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읽기] 엘리아 카잔의 <신사협정>

미국의 한 하원의원의 반유대주의 발언과 그에 동조하는 분위기에 충격을 받은 로라 홉슨(Laura Z. Hobson)은 반유대주의 문제를 다룬 「신사협정」을 썼으며, 제작자인 대릴 자눅(Darryl F. Zanuck)은 당시 미국사회의 민감한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적극적으로 영화 제작에 나섰다. 영화 <신사협정>(1947)의 내러티브는 원작을 기반으로 유기적이고 탄탄하게 진행된다. 대부분의 시퀀스나 장면에서는 특이한 카메라 앵글이나 편집을 찾아보기 힘들다. 대신에 유머러스하면서도 진지한 대사, 그리고 배우들의 섬세한 연기가 빛을 발한다. ‘신사협정’이라는 제목이 시사하는 것처럼 영화는 ‘격렬하고 광적인’ 반유대주의자들의 모습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영화에서 반유대주의의 문제를 다루는 방식은 백인기독교우월주의를 지닌 ‘좋은 사람들’의 위선을 폭로하는 것이다. ‘신사협정’은 암묵적으로 반유대주의에 동조하는 것을 말한다.


엘리아 카잔 감독은 터키에서 온 이민자 출신으로 미국사회의 새로운 구성원으로 안착하는 일이 중요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그 자신이 ‘미국시민’으로서 ‘자유주의 국가’ 미국사회의 이상을 실현하고자 하는 소망을 영화에 반영한다. 이러한 감독의 소망을 이루기 위해 감독은 두 가지를 영화의 중심축에 놓고 있다. 하나는 캘리포니아(서부)에서 상처하고 아들과 어머니와 함께 뉴욕(동부)에서 새로운 삶을 살고자 하는 주인공 필립 스칼러 그린(그레고리 펙 분, 유대인으로 분한 후 필 그린으로 바뀜)과 이혼 후 새로운 삶을 꿈꿔왔던 케시 레이시(도로시 맥과이어 분, 편집장의 조카)의 사랑을 완성시키는 것이다. 또 하나는 반유대주의의 문제에 접근함에 있어 유대인을 중심축에 놓는다기보다는 미국 사회의 중요 구성원인 백인 기독교인의 태도 변화를 더 중점적으로 보여준다는 점이다. 그래서 ‘좋은 사람들’의 대표적인 인물 케시 레이시의 ‘백인기독교우월주의’를 점차로 드러내고 그녀를 극적으로 변모시켜 두 사람의 사랑을 이어준다. 영화에서 주인공 필립 스칼러 그린이 완성한 기사를 통해 드러나듯이 반유대주의는 ‘자유주의 국가’ 미국의 썩은 열매와도 같은 것이다. 감독은 이를 해결하는 것이 미국사회의 통합과 미래를 위해 필요하다고 보는 듯하다.

반유대주의에 관한 기사를 제안한 것은 ‘자유주의’를 표방하는 스미스주간지이다. 편집장인 존 미시피는 필에게 반유대주의 모임이나 그들을 지지하는 사람들에 관한 기사가 아닌, 관련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극적인 방식으로 쓰도록 권고한다. 그는 자신의 잡지사가 유대인에 대한 차별을 가했다는 것을 알고는 종교에 제한 없는 채용공고를 내도록 지시한다. 반유대주의에 관한 기사가 ‘조용한 미국사회를 흔드는 것’이라고 말하는 친구에게 ‘침묵하는 것이 곧 동조하는 것’이라며 비판하는 인물이다. 주인공인 필, 어머니, 의상 편집장인 앤 데트리, 심지어 유대인 친구인 데이브도 반유대주의의 문제점을 지적할 때면 미국사회의 이상을 강조한다. 반유대주의에 관한 기사를 쓰는 과정에서 그의 아들 톰(의 말과 행동)은 그의 새로운 삶과 올바른 삶을 추동시키는 중요한 동기가 된다. 어머니는 그의 험난한 여정에서 결정적인 순간마다 조력자가 되어 준다. 마지막 순간에 어머니는 필을 대신해 자유주의의 이상이 담긴 기사를 읽어 내려간다. 필과 케시의 갈등이 폭발하는 순간에 필이 케시에게 비난하는 점은 그녀가 미국사회의 대부분의 부모들처럼 자신의 아들에게 ‘백인우월주의’를 심어주려 했다는 것이었다. 감독은 지금 부모세대가 나서지 않으면 미국사회의 미래는 암울해질지도 모른다고 우려했던 듯하다. 어머니가 필의 완성된 기사를 읽고 나서(동시에 필과 케시의 재회를 예감하고) 미국사회의 미래가 기대된다며, 오래 살아야겠다고 말하는 것은 미국의 미래를 희망적으로 내다보는 감독의 바람이 드러나는 장면이다.

이런 점에서 영화의 첫 장면을 주목할 수 있겠다. 카메라는 뉴욕의 거대한 빌딩들을 훑고 지나간 후, 빌딩 사이의 도로를 지나 공원에서 걸어가는 필과 그의 아들을 비춘다. 아들은 순진한 표정으로 이곳에서 계속 살 것인지, 그리고 재혼할 생각이 있는지를 묻는다. 이어 두 사람은 ‘세상을 두 어깨로 짊어지고 가는’ 거대한 아틀라스 동상 앞에서 대화를 나눈 후 할머니를 만나러 간다. 캘리포니아(서부)를 떠나 뉴욕(동부)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자 하는 필의 과제가 이 장면에서 드러난다. 반유대주의에 관한 기사를 제안 받은 필은 편집장의 조카인 케시를 만나고, 그녀가 이 기사를 제안했다는 말을 듣고 그녀에게 호감을 가진다. 이윽고 필은 기사를 쓰기로 결심하고, 영화는 기사의 방향을 결정하기까지의 과정을 꽤 길게 보여준다. 이는 감독이 이 과제의 중요성과 어려움을 강조하고 싶었기 때문인 듯하다. 특히 필이 기사를 쓰게 된 결정적 동기는 아들 톰으로부터 작동된다. 아들이 순진하게 반유대주의가 무엇인지 또 “유대인이 나쁘냐”고 물었을 때, 필은 대답하기 곤란함을 느끼면서 기사쓰기로 결심하게 된다. 한참동안 기사의 방향을 잡지 못하던 필은 어머니가 아팠을 때 두려움을 느끼고 기사를 포기하려 한다. 그는 어머니의 두려움을 직접 느낄 수 없는 자신의 심정을 얘기한다. 그 순간 그는 자신이 그동안 직접 현장에서 당사자가 되어봄으로써 기사를 써왔음을 극적으로 깨닫고 유대인이 되기로 결심한다. 그는 자기의 겉모습이 유대인과 다를 바 없다면서 이름만 바꾸면 유대인으로 살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필이 유대인이 되기로 결심한 이후부터 감독은 그가 유대인으로서 겪게 되는 편견들을 보여주지만, 케시와의 갈등을 좀 더 부각시켜 보여준다. 갈등은 필이 잠시 동안 유대인으로 산다는 바로 그 이유로 발생한다. 영화가 진행되면서 이 갈등의 핵심은 ‘백인기독교우월주의’의 문제라는 것이 드러난다. 필은 기사를 위해 잠시나마 백인기독교인의 특권을 포기했고, 실제로 유대인처럼 느끼고 행동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케시는 이 점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며, 필과의 갈등이 빚어질 때마다, 당신은 유대인이 아니지 않으냐고 말한다. 갈등이 시작되는 장면은 결혼을 약속한 두 사람이 케시의 집에서 저녁식사를 하는 장면이다. 필이 유대인으로 산다고 말한 것 때문에 잠시 다툰 두 사람의 미묘한 사랑의 갈등이 어색한 두 사람의 표정과 제스처들로 보여 지고, 아름다운 뉴욕의 밤과 멋진 두 사람의 옷차림과 결합되면서 특이한 느낌을 자아낸다. 서둘러 집에 가려던 필은 결국 다시 돌아오고 두 사람은 서로 사과하고 사랑을 확인한다. 이 장면에서 감독은 사랑의 감정을 섬세하게 묘사하는 데 주력한다. 하지만 이 장면은 두 사람의 사랑에 대한 불안과 긴장감을 예고한다.

한편 필 만큼이나 케시도 새로운 삶을 꿈꾸는 인물이다. 그런 케시의 바람은 유난히 길고 상세한 그녀의 집을 보여주는 장면에서 드러난다. 여동생 제인에게 필이 유대인임을 알리는 문제로 다툰 두 사람은 다시 화해하고, 유대인에 대한 편견이 심한 지역(다리안)인 제인의 집에 초대받는다. 유대인에 대한 편견이 심한 사람들은 초대되지 않은 가운데 파티는 조용하게 치러지고 평범한 농담만이 오간다. 케시는 파티에서 필을 데리고 나와서 자신이 정성들여 꾸민 집을 보여준다. 집으로 가기까지 두 사람은 숲속을 거닐고 문 앞에서 잠시 멈춘다. 문을 열면 잘 꾸며진 넓게 트인 거실이 화면 가득 보여 진다. 두 사람은 깔끔하게 정돈된 집을 하나하나 둘러본다. 케시는 집에 얽힌 사연을 말하면서 이 집이 단순한 집이 아니라 자신의 삶의 희망이 담긴 곳이며, 필과 함께 그 집에서 살고 싶다고 말한다. 하지만 결혼식을 며칠 앞두고 두 사람의 갈등은 폭발한다. 유대인으로 겪는 차별에 당당하게 맞서오던 필은 신혼여행지인 호텔 푸름인에서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거부 당하고 조용히 쫓겨난다. 필은 비로소 유대인에 대한 심각한 편견을 몸소 느끼게 된다. 집으로 돌아온 필은 데이브가 집을 구하지 못해 캘리포니아로 돌아가게 된 상황에 대해 케시를 나무란다. 케시는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은 ‘신사협정’에 의해 유대인에 대한 암묵적인 차별이 가해진다고 말한다. 그리고 필은 케시의 백인우월주의를 직접적으로 공격한다. 그 순간, 필의 아들이 동네 아이들에게 “더럽고 냄새나는 유대인 자식”이라고 놀림을 당하고 들어온다. 그녀는 톰을 안아주면서 “네가 유대인이라는 것은 사실이 아니라”고 말한다. 필은 케시를 뿌리친 후, 침착하게 아들을 달래고, 아들이 유대인이라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았는지를 확인하고는 격려하면서 자랑스러워한다. 케시는 필이 자신을 반유대주의자로 생각한다면서 그와 헤어지겠다고 말한다. 동시에 자신이 ‘백인기독교인’이라는 사실에 우월감을 느낀다고 인정한다.

필은 3편의 기사를 완성하고, 그의 기사는 특종감이 된다. 그는 캘리포니아로 돌아가기로 결심한다. 뉴욕에서의 새로운 삶이 실패할지도 모를 순간에 감독은 두 사람의 사랑을 이어주기 위해 앤과 데이브를 등장시킨다. 그동안 필을 좋아하고 막역한 친구였던 지적이고 당당한 여성 앤 덴트리가 케시의 위선을 폭로하고, 필에게 청혼한다. 하지만 곧 이어서 데이브와 만난 케시가 극적으로 ‘개종’하는 장면이 이어진다. 앤은 케시와 헤어진 필을 저녁에 초대하고, 두 사람은 자신들의 처지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얘기하려 한다. 필의 거부에도 불구하고 앤은 케시와의 관계에 대해 얘기하면서 케시의 위선을 정확하게 지적한다. 앤은 케시가 결코 행동에 나서지 않을 것이라면서 자신이 필의 생각을 지지하고 이해할 수 있는 적임자라고 말한다. 그리고 필에게 청혼한다. 그런데 바로 그 시각, 데이브는 케시를 만나서 차분하고 진지한 대화를 통해 케시의 마음을 움직이게 한다. 케시는 저녁식사에서 상스러운 농담을 하는 사람에게 화가 났지만 보고만 있었고, 그로 인해 아팠다고 말한다. 데이브는 일상에서의 작은 농담들 뒤에도 푸름인, 다리안, 그리고 톰과 같은 아이들이 있다면서, 이 농담을 묵인하는 것이 곧 반유대주의를 묵인하는 것과 마찬가지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고 말한다. 자신은 항상 이런 상황에 처해 왔고, 그 상황에 맞서 싸워왔다는 것. 또한 용기 있게 맞섰을 때, 아프지 않고 오히려 의기양양해진다고도 말해준다. 눈물을 흘리면서 점점 마음이 움직여가는 케시에게 데이브는 필을 대신해 바람직한 아내의 상을 얘기한다. 거기에는 필과 같은 신념을 가지는 것도 포함되어 있다. 케시가 눈물을 흘리면서 “제가 할 수 있을까요?”라고 묻는 장면은 그녀가 행동으로 나설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그녀는 결국, ‘좋은 사람’이 되기를 기꺼이 포기하고, 필과 함께 살고자 했던 집을 데이브에게 빌려준다. 이 사실을 안 필은 케시를 찾아가 포옹하고 영화는 끝난다.

감독에게 중요했던 것은 좋은 사람들이 신사협정을 스스로 깨는 것이고, 동시에 과거의 삶을 딛고 새로운 삶을 사는 것이다. 좋은 사람인 케시의 변화를 통해 사랑을 이어주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때문에 영화의 마지막에 앤과 데이브를 등장시켜 케시의 위선을 더 극적으로 보여주고, 동시에 그 만큼 더 극적으로 변모시키고자 했던 것 같다. 이는 달리 보면 미국사회의 좋은 사람들을 향해 당신들도 변할 수 있다고, 그것은 곧 미국사회의 이상을 위한 것이라고 설파하고 싶은 감독의 바람이 드러난 것이기도 하다. (김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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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6~18일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열리는 엘리아 카잔 특별전

엘리아 카잔(1909~2003)에 대한 언급 가운데 아마도 가장 흔하게 접할 수 있는 것이 새로운 연기 스타일을 스크린에 도입한 영화감독이라는 평가일 것이다. 배우가 극중 인물에 몰입할 것을 요구하는 메소드 연기를 중심 원리로 삼아 배우들로부터 뛰어난 연기를 끌어낸 그와 함께 본격적인 리얼리즘 연기가 미국 영화사에 등장했다는 것이다. 여기서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카잔이 영화 카메라를 단순히 자연주의적인 ‘기록’의 도구로 간주하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그는 카메라는 오히려 현미경에 더 가깝다고 생각했고 사람들의 외양 너머로 더 들어갈 수 있다고 보았다. 실제로 카잔의 영화 속에 포착된 인물들은 내면에서 타오르는 어떤 ‘불꽃’을 보여주었다. 대개 그들은 그 원인이 내적인 불안에 의한 것이든 아니면 사회적 억압에 의한 것이든 여하튼 고뇌에 찬 이들이었다.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1951)나 <워터프론트>(1954)가 예증하듯, 그런 인물들을 그린 카잔의 영화들은 진지하고 어른스러운 면을 갖추면서 당대 영화의 한계를 넓히는 것들이었다. 그런 면에서 마틴 스코세지 같은 이는 카잔을 두고 이후의 우상파괴주의자들을 위한 길을 닦아놓은 영화감독이라고 평가하기까지 한다. 4월 6일부터 18일까지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열리는 ‘엘리아 카잔 특별전’은 지난해 탄생 100주년을 맞이한 이 대가의 작품들을 되돌아볼 수 있는 자리이다.

상영작 가운데 가장 먼저 시선이 가는 것은 카잔의 대표작인 <워터프론트>이다. 영화는 폭력과 배신이 난무하는 뉴욕의 한 부두를 배경으로 조합을 지배하는 불량배들 밑에서 일하던 테리 말로이의 도덕적 각성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탄탄하게 짜여 있는 극적 구조 안에서 앙상블 메소드 연기가 빛을 발하며 정의롭지 못한 사회에 대한 단호한 시선마저 돋보인다는 점에서 <워터프론트>는 빼어난 작품임에 틀림없다. 이에 동의하는 많은 평자들도 한낱 ‘밀고자’가 고통 받는 그리스도와 같은 인물로 격상되는 후반부에 대해서는 의문을 표했다. 누군가는 극적 논리의 허술함을 이야기하는가 하면 또 다른 이는 파시스트적 구실이라고 혹평하기도 했다. 사실 많은 이들은 후반부에서 테리의 울부짖음은 카잔 자신의 외침이라고 보았다.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이 영화를 만들기 전 카잔이 반미활동위원회의 청문회에 참석해 공산주의에 동조한 동료들의 이름을 불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이런 사실을 감안하면 <워터프론트>는 ‘밀고자’ 카잔 자신에 대한 영화적 변명처럼 들린다(시나리오를 쓴 버드 슐버그 역시 카잔과 같은 행동을 한 인물이었다). 여하튼 카잔의 이런 전력은 그의 경력 내내 따라다녔고, 특히 1999년 아카데미 평생공로상을 수상할 때 많은 논란을 낳았다. 이 ‘우호적’ 증언의 행위와 관련해 흥미로운 사실은, 카잔은 오히려 그 일 이후에 좀 더 뛰어나게 된 유일한 영화감독이었다는 점이다.

사실 영화가 만들어진 당시의 사정을 무시하고 영화를 보면 말론 브랜도가 연기한 테리는 빼어나게 그려진 반항아로 보일 수도 있다. <에덴의 동쪽>(1955)은 또 다른 스크린의 반항아 제임스 딘의 존재가 그야말로 불타오르는 영화이다. 현대판 카인과 아벨의 이야기를 다룬 이 영화에서 그는 사랑을 갈구하는 젊은이를 특유의 무너질 듯 과민한 모습 안에 담아 당대 젊은이들에게 거대한 반향을 일으켰다. 다른 한편으로 <에덴의 동쪽>은 와이드 스크린 화면 안에다가 인물들의 심리와 관계를 표현하려는 카잔의 시도가 돋보이는 영화이기도 하다. 영화평론가 데이비드 톰슨은 이 영화를 카잔의 최고작으로 꼽은 바 있다. 그 자리를 조너던 로젠봄은 <대하를 삼키는 여인>(1960)에 넘겨줬다. 영화는 댐이 건설되면 침수될 지역에 남아 있길 원하는 완고한 부인에게 땅을 팔라고 설득하러 온 정부 관계자의 이야기를 그린다. 이제 전통과 발전, 완고한 개인주의와 공공을 위한 선(善), 낭만주의와 실용주의 사이에 전선이 형성되는 것을 알 수 있을 텐데, 여기서 카잔은 어느 한편에 편향된 시선을 주지 않는 사려 깊음을 보여준다. 물론 미묘하게 그려진 러브 스토리도 주목을 요한다. ‘엘리아 카잔 특별전’에서는 언급한 작품들 외에 <신사협정>(1947), <거리의 공황>(1950),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초원의 빛>(1961) 같은 영화들이 카잔의 세계를 조망할 기회를 줄 예정이다. (홍성남_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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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가 4월 첫 프로그램으로 배우들의 영화감독이라 불리는 엘리아 카잔(1909~2003)을 조명하는 특별전을 연다.

오는 6일부터 18일까지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열리는 이번 '엘리아 카잔 특별전'에서는 테네시 윌리엄스의 소설을 각색한 영화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1951)를 비롯해 '냉정한 리얼리즘'을 반유대주의를 소재로 하여 보여준 <신사협정>(1947)
, 노동자와 자본 계급 간의 대립을 그린 <워터프론트>(1954), 제임스 딘의 고독한 눈빛이 인상적인 <에덴의 동쪽>(1955) 등 총 7편을 상영한다.

엘리아 카잔은 1950년대 이후 할리우드에서 사회·정치적 이슈 뿐 아니라 인종·가족 등 다양한 소재를 아우른 작품을 연출했다. 1945년 <브루클린에서 자라는 나무>로 데뷔한 후 예리하고 사실적인 시선을 작품에 반영한 주옥같은 할리우드의 명작을 만들어 미국영화의 특징을 대표한 감독으로 평가받는다. 또한 그는 제임스 딘, 말론 브랜도, 나탈리 우드 등을 배출한 메소드 연기법의 효시인 연기학교 ‘액터즈 스튜디오’를 설립하는 등 할리우드에 큰 영향을 끼쳤다.

한편 이번 특별전에는 엘리아 카잔의 작품세계를 보다 폭넓게 돌아보고 이해할 수 있는 두 차례의 강연도 진행된다. 8일 7시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상영 후에는 ‘엘리아 카잔의 아메리카’란 주제로 서울아트시네마의 김성욱 프로그래머가 강연을 하고, 11일 오후 4시 <워터프론트> 상영 후에는 명지대 교수인 김영진 영화평론가가 ‘배우의 감독, 엘리아 카잔'에 대해 이야기할 예정이다. 행사 문의나 자세한 상영일정은 서울아트시네마 홈페이지(www.cinematheque.seoul.kr)를 참고하면 된다. (신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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