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토크

30년 전의 안개마을과 현재의 안개마을

- 영화제작자 심재명이 말하는 임권택의 '안개마을'

 

지난 20, 영화 제작자인 심재명 명필름 대표가 추천한 <안개마을> 상영 후 시네토크가 진행되었다. 심재명은 1984년에 허리우드 극장에서 이 영화를 처음 본 이후 스크린으로 다시 보는 게 삼십여 년만이라며 감회가 새로움을 술회했다. 영화 제작자로서는 처음으로 친구들 영화제에 참여한 심재명은 제작자 지망생들을 위한 진심어린 충고를 전해주기도 하였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디렉터): <안개마을> 1983년 당시 허리우드 극장에서 개봉하기도 했더라. 30년 만에 다시 상영을 하는 게 특별하다고 생각이 든다. 영화를 추천할 때 84년도에 허리우드 극장에서 영화를 봤다고 했는데.

심재명(영화 제작자): 84년에 이 영화를 처음 봤는데 당시에 대학교 1학년이었다. 84 3월에 월간 스크린이라는 잡지가 처음으로 창간이 되었다. 거기서 대학생 모니터 기자를 뽑았었다. 내가 해야 할 일은 매달 15일 마감을 지키는 것뿐이었는데, 그땐 모니터기자가 됐다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설레고 기뻤다. 잡지의 창간  이벤트를 허리우드 극장에서 했었다. 80년대뿐만 아니라 당대 대표적인 한국감독이었던 이두용, 하길종 등의 70년대 영화들까지 상영을 했는데, 이분들의 영화를 이때 처음 보게 되었다. 84년도에 영화제를 통해 한국영화를 본 것은 굉장히 충격이었다. 영상문화의 충격. 그 중의 하나가 안개마을이었다. 이 영화를 추천한 이유는 84년도에 봤던 영화가 뭐였는지, 내가 본 것을 다시 확인하고 싶어서였다. 비디오테이프가 아닌 스크린으로 보고 싶었다.

 

김성욱: 그 때 당시의 느낌이 어떤 것이었고, 오늘 느낀 것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 궁금하다.

심재명: 많은 부분이 다르다. 당시에는 집성촌이라는 한정된 공간 안에서 암묵적으로 무언가 이루어진다는 것의 매혹을 느꼈다. 이 영화는 12일 만에 촬영을 끝냈다고 하는데, 12일 만에 미장센과 주제에 깊이를 만들어낸다는 것에 감탄했었다. 그런데 오늘 보니까 영화가 되게 설명적이다. 임권택 감독님을 당시에 알았다면 내레이션을 다 빼면 좋을 거란 생각을 말씀드렸을 것 같다. 하지만 화면이나 배우들의 연기에 집중하면서 볼 수 있었다. 30년 만에 안성기 씨나 정윤희 씨 얼굴을 보는 게 굉장히 반가웠다. 조연출의 김상범 씨는 지금은 한국 최고의 편집감독이다. 그런 분들의 이름을 다시 이렇게 보니까 남다르다.

 

 

김성욱: 80년대의 제작자는 감독을 고르는 일에 몰두하고, 감독을 선택하면 모든 걸 감독이 다 하는 식이었다고 하더라. 80년대와 90년대 제작환경의 차이가 있었다면 무엇인지.

심재명: 80년대 제작환경이나 시스템에 대해서는 풍문으로 듣고 경험은 못해봤다. 90년대 중반에 내 또래의, 혹은 바로 윗세대인 젊은 제작자들이 많이 등장했다. 이들은 창작자인 감독과는 또 다른 입장에서 영화란 것에 큰 매력을 느끼고 창작에 존경심을 가지며, 제작에 대해 구체적으로 고민하는 새로운 세대였다. 그들이 봉준호, 박찬욱, 홍상수 등의 젊은 감독들과 만나게 되면서 90년대 중반 이후에 새로운 한국영화의 세계가 열렸다고 볼 수 있다.

과거의 제작자님들이 하는 풍문 같은 얘기들을 들어보면 마냥 신기하기만 하다. <바보들의 행진>(1975, 하길종)을 제작할 당시 하길종 감독님이 제작자 몰래 영사실에 들어가서 제작자가 잘라놓은 걸 다시 붙여 상영을 했다고 한다. 제작자가 처음에는 화를 냈지만 그 이후에는 서로 통쾌한 미소를 지으며 그냥 넘어갔다고 하더라.

  

관객1: 여성 관객으로서 마지막 장면은 깨칠을 정당화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이런 부분이 받아들이기 힘들었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심재명: 개인적으로 성적욕구의 배설구이자 암묵적인 합의하에 벌어지는 이 이야기들이 흥미로웠다. 여성의 욕망을 다룬 것을 보기 힘들기도 했고. 남성 중심적인 영화만 보다가 신선했다.

 

관객2: 상업영화가 만들어지는 과정이 궁금하다.

심재명: 굉장히 어려운 질문이다. 한편의 영화는 어떤 이야기를 세상에 내놓을 것인가 그것이 소재일수도 있고 한 장면의 이미지가 떠오를 때도 있고 제작자의 손에서든 감독의 손에서든 출발한다. 영화 제작은 굉장히 많은 회의와 의구심이 들게 하는 작업이다. 이 시대의 관객에게 효용가치가 있는 것인가가 굉장히 애매한 상태인 것이다. 영화를 만들어야겠다는 한 사람의 마음으로부터 출발한 이야기가 수십억 원의 자본을 가지고 여러 사람들이 함께 만든다. 투자사를 설득하고 주연배우를 설득하고, 자신이 욕망하는 것을 상대를 향해서 계속 설득하고 이해시키고 만들어내는 것이 영화작업이다. <안개마을>처럼 12일 만에 프로덕션이 끝나는 경우도 있지만, <건축학개론> 같은 영화는 십년이란 기간 동안 공회전을 하다가 2012년에 간신히 만들어지기도 했다. 콘텐츠를 책임지는 작가의 힘도 중요하지만 투자 배급사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힘의 역학관계가 바뀌는 상황이다. 한국영화의 새로운 지형도를 읽을 수 있는 시기라고 생각한다.

 

 

 

관객3: 임권택 감독님 작품 중에서 가장 높게 평가하는 작품은 무엇인가.

심재명: 대중적으로 정말 재밌게 본 건 <장군의 아들>, 제일 좋아하는 영화는 <만다라>. 작가주의 감독이라기보다는 영화 장인의 선에 서서 새로운 영화문법이나 영화세계를 깨쳐나갔던 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안개마을>을 추천하게 된 데에는 이 영화를 다시 확인하고 싶다는 열망과 동시에 임권택 감독님의 다음 영화를 명필름에서 하게 될 것 같다는 점도 작용했다. 얼마 있으면 팔십이 되시는데 유일한 현역이다. 임권택 감독님의 마지막 영화 세계를 경험하고 싶다는 게 소망이다.

김성욱: 영화 일을 하고 싶어 하는 관객들을 위해 마지막으로 한 마디 부탁한다.

심재명: 꿈꾸는 일로 먹고 사는 게 행운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영화를 하고자 하는 감독 지망생과 제작자 지망생에게 무엇보다 치열하라는 얘기를 하고 싶다. 제작자도 감독과 함께 궁극의 영화를 꿈꾼다. 궁극의 영화를 만들고 싶은 열망에 의해서 출발을 하고 함께 견디는 거다. 궁극의 영화를 만들고 싶은 열망, 본질적인 영화정신이 갈수록 필요한 때이지 않나 생각하고 있다. 2015년에 파주에서 만들게 될 명필름영화학교는 졸업과 동시에 장편영화 한편을 만들게 된다. 새로운 재능들이 끊임없이 영화계에 등장했으면 하는 바람에서, 그리고 수십 편의 영화를 만든 노하우를 젊은 후배들에게 나누고 싶다는 생각에서 영화학교를 기획하게 되었다. 혹시 지원하실 분이 이 자리에도 계실지 모르겠으나 관심 가지고 지켜봐 줬으면 좋겠다.

 

정리: 박민석 (관객에디터)  |  사진: 문지현(자원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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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창호 감독의 <깊고 푸른 밤>은 계약결혼을 통해 미국 시민권을 얻고자 하는 남자 호빈(안성기)과, 그런 남자들과 결혼과 이혼을 반복하며 돈을 챙기는 닳고 닳은 여자 제인(장미희)의 욕망이 상호 배치되면서 만들어지는 권력게임의 과정을 좇아간다. 영화의 첫 시작에서부터 우리는 두 인물의 성격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에피소드들과 만난다. 그러나 영화가 진행됨에 따라, 더없이 비열하고 사악한 남자와 더없이 냉소적이고 차가운 여자의 쓸쓸하고 황량한 내면을 상대 캐릭터의 눈을 통해 엿보며 연민을 갖게 된다. 이후 제인은 호빈과 새로운 미래를 꿈꾸며 그에게 사랑을 느낀다. 그러나 호빈이 욕망하는 미래는 고국에 두고 온 아내와 함께 하는 미국시민으로서의 삶이다. 애초 돈과 시민권의 교환이라는, 상호 윈윈 게임에서 시작된 이들의 욕망은 공존할 수 없는 충돌로 나아가며 결국 거대한 파멸을 맞는다.


'미국 올 로케'로 이루어진 <깊고 푸른 밤>은 <적도의 꽃>(1983), 그리고 뒤에 만들어진 <젊은 남자>(1994)와 함께 배창호 감독의 필모그래피에서 다소 특이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그의 영화들이 대체로 착하고 순수한 성품을 지닌 인물들을 낙천적이고도 따뜻한 시선으로 그리면서 기독교적 휴머니즘을 드러내는 경향이 짙기 때문이다. <적도의 꽃>에서도 장미희가 연기했던 선영은 절대적 사랑에 대한 기대와 믿음을 버리지 못하는 순수한 면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는 인물이었다. 그러나 <깊고 푸른 밤>의 제인은, <적도의 꽃>의 선영이 살아 계속된 배신과 상처를 겪으며 인간과 사랑에 대한 기대를 완전히 버린 채 냉소와 이해타산을 철갑처럼 몸에 두르게 된 인물로 보인다. 그런가 하면 <깊고 푸른 밤>에서의 안성기의 모습은 이후 <젊은 남자>에서의 이한(이정재)을 예고한다.

무수한 감독들이 아메리칸 드림의 허상과 좌절을 대체로 누아르와 갱스터 장르를 통해 그려왔고, 특히 ‘그린카드’를 둘러싼 갈등들은 대체로 로맨틱코미디를 통해 순화해 표현해왔다. 그러나 배창호 감독이 선택한 장르는 치정극이다. 남녀 간 끈적한 욕망과 배신, 그리고 비루한 삶과 그로 인한 파멸의 과정을 통해 드러나는 ‘아메리칸 드림의 죽음’은, 한미 FTA 비준이 통과된 현재 또 다른 의미를 곰씹게 한다. 이 ‘치정’을 더없이 설득력 있게 받쳐주고 있는 것이 바로 안성기의 존재다. 차이나타운을 걷는 영화 속 안성기의 이미지는 <택시 드라이버>(1976)의 오리지널 포스터에서 로버트 드니로의 모습과 그대로 겹친다. 젠틀하고 부드러우며 다소 수줍고, 언제나 타에 모범이 되는 안성기가 통상적인 이미지라면, 이 영화에서는 젊고 치명적이며 위험한 안성기를 만날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안성기는 놀랍도록 섹시하다.

(by 김숙현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코디네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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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창호 감독이 데뷔작부터 연달아 11편의 작품을 함께한 배우 안성기는 이번 영화제에서 <깊고 푸른 밤>을 선택했다. 예정과는 다르게 배창호 감독도 시네토크에 함께해 더욱 풍성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두 사람의 대화에서는 오랜 시간 함께 작품을 만들어온 만큼 감독과 배우의 관계 이상의 관계를 엿볼 수 있었다. 덕분에 감독과 배우의 첫 만남부터 27년이 지나 다시 보는 <깊고 푸른 밤>까지 즐거운 추억을 꺼내듯 이야기가 오고 갔고,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밀도 높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안성기(배우): 러브신들이 왜 그렇게 많았는지.(웃음) 힘들었다. 웬 폭력이 이렇게 많고 왜 담배를 그렇게 피워댔는지. 그때는 담배가 굉장히 자연스러웠다. 지금은 시대가 많이 변해서 거슬리는 것도 있지만, 하여튼 관객들 핑계 삼아 오랜만에 영화를 보게 되어 좋았다.

배창호(영화감독): 서울아트시네마에서 다시 만나 봬서 반갑다. <깊고 푸른 밤>은 4년 전 특별전 때 보고 다시 보게 되었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디렉터): <깊고 푸른 밤>은 1985년 3월 1일 명보극장에서 개봉해서 7월 31일까지 49만 명을 동원했다. 당시 스필버그의 <인디아나 존스>가 42만 명이었다. 이어 코리아극장에서도 상영되어 10월 13일까지 관객 수 60만 명으로 당시 방화사상 최다 관객 수를 동원했다. 처음 이 영화 작업을 시작할 때 이렇게 대중적으로 흥행하리라고는 짐작하지 못했을 것 같다. 영화 들어갈 때도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안성기: 영화의 성공은 누구도 모르고 예전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몇 가지 좋은 요소들은 있었다.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는 젊은이 이야기가 당시 소재로는 새로웠고 해외 올 로케이션으로 찍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리고 미국 가서 제대로 허가 다 받고 찍었다. 경찰이 길 다 막아주고. 좀 더 제대로 찍었기 때문에 좋은 반응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또 당시 한국영화의 큰 문제점이 칼라와 사운드 문제였다. <깊고 푸른 밤>은 네가 현상을 미국에서 했고, L.A.의 광량이 풍부했기 때문에 화면상으로도 굉장히 좋았다. 이러한 점이 가장 기대가 됐었다. 자랑 같지만 나하고 배창호 감독하고 최인호 선배하고 하면 당시 대부분 잘 됐다.(웃음)

배창호: 그렇게 흥행하리라고는 예상 못했다. 자신감은 있었지만. 기획 때 이 작품의 구상안이 여러 개 있었는데 가장 대중적으로 편안하게 접근했다. 이 정도면 많이 대중적이지 않을까 했는데 그래도 관계자들 보기엔 더 흥행작처럼 보이진 않았었다. 하지만 입소문으로 단관에서 꾸준히 가게 됐다.

안성기: 우리 스태프가 15명이 안됐다. 엔딩 타이틀이 이렇게 짧게 올라가는 영화 요즘에는 보기 힘들다.(웃음) 그나마 중복된 게 있는데도 짧았다. 15명 인원으로 이런 영화를 찍었다는 게 대단히 놀랍다고 생각을 한다.

김성욱: 안성기 선생님은 배우로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 하는 것이 몸의 단련이라고 표현하신 적이 있다. 특히나 이 영화에서 안성기 선생님의 몸의 느낌, 동물적인 에너지가 강하다고 느꼈다. 오늘 다시 보면서 백호빈이란 인물을 어떻게 생각했는지 궁금하다.

안성기: 전체적으론 부끄러운 느낌이다. 연기의 톤이 좀 들쑥날쑥한 걸 많이 느꼈다. 너무 의도적으로 많은 표현을 했다. 지금 시선으로 보니 좀 더 감춰줬어야 하지 않았나 하는 것이 있다. 그땐 그게 최고인줄알고 했다.(웃음) 그런데 <깊고 푸른 밤> 이전에도 그리고 이후에도 이런 식의 연기를 한 작품은 없었다. 그래서 아마 이 영화를 보신 분들은 평소에 못 보던 저의 모습을 많이 보실 것 같다. 나도 약간은 낯선 느낌이 있다.



김성욱: 배창호 감독님 영화중에선 가장 에너지틱한 인물이 백호빈이 아닌가 싶다. 복합적인 인물이다. 영화 첫 장면이 캐릭터를 보여준다. 그런데 원래 이렇게 시작 안하려고 했다가 나중에 추가했다고 들었다.

배창호: 구성상으로도 첫 시나리오는 이렇지 않았다. 하지만, 대중들을 처음부터 강하게 이끌어오기 위해선 그 앞에 인물들을 보여 주는 게 낫겠다고 생각해서 촬영 중간에 삽입했다. 백호빈이란 인물은 아메리카 드림에 대한 집착이 강해져서 결국 광기에 젖고 마는 남자다. 그런 배역을 안성기 씨가 했기 때문에 관객이 좀 더 인간적으로 이해를 하게 되는 거다. 백호빈 또한 욕망을 추구하지만 외로움의 흔적이 있는데, 인간의 집착과 허상에 관한 이야기를 안성기 씨가 잘 표현해주었다고 본다. 요즘은 이런 배우가 거의 없다. 안성기 씨가 배우로서 아우라가 좋다, 멋있다, 감탄을 하면서 봤다.

안성기: 영화 촬영할 때 에피소드가 있다. 처음 차를 몰고 아내의 카세트를 듣는 장면을 찍으러 밴 2대, 승용차 1대, 고장 굉장히 잘나는 소품 차 직접 몰고 갔는데 앞에 어마어마하게 큰 컨테이너 차들이 쫙 있었다. 로버트 드 니로 나온다고 했었나, 아무튼 유명한 배우가 나와서 촬영을 하고 있다고.(웃음) 근데 그 규모가 너무너무 어마어마해서 마음이 우울했다. 그 우울한 게 바로 아내가 보내준 테이프를 듣는 장면으로 이어져서(일동 웃음), 그 생각만 해도 연기가 제대로 됐다.


김성욱: 당시에 한국영화에선 쓰지 않은 카메라의 촬영 기법들이 눈에 띈다. 개봉당시에 화제가 됐던 360도 패닝이라든지 크레인을 쓴 장면들도 많았다.

배창호: 장비들은 현지에서 렌트해서 썼다. 미니크레인이 나오는데 촬영부 두 사람이 그걸 다 움직였다. 조감독도 재작년 작고한 곽지균 감독 혼자였고. 장비가 많아서 애를 먹었다. 더 좋은 장비를 동원할 수도 있었지만 그 정도로 만족했다.

김성욱: 오늘 보시면서 어느 장면이 가장 인상적으로 기억되었나?

배창호: 역시 백호빈이 미국을 향한 집념이 인간적으로 느껴질 때, 미국국가 부르는 장면들이랄지. 마지막에 자기도 부인에게 배반당했다는 걸 알고 광기에 젖는 웃음, 그런데도 집착을 버리지 못하는 모습들. 인간의 욕망과 집착을 벗어나면 좋겠지만 그 굴레에서 회전하는 모습이 인간이니까 그런 안타까움을 느낄 때의 장면이 좋았다.

 



관객1: 영화에 인종, 여자에 대한 사회적 편견 등 여러 이슈나 인간적 관점이 있는데 감독님은 어떤 관점으로 만드셨는지 궁금하다.

배창호: 처음에 모티브를 갖고 어디로 달려간다 했을 때 <깊고 푸른 밤>은 파멸이다, 라고 정했다.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허상에 대한 집착과, 외로움과 소외를 견디지 못하는 두 사람이 화해 없이 부딪치면 파멸로 갈수밖에 없겠다 생각했다. 마지막에 제인을 살릴까, 깊고 푸른 사막에 가만히 얼어붙은 듯이 찍을까도 생각했는데 관객들에게 전달되는 게 당시로선 좀 어려웠다. 그래서 확실하게 파멸로 갔다. 내가 낭만주의자였다면 인물을 살리려 했을 것이다. 물론 지금 27년이 지나서 이 소재로 찍으라하면 또 다른 영화가 될 것이다. 30대 초에, 한국영화 형편에서 할 수 있었던 최선의 연출이었다고 본다.

관객2: 당시 쓰이지 않던 카메라 워크가 쓰였다고 했지만 미국적인 것과 한국적인 것이 섞여있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360도 패닝이 굉장히 한국적이고 클리셰이기도 하다고 생각한다. 한편으로는 말씀하신 헬기 샷이나 지평선을 달리는 차 장면은 미국적인 느낌이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하다.

배창호: 원형이동은 그 당시 내가 본 한국영화중에서는 없었다. <적도의 꽃> 때는 휠체어로 한 게 처음이었다. 미국에 가니까 원형이동차를 처음으로 빌릴 수 있어서 한국영화로는 처음 시도를 했을 것이다. <깊고 푸른 밤>의 몇 장면은 유럽영화도 좋아했지만 미국영화를 많이 볼 수밖에 없는 세대로서 콘티 짤 때 파편처럼 남아 있었던 거 같다.

관객3: 백호빈의 한국 아내가 우편물을 편지가 아닌 테이프를 보내온다. 의도된 건지. 또 백호빈 극중 이름이 그레고리 백인데, 원작소설에도 그 이름이 있었는지 궁금하다.

배창호: 당시 외국에 가면 육성으로 테이프로 보냈었다. 나도 7~80년대 케냐에 있을 때 어머니, 아버지, 조카 노래까지 다 테이프로 녹음해온 것을 들었다. 원작엔 아마 없을 거다. 부인 얘기는 거의 다 오리지널로 만든 거니까. 그레고리 백은 시나리오과정에서 나왔나 싶은데, 약간 유머를 넣고 백호빈의 성격, 자아 현시적인 들뜬 모습을 맞추기 위해서 넣었다.

김성욱: 당시에는 의상소품담당이 없어 안성기 선생님 본인이 직접 조달했다고 들었다.

안성기: 전부 내가 입던 옷들이다.(웃음) 특히 누런 깃 얇고 헐렁한 와이셔츠는 당시 좋아했던 옷이었고, 청바지도 몇 개 있었는데 제일 붙고 헐은 것을 입었다. 가죽잠바는 배감독하고 같이 미국에서 산거 같다.

배창호: 따로 부서가 없었다. 의상, 분장, 소품도. 감독, 조감독 같이 했다. 마지막 두 여인이 바에서 마주칠 때 백호빈이 좀 어두워진다. 안성기 씨가 눈 밑을 좀 까맣게 분장 하면 어떨까 해서. 분장도 연기자가 직접 했다.(웃음)

관객4: 수많은 영화 중 이 영화를 선택했을 때 분명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영화사에 획을 그어서, 혹은 지금 현재 사회를 읽을 수 있고, 영원히 변치 않는 인간의 관계적인 문제를 드러냄으로써 관객들에게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한다든지.

안성기: 그렇게까지 의미를 두니 힘이 든다. 그냥 보고 싶어서 선택한 것이다.(웃음) 배창호 감독님의 4년 전에 전작전할 때 ‘봤는데 지금도 좋더라’는 얘기를 들었다. 나는 본지 25년이 됐다. 개인적으로 일단 궁금했다. 여러분들에게 보여드린다기보다는 그때 여러 가지 좋았다고 생각했던 기억들이 맞는 건지 확인해보고 싶었다.

관객5: 안성기 배우님께 드릴 질문인데, 지금도 터프가이나 악역이 제공된다면 하실 의향이 있는지, 혹은 그런 제안이 오신 적이 있는지 궁금하다.

안성기: 주제에 따라서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충분히 있는 그런 역할은 몇 번 했었다. 또 <인정사정 볼 것 없다>처럼 살인을 했지만 미학적으로 아름답게 묘사가 돼서 악인인지 아닌지 모르는 그런 인물들은 좀 했는데 단순 악인의 모습은 좀 하기 힘들어한다. 그리고 구태여 그것을 배우의 한계라고 느끼지 않는다. 좋은 인물로 좋은 이야기를 하고 싶은 생각이 있다.

김성욱: 작년에 출간된 안성기 선생님 평전에서 80년대 영화에 출연하면서 했던 말을 인상적으로 기억한다. ‘시대가 나의 얼굴을 요구했었다. 그런 것에 대한 자각 같은 것이 있었다.’라는 말이다. 안성기 선생님 올해 환갑이시다.(웃음) 나이 얘기하면 안되는데, 저희가 안성기 선생님 특별전을 해볼까 생각했었다. 제목은 아까 그 문장을 따서 ‘시대의 얼굴’ 이렇게 생각을 해봤다.

안성기: 7~8편정도 나름대로 참 재미있다고 생각하는데, 관객들이 손을 안 들어 준 영화들이 좀 있다. <킬리만자로> 같은 작품들 말이다. 그런 영화를 모아서 같이 보고 싶은 생각은 있다.

김성욱: 그럼 올해 하는 걸로 하겠다.(웃음) <흑수선> 이후로 두 분이 같이 작업을 안 하셨는데, 여러 가지 상황이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두 분이 또 작업하는 영화를 볼 수 있을까 이런 기대와 희망이 있다.

배창호: 그런 마음은 충만히 있는데 잘 아시다시피 영화 기획이 작가적 자세보단 자본의 틀에서 움직이는 것들이 많으니까. 늘 하는 얘기지만 타협하지 않고 원하는 영화로 안성기 씨와 함께 하려다보니 시간이 걸리는 거다. 곧 될 것이라 믿는다. 그런 신념과 의지를 가지고 있다.

안성기: 최근에 <부러진 화살>을 통해 정지영 감독님과 20년 만에 만나 하는 게 현실이 되다보니 언제든지 다시 만나서 할 수 있을 것 같고 그날을 예전부터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부러진 화살>도 저예산으로 했다. 기존의 큰 영화를 하는 투자 쪽에 기대지 않아도 작품성 있는 시나리오가 있다면 언제든지 좋은 영화 선보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배감독 힘내요.(웃음)

정리: 김휴리 | 에디터

사진: 최용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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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를 만나다] <무사>의 김성수 감독

‘2011 시네바캉스 서울’ 개막 첫 주인 지난 7월 30일 이른 저녁 바캉스 시즌에 맞춰 특별히 준비한 ‘작가를 만나다’가 열렸다. 이번 달에는 한국의 대표적인 무협영화로 평가받는 10년 전의 영화 <무사>를 상영하고, 상영 후에는 이 영화를 연출한 김성수 감독과 함께하는 자리가 마련되었다. 작업당시 제작과정에서의 에피소드부터 영화에 대한 애정까지 다채로운 이야기가 오간 소중한 시간의 일부를 여기에 담는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디렉터): <무사>가 개봉했을 당시의 평가가 약간은 야박했다고 생각된다. 다시 이 영화를 보면서 많은 시간이 지났지만 이 영화가 갖는 힘과 이 정도 규모에 이 정도 에너지를 갖고 있는 대중영화가 있나 의심스럽다. 많은 분들이 궁금하실 것 같은데, 애초의 4시간 30분 분량에서 주로 어떤 부분들이 빠진 건가?
김성수(영화감독): 굉장히 긴 영화를 끝까지 봐주셔서 감사하다. 개인적으로 감개무량하다. 이 영화를 만들 때 호기를 부려서 아주 긴 영화를 만들어보자 했다. ‘내 영화는 이렇게 담겨져야 해’하고 편집을 했더니 처음에는 4시간이 넘는 러닝타임이 나왔다. 욕심을 내서 9명의 인물들의 이야기를 다 가져가고 싶었고 그들의 개인적인 이야기들이 담겨져 있었다. 몇몇 에피소드들과 전투장면들의 시퀀스 자체가 빠지고 150분가량으로 완성됐다.

김성욱: <7인의 사무라이>같기도 하고, 마지막 부분은 <와일드 번치>의 느낌도 있다. <비트>나 <태양은 없다>와 같은 전작들과는 다른 느낌이다. 협업으로 진행되었던 전작들과 달리 <무사>의 구체적인 원안과 시나리오도 직접 쓰셨다.
김성수: <비트>나 <태양은 없다>는 당시 유행하던 영화들, 특히 스토리의 기승전결이 해체되고 인물중심으로 따라가고, 젊은 인물들이 나오는 영화 스타일에 편승해서 찍은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영화를 사랑했는데, 누구나 자기 마음속의 영화는 어린 시절에 있는 것 같다. 나의 어린 시절의 영화들은 서부극들이다. 재밌는 건, 외국의 친구들이 <무사>를 보더니 아시아 무협영화의 외피를 두른 웨스턴영화라고 말하더라. 만들고 보니, 말씀하신 것처럼 페킨파의 영화나 <7인의 사무라이>같은 영화들이 섞여 들어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기억 속에 있는 영화의 원형 같은 것들을 섞어서 만들다보니 다른 작가들과 작업하는 것이 불편해서 혼자서 썼다.

김성욱: 숲에서 주진모 씨가 부상을 입고 4~5명이 매복을 하면서 공격을 하는 순간의 장면은 거의 대부분 클로즈업으로 이루어졌다. 굉장히 긴박한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고 거기에 음악의 리듬까지 더 해진다. 숲에서의 전투의 혼란스러움, 게릴라전의 느낌이 있다. 액션씬에서의 리듬과 인물의 얼굴들, 느낌이 인상적이다.
김성수: <무사>를 찍을 때 이전 작품과는 다르게 고전적으로 찍겠다고 생각했다. 말씀하신 숲에서의 장면은 계획한 것이 아니라 즉흥적으로 찍은 장면이다. 원래는 정글 같은 숲에서 액션을 찍고 싶었는데, 장소 헌팅이 안돼서 과수원에서 찍어야 했다. 과수원의 나무들이 일렬로 쭉 서있어서 애초에 생각했던 숲의 전투 느낌이 전혀 나질 않았다. 고민 끝에 과수원의 나무들 사이에 산에서 가져온 풀과 잡목들을 스태프들이 들게 했다. 그렇게 공간 전체를 찍는 대신 가까이서 찍으니까 숲의 느낌이 났다. 개인적으로 극단적인 클로즈업을 좋아하고, 이전 작품들에도 클로즈업이 많다. <무사>엔 그런 장면들이 별로 없는데, 그 장면에서는 클로즈업을 많이 쓰게 되었다. 그렇게 편법으로 찍었는데 그 장면에 대한 반응들이 좋더라. (웃음)

김성욱:
상당 부분 사막에서 촬영되었는데, 사막에서의 촬영은 어땠나?
김성수: <무사>를 찍은 곳은 회족자치구에 있는 사막이다. 보통 다른 영화들에서 보는 사막 장면은 좀 더 북쪽의 신장자치구의 사막인데, 실제로 가보면 굉장히 딱딱한 바닥이다. <무사>를 촬영한 곳은 관광지로 꽤 알려져 있는데 예나 지금이나 영화촬영은 하지 않는 지역이다. 모래가 굉장히 고아서 촬영하기가 어렵고 여름엔 더욱 힘들다. 하지만 사막에서 촬영하고 싶었고, 여름에 시작해서 겨울로, 계절에 따라서 움직이는 것을 고집했다. 그렇게 힘들 줄 몰랐다. 한낮에는 기온이 45도 정도이고 모래의 열반사 때문에 서있기 조차 힘들다. 굉장히 힘들었지만 지나고 나니까 사막에서의 촬영이 추억으로 남는다.

김성욱: 영화를 처음 설계할 때부터 토성에서의 액션씬을 제일 마지막에 염두에 두었나?
김성수: 그렇다. 토성씬은 <무사>에서 가장 찍고 싶었던 장면이었다. 시나리오를 쓰기 전부터 바닷가에 있는 토성을 상상하며 그려둔 게 있었다. 영화의 토성은 직접 만든 것이다. 잘 만들어진 토성이 허물어져서 십여 년 정도 방치된 것을 원했는데, 해안의 암반위에 직접 토성을 만들어서 다시 부수고 거기에 불을 지르고 소금물을 입히는 작업을 반복해서 완성된 모습이 전혀 세트라는 느낌이 들지 않을 만큼 잘 만들어져서 깜짝 놀랐다.

관객1: 마지막 전투 장면에서 원나라의 장수가 불리함을 무릎 쓰고 정우성씨를 보내주는 부분이 잘 이해되지 않았다.
김성수: 원의 장수가 그를 보내주는 것은 일종의 남자들의 가오다. 그 전에 전쟁도중 전령이 자신들의 장수가 죽었다고 전하는 장면이 있는데, 역사상으로는 몽고시대의 종언을 고하는 장면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제는 승패를 떠나 자기를 소진시켜버리겠다는 마음이 있으니까 더 이상 승리에 연연하지 않는 느낌이 있다. 단, 공주는 명나라 사람이고 자신들의 시대에 종언을 고한 것이 명나라였기 때문에 공주만은 죽이려 했던 것이다.

관객2: 액션영화를 더 찍으실 생각은 없으신지?
김성수: 액션영화를 좋아한다. 정말 찍고 싶은 영화는 순도 100%의 액션영화이다!



김성욱: 영화가 개봉했을 때 여러 가지 악재도 있었고, 개봉 이후의 반응들에 아쉬운 부분이 있으셨을 것 같다.
김성수: 영화의 편집을 직접 하는 편이다. 편집을 하면서 굉장히 집중해서 300번 정도는 보게 되니, 사실 촬영할 때보다도 편집할 때 더 탈진상태가 된다. 그래서 영화가 끝나고 나면 그 영화의 운명에 대해서 그다지 생각하지 않는 편이다. 그 영화를 떠나보내는 느낌이 있다. <무사>는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이 영화가 부당한 대접을 받았다는 생각하지 않는다. 정말 고생을 많이 했던 영화라 이 영화를 같이 했던 사람들과 함께 다시 보고 싶다. 그 친구들의 피와 땀이 어려 있는 영화이다. 그 사람들을 모두 모아서 한 번 파티하듯이 보고 싶다.

정리: 장지혜(관객에디터) 사진: 주원탁(자원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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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토크] 배우 전무송·안성기·송길한 작가와 함께한 임권택 감독의 <만다라>

지난 20일 일요일 늦은 오후 마지막회로 상영된 임권택 감독의 <만다라> 상영 후 열린 시네토크의 현장에는 특별한 친구들이 가득했다. 당초 계획과 달리 몸이 편찮으신 관계로 참석이 어려우셨던 감독님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영화의 두 주연배우 전무송, 안성기 씨와 시나리오작가 송길한 씨가 서울아트시네마를 찾았다. 그리고 객석에는 영화 <만다라>의 감수를 맡아주셨던 평상스님까지. 평소 임권택 감독과 친분이 두터운 패밀리들이 모였다. 그들은 30년 전 영화임에도 새록새록 그 때 그 시절을 회고했다. 정성일 영화평론가의 진행으로 넘치는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았던 그 현장을 전한다.


정성일(영화평론가/영화감독):
영화를 30여년 만에 극장 객석에서 본 소감이 어떠한가?
전무송(영화배우): 영화가 개봉했을 때 단성사에서 처음 이 영화를 볼 때의 느낌이 났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 안성기, 송길한 작가, 평상스님과 함께 이 영화를 보니 감회가 새롭다. 촬영당시 추억들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송길한(시나리오 작가): 이렇게 다시 보게 되니 감흥이 남다르다. 다시 한 번 영화에 조목조목 감수를 해주시고 도움을 주신 평상스님께 감사드린다. 유난히도 가족같이 끈끈했던 스텝과 배우들의 마음이 묻어나는 작품이다. 작품 속에 들어있는 정신들을 오늘 함께하신 관객들이 알아주셨길 바란다.
안성기(영화배우): 성인이 되고 배우 활동 초창기 시절 출연한 영화다. 당시엔 나이 좀 먹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까 ‘애’다. 당시 정일성 촬영감독님과 임권택 감독께서 ‘정노인’, ‘임노인’ 하시며 장난치셔서 정말 나이가 많으신 노인인줄 알았다. 하지만 알고 보면 지금 현재 내 나이보다 어리셨다. 참 세월이 느껴진다. 또 촬영하면서 겪었던 여러가지 에피소드들이 생각난다.

정성일: 마이크를 객석에 넘겨 영화의 고문을 봐주신 평상스님의 소감도 듣고 싶다.
평상스님: 오랜 세월이 지나 30여년 만에 보는 것이다. 죽지 않고 살아서 이렇게 볼 수도 있구나 싶다. 이런 일도, 저런 일도 있었지 하는 생각들이 난다. 옛 생각을 하게 되서 좋고 여러분과 이 영화에 대한 얘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게 감회가 남다르다.
안성기: 염불 한번 해주셔야지 좋지 않겠나? (웃음) 영화 속 나와 지산스님의 염불은 모두 평상스님의 염불 외는 소리로 대체 되었었다.
전무송: 우리도 잘 배웠는데 리듬이 안 좋았다.
송길한: 둘의 염불 연습의 증인은 나다. 순천에서 촬영할 때 같이 술을 많이 마시고 나는 잠시 나왔는데, 민박집 불이 그 늦은 밤에 환히 켜진 채로 있더라. 다가가 보니 고 곽지균 조감독과 두 배우가 밤을 새워 다음 촬영씬 리허설을 하더라. 술이 확 깨던 순간이었다.

정성일:
'필름 2.0'에서 비평가들에게 ‘내인생 최고의 한국영화’를 꼽으라고 했을 때, 1위에 <오발탄>, 2위에 <하녀>, 그리고 3위에 <만다라>가 올랐다.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 암살이후 모두들 지겨운 시대의 끝이라고 생각했지만, 유신과 1980년 5월 광주사건은 한국 사회가 다른 차원으로 돌입한다는 생각을 가지게 했다. 그 때 그 시대의 공기를 전해주는 두 영화가 <바람불어 좋은 날>과 <만다라>였다. 시간의 무게를 견디고 <만다라>는 오늘 우리에게까지 왔다. 보는 사람을 사로잡는 이 영화의 힘은 절실함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촬영당시 병 때문에 죽을 각오로 찍은 정일성 촬영감독의 절실함과 삭발투혼을 발휘한 두 배우 분, 혼이 빠질 때까지 시나리오 집필을 하신 송길한 선생의 절실함이 마법의 힘을 발휘하는 것 같다. 또한 이 작품은 안성기라는 배우의 위치를 굳게 해준 영화라고 생각된다. 삭발을 하며 집중해 임했던 이 영화가 갖는 개인적인 의미에 대해 듣고 싶다.
안성기: <만다라>라는 작품을 만난 것은 행운이었다. 유신 정권 속에서 꿈틀하는 힘을 발휘한 두 작품 모두에 출연한 것 또한 운이 좋았다. 그 이전에 성인 배우로서 찍은 4편의 영화에서 나는 회의를 느꼈다. 일생을 걸고 영화에 뛰어들었는데 약간 암울한 감정이 있었다. 그러던 중에 <바람불어 좋은날>을 만나 새로운 영화를 관객에게 보여줬고 나는 힘을 얻었다. 그리고 바로 <만다라>를 만나 영화의 새로운 역사를 쓰는 것에 함께 수 있었다. 배우로서 입지를 굳힐 수 있었고 그 이후 내가 원하는 작품에 내가 배우로서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작품에 출연할 수 있었다.

정성일: 많은 감독들과 작업해보면서 느낀, 임권택 감독님의 연기지도 스타일이 갖는 차별성은 무엇인가?
안성기: 구체적으로 말씀을 안 하신다. “해~봐, 해봐” 하실 뿐이다. 임권택 감독님은 특이한 습관이 있으신데, 감정 연기에 따라 고개를 올리신다. 고개가 끝까지 뒤로 안 올라가시면 NG고 고개가 다 올라가시면 좋은 것이다.

정성일:
전무송 씨는 원래 연극배우로 활동하시다가 처음 하게 된 영화라고 알고 있다. 처음 만나 같이 작업한 영화감독인 임권택 감독님은 어떠셨나?
전무송: 일반 관객 앞이 아닌 카메라 앞에서 연기를 해야 했다. 영화계 선배인 안성기 씨가 카메라 앞에 서는 법에 관해 많은 도움을 주었다. 처음 감독님을 만났을 때는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지만 실제로는 인자하시고 부드러우셨다.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그저 “이렇게 해봐요. 저렇게 해봐요.” 하셨다. 그러곤 “어때요? 괜찮아요?”하시는데 내가 이상하다 하면 다시 찍곤 했다. 배우에게 표현과 움직임에 대해 말하지 않으시지만 당신 마음에 들지 않으면 들 때까지 촬영을 다시 하게끔 지도 하신다.

정성일: 이 영화의 시나리오는 참으로 이례적인 것 같고 그 형식이 파격적이라고 느껴진다. 쓰인 배경이라든지 쓸 때 어떤 마음가짐으로 했는지 궁금하다.
송길한: 당시에 일반 회사에 들어가 월급쟁이가 되려 했다. 그러던 중 임감독님이 이미 촬영이 들어간 영화가 큰일이 났다며 살려달라고 찾아왔다. 영화사 기획실장이였는데 집에 일이 생겼다고 하고 충무로 여관방에 들어가 4박 5일 동안 잠도 안자고 시나리오를 섰다. 여관방을 나왔을 때 하늘이 노랗다는 말을 실감했다. 극도로 몰려서 초능력적인 힘이 발휘된 것인지, 내가 썼나 싶을 정도로 좋은 대사들이 나왔다.

정성일: 영화와 원작 소설의 엔딩이 다르다.
송길한: 절집의 비리는 이 영화가 해야 되는 얘기가 아니라고 생각되었다. 두 젊은이가 삶을 완성해가는 길에 관한 얘기니까, 두 젊은이가 치열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담아내야 했다.


관객1: 안성기 씨 출연작을 많이 보았고 연기에 감동을 많이 받는다. <만다라>에서는 어떻게 캐릭터를 해석했기에 이런 연기가 나온 것 인가?
안성기: 착한 사람이다. 허나 화도 있다. 선배스님인 지산스님이 쿡쿡 찔러올 때 분노의 감정도 있고 그것을 표현해야했다. 지금 보니 부족한 점이 너무 많이 보인다. 특히 엔딩씬에서 어머니의 손을 잡고 너무 밝게 속이 들여다보이게 웃고 있다. 조금 무표정으로 해도 더 좋았을 것 같다. 이 영화에서 나의 연기는 미숙한 점이 많았다.

관객2: 법운스님의 마지막 장면이야기가 나오니 지산스님의 마지막에 관해 묻고 싶다. 어떤 생각과 마음가짐으로 그 죽은 척하는 연기를 했나? 그리고 그 당시 눈이 정말 많이 온 것 같은데 기다린 것인가 우연의 일치인가?
전무송: 설악산에서 촬영했는데, 오색 약수터에서 눈이 오길 보름을 기다렸다. 4월 중순까지 눈이 오는 경우도 있다는 동네 주민의 말에 기다리고 기다리다 내년에 찍던지 하자하며 철수를 하려고 한 날에 눈이 그렇게나 많이 내렸다. 마지막에 딱히 어떤 표정으로 누워있자 한 것은 아니다. 이 영화에서 계속 남는 것은 “견성하거든 나 좀 제도해줘”와 “내 눈의 점안은 누가 해주나”이다. 내가 하지 못하는 일들이고 남이 해줘야한다. 제대로 알고 행동하고 생각하는 것이 우리의 고민거리다. 나는 지산이 그것을 알고 죽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평생 구하고 있는 인생의 답을 나타내는 탑 밑에서 죽었다. 계속 남는 두 대사와 나의 탑을 생각하고 그것을 찾는 마음으로 연기했다.


관객3: 지산스님이 애인을 찾아갔을 때 애인이 고무신과 양말을 빨아주는 장면이 아름다우면서도 이해가 선뜻 안됐다. 무슨 의미가 깃든 것인가?
송길한: 굉장히 아름다운 씬이다. 아무리 창녀지만 기둥서방이 있다. 겪어보니 좋고 무슨 고민이든 털어놓을 수 있어 지산을 애인 삼은 것이다. 딸랑 고무신 하나 신고 만행을 하는 그의 신을 씻어 준 것은 막달라 마리아가 비싼 향유를 예수에게 부은 것과 닮았다고 본다. 별 것 아닌 것 같은 씬이 빛나는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
평상스님: 몇 가지 더하고 싶은 말이 있다. 영화 제목 ‘만다라’의 뜻은 '세계', '세상'이다. 우리가 사는 곳, 우주, 인생, 자연을 담는 총체적인 말이다. 엔딩이 원작과 달라진 이유는 내 고집도 있었다. 법운스님이 수행자로서의 인생에 있어 새로운 출발은 하게 한 것은, 지산의 삶에 매료되는 원작의 끝과 다르다. 대사가 달라진 곳이 있는데, 죽은 지산의 불상을 그의 애인에게 전해줄때 애인이 “그분은 성불하셨겠죠?”라 묻고 법운은 “그분은 그분이 원하는 곳을 가셨을 겁니다.”라고 대답한다.

관객4: <만다라>라는 영화가 개인적으로 인생에 어떤 영향을 끼쳤나?
송길한: 많은 내적 변화가 있었고 모르는 것들을 많이 배웠다. 승려의 삶도 이렇게 치열한가 싶었다.
전무송: “내 눈에 점안은 누가 해주나”를 생각하다가 ‘내 눈은 내가 떠야 하지 않는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 막연한 불교 신자였는데, 영화 촬영 후 더 깊게 불교에 빠지게 되었다. 이 후에 <원효대사> <아제아제 바라아제> 같은 다수의 불교영화에 출연하기도 했다.
안성기: 빡빡 깎은 머리와 승복을 내 몸에 맞추려고 영화 촬영 전에 준비도 많이 하고 승려처럼 돌아다니며 많은 체험을 했다. 그 때 많이 배우고 느꼈다.


정성일: 관객 분들이 임권택 감독의 다른 불교영화 <아제아제 바라아제>를 보셨으면 한다. 또 감독님의 101번째 영화 <달빛 길어 올리기>가 3월 17일에 개봉한다니 꼭 보시라.
송길한: 종이를 만드는 사람들의 얘기다. 자기 이름과 돈을 바라고 영화를 만든 것이 아니라, 영화를 위해 만들고 이야기를 해기위해 만드셨다. 그의 정성과 감동이 잔잔하게 가슴에 배어드는 영화다.

(정리: 배준영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 관객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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