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영작 리뷰

전형적 장르 문법과 작가적 야심의 기묘한 충돌

- 알란 파커의 '페임'

 

시장통과 다름없는 예술고의 오디션 장면에서 영화는 시작한다. 더없이 진지한 얼굴로 자신과 어머니의 관계를 얘기하다 선생의 눈치를 보는 몽고메리의 자기소개에서 시작한 화면은 곧 무용과와 연기과, 음악과에 응시한 아이들의 실기시험 장면들을 빠른 속도로 훑는다. 그리고 지원서조차 제대로 내지 않은 아이가 오로지 실력으로 높은 점수를 얻어 합격하는가 하면 이른바 ‘문 닫고 합격’을 하는 아이도 있고, 친구는 붙었는데 자신은 떨어지자 온갖 저주의 말을 내뱉으며 눈물과 함께 퇴장하기도 한다. 도대체 왜 이 학교에 지원한 것인지 잘 모르겠는, 춤도 악기도 잘 다룰 줄 모르면서 무용과와 음악과를 차례로 순방했다가 결과적으로 연극과에서 합격한 아이도 있다. 이렇게 높은 경쟁률을 뚫고 예술고에 합격한 이들의 4년을 다루는 영화가 바로 <페임>이다. 영화는 이 중에서도 연극과의 3인방 맥닐리와 도리스, 랄프, 그리고 무용과의 리로이와 코코, 음악과의 브루노 등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이어간다.

 

<페임>에 대해 “꿈을 가진 10대 예비 예술가들의 좌충우돌과 좌절과 성장” 운운하는 건 너무 뻔한 소개가 될 것이다. 그보다, 영화평론가 구회영이 그의 저서에서 80년대 할리우드 영화의 가장 큰 특징으로 ‘장르의 해체’를 지적한 면을 상기하고자 한다. 어쩌면 이 영화야말로 애초 ‘뮤지컬’ 제작을 염두에 두고 기획되었으면서도 전형적인 뮤지컬 공식은 한사코 피하며 ‘장르의 해체’ 경향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10대의 방황과 성장을 다룬 점에서 청춘영화로, 예술고가 배경이라는 점을 십분 활용해 뮤지컬 장르의 전매특허라 할 만한 잼 공연 장면이 두 시퀀스나 삽입돼 있다는 점에서 뮤지컬로 볼 수도 있다. 특히나 이듬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주제가상을 차지하기도 한 아이린 카라의 주제곡이 큰 인기를 끌었는가 하면 그녀가 직접 주인공 중 한 명으로 나서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일부 ‘전형적인 외형’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결코 ‘전형적인 장르영화’로 이어지지 않는다. 특정한 한두 명이 아닌 다수의 주인공들이 무더기로 등장하는 캐릭터 구성, 영화의 클래이막스가 될 만한 중심적인 사건 대신 이들의 4년의 일상적인 학교생활을 스케치하듯 그려나가는 이야기 구조, 그리고 이를 위해 이들의 소소한 사연들을 빠르고 훑고 교차시키는 편집.

 

결정적으로, 이 영화의 두 번의 잼 공연 장면은 한 번은 일부 주인공들의 참여 거부와 황급한 퇴장으로, 또 한 번은 주변 인물들의 격렬한 항의와 싸움으로 이어진다. 뮤지컬 공연 장면의 전형적인 대단위적 ‘동화와 참여’ 대신 ‘불화와 방해’로 마무리되는 것이다. 이는 시퀀스를 넘어서, 전형적인 상업적 장르영화의 외피와 작가적 야심이 기묘하게 충돌하고 부조화를 이루며 오히려 독특한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이 영화의 전체적 특성을 만들어낸다. 그렇기에 다른 영화도 아닌 <록키 호러 픽쳐쇼>를 이 영화가 중요하게 인용하는 장면이 더욱 의미심장해지는 것이다.

 

김숙현 /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코디네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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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젊음의 음악과 꿈을 찬미하라

- 알란 파커의 <페임>

 

뉴욕에 실존하는 예술고등학교를 배경으로 한, 알란 파커 감독의 <페임>은 예비 예술가들의 꿈과 열정을 그리고 있다. 1980년에 개봉해 흥행을 거둬냈고, 삽입된 음악이 크게 유행했으며, 노래를 부른 아이린 카라가 단숨에 스타가 됐다. 이후 1982년부터 1987년까지 TV 시리즈로 제작되어 사랑받기도 했다. 거기다 할리우드의 끊임없는 자기복제의 유행을 따라 <페임>은 2009년에 영화로 리메이크되기도 했다. <페임>은 그만큼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은 작품이다.

 

 

평범한 외모 때문에 연기에 자신이 없는 도리스(모린 티피), 겉으로는 당당한 체하지만 불우한 가정환경과 상처를 지닌 연기 전공자 랄프(베리 밀러), 클래식 음악을 지루해하는 음악 전공자 브루노(리 커레리), 무용으로 입학했지만 노래와 연기에 더 관심 있는 코코(아이린 카라). 뉴욕이라는 공간적 배경에 맞게 흑인, 백인, 히스패닉 등 다양한 인종의 학생들이 모여 있고, 또 개성이 강한 학생들이 모인만큼 학교 안에는 다양한 문제가 터져 나온다. <페임>은 그들이 함께, 또 따로 자신들의 인생을 개척해 나아가는 모습을 그린다. 각자가 처한 상황과 문제들로 힘겨워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의 무게를 떨쳐낼 수 있는 찰나적인 순간들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음악과 춤으로 모두가 하나 되는 순간이 바로 그것이다.

 

1930년대에 거의 모든 관습이 세워졌고 황금기를 구가했던 할리우드 뮤지컬은 한 동안 관객들에게 잊힌 장르중의 하나다. 1980년에 등장한 <페임>은 그러나 이전의 관습적인 뮤지컬 영화들과는 좀 달랐고 성공을 거뒀다. 관습적인 뮤지컬 영화들이 유토피아적인 공간으로 이동해 노래와 춤의 향연을 보여줬다면, <페임>은 이야기와 완벽하게 합치된 음악과 춤을 선보인다. 그들이 부르는 노래는 공상이 아니라 실제로 노래를 부르는 것이고, 또 춤도 마찬가지다. 점심시간동안 식당에서 펼쳐지는 그들만의 공연이나, 그 유명한 아이린 카라의 ‘Fame'에 맞춰 학생들이 학교 밖으로 뛰쳐나와 흥겹게 춤추는 장면은, 그 연결에 있어서 단절적인 느낌이나 끊어짐 없이 매끄럽다.

여기에 한판의 음악과 춤으로 마무리하는 뮤지컬 영화의 관습을 이어받아 <페임>졸업공연의 전시로 이야기를 마무리 짓는다. <페임>의 엔딩은 그 에너지도 대단하지만 이야기의 맥락에서도 딱 맞아떨어진다. 인물들은 저학년 때는 저학년 나름대로 친구들과 경쟁하며 예술적 창의력이나 외모에 대한 걱정으로 힘들어했고, 또 고학년이 되면 불투명한 장래에 대한 걱정으로 괴로워한다. 관객으로서는 졸업 후에 그들이 스타가 될 것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는 상처받고, 성장하고, 다시 좌절하더라도 음악과 꿈을 찬미하는 이들의 축제를 보여주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입학을 위한 오디션에서부터 시작해 졸업공연으로 마지막 막이 내린다. 관객도 마찬가지로 저마다 가장 뜨거웠던 순간을 상기하면서 극장을 빠져나올 것이다.

 

글_배동미(시네마테크 관객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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