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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7.10 마리오 바바의 공포의 세계

지난 6월 30일 저녁, 이탈리아 공포 영화의 거장 마리오 바바의 <사탄의 가면> 상영 후 ‘마리오 바바의 공포의 세계’라는 주제로 김성욱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디렉터의 강연이 이어졌다. 영화의 한 장면 한 장면이 인용된 강연은 마리오 바바가 공포영화 장르에서 창조한 다양한 영화적 형식과 유령과 죽음에 대한 그의 세계관이 실감나게 공유된 자리였다. 그 일부를 여기에 전한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디렉터): <사탄의 가면>은 바바의 공포영화 데뷔작이다. 이 안에 마리오 바바 공포영화의 정수가 들어있다. 그가 공포영화라고 하는 특정 장르의 여러 영화적 형식을 고안해낸 것은 잘 얘기되지 않았다. 영화적인 특성을 중심으로 <사탄의 가면>을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 같아 그런 관점에서 오늘 얘기를 풀어가려 한다. 특히 <사탄의 가면>에서 말씀드리려는 것은 어떻게 주제적으로 유령과 환영이 등장하게 되는지와 어떤 영화적인 형식 안에서 유령을 등장시켜나가는지 이 두 가지 점이다. 유령적인 것은 표면적으로 보면 예외적이지만 <사탄의 가면>에서는 예외적인 것이 아니라 은밀하게 현재의 삶 안에 잠복해 있는 대단히 비밀스러운 영역이라고 볼 수 있다. 영화의 공간들이 믿을 수 없는 방식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고, 과거의 일이 반복 회귀되는 구조임을 생각해보면 방금 말씀드린 것이 무슨 뜻인지 알 수 있다.
영화의 첫 장면은 불로부터 시작한다. 뱀파이어를 화형시키는 장면과 그의 연인인 마녀의 등에 가혹한 형벌을 가하는 장면이 나온다. 사탄의 약자이기도 하고 Asa라는 여인의 이름 안에 들어가는 S라는 글자를 낙인처럼 몸에 기입한다. S는 처벌의 기호이자 그녀에게 부여된 인장인데 영화 곳곳에서 반복해서 등장하고 있다. 그런데 뱀파이어를 화형시키는 ‘정화’의 불은 사탄의 힘 때문인지 비에 의해 일시적으로 꺼진다. 이처럼 불과 물 같은 자연적 요소가 영화 처음부터 강조된다. 물의 흔적은 영화 곳곳에서 등장하는데 눈물로도 등장한다. 여인의 마스크를 장정이 해머로 내려치는 순간 얼굴 위로 물이 흐른다. 피인지 물인지 모르겠지만 눈물이라는 느낌이 훨씬 강하게 느껴진다. 앞서 본 장면에서는 여인의 한 방울 눈물이 비가 되어 화형을 중단시키는 느낌도 있다. 뒤에 시신으로 박사의 피가 떨어져서 핏물을 머금은 상태로 시체가 부활하게 되는 장면에서는 핏방울이 눈물방울과 비슷한 느낌을 준다. 공포영화에서 피와 눈물은 비슷한 영역이다. 또 물웅덩이에 박사가 돌을 던지자 파문이 번지는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장면이 있다. 이 장면 다음에 시체가 떠오르는 것이 오버랩 되기 때문에 부활은 피에 의한 것이지만 동시에 물과도 연결된다.
이백년이 지난 후에 현재의 시간대가 진행된다. 박사와 조수는 낯선 마을의 지하무덤에 들어가게 된다. 지하무덤으로 들어가게 되는 순간은 그들의 시선을 경유한다기보다 특정한 소리부터 환기된다. 카메라는 줌이 되어 들어가고 컴컴한 가운데 문이 열리고 밝은 빛이 들어온다. 이들은 거기에 홀린 듯이 들어가게 된다. 영화의 장면 대부분이 그렇다. 빈 공간을 보여주는 장면부터 시작해서 갑자기 문이 열리고 빛에 의해서 내부의 공간이 확 들어온다. 그 때 카메라는 줌이거나 카메라의 트래블링이다. 달리 말해 흡수적이다. 끌어당기는 힘에 의해서 끌려가는 거지 그들 자의에 의해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내부의 공간으로 들어간 이후에 인물을 보여주는 시선도 특징적이다. 지하 무덤으로 박사와 조수가 들어갈 때 카메라는 계단을 내려가는 두 사람을 보여주면서 점차 왼쪽으로 움직인다. 폐허가 된 공간 내부를 보여주는 장면으로 연결되고 그 중심에 무덤이 있다. 이후에도 카메라가 돌고 끝내 인물들로 되돌아오는 움직임의 양상은 <사탄의 가면> 카메라 움직임의 주된 패턴을 보여준다. 이 영화에는 크게 세 가지 시선이 있다. 하나는 인물이 본 것에 의해서 보게 되는 장면이고 둘째는 그 인물이 무언가를 보고 있는 장면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소녀가 소젖을 짜러 갔을 때 창문을 통해 무덤을 쳐다볼 때의 장면 같은 것이다. 세 번째는 여기서처럼 인물의 행동선을 따라 보여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인물에서 빠져나와 자의적인 방식으로 움직이게 되고 그 움직임에 의해서 인물들이 다시 보이는 장면이다. 이 장면은 여러 가지 느낌이 있다. 이 영화는 방문자로 시작되는 영화다. 이백년이 지난 뒤 이 마을에 낯선 두 사람이 도착하면서 벌어지는 얘기다. 낯선 풍경에 대한 방문자들의 시선은 마을 사람들의 시선과 다르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 세계 안에서 자신의 얼굴을 보게 된다. <킬 베이비 킬>도 그러한데 앞에 뛰어가는 사람을 쫓아가는 장면이 있다. 문을 열고 쫓아가고 문을 열고 쫓아가는데 계속 똑같은 자리를 뱅뱅 돌게 된다. 결국 그 사람 뒷덜미를 잡게 되는데 고개를 돌린 것은 자기 얼굴이었다. 진정한 공포는 타자라고 생각한 것이 알고 보니 나였다는 것을 알게 되고 나서의 공포라고 한다. <사탄의 가면>에서의 장면도 이 정도의 강력한 공포감을 주진 않지만 그들이 무언가 보았던 것이 자신이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것은 나중에 박사가 뱀파이어를 부활시키고 자신도 뱀파이어가 되어버리는 이야기와 연결된다. 결론적으로 폐허 안 장면은 굉장히 예시적인 장면이다. 앞서 말씀드린 시선의 세 번째 측면, 누구의 시선도 아니고 보는 것을 보여주는 시선도 아닌 카메라의 자의적인 움직임은 또 다른 누군가의 시선, 보이지 않는 자의 시선으로 유령적인 시선, 뱀파이어적인 시선이라고 할 수 있다. 뱀파이어의 특징은 무언가를 빨아들이는 것인데 몸 안의 피만을 빨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시선을 흡수해버린다. 박사와 조수가 낯선 공간의 지하무덤까지 들어갔을 때 그들은 무엇을 보기 위해 내려갈 때 도리어 그 공간에 사로잡히게 되고 이 폐허 안에 존재하는 부재하는 시선의 포로가 된다.
이후 뱀파이어를 화형시킨 귀족의 후손들이 사는 성 안이 나온다. 벽난로 가운데 그려진 용의 형상은 S자를 띠고 있고 인물들이 서로 연결된 모습도 S자로 표현되고 있다. 딸과 아들과 벽난로 앞에 앉아있는 아버지는 뱀파이어를 화형할 때 뱀파이어와 마녀와 마을 사람들의 삼각 구도를 답습하고 있다. 카메라의 움직임에 의해 뱀이 또아리를 틀듯이 세 인물을 한 번에 연결하는 형상은 16, 17세기 매너리즘 조각에서 나타나는 사행양식, 즉 뱀의 양식과 유사하다. 즉 S자는 프레임 장치 안에서의 형상이기도 하고 카메라의 움직임이 갖는 기본적인 운동선 자체이기도 하며 인물간의 관계를 드러낸다. 동시에 영화에 등장하는 서로 다른 여럿을 하나로 묶어버리기도 한다. 성과 지하무덤과 뱀파이어가 박사를 데리고 가는 성이 그렇다. 이 셋은 같은 건물처럼 구성되어있다. 이 세 개의 건물이 한쪽에서 다른 쪽으로 연결되어있고 근본적으로 지하 무덤으로 연결이 된다. 그런 공간적인 연결점을 만드는 구조도 S자의 형상과 동일하다고 본다.
여관집 소녀가 밤중에 외양간에 가게 됐을 때의 장면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이 장면은 같은 것을 두 번 반복해서 보여준다. 한번은 소녀의 시선을 동반해 건너편 무덤을 쳐다보는 것으로 돼있다. 그 순간에는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는다. 소녀는 젖 짜던 일로 돌아오는데 잠깐 뒤를 돌아본다. 뒤를 돌아본 자리엔 아무 것도 없고 유일하게 존재하는 것은 카메라다. 카메라는 서서히 움직여 창문을 따라 점점 안으로 들어가는데 그 순간 땅속에 있던 손이 올라온다. 단순히 소녀가 보지 못한 사건을 묘사한다기보다 소녀와 동행하고 있는 저 시선의 존재성을 부각하는 방식으로 카메라가 구성돼 있다. 부재하지만 소녀 옆을 맴도는 드러나지 않는 시선에 의해 환기되는 것이 시체의 부활이다. 시체의 부활 자체를 보여주기보다 그 시선을 따라가는 끝 지점에서야 비로소 뱀파이어가 부활한다는 것이다. 즉 그 시선이 시체의 부활을 이끈다. 한편 이 장면에서는 자고 있던 아버지가 순간적으로 깨어나게 되고 불안감에 사로잡힌다. 그 순간 카메라는 내부의 텅 빈 공간을 보여준다. 그러면 카메라가 점차 트래블링해서 가장 어두운 지대, 빛에 의해 포착되는 침대 근처와 달리 불빛이 없는 문 근처로 향한다. 그 순간 문이 열리고 문 뒤에는 아무도 없는 것이 보인다. 그러다 줌으로 클로즈업 되었다가 다시 줌으로 확 빠져나와서 놀라는 아버지를 보여준다. 처음에는 카메라에 의해서 부재의 공간이 드러나고 부재의 공간 안에서 가장 어두운 지대를 보여주고 그 안에서 무언가가 빛에 의해 출몰한다. 이때 아버지는 십자가를 가까이 오는 것을 향해 비춘다. 십자가는 빛에 반사돼서 굉장히 밝은 빛을 방출한다. 아버지는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카메라는 줌 아웃을 해서 빠져나오는 순간 뱀파이어는 사라져버린다. 유령과도 같은 뱀파이어의 존재의 등장과 퇴장이 구상된 측면이 이렇다. 시체지만 살아있는 것 같은 그의 존재는 물질성이 있지만, 출몰과 퇴장의 순간은 비물질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공간지대 안에서 가장 어두운 지대에 빛이 비치는 순간 얼굴이 떠오르게 되고 빛이 사라지는 순간 그것도 사라진다.
영화 속 장면들을 보여드린 것은 바바가 표현하려던 것이 주제적인 측면에서만 얘기될 것은 아니어서였다. 먼저 이 영화는 불, 물, 바람, 흐르는 것, 물방울, 구름, 안개, 나무 등 자연적인 요소들로 영혼성과 정신성을 끌어올리고 있다. 또 줌의 과다한 활용, 빛과 어둠을 강렬하게 대조시키는 방식, 플랑세캉스, 트래블링이라고 하는 영화적 표현 방식을 통해 보이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 것들을 환기시켜간다. 뱀파이어는 유령적인 존재로 우리의 시선 안에서는 제대로 포착되지 않는 것인데 그것이 영화적인 표현 방식을 통해서 가시화된다. 빈 공간을 창조해나가는 영화적 표현 방식에서 비롯되어 빈 공간 안에 부여되는 시선과 카메라의 움직임, 그리고 빛과 어둠의 충돌로 인해 유령적인 존재성을 지닌 뱀파이어가 등장한다. 그런 식의 물리적 층위들로 영화를 표현해갈 때 두 종류의 상황과 인물이 있다. 일단 그런 식의 물리적 층위 안에 구속된 인물들이 있다. 이 영화에서 공간은 대부분 폐쇄성을 지닌다. 지하감옥, 무덤, 성이 그렇고 마을도 전체적으로 보면 폐쇄성을 가진다. 두 번째로 그러한 세계에서 탈구되어 있는, 그러한 세계에서 또 다른 세계로 연결점을 갖고 있는 것이 있다. 서로 만날 법 없는 두 세계가 연결되면서 '더블'들이 만들어진다. 그러한 분신과 유령적인 존재성을 지닌 것들은 물리적이고 물질적인 요소들 안에서 출현해간다. 그리고 이 영화 마지막에 등장하는 지하무덤은 마치 인간이 살고 있는 성의 부속 건물로서의 존재성을 갖는다. 지하무덤은 살아있는 삶의 영역의 부속 건물로, 죽은 자들의 세계이다. 바바가 이 영화에서 구축하고 있는 것은 현재라는 시간이고 마을과 성이라는 공간인데 거기에는 과거와 지하무덤이라는 부속건물을 갖고 있다. 그것은 살아있음 안에 죽음이라는 부속 건물을 갖고 있는 삶의 양태를 보여주는 것이다. 공포는 그런 불안감에서 등장하게 된다. 살아있는 세계 안에 무언가 죽음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되거나, 사라졌고 이미 지나가버렸다고 생각한 것이 회귀할 것 같은 예감을 하게 되는 것, 끊임없이 시간 안에서 반복되어 유예 상태에 빠져 있는 것이 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세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정리: 최용혁 관객에디터)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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