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영작 리뷰


지옥인간 


스튜어트 고든의 '지옥인간'





<지옥인간>은 재능있는 창작자들의 결합이 만들어낼 수 있는 가장 뛰어난 결과물 가운데 하나다. 스튜어트 고든은 인간 본연의 정수를 들여다보는 도구로써 호러 장르를 선택했다. 브라이언 유즈나는 끊임없이 새롭고 진귀한 것을 시각화해서 보여주고 싶어하는 아이디어 뱅크였다. 고든은 작가였고 유즈나는 퍼포머에 가까웠다. 두 사람의 만남은 경제적이고 효과적이었다. 스튜어트 고든은 연출을 했다. 브라이언 유즈나는 제작을 했다. 각본은 함께 썼다. 첫번째 결과물은 러브 크래프트의 원작을 각색한 <좀비오>(리 애니메이터)였다. 그들은 전설이 되었다.

1986년에 발표된 <지옥인간>은 그들의 두번째 작품이다. 역시 러브 크래프트의 원작을 각색했다. <리 애니메이터>도 거의 새로 쓴 이야기에 가까웠지만 <지옥인간>은 더욱 그랬다. 고작 5장 안팍의 단편 소설을 원안으로 만들어낸 <지옥인간>의 이야기는, 원작에서 잠시 등장하는 ‘송과선’ 연구를 바탕에 두고 더욱 다양한 인물과 사건을 배치했다.

캐스팅을 보면 <지옥인간>은 <좀비오>의 후속편 같은 느낌이다. 우리들의 영원한 ‘허버트 웨스트’ 제프리 콤즈가 주인공 크로포드를 연기한다. 역시 <좀비오>에서 주연을 맡았던 바바라 크램톤이 등장한다. 잠시 언급하자면 호러영화를 사랑한 어린 소년들에게 바바라 크램톤은 마릴린 먼로였다. 조지 로메로의 <시체들의 새벽>에서 깊은 인상을 남겼던 켄 포리가 주인공 삼인방 가운데 마지막을 맡아 알몸에 빨간색 팬티만 걸치고 열연을 펼친다. 그는 최근 <시체들의 새벽>을 리메이크한 <새벽의 저주>에서 전도사 역으로 깜짝 출연해 여전히 건재함을 드러낸 바 있다.

<지옥인간>은 송과선을 자극하는 기계장치로 인해 벌어지는 참극을 다룬다. 송과선은 척추동물의 간뇌에 돌출해있는 내분비선이다. 생체리듬에 관여하는 호르몬을 형성한다. 일찍이 데카르트는 송과선을 제 3의 눈이라고 불렀다. 이후 많은 텍스트들에서 송과선을 신비주의 이론과 결합하여 이야기의 소재로 활용했다. <지옥인간>에서 송과선은 인간의 욕망을 해방시키는 도구로 등장한다. 프레토리우스 박사(잠시 프로메테우스-프랑켄슈타인-프레토리우스로 이어지는 컨텍스트를 환기해보자)의 송과선 해방 장치는 어떤 이에게는 성욕의 과잉을, 어떤 이에게는 식욕의 폭발을 가져온다.

과학이 초래한 비극을 주인공들이 해결한다는 점은 5,60년대 고전 SF영화의 개성과 닿아있다. 그러나 그것을 해결하려 애쓰는 이들 또한 과학자라는 점은 7, 80년대 SF영화와 궤를 함께한다. 비록 스플래터 호러 장르의 물고를 텄던 <좀비오>의 참신함이나 결말의 파격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지옥인간>의 이야기에는 흡사 고전 활극을 연상하게 만드는 다양한 매력과 재미가 있다. <지옥인간>은 한국의 극장에서 상영된 적이 없다. 스튜어트 고든과 브라이언 유즈나 콤비의 영화를 더 이상 볼 수 없는 것처럼, 이 영화를 극장 스크린에서 필름상영으로 볼 수 있다는 건 엄청난 특권이다.


허지웅 /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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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토크

 B급 영화의 즐거움을 공유하고 싶었다”

- 이해영 감독이 말하는 스튜어트 고든의 '지옥인간'

 

지난 27, 이해영 감독의 추천작인 <지옥인간> 상영 후 시네토크가 진행되었다. 이해영 감독과 진행을 맡은 허지웅 평론가는 B급 공포영화에 대한 깊은 애정을 드러내며 가볍고 활발한 분위기 속에서 대화를 나눴다.

 

 

허지웅(영화평론가): <지옥인간>을 극장에서 보니까 감회가 새롭다.

이해영(영화감독): 이 영화를 처음 본 게 10대였을 때였는데, 당시에는 당연히 극장 개봉은 못했고 대신 비디오테이프로 출시가 되었다. 그때는 비디오테이프의 전성기였으니까 비디오테이프로 이 영화를 접하게 되었다. 오늘 극장에서 다시 보니까 굉장히 새롭다. 이런 영화였나 싶다. 사실은 오기 전에 걱정을 했었다. 혹시나 이 영화가 너무 혐오스러워서 관객들에게 죄송스럽지나 않을까.

허지웅: From Beyond’라는 원제를 한국에서 비디오로 출시하면서 ‘지옥인간’으로 바꾸었다. 테리길리엄의<브라질>에 ‘여인의 음모’라는 제목을 붙이는 센스는 참 이상하지만, ‘지옥인간’이라는 제목은 꽤 괜찮은 것 같다.

이해영: 오히려 ‘From Beyond’보다 ‘지옥인간’이라는 제목이 이야기와 테마를 더 정확하게 설명해주는 것 같다. 잘 지은 제목이다.

 

허지웅: 제작자인 브라이언유즈너와스튜어트 고든 감독 간의 협업관계에서 시너지 효과가 잘 발휘된 영화가 <좀비오> <지옥인간>이다. 시네마테크에 추천한 계기는 무엇인가?

이해영: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에 참여하게 된 게 이번이 세 번째이다. 일 년 동안 상영되는 영화들 중 ‘우아한’ 영화들이거나 읽어야만 하는 영화들이 많이 있었는데, 그런 류의 선택에 딴죽을 걸고 싶은 마음이 일단 있었다. 어설픈 완성도로 몇몇 장면에서 실소를 터트리게 만드는 이런 영화도 있을 수 있다는 걸 환기하는 게 중요하다고 여겼다. B급 영화 시장이 전 세계적으로 굉장히 작아졌고 다들 A급영화만 지향하는 세상에서 이런 영화들도 즐거움이 있었다는 걸 공유하고 싶었다.

 

허지웅: 아날로그 특수효과의 감흥도 있다.

이해영: 요즘 영화들에 물리적으로 확 느껴지는 공포의 쾌감이 덜 느껴지는 이유가 CG 만능주의 때문일 것이다. 이 영화는 아날로그 특수효과에 의존하고 있으며 CG는 거의 없다. 크리처들을 만들고 배우들과 함께 부딪히고 하는 부분들은 아날로그 특수효과를 사용하는 것이 보는 입장에서도 더 가깝게 느껴진다.

 

허지웅: 원작의 내용은 엄청 간단하다. 송과선에 대한 언급은 소설에서 한줄 정도 나오는데 이렇게 만드는 것도 멋진 각색이다.

이해영: 대중들에게 요구받는 몇 가지 코드가 있었을 것이다. 어느 정도로 잔인해야 하고 여성의 누드가 나와야 하고 이런 것들. 아이디어에 가까운 것을 부풀리면서도 제작자들의 요구를 완벽히 지키고 있다. 오늘 다시 보면서 이 사람들이 허투루 영화를 찍는 사람들이 아니구나 싶었다. 예전에 이 영화를 볼 때는 너무 조악한 화질의 비디오테이프로 봐서 색에 대한 감흥이 없었다. 그런데 극장에서 다시 보니까 공진기를 돌리는 장면에서 파란색과 분홍색이 주된 색깔이더라. 배우들의 크레딧도 블루와 핑크로 포인트를 줬고, 미학적으로 좋은 조합이란 생각이 든다. 프로덕션 기간이 매우 제한적이었을 텐데 이런 식의 라이팅 컨셉트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도 대단하게 느껴졌다.

 

 

관객1: 인간의 욕망이라는 테마와 이 영화가 어떤 관련이 있을지.

허지웅: 공진기가 사람들의 어떤 규율에 의해 억눌려있던 욕망을 해방시켜주는 측면은 있다. 어떤 사람은 섹스를 하고 싶게 되고, 어떤 사람은 밥을 먹고 싶어 하고,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을 학대하고 싶어 하고. 사람마다 다르게 나타나는데, 욕망이라는 텍스트로 정교하게 얘기하기는 어려운 측면이 있다. 특히 영화의 후반부에서 크레포드가 뇌를 먹게 되는 것은 욕망으로 해석하기보다는 좀비 코드로 해석하는 게 더 적절하다.

이해영: 영화에서도 무언가를 얻고자 하는 욕망 때문이라기보다는 미지의 세계를 알고 싶은 지적 욕구 때문에 기계를 만든 것으로 보인다. 욕망이라고 말하기는 정확하지 않다는 기분이 든다. 이 영화에서 자신의 욕망 때문에 스위치를 올린 것은 캐서린뿐이고 그녀가 이를 통해 자신의 몰랐던 자아를 발견하기도 하지만, 그것만으로 욕망과 관련된 텍스트라고 보기에는 부족하다.

 

관객2: 저번 영화제에서도 <이블 데드>를 추천하려다가 <매드맥스>를 추천했다. 공포영화를 정말 좋아하는 것 같은데 가장 좋아하는 공포영화는 무엇인가?

이해영: <지옥인간>추천평을 쓰면서도 했던 얘기인데, 나의 10대는 영화나 음악에 대한 위악적인 취향을 숨기지 않고 즐겼던 시기였다. B급 공포영화를 좋아하였으며, 음악도 데스 메탈을 좋아하고 해골만 들어가면 “이 음악은 내꺼다” 그랬다. 하지만 취향은 계속 변하는 거다. 요즘은 호러영화는 역시 구로사와 기요시의 호러영화가 ‘역시’라는 생각이 든다. 얼마 전 <로프트>를 다시 보면서 기요시는 모든 쇼트 하나하나가 배울 점으로 가득하구나 싶어졌다.

 

관객3: 감독님 영화에서 B급 취향이 폭발한 적은 없는 것 같은데 이런 영화를 찍을 생각은 없는지.

이해영: 미국인으로 미국에서 영화를 찍었더라면 이런 영화를 만들고 있을 것 같다. 하지만 한국인으로서 B급 취향을 펼칠 수 있는 장을 만드는 건 불가능하다. <천하장사 마돈나>에서도 이를 적절히 끌어내는 것을 고민했었는데 <페스티발>은 좀 많이 넣었다가 시장에서 철저히 사장되었다. 다음에는 철저히 B급 취향을 배제하려고 한다.(웃음)

 

 

관객4: <페스티발>을 처음 봤을 때 신선한 느낌을 받았는데 어떻게 만들게 되셨는지 궁금하다.

이해영: 조금 먼 얘기부터 시작하자면, <페스티발>을 만들기 전에 <26>이라는 영화의 시나리오를 썼었다. 리허설까지 다 마친 상태에서 촬영까지 일주일정도 남아있던 상태였는데 영화가 엎어졌다. 나에게는 정말 괴로운 영화였다. 다른 영화를 빨리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원래 그런 취향을 가진 사람이 아닌 척 살았다면 내가 원래 이런 사람이었다는 것을 드러내고 싶었다. 흥행이 안 될 것이라며 주변에서 많이 말렸다. 저예산으로 찍어서 리스크를 최소화하고 15세 관람가의 라이트한 섹스 코미디를 만들자 해서 노출도 없고 행위도 없는 섹스 코미디를 만들었다. 결론적으로는 19세를 받았지만 말이다.

 

정리: 박민석(관객에디터) | 사진: 문지현(자원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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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새로운 시각기계가 야기하는 공포

- 스튜어트 고든의 <지옥인간>

 

 

 

 

메리 셸리가 19세기 초에 『프랑켄슈타인』을 쓴 이후로 SF나 공포 장르에서 과학자들은 종종 인간 이상의 능력을 얻기를 원했다. 하지만 『프랑켄슈타인』에 ‘근대의 프로메테우스’라는 부제가 붙은 것처럼 이러한 과학자들은 기술에 대한 광적인 집착을 보이다가 신의 영역에 도전한 죄로 처벌받는다. 러브크래프트의 단편을 각색한 <지옥 인간> 역시 마찬가지이다. 스튜어트 고든의 <지옥 인간>은 그의 데뷔작 <좀비오>처럼 과학자를 주인공으로 하고 있다. 이 과학자들은 초월적인 것에 대한 관심을 보이고 있는데, 그것이 <좀비오>에서는 죽은 자를 살려내는 것이었다면 <지옥 인간>에서는 ‘제3의 눈’을 가지는 것이다.

 

에드워드 프레토리우스 박사는 기계를 통해 인간의 눈으로 볼 수 없는 생물체들을 볼 수 있게 된다. 그의 조수인 크로포드는 기계의 위험성을 눈치 채고 그를 말리지만, 에드워드는 결국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에드워드의 죽음 이후 크로포드는 정신이상자로 낙인찍힌다. 그는 자신이 정상임을 주장하기 위해 정신과 의사인 캐서린과 함께 에드워드의 사택으로 돌아와 기계를 보여준다. 캐서린은 기계를 작동하고 난 뒤에 이 기계가 가진 알 수 없는 힘에 매혹된다.

 

이 영화에서 공포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물론 이 세상의 것이라고는 생각하기 힘든 기괴한 생물체들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특이한 점은 기계가 불러오는 생물체들뿐만 아니라 기계 자체도 등장인물들에게 공포의 대상으로 존재한다는 점이다. 등장인물들에게 괴물들을 물리적으로 처단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기계의 플러그를 차단하는 것이다. 이 기계는 일종의 시각 기계이다. 이 기계의 플러그를 올리는 것은 감추어진 무언가를 보려는 시도이다. 등장인물들은 종종 기계 자체에 이끌리는 동시에 기계를 혐오한다.

 

이 영화에는 데이비드 크로넨버그의 <비디오드롬>을 연상하게 하는 지점들이 있는데, 이 기계가 신체의 변형을 유도하는 시각 기계라는 점이 특히 그러하다. 에드워드의 조수인 크로포드의 송과선은 기계로부터 자극되어 머리 밖으로 튀어나와 ‘제3의 눈’이 된다. 이것은 크로포드로 하여금 보는 행위를 새롭게 하는 동시에 크로포드의 정신을 장악한다. 크로포드는 자신의 새로운 시각 때문에 괴물이 된다. 이러한 점이 시각 기계로부터 얻은 ‘새로운 육체(new flesh)’를 이야기하는 <비디오드롬>을 상기시킨다. <지옥 인간>은 <비디오드롬>만큼 비디오 시대의 공포감을 명시적으로 드러내지는 않지만, 새로운 형태의 시각 기계에 대한 호기심과 두려운 감정을 동시에 드러내고 있는 흥미로운 공포 영화이다.

 

박민석 / 관객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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