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사강좌4] 한창호 평론가가 본 펠리니와 오페라의 관계

페데리코 펠리니 회고전이 한창인 시네마테크 전용관 서울아트시네마에서는 펠리니의 작품세계를 보다 폭넓게 살펴볼 수 있는 '펠리니의 달콤한 영화읽기'란 영화사 강좌가 열리고 있다. 지난 27일 오후 3시 30분, 그 네 번째 시간에는 한창호 영화평론가가 '죽음 : 페데리코 펠리니와 오페라'라는 제목으로 강연을 펼쳤다. 펠리니의 영화세계에 대해 <그리고 배는 항해한다>에 등장하는 오페라를 중심으로 새로운 접근법을 들려준 한창호 평론가의 강연 일부를 여기에 옮긴다.


한창호(영화평론가): 제가 오늘 준비한 내용은 펠리니 영화와 관련해서 오페라의 역할에 대한 내용입니다. 방금 보신 영화의 감동이 아직 남아있을 것 같습니다. 수많은 오페라가 등장한 영화였습니다. 그러나 사실 펠리니는 이탈리아인 치고는 오페라에 대해서는 잘 몰랐다고 합니다. 자신이 잘 이해하지 못하는 예술 장르라면, 오페라를 꼽을 정도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배는 항해한다>는 1983년에 펠리니 말년에 할아버지가 되어 만든 작품인데도 평소에 자신이 갖고 있던 이미지와는 다르게 오페라를 많이 사용한 작품입니다. 그 계기가 된 모티프는 마리아 칼라스 때문이었습니다. 그녀는 1977년에 생을 마감했는데 말년에 대략 10년 정도를 파리에서 하녀랑 둘이 살며 은둔하다시피 하다가 생을 다했다고 합니다. 죽으면서 유언을 남겼는데, 그것은 ‘화장을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이것은 카톨릭에 반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화장을 한 후에는 고국 그리스의 에게해 바다에 뿌려 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1979년에 그리스 문화부에서 주관하여 에게해 바다에서 그 행사를 진행했다고 합니다. 펠리니로서는 재를 뿌리는 행사를 보고, 마리아 칼라스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됐고, 그녀의 죽음이 상정하는 오페라라는 예술의 죽음에 대해 생각하게 됐습니다. 80년대 들어 펠리니는 영화의 운명에 대해 비관적이었고 많이 염려하는 입장이었습니다. 영화의 운명이 빨리 종결될 수 있다는 염려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80년대 영화들에는 TV에 대한 비판적 태도와 염려가 많이 들어가 있습니다. <진저와 프레드>는 물론이고 <달의 목소리>에도 말입니다. 영화도 오페라와 같은 운명이 멀지 않았다는 애도의 태도를 가지고 이 영화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죽음에 관련된 테마가 나온 것입니다.

영화는 나폴리에 큰 배가 정박돼 있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거기에 지체 높아 보이는 사람들이 모이는데, 이는 전설적인 소프라노라고 등장하는 허구적 인물 에드메아 테투아의 장례를 위한 것입니다. 영매가 나오는 장면에서 에드메아의 제스처를 흉내 내는 인사법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이것은 실제로 마리아 칼라스의 인사법입니다. 누가 보더라도 이는 마리아 칼라스를 염두에 두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배를 타고 가서 재를 뿌린다는 것은 유럽, 특히 낭만주의 예술에서는 너무도 강력한 죽음에 대한 은유입니다. 저승의 섬으로 간다는 것의 은유는 아놀드 베크린의 그림을 더불어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얀 배가 저 앞에 있는 섬을 향해서 가고 있는 것, 죽은 자의 영혼이 어디로 갈 것인가? 죽음에 관련된 은유 등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 장례식에 참여한 사람들도, 에드메아 테투아 같은 운명에 곧 놓일 것이라는 것을 암시합니다. 비스콘티의 <베니스에서의 죽음>과 동일한 모티프를 쓰고 있는 것입니다. 이 배는 에드메아 테투아의 장례식을 위한 배면서, 동시에 그 배에 탄 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이끄는 죽음의 공간이 되고 있습니다. 제가 보기엔, 이는 비스콘티적인 주제를 많이 베낀 것이라고 여겨집니다.

비스콘티와 펠리니는 평생의 라이벌이었으며, 따라서 비교하는 게 두 사람의 영화세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비스콘티는 늘 죽는 이야기를 했고, 펠리니는 늘 코미디를 만들었습니다. 비스콘티는 공산주의자, 펠리니는 중도파이며 자유주의자입니다. 비스콘티에게는 이탈리아 사회 전반의 전망이, 펠리니에게는 개인의 자유가 더 중요했습니다. 그러나 영화 내에서만 보면, 역설적으로 비스콘티는 멜로드라마를 만들었으므로 개인의 비극적 고통이 더 강조되어 있고, 펠리니가 만든 코미디는 사회의 모순과 부조리가 더 잘 드러납니다. 영화적으로만 보면 펠리니가 더 정치적 입장을 잘 보여주는 역설이 존재하게 됐습니다. 음악과 시나리오의 측면에서도 비스콘티는 귀족적, 펠리니는 서민적입니다. 비스콘티는 특별한 환경에서 특별한 교육이 필요한 성질의 음악과 시나리오였고, 펠리니는 일반적인 환경에서 일반적 교육을 받은 사람의 것이었습니다. 감성적이고 대중적인 니노 로타의 음악도 펠리니의 이러한 성격을 잘 드러냅니다. 비스콘티는 클래식이었고 굉장히 비극적인 음악을 썼습니다. 비스콘티가 베토벤이라면, 펠리니는 모차르트 같습니다. 제 생각에, 그러한 라이벌 의식이 오페라에서 펠리니가 멀어지도록 하는 요소가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이탈리아에서 누가 보더라도 오페라는 비스콘티의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사티리콘>, <여인의 도시>, <카사노바> 등을 보면 에피소드가 파편화돼 있습니다. 사실상 <사티리콘> 이후의 영화는 처음에 보기에는 재미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한 번 다가온 후에는 오히려 <달콤한 인생>이전의 영화가 순진하게 느껴집니다. 펠리니 영화에서는 대사에 대해서도 특정한 논리성이 없습니다. 두서없이 나옵니다. 오페라에서도 4중창, 5중창을 각기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경우도 있는데, 영화의 대사도 그런 식입니다. 펠리니는 <그리고 배를 항해한다>를 비교적 쉽게 만들었습니다. 장례식 하러 간다는 메인 테마가 있고, 내러티브가 완전히 파편화되어있지는 않습니다. 무엇보다도 냉대하던 장르였던 오페라를 썼습니다. 너무나 많은 오페라가 등장해서 다 정리하기도 어렵습니다. 특히 세 가지 정도를 강조했습니다. 전부 주세페 베르디Giuseppe Verdi 작품입니다. <운명의 힘 (La Forza Del Destino)>의 서곡, <리골레토 (Rigoletto)>, <아이다 (Aida)>입니다. 이 세 개의 오페라가 <그리고 배는 항해한다>의 도입부, 중간, 종결부에서 각자 강조되어 있습니다. 펠리니는 비스콘티처럼 오페라의 비장함과 아름다움을 쭉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혼란스럽게 사용했습니다. 그럼에도 그 세 개는 강조되어 있습니다. 나폴리 항구에서 재가 도착해서 배에 올라갈 때, 어떤 남자가 손가락으로 딱 가리킬 때, 나오는 음악이 <운명의 힘>의 서곡입니다. 기악곡이 연주되고 가사도 나옵니다. <운명의 힘>이라는 멜로드라마는, 주세페 베르디의 전형적인 멜로드라마입니다. 삼각관계, 아버지를 죽인 원수의 여동생을 사랑하는 것, 원수인 오빠가 그 사랑을 방해하고, 서로가 서로를 죽이는 결말은 베토벤적인 음악입니다. 마치 <운명>처럼 불안하고 비극적인 운명이 다가옴을 암시합니다. 본래 오페라의 서곡이라는 것은 다 그런 식으로 기능합니다. 오페라의 진행을 암시하는 것입니다. 이 영화에서도 배가 출발할 때, 불길하게 마치 운명이 나를 두드리듯이 그 기악곡이 들립니다. 장례식에 참석한, 숭고한 목적을 갖고 탑승한 사람들, 즉 필멸의 존재들이 죽음의 소리를 듣게 될 것이라는 상징으로 그 음악을 선택한 것은 매우 적절해 보입니다. 참고로 <운명의 힘>의 서곡은 원래 기악곡인데, 이 영화에서는 죽은 사람을 구해주자는 내용의 가사가 조금 있는 것으로 기억합니다. 펠리니의 친구였고 이탈리아 문화계에서 대표적 시인이었던 안드레아 잔조토라는 사람이 가사를 썼습니다. 펠리니는 베르디를 그대로 가져와 쓰지 않고 변경을 가한 것입니다. 아름답게 잘 찍힌 도입부 시퀀스는 영화의 역사에 대한 펠리니 식의 오마주가 있었던 장면입니다. 흑백, 세피아, 컬러로의 색깔이 변해가는 과정을 보여줬습니다. 영화에 대한 영화이기도 하고 뤼미에르 형제에 대한 오마주이기도 하며, 나폴리 항구의 큰 배는 조르주 멜리에스에 대한 오마주라고 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 나온 본론 부분의 선상 오페라도 강조된 부분이다. 선장이 가수들을 데리고 기관실 구경을 시켜줍니다. 노동자들은 일을 하고 있습니다. 노동자 중 하나가 노래를 요구하고, 자연스럽게 가수들 사이에 목소리의 경연이 벌어집니다. 전형적인 테너인 살찐 남자로부터 시작하여, 자신들의 음역을 자랑합니다. 마지막에는 여자 가수가 <리골레토>에 나오는 부분인 <여자의 마음은 갈대와 같이>를 부르며, 다른 가수들도 계속 그 부분을 부릅니다. 그 노래는 내러티브나 컨택스트 상에서 큰 의미를 부여한 거 같진 않습니다. 선원들이 오페라를 만나기란, 그리고 일반 관객도 오페라를 만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은 아닙니다. 그 장면은 오페라의 무대처럼 되어 있습니다. 영화를 통해 무대를 변형시켜서 오페라 극장의 상징적인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마치 비스콘티를 비꼬는 것처럼 분명히 상하관계가 드러나는 부분입니다. 이런 부분에서 보면 펠리니는 코미디를 만드는 사람이지만, 영화 내부적으로 보면 비스콘티보다 더 정치적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마지막 종결부에서 쓰인 음악은 <아이다>입니다. 아이다가 부른 아리아인 <다시는 고국을 보지 못하리라> 부분입니다. 선상에서 장례식이 진행될 때, 재가 바람에 불려 날아가고, 이 때 턴테이블에서 나오는 음악입니다. 영화 속에서는 에드메아 테투아가 부르는 설정으로 되어 있습니다. 실제로 그 녹음은 그렇게 유명한 가수의 노래는 아닙니다. 이 아리아는 죽은 사람의 영혼을 진혼하는 레퀴엠처럼 쓰기에는 매우 적절했던 음악이었으며, 의미도 좋았다고 봅니다. 실제 오페라의 내용은 이집트에게 패해 속국이 된 에티오피아의 공주 아이다가 이집트 황실의 시녀가 되었다가 이집트의 개선장군 라다메스와 금지된 사랑에 빠진다는 멜로드라마입니다. 3막에서는 밤에 나일강변에 아이다가 도착하여 나일강변에 투신해서 죽겠다고 마음먹습니다. 그러나 죽으려고 하니 갑자기 자기연민이 몰려옵니다. 아이다는 아름다운 조국을 추억합니다. 푸른 하늘, 녹색의 숲, 맑은 아침, 그 조국을 나는 더 이상 보지 못하겠구나, 라는 한탄의 노래를 부릅니다. 이것이 <다시는 고국을 보지 못하리라> 부분입니다. 에드메아 테투아도 마리아 칼라스도 죽어서야 고국으로 돌아가는 운명이기에, 이들의 죽음을 위무하기에 굉장히 적절한 음악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정리: 박영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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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사강좌1] 한창호 영화평론가가 들려주는 펠리니의 미술세계

페데리코 펠리니 회고전이 한창인 지난 16일 저녁 8시 서울아트시네마에서 펠리니의 작품세계를 보다 폭넓게 들여다 볼 수 있는 기회로 마련한 ‘펠리니의 달콤한 영화읽기’란 영화사강좌가 시작되었다. 총 5회로 구성된 이 프로그램의 첫 강연자는 이탈리아 영화와 미술에 조예가 깊은 한창호 영화평론가. <사티리콘>을 중심으로 그가 들려준 펠리니의 미술에 관한 강연 일부를 여기에 옮겨본다.


한창호(영화평론가) : 오늘 강의는 크게 두 가지로 이야기를 좁혔습니다. 하나는 <사티리콘>이라는 작품 자체가 영화사에서 익숙한 작품이 아니라 먼저 <사티리콘>에 대해 잠깐 설명을 드리고, 그 다음에 미술에 관해서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특히 오늘 저와 같이 보신 <사티리콘>을 중심으로 이야기 하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사티리콘>이라는 작품은 얼마 전 우리나라에도 원작이 번역되어 나왔습니다. 영화에서 나타나듯이 에피소드들이 연결되어 있지만 파편화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하나의 이야기는 그 자체로 독립적인 성격을 가집니다. 각 에피소드들을 연결할 수 있는 토대는 엔코르피오라는 인물인데, 엔코르피오가 애인인 지토네를 자기 곁에 두기 위해서 벌이는 모험과 투쟁이 이어집니다. <사티리콘>은 로마시대의 정통적인 문학은 아닙니다. 그 당시에는 비극이 문학으로 대접받았는데, 이 작품은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사티리콘, 즉 satire-풍자에 관련된 코미디이기 때문에 교육받은 사람들에게 대접받는 문학은 아니었습니다. <사티리콘>은 로마시대 하층민들의 일상과 그들의 자유분방한 성생활을 적나라하게 알 수 있는, 에로스에 관련된 이야기들이 굉장히 많이 등장하는 작품입니다. 어떻게 보면 펠리니의 주제와도 맞는 작품이었습니다.

<사티리콘>의 줄거리를 공간 중심으로 나누면 크게 12개의 에피소드로 구분됩니다. 시작하자마자 등장하는 공간은 로마의 하층민들이 거주하는 ‘숨므라’라는 지역으로 엔코르피오도 그 지역에 살고 있습니다. 두 번째 공간은 베르나키오의 극장입니다. 로마시대의 사람들은 스펙터클에 대한 욕망이 대단했습니다. 손목이 잘리는 기이한 스펙터클을 보여주는 극장에서 엔코르피오가 지토네를 찾습니다. 세 번째는 엔코르피오가 다시 자신의 집으로 돌아오면서 지나치는 공간입니다. 이 장면에서 펠리니는 로마시대의 싸구려 매춘구역을 어떤 식으로 형상화했는가를 보여줍니다. 네 번째 공간은 로마시대의 미술관입니다. 이 미술관에서 엔코르피오는 노시인 에어모프를 만나 트리마치오네라는 대부호의 향연에 함께 갑니다. 다섯 번째로 중요한 공간인 트리마치오네의 저택은 성욕과 식욕에 관련된 모든 욕망이 전부 드러나는 공간으로 나타납니다. 여섯 번째 주요한 공간은 리카를 둘러싼 공간입니다. 리카는 해적이자 이탈리아 남쪽 타란토 지역의 폭군입니다. 일곱 번째 시퀀스는 자살하는 귀족의 시퀀스입니다. 로마의 공화정을 지지하는 귀족은 세상이 바뀌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에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 자살합니다. 그 다음 여덟 번째 시퀀스는 불칸입니다. 엔코르피오와 아실토는 성적인 만족을 모르는 여성을 위해서 봉사를 하고 난 후, 불칸에서 남녀동체인 아기신을 만납니다. 그 다음 가는 곳이 아홉 번째 시퀀스이자 아홉 번째 공간입니다. 웃음의 신이 있는 마을, 미로가 나오는 공간, 그리고 미노타우로스가 나오는 곳입니다. 엔코르피오는 이 공간에서 미노타우로스와 결투를 하고 결국 패합니다. 열 번째 시퀀스에서 엔코르피오는 병을 고치기 위해서 쾌락의 정원으로 옮겨지지만 그의 병은 낫지 않습니다. 열한 번째 시퀀스에서 마녀 오로티아에게 간 엔코르피오는 그녀와 관계를 맺으며 치유됩니다. 마지막은 에어모프의 배를 타는 엔코르피오의 시퀀스입니다. 엔코르피오는 에어모프가 이미 죽은 것을 알게 되고 사람들이 에어모프의 몸으로 식인의례를 치르고 있습니다. 에어모프의 몸을 먹지 않고 그의 배를 타는 것으로, 배를 타고 배 안에서 내레이션 하는 것으로, 그리고 말을 하다가 죽는 것으로 끝이 납니다.

지금 본 12개의 에피소드가 원작 <사티리콘>의 전체가 아니기 때문에, 그리고 이야기가 계속 이어지기 때문에, 중간에서 이야기가 끊어지는 것으로 결말이 구성됩니다. 이러한 이야기를 어떤 식으로 운영할 것인가가 오늘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이고 또 펠리니의 고민이었습니다. 이 주제를 통해서 펠리니가 왜 <사티리콘>을 선택했는지를 조금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이탈리아 영화계에는 단테의 <신곡>을 영화화하고자 하는 열망이 항상 있었습니다. 펠리니가 환타지를 형상화시키는 데 굉장한 재주를 가진 사람이기 때문에 제작자들이 펠리니에게 자주 접근을 했습니다. 그러나 펠리니는 단테의 지옥편을 영화로 만들어도 자신의 인생에 도움이 될 것 같지 않다는 이유를 들어 거절합니다. 후에 다시 의뢰를 받은 작품이 페트로니우스의 <사티리콘>입니다. <사티리콘>은 비극이 아닌 풍자극이라 펠리니와 더 맞았던 것 같습니다. 그 점이 펠리니가 <사티리콘>을 선택하는 데 작용했을 것입니다. 앞서 말씀드렸지만 <사티리콘>에서 특히 극장 시퀀스와 저녁향연 장면은 펠리니가 지옥편을 영화화했을 때 창조했을 이미지를 상상하게 합니다. 늘 거절하기는 했지만 단테의 <신곡>에 도전하고 싶은 욕망이 펠리니에게도 있지 않았겠습니까? 부담을 느껴서 일단 거절했지만 <사티리콘>을 통해서 <신곡>을 연출할 때의 작업방향에 관련된 아이디어들이 특히 그 두 개의 시퀀스에서 나타나는 것 같습니다.

원래 펠리니는 그림을 잘 그렸습니다. 전쟁 때 이십대 초반이었던 펠리니는 미군들의 캐리커쳐 같은 것을 그려서 돈을 법니다. 펠리니가 영화제작에서 디자인 요즘 말하는 프로덕션 디자인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알게 된 것은 1957년에 <카비리아의 밤>을 만들 때입니다. 이 작업에서, 펠리니는 디자이너 피에로 게라르디를 만납니다. 펠리니가 피에로 게라르디를 만나서 미술에 눈을 뜨게 됐고 피에르 게라르디가 펠리니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합니다. 피에르 게라르디와 만나면서 펠리니의 영화는 절정기에 도달합니다. <달콤한 인생>, <8과 2분의 1>, <영혼의 줄리에타>. 펠리니는 영화의 전체적인 컨셉을 게라르디와 상의했습니다. 프로덕션 디자이너가 의상까지 책임지면서 옷과 장소를 통일시킨 경우는 피에르 게라르디가 대표적입니다.

만약 이번 회고전에서 단 하나의 작품을 봐야한다면 <8과 2분의 1>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8과 2분의 1>에서도 볼만한 프로덕션 디자인이 굉장히 많습니다. 구체적인 예를 들면, 펠리니가 어린 시절을 회상하는 장면, 어린 펠리니가 목욕하기 싫어서 도망을 다니는 장면이 있습니다. 어린이들과 침대에서 뛰어 놀던, 이성이 들어오기 전 굉장히 행복했던 혹은 행복했을 것이라고 상상하는 유아기를 다루는 그 시퀀스입니다. 그리고 어른이 된 후의 장면에서는 공원에서 아들의 애인을 보고 곤란한 나머지 판타지로 들어가는 시퀀스입니다. 판타지는 아랍계의 할렘인데, 모든 여자가 전 세계에 존재하는 유일한 남자인 자신를 위해 봉사하는 그 공간의 디자인은 여성들이 주로 등장하기 때문인지 부엌과 목욕탕 등이 중심공간으로 나옵니다. 그런데 부엌이라는 공간, 여성들의 일상을 보여주는 부엌과 식당은 미술에서는 17세기 바로크 시절의 네덜란드 장르화의 고정된 공간입니다. 베르메르의 그림을 떠올리면 기억이 날 겁니다. 그 공간에서 머리에 흰 수건을 두른 여자들이 일하고 있는 것이 17세기 네덜란드의 바로크 장르화의 표준적인 모습입니다. 이러한 스탠다드한 표면이 <8과 2분의 1>의 디자인에 인상적으로 나와 있습니다.

하나 더 덧붙이자면, 피에르 게라르디가 마지막으로 참여한 <영혼의 줄리에타>에서의 여성 패션을 들 수 있습니다. 이탈리아 감독들 중에서 패션에 관해서는 영화사를 통틀어서 루키아노 비스콘티가 최고입니다. <영혼의 줄리에타>에서 펠리니의 세련된 패션 감각이 드러나지만 비스콘티와는 차이를 보입니다. 다른 점은 비스콘티는 대단히 프루스트적이라는 것입니다. 재현할 때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현실보다 더 이상화해서 재현하기 때문에 사실은 존재하지 않는 다시 말해 죽은 대상에 대한 애도를 하는 것이 비스콘티 영화의 특징입니다. 그래서 영화를 보고 난 후에 의상만 봐도 눈물이 나는 그런 부분이 있습니다. 펠리니 영화에도 대단히 세련된 의상이 등장하지만 그 의상으로 풀어내는 이야기는 사티리콘, 그러니까 풍자입니다. 옷을 가지고도 웃깁니다. 이 점이 역시 탁월한 광대였던 펠리니의 큰 특징입니다. 오늘 같이 봤던 1969년작 <사티리콘>을 만들 때 펠리니는 다니노 도나티라는 마에스트로를 만납니다. 지옥과 같지만 숭고미가 있는 공간으로 자신 영화의 미술 프로덕션 컨셉을 잡아갈 때, 펠리니는 바로 <사타리콘>을 출발점으로 뒀습니다.


간단히 정리하겠습니다. 왜 펠리니는 정신없을 정도로 미술사를 끌어와서 작품을 만들었을까요? 이전의 작품에서도 조금씩 그런 경향을 보였지만 특히 <8과 1/2>부터 펠리니는 전통적인 영화 만들기와 완전히 결별합니다. 그래서 <8과 1/2>부터는 스토리, 내러티브를 풀어놓습니다. 인과관계에 따른 논리적인 소위 할리우드식 웰메이드가 영화의 한계를 만든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펠리니는 영화의 한계를 한정짓는 것을 거부하고, 영화라는 매체는 스토리만 만드는 것이 아니고 또 다른 한계를 멀리 확장시켜준다고 생각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8과 1/2>을 만들면서 펠리니는 스토리를 풀어놨습니다. <사티리콘>은 1960년대의 반영성을 드러내는 작품인데 미술은 그 자체로 독립적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쉽게 설명을 하자면, 음악은 많은 경우에 스토리를 관객들에게 제대로 전달하기 위해서 내러티브를 보완하는 장치로 쓰였습니다. 다시 말해 음악 자체가 내러티브와 동일했는데, <사티리콘>에서 펠리니는 미술을 내러티브를 보완하기 위한 수직적인 상하관계의 보완장치로서가 아니라 미술 그 자체를 독립적으로 은유적으로 썼습니다. 그래서 할리우드적인 영화 만들기 즉 히치콕이나 존 포드와 같이 수학적으로 앞뒤가 딱 맞는 그런 영화들에 굉장히 갑갑증을 느꼈고, 그렇게 만들어서 영화의 표현이나 한계를 축소시키는 것에 반대하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미술을 은유적으로 제시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종합시키는 것은 관객의 몫입니다. 그래서 60년대 이후의 모더니즘 영화들에 펠리니가 영향을 끼쳤다고 보여집니다. 펠리니는 광대의 이미지를 갖고 있지만 영화 형식 자체의 본질적인 부분에 대해서 고민하는 사람이었고, 중요한 아티스트라고 생각합니다. (정리: 최인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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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관객 2010.06.28 22: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리해 놓으신 글, 잘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2. cleo 2010.07.01 08: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펠리니 영화도 보고싶고, 한창호선생님 재미있는 강연도 듣고 싶었는데...이렇게 글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시네마떼끄부산에도 '펠리니 회고전' 한다면 좋겠습니다-.-;

[영화읽기] 페데리코 펠리니의 <사티리콘>


<영혼의 줄리에타>가 흥행에서 실패한 뒤 페데리코 펠리니는 제작자인 디노 드 로렌티스와의 소송에 휘말려서 재산 일부를 압류당하고, 늑막염으로 요양소에 들어가는 등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요양소에서 돌아온 후 <기이한 이야기들>이라는 제목의 옴니버스 공포영화에 감독으로 참여하기도 했던 그는 1969년 <달콤한 인생>의 후속작이라 일컬어지는 <사티리콘>을 만들었다. <사티리콘>의 시대적 배경은 고대 로마이며, 현대물인 <달콤한 인생>과 내용적인 면에서 직접적인 연관성은 없지만 등장인물들의 기행과 도덕적 타락상을 묘사하고 있다는 점에서 유사한 주제의식을 갖고 있다. 구조적인 측면에서는 고전적인 극영화의 서사 구조에 충실했던 <영혼의 줄리에타>에서 단편적인 에피소드들이 결합된 <8과 1/2>의 구조로 되돌아갔다고 평가된다.

이 영화는 1세기경 네로 황제 시대의 로마 작가인 페트로니우스 아르비테르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사실적이고 풍자적인 내용의 원작은 17세기에 이르러서야 출판되었을 정도로 온전히 보존되지 못하고 단편적으로만 남아있었다. 펠리니는 원작에 대해서 눈이 없고 부서진 코를 하고 있는 박물관의 두상을 회상했다고 밝히고 있다. 그는 조각조각 나누어진 원작을 완벽하게 재구성하는 대신 죄의식이나 수치심이 없는 무의식의 세계로 들어가는 도구로 삼았다. <달콤한 인생>이 기독교적인 반면 <사티리콘>은 기독교적 도덕관에서 해방되고자 한 이교도적인 풍속화라고 일컬어진다. 그러나 이 작품은 그와 동시에 구원과 은총이라는 기독교적 모티브를 품고 있기도 하다.

<사티리콘>은 미국에서 좋은 반응을 얻었고 메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열린 시사회 반응도 무척 열광적이었다. 특히 비틀즈의 존 레논이 <사티리콘>의 팬이었는데, 당시 그는 이 영화를 보고 자신의 현실을 깨닫게 되었다고 밝힌 바 있다. 마틴 스콜세지는 ‘조명과 컬러를 가장 탁월하게 이용한 영화 베스트 10’(이 리스트는 영어권 영화 10편과 그 이외 지역의 영화 10편으로 이루어져 있다)을 선정할 때 이 영화를 뽑기도 했다. 이 목록에는 이탈리아 영화가 네 편 들어있는데 <사티리콘> 이외에 루키노 비스콘티의 <센소>,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의 <마지막 황제>,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의 <붉은 사막> 등이 뽑혔다. (홍성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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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읽기] 페데리코 펠리니의 <카사노바>


페데리코 펠리니가 마음껏 상상의 나래를 펼쳐 만들어낸 영화 <카사노바>(1976)는 카사노바 이야기에 관한 가장 독창적이고 이질적인 해석을 한 작품이다. <사티리콘>부터 시작된 펠리니 중후기의 화려한 미장센과 카니발적인 환영의 세계가 이 영화에서 정점을 맞이한다. 영화의 긴 러닝 타임 동안 밀도 깊게 펼쳐지는 강렬한 이미지들과 과잉의 에너지는 보는 사람에 따라 매혹과 혐오의 감정을 극단적으로 오가게 한다.

영화의 모든 장면은 로마의 치네치타 스튜디오에서 촬영되었다. 각 나라의 도시들, 파티장을 표현하는 오색찬란한 화려한 공간부터 몽환적이고 환상적인 공간과 음침한 뒷골목까지, 수많은 공간들이 정교한 세트디자인으로 표현되었다. 다닐로 도나티가 만들어낸 다채로운 의상들은 더욱 놀랍다. 금은보화로 치장된 화려한 옷부터 컬트적이다 못해 그로테스크하기까지 한 의상들은 과잉적인 찬란한 색채들의 향연을 펼치며 아름다움과 추함의 미학을 공존시킨다. 그는 이 영화로 아카데미 의상디자인상을 수상했다. 한편 펠리니의 오랜 동반자인 니노 로타의 음악은 매우 복잡한 이 영화의 세계를 절묘하게 감싸고, 카사노바를 연기한 배우 도날드 서덜랜드는 아크로바틱한 운동성과 섬세한 감정을 동시에 표현하는 경이로운 퍼포먼스를 보여준다.

카사노바는 베니스에서 감옥에 갇혔다가 운 좋게 탈옥하여 각 나라를 떠돈다. 각 나라의 유명한 도시들에 가서 수많은 파티에 참석하고, 그곳의 여자들을 만난다. 그가 참석하는 파티들에서는 카니발적인 축제들이 펼쳐진다. 추악한 욕망을 무차별적으로 표출하는 집단 광기의 난교 현장들은 유럽인들의 정신이 병들었음을 시사한다. 반면 카사노바에게 섹스는 욕망의 표출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제의나 의식 같다. 영화에서 끊임없이 등장하는 섹스 장면들은 전혀 에로틱하지 않다. 단순히 옷을 벗지 않아서만이 아니다. 욕망이나 감정 없이 진자나 피스톤의 단순한 왕복운동처럼 벌어지는 섹스는 마치 하나의 퍼포먼스처럼 보인다. 카사노바가 섹스를 할 때마다, 남근을 형상화한 새의 모형은 날갯짓을 하며 빙글빙글 돌고 괴상한 음악이 함께 흘러나온다. 카사노바는 차라리 하나의 섹스기계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섹스를 통해 죽음에 한 발자국씩 가까이 다가서는 것으로 보인다. 질 들뢰즈의 지적대로 영화 후반부에 자동기계 인형 여인으로 귀결되는 ‘기계적인 경련과 죽음의 파편화’처럼 말이다. 카사노바의 노년은 비참하고 쓸쓸하다. 그가 새빨갛게 충혈된 눈으로 보는 마지막 꿈의 이미지는 인형 여인과 춤을 추는 장면이다. (박영석)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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