대높이뛰기 영화에서 장대높이뛰기에 대해 떠드는 영화로 바꾸기로 했다.

김성욱: 하이쿠 참조하는 게 나오고 전체적으로 노래, 내레이션 같은 것들이 사용되었다. 지금 사람들이 보면 웃을 수도 있고 옛날 사람들이 보면 노스탤지어 같은 느낌도 든다. 하이쿠나 랩처럼 언어를 자꾸 바꾸어 나가는 것들은 음악하시는 분이랑 같이 작업을 한 것인가.
윤성호: 음악을 맡아주신 분은 ‘9와 숫자들’의 송재경씨다. 온라인 시트콤 <할 수 있는 자가 구하라>부터 같이 작업했다. 그땐 작업이라기보다 음악 삽입을 허락받는 정도였다. 나중에 사석에서 굉장히 잘 통하는 걸 알았다. 아까 말씀드렸듯이 적은 예산으로 하게 되면서 아예 로우-파이로 작업했다. 고맙게도 송재경씨가 흔쾌히 허락해주셨고, 저열한 사운드를 잘 만들어주셨다. 사실 이 자리에서 고백하자면, 주문제작식으로 욕심을 낮춰서 급하게 만들었고, 대본도 급하게, 매일 아침 예능 하듯이 만들었고, 편집실도 거의 잘 나가지 않았다. 애정 없이 작업한 셈이다. 그런데 막상 보니까 괜찮았다. 산발적으로 찍어서 없던 내러티브를 편집기사님이 만들어주셨다. 그때 욕심이 생겨서 음악을 녹음을 하기로 했다. 송재경씨랑 같이 떠들면서 녹음실 스튜디오에서 작업했다. ‘개드립’으로 했는데 말리는 사람도 없어서 잘 할 수 있었다.


김성욱: 영화 초반에 계속 반복되는 말들이 있다. “뭘 해야 하지? 뭘 할 수 있을까? 뭘 하면 되는데? 뭐라도 할까?” 이게 주문제작을 받은 영화감독의 심정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윤성호: 정확하다. 몇몇 스탭들은 느낄 수 있었을 거다. 지금까지 만든 영화들은 <할 수 있는 자가 구하라>를 제외하면 다 주문제작식이었다. 주문제작을 받으면 거기에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살짝 넣는 정도로 만들어왔다. 온전히 내 마음을 갖고 창작을 한 적이 거의 없다. 동기부여가 없으면 움직이지 않는 내 성향 때문이다. 거기다 처음으로 함께 해오던 사람들이 아닌 분들로부터 주문제작을 받은 거라 자존감이 상하는 것도 있었다. 남들이 대충 넘어가려는 프로젝트에 발을 디뎠다는 느낌을 받은 거다. 거기에 대한 자조 섞인 말들을 넣었다. 추리닝이랑 장대 빌렸다가 반납한 것 말고는 도움을 받은 것도 없었다.

김성욱: 제작비의 지원이 없었단건가.
윤성호: 모르겠다. 받은 건 없고 중간 분들이 가져간 것 같다.

김성욱: 제목이 <도약선생>이면 다들 영화 후반부에 정말로 하늘을 향해 올라가는 선수의 활약을 기대할 것 같은데, 대부분 프리즈 프레임으로 끝나버린다.
윤성호: 원래 예산이 1억이 좀 넘었다. 그 때 가볍게 썼던 트리트먼트에는 원식이가 날아가는 데 성공하는 거였다. 그런데 예산이 축소되니까 와이어 쓰기가 싫었다. 영화적인 트릭으로 관객에게 넘었다는 착각을 줄 수도 있었지만 그것도 하기 싫었다. 첫 번째 이유는 저기 안 올라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들 실패를 했으면, 그냥 고꾸라져서 옆에 있는 사람들과 좋아졌으면 하는 생각. 다른 하나는 내가 스트레스 때문에 무릎이 아팠다. 오후 3~4시에 촬영이 끝났는데 무릎이 너무 아파서 그만뒀다.

김성욱: 스포츠 영화에는 외인구단처럼 사람을 끌어 모으는 식의 캐릭터가 종종 있다. <도약선생>에서 전영록 코치의 캐릭터를 설정할 때 윤성호 감독과 어떤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나.
박혁권(배우): 군대에서 다쳐서 머리가 돌아버린 그 설정은 촬영 중 후반부에 생겼다. 그 이후로 마음 편하게 했다. 윤성호 감독과는 10년 정도 같이 작업했기 때문에 이게 어디로 가고 있는지 불안해하는, 그런 우려는 전혀 없었다. 오히려 디렉션이 왔을 때 어떻게 더 놀아볼까 그런 고민을 했다.

김성욱: 일반 상업영화라면 장대높이뛰기 선수 역할을 하기 위해 촬영 전에 운동을 하는 준비를 했을 텐데. 다른 배우 두 분은 영화에 참여하면서 감독과 어떤 논의를 했는지 궁금하다.
나수윤(배우): 트레이닝을 받았어야 했는데 영화를 보니 그럴 필요가 없었던 게 아니라, 내가 원래 운동을 못해서 저렇게 나온 거다. 그래도 시켜주는 건 열심히 하려고 노력했다.
박희본(배우): 어렸을 때 전교1등할 정도로 운동을 잘 했다. 그래서 오히려 재영이라는 역할에 잘 맞았던 것 같았고, 감독님께서 그 부분 칭찬을 많이 해주셨다. 촬영할 때는 감독님이 주시는 디렉션에 맞게 이렇게 해볼까, 저렇게 해볼까 정도의 고민을 했다. 걱정은 전혀 안했다.


관객1: 도약하는 장면이 나올 줄 알았는데 나오지 않는다. <도움닫기 선생>이 더 잘 아울리지 않을까 싶다. 제목이 왜 <도약선생>이 됐고, 만약 제목을 바꾸고 싶다면 무엇으로 바꾸고 싶나. 그리고 조연들이 참 재밌었다. 대구에서 직접 구한 조연들이라고 했는데, 조연 에 대해서도 물어보고 싶다.
윤성호: 원래 제목은 <육상소녀>였다. 그런데 일본의 귀여운 저예산영화인 척하는 것 같아서 제목을 바꿀 생각은 있었다. 사실 주인공인 두 소녀보다 전영록 코치가 더 강해진 거다. 편집기사님이 캐릭터가 일관성 있게 해 주신 것이다. 이 영화의 중심은 미친 코치다, 이 생각이 들었다. 뭐 할까 고민하다가 도약을 가르치는 선생이니까 <도약선생>으로 써봤다. 그런데 나중에 찾아보니 진짜 그런 단어가 있었다. 그리고 도약과 도착, ‘도착선생’ 그런 느낌으로 받아들여지길 원했던 것 같다. 배우들은 이 세 분 말고는 다 현지에서 섭외한 분들이다. 30대 이상은 그쪽 지방에서 연극 하시던 분들이고 어색하듯 연기했던 친구들은 계명대 학생들이다. 즉흥적으로 촬영을 도와준 대구분들께 고마웠고, 육상대회에서 상영이 취소되니까 미안했다.

관객2: 남성 감독님께서 여성을 섬세하게 잘 그리신 것 같다. 동성애 코드에 대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으셨는지 궁금하다. 배우분들은 연기하면서 어땠는지도 궁금하다.
윤성호: 여성들의 심리는 잘 모르는 것 같다. 남자가 아무리 섬세하게 그려도 불평등하게 대하지 않으려는 노력을 할 뿐이고, 특유의 결을 그리기는 힘들다. 그래도 내가 보고 싶은 건 넣는다. 주변에 커밍아웃한 성적 소수자가 많다. 이걸 자기들을 소비한 거라고 생각하지 않을까하는 걱정이 들었는데 그 분들이 보고 좋아하시더라. 잘못 건드리지는 않은 것 같다. 여성끼리 연애하는 걸로 바꾼 건, 원식이 캐릭터를 남자가 했으면 보기 안 좋았을 거다. 남자의 경우 집착하고, 뭐라도 해보려는 캐릭터가 너무 많다. 찌질하거나 전형적으로 보이지 않았으면 하는 트릭이다.
나수윤: 감독님 만나서 그 얘기를 들었을 때 찍으면 재밌을 것 같았고, 이성애자지만 거부감이 들지도 않았다. 극중에서 룸메이트이면서 친한 친구고, 그 이상일까 말까 하는 단계였기 때문에 별 거부감은 없었다. 그리고 상대 배우가 귀엽고 그래서 찍을 때도 수월했다.
박희본: 극중에서 재영이가 원식언니를 좋아하는 건 성적이라기보다 동경의 대상으로 좋아하는 것, 그 정도 감정선이라고 생각한다. ‘어떡하지, 언니랑 손을 잡아야 하는데‘ 이런 고민은 전혀 하지 않았다. 재밌게 찍었다.



관객3: 극 초반에 기모노를 입고 나오는 사람이 있다. 왜 기모노를 입은 건지 궁금하다.
윤성호: 극 초반은 꿈이다. 시나리오가 없어서 찍는 순서도, 어디에 뭐가 붙을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촬영했다. 그러다보니까 연결이 너무 안 될까봐 걱정이 됐다. 일관성이 없어서 고민하다가 연출부 막내가 꿈을 넣자는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꿈이니까 용서가 되고, 나중에 이야기 틈을 보완하는 역할을 할 수 있으니까 꿈을 급하게 넣었다. 문제는 꿈이라는 티가 나야하는데, 아련한 비주얼은 넣기 싫었고 부조리하게 의미 없는 아이콘을 등장시켰다. 양장을 입히면 현실 같으니까 뜬금없는 옷을 입혔다.

김성욱: 지금 준비하는 영화가 있나.
윤성호: 촬영은 끝나고 편집 중이다. 영화는 아니고 MBC 에브리원에서 방영할 시트콤이다. 저번엔 5분정도 10회를 했는데, 이번엔 30분씩 10회 분량이다. 그리고 지금 영화사와 장편 시나리오를 쓰고 있다. 남자 캐릭터 문제로 계속 고민 중이다.

정리 송은경(관객 에디터) | 사진 이호규(자원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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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클럽] 윤성호 감독의 말, 말, 말

2011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의 일환으로 마련된 시네클럽 행사가 끝을 맞이했다. 그 마지막 주자는 개성 있는 커리어를 쌓아가고 있는 윤성호 감독. 특유의 재치 있는 입담과 농들을 통해서 직접 현장에서 겪었던 실질적이고 실무적인 팁들을 전달하는 시간이었다. 그 일부를 여기에 전한다.


윤성호(영화감독):
늦게 입문한 탓인지 막연하게 예술 하는 사람들에 대한 동경이 컸다. 정확히 말하자면 거리감, 고산식물처럼 보는 것? 어쨌든 대학 다닐 때 친구들과 콩트 같은 것을 만들었는데, 지금은 없어진 10만원 비디오 페스티벌이라는 행사를 통해 아트선재센터에서 틀게 되었다. 그때 고맙게도 10만원상과 관객상을 받았다. 그러면서 문화예술계에 종사하시는 분들과 살짝 처음 인사를 나누었는데 영화를 틀면서 두근거렸을 때 이상으로, 와 출세했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 지나칠 정도의 경외감에서, 오히려 내가 지금 여기서 독특한 존재가 되었다는 것이 가끔 신기하다. 나는 문맹에서 국어도 배우고, 문학도 배우고, 사회문화도 배우면서 시를 쓰게 되었다기보다는 문맹에서 갑자기, 문법도 모르고 시를 쓰게 된 경우인 것 같다. 그래서 의도치 않았던 소소한 문법적 일탈들이 개성으로 인정받는 사이드 이펙트가 있었던 것 같고, 이제 조금 뭔가 알 수 있을 것 같은 상황이다. 어쨌든 지금 생각난 거지만 팁 일번. 배우나 스태프들에게 두 가지를 말하는 것. ‘여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는데요’라고 말을 시작하면 좋다. 왜냐하면 일단 시간을 벌 수 있기 때문이고, 또한 대개 모든 문제는 진짜 두 가지다. (웃음) 이번. 이건 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데, 배우들에게 은유를 쓰지 말 것, 현장에서 동사를 사용할 것. 나는 영화에 입문한 것도 늦었지만 연기를 업으로 하는 사람들과 작업하는 건 더 늦었다. 전편을 연기자들과 작업한 것은 2007년에 <은하해방전선> 작업할 때가 처음이었던 것 같다. 그 이후로 다른 장치들을 제거하고 배우의 연기만으로 가는 방식에 관심이 생겼다. 그러면서 많이 써먹었던 게 비유였다. 배우가 약간 헤매고 있으면 ‘자, 형, 생각해봅시다. 초등학교 때 집에 왔는데 어머니가 안 계셔서 당황하는 느낌 어떨까요?’ 이런 식이었다. 그런데 사실 이게 최악의 연출법이었다. 각본상에서 애초에 상황을 제시하고, 연출할 때 그 상황에 맞는 행위를 주는 게 가장 좋다. 누군가 다쳤다는 소식을 듣고 급하게 집에서 나가야하는 상황에서 허둥대는 연기를 끌어내려면 비유로 군살을 늘리는 게 아니라 열쇠를 감추는 게 맞다.

관객1: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그냥 책상에 앉아 한 번에 작업을 시작하시는 편인지, 아니면 다른 메모라든가 하는 것들을 통해서 시나리오를 쓰시는 건지 궁금하다.
윤성호: 사실 나는 참 애매한 경우인데, 처음 만든 단편 외에는 자발적으로 구상해서 만든 작품이 거의 없다. 그래도 대답을 드리자면, 평소에 메모는 굉장히 많이 해두는 편이다. 그냥 생활 속에서 기승전결이 아주 짧게 해결되는 순간들이 있다. 그게 영화적으로 현신될 수 있을 것 같을 때는 얼른 메모를 해두는 거다. 그런데 그게 지금 내가 주로 하고 있는 단편, 콩트 작업에는 유리하지만 장편의 미션이나 내 안의 욕구가 있었을 때 거기에 맞추기란 굉장히 힘들다. 장편이 서울에서 부산을 가는 것이고 단편이 가회동에서 안국역까지 한 바퀴 산책하는 것이라고 치면, 단편은 큰 지도가 없이도 완만한 산보를 할 수 있지만 서울에서 부산까지 갈 때는 어떤 플랜이 필요하다. 그럴 때는 메모들로 접근하기는 힘든 면이 있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디렉터):
지금까지 작업하면서 본인의 돈을 한 푼도 쓰지 않았다고 했는데 그게 어떻게 가능했는지?
윤성호: 사실 예산 내역서에 들어간 돈이 없는 거고 밥이나 술은 많이 산 것 같다. (웃음) 방금도 말씀드렸지만 어디서 의뢰가 들어오지 않는데 영화를 만들어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딱 하나 제가 처음 기획한 게 작년에 만들었던 인디 시트콤 <할 수 있는 자가 구하라>였다. 그때도 돈 없이 찍을 수도 있었지만, 내가 그런 걸 못 견딘다. 일단 잘 먹어야 된다. 나는 김밥 먹으면서 못 찍는다. (웃음) 다른 감독님들보다 내가 윤리적이거나 해서가 아니라, 안온한 중산층 가정에서 자랐기 때문에. (웃음) 어쨌든 그게 내가 처음으로 먼저 돈을 달라고 한 경우였다. 그런데 계속해서 이렇게 작업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이런 식의 순환이 아직까지는 흥미로운데, 배우나 스태프들한테 못할 짓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럴 때 남는 건 연출자인데, 사실 내가 도움을 엄청 많이 받은 같이 작업한 스태프들이 성장하거나 다른 기회를 받지 못하는 것 같다.

(정리: 박예하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 관객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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