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 에필로그] 2010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가 남긴 것들

2010년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가 대망의 막을 내렸다. 폐막 하루 전날인 지난 27일 아직 냉기가 감돌고 먼지가 흩뿌려진 극장 카페테리아에 8명의 데일리, 에디터팀이 한 자리에 모였다. 이번 영화제와 그간의 활동을 돌아보는 마지막 모임인 셈이다. 웹데일리팀과 관객에디터들은 예년보다 길게 이뤄진 한 달 반 시간 동안 갖가지 영화제 소식을 알리고,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했으며, 관객후원 모금운동까지 많은 활동을 했다. 특히 이들 모두는 이번 영화제가 영화가 무엇인지를 다시금 고민하고 생각해볼 수 있었던 자리였으며 시네마테크의 필요성과 중요성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는 장이었다는 한 목소리다. 유난히 길고 여전히 끝이 아닌 친구들 영화제를 마치면서도 극장에 대한 걱정을 떨치지 못했던 데일리/에디터 친구들의 이야기를 여기에 옮긴다.



신선자(웹데일리 편집/관객에디터):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 때마다 웹데일리를 통해 소식을 전한 지는 3년 정도 되었다. 이번은 특히 좀 남다르다. 나만 그런 것은 아닐 것 같다. 영화제를 마감하면서 각자 개인적으로 느끼는 바들이 많았을 것 같다. 데일리팀은 준비기간부터 치면 두 달여의 기간이 흐른 셈이다. 각자 이번 영화제 기간 동안 관객모금운동 자원도 하고 영화도 보고 글도 쓰고 하느라 정말 수고 많았다. 인상 깊게 생각했던 부분들이나 이번 영화제 기간 동안 일어났던 일련의 일들에 대해 느끼는 바를 한마디씩 자유롭게 이야기 봤음 좋겠다. 나부터 간단히 말해 보자면 사실 우리가 운영하던 웹데일리가 친구들 영화제의 소식지인지 시네마테크 사태에 관한 논의의 장인지 모호하다는 느낌도 약간 있었다. 장단점은 있었던 것 같다. 해야 하고 필요하다 느껴 일을 했지만 개인적으로 좀 피곤하기도 했다. 영화는 그래도 꽤 봤긴 한데 영화 보면서 영화에 집중하기보다는 다른 부분들을 신경쓰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후회하진 않지만 이런 상황에 봉착한 현실이 짜증나긴 했다. 결과적으로 처음에 후원모금 활동 시작하면서 모금액자체가 목표했던 금액의 1/10수준이지만, 그 전에 후원모금으로 모아지는 금액을 비교해보면 한 달 여간 짧은 기간 동안 성과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눈앞에 보여지는 돈이 아니라 어느 정도 시네마테크라는 공간의 성격이나 브랜드 인지도를 높일 수 있었다는 게 가장 큰 성과가 아닌가 싶다.
홍성원(관객에디터): 예전에 CMS로 시네마테크를 후원해주신 분들 이름을 오프라인 소식지를 통해 보았는데 짧은 기간에 많이 모였으니 이젠 너무 많아 세어보기 힘들지 않을까 싶다. (웃음)
선자: 시네마테크 문제가 작년 친구들 영화제가 불거져 나왔고 CMS 제도를 그때부터 시작해서 1년 동안 대략 100명 정도 모였다고 하는데, 보다 긴박한 상황이 되어 우리 관객들 스스로 모금운동을 펼치면서는 그 수가 거의 배가 되었다. 후원금도 두 배정도 모인 거다. 기존 CMS 후원회원의 모금액까지 합치면 이제 안정적으로 대략 한달에 4, 5백만원 정도가 시네마테크를 위해 쓰여지게 된다. 완벽한 독립은 어렵지만 그래도 이 정도까지 호응을 얻었다는 건 기분 좋은 일이다.
성원: 액수로 따지면 적을지 모르지만, 모두가 같이 도와주시는 분들이었으니까 여기까지 가능했던 것 같다.

박영석(웹데일리/관객에디터): 이번 영화제는 길고 드라마틱하게 느껴졌다. 상황이 급변했었고 처음에는 데일리에 영화에 관한 글만 쓰면 한가해지겠지 싶었는데, 그 다음에는 소식지를 준비해야했고, 소식지 준비가 끝나자마자 영진위 일이 터지고 전용관 문제 등이 다가왔다. 동시에 독립영화전용관이랑 미디액트일도 생겼다. 기분이 내내 이상했다.
강민영(웹데일리/관객에디터): 사실 나는 작년부터 푀이야드의 <뱀파이어>를 너무 극장에서 보고 싶었다. 작년 무성영화들을 챙겨보면서 내가 도대체 이 영화를 극장에서 볼 날이 과연 올까라고 생각했었는데 이번 영화제 상영작 목록에 있는 것을 보고 뛸 듯이 기뻤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이번 영화제 기간 동안 영화들을 보면서 소중한 것을 손 안에 꼭 쥐고 있는 느낌을 받았다.
최혁규(관객에디터): 개별 영화에 대한 느낌이라는 것보다 영화 자체에 대해 소중하게 느껴졌던 게 너무 좋았고 영화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새삼 느끼게 된 것 같다.
영석: 나도 비슷한데 주로 어떤 영화가 어떤 뜻을 담고 있냐에 대해 생각했다기보다 극장일로 만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모금운동하면서 만난 사람들도 있고 하니까 영화가 도대체 무엇인가, 시네마테크가 나에게 어떤 의미인가를 생각하면서 두 달을 보낸 것 같다.
성원: <뱀파이어> 시네토크 때 정성일 평론가는 <뱀파이어>를 ‘내 생애의 영화’라고 표현했고, 크리스 후지와라도 프리츠 랑의 영화를 보며 영화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된다고 말했었다. 관객들뿐 아니라 영화를 추천한 감독이나 평론가들도 같은 생각을 가졌던 것 같다.

선자: 그런데 영화는 다들 볼 만큼 봤는지 궁금하다. (일동 고개 끄덕 끄덕, 웃음)
혁규: 틈나는 대로 보긴 했는데 사실 영화를 봤단 느낌이 안 든다. (웃음)
영석: 그나마 영화제 후반부에 몰린 존 포드 영화를 보면서 ‘아 내가 영화를 보고 있구나’라는 느낌이 들긴 했었던 것같다.
성원: 나는 이번 영화제에서 존 포드의 <나의 계곡은 푸르렀다>와 카르멜로 베네의 <카프리치>빼고는 다 챙겨봤다.
장지혜(웹데일리): 난 사실 이번 영화제는 완전정복을 꿈꾸었는데, 여러 일들이 생기면서 완전정복은 물 건너 갔구나 했다. 언론들과 인터뷰를 하면서 많은 질문을 받았는데, 관객발언 때도 그렇고 나는 항상 서울아트시네마가 소중한 공간이고 가치 있는 공간이라는 이야기를 했었다. 근데 그 이야기를 한번 내뱉고 마는 게 아닌지 고민스러웠다. 그 말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가치가 어떤 것이고, 또 이야기를 해놓고도 질문이 다시 돌아오고 다시 생각하게 되고. 영화제 시작하며 영화 리뷰 등을 열심히 쓰고 작품 분석해야지라는 생각만 했다가 여러 일들을 겪으면서 ‘영화가 있어야 할 곳이 어디인가’ 이런 질문들을 스스로에게 해보게 된다.

성원: 영진위의 처사는 분명 잘못된 것인데 오히려 그게 소중한 공간이라 생각할 수 있게 되는 기회를 제공해준 것 같다.
영석: 연대감이 생성된 거지.
민영: 처음 모금부스를 운영할 때는 우리 데일리, 에디터들이 주축이 되어 움직였지만 자원봉사하겠다는 친구들이 하나씩 늘지 않았나. 그 친구들 중에 가은이나 예하, 재욱 같은 경우는 다들 고등학생이고 한데 추운 날에도 나와서 도와드릴 것 없냐고 물어보곤 했던 기억이 있다. 그때 마음이 참 짠했다.
지혜: 고등학교 친구들뿐만 아니라 카페 서울아트시네마에서 닉네임으로만 알았던 분들과 이야기하는 것들도 좋았던 것 같다.
영석: 시네마테크가 친구들을 만나는 공간이라는 걸 절실히 깨닫게 된다.
성원: 얼굴만 보고 간단히 인사만 건네던 사람들이 함께 극장을 걱정하고 하는 게 인상적이었다.

김보년(웹데일리): 나는 이번 일이 터지면서 사람들을 본다는 것 자체가 되게 중요한 경험이란 생각을 했다. 서울아트시네마 관객들이 유난히 많이 웃지 않나. <사냥꾼의 밤> 같은 경우도 영화를 보면서 엄청 웃었다. 사실 한 번 웃을 거 괜히 두 번 웃고 하는 것 같아 싫기도 했고 그런 게 때때로 감상에 방해를 주고 그랬는데 되돌아보면 참 좋은 경험인 것 같다. 사람들과 같이 영화 본다는 게 특별한 경험이구나, 영화 이상의 특별한 경험이구나라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되었다.
성원: 예전에는 그런 것 싫다는 사람도 많았다. 나는 심각하게 영화를 보고 있는데 남들이 큰 소리로 웃으면 흐름이 깨지는 것 같은 기분도 들고.
지혜: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영화를 보면 마음에 약간 여유가 생기고 한 번 웃을 것도 두 번 웃고 그러는 것 같다. 나는 그런 분위기가 좋다.
보년: 때때로 과시적으로 웃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 때도 있다. (웃음)
영석: 특히 <뱀파이어>는 완전무성이었는데 모두가 낄낄거리며 웃지 않았나. 그런 경험을 할 곳은 여기밖에 없다.
성원: 영화를 그냥 심심풀이가 아니라 좋은 걸 보러가는구나 할 때 느끼는 기대감이나 이런 게 서울아트시네마에는 있는 것 같다.
보년: 서울아트시네마의 관객들은 질문도 터프하게 하는 것 같다. (웃음) 친구들 영화제 기간이어서 사람이 많아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말이다. 당장 다음 주 되면 또 바뀌겠지.

영석: 데일리하면서는 사실 우리가 쓴 영화리뷰보다 기사들을 더 열심히 읽었다. 영화보다 워낙 기사들이 드라마틱하다보니까.
보년: 프리뷰를 드라마틱하게 쓸 수는 없잖나. (웃음) 트위터를 통해 사람이 엄청 많이 들어온 날도 있었는데, 여하튼 이번 사태들 때문에 데일리를 찾아보는 사람도 많았던 것 같다.
선자: 이번 데일리에는 카테고리에 변화가 심하게 있진 않았지만 추가된 건 관객 후원릴레이 정도였는데, 정말 사건사고가 많았으니 그 뉴스들을 읽는 재미 또한 쏠쏠했던 것 같다. 가장 많이 언론에 노출된 게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혁규: 데일리 뿐 아니라 영화를 보고 나와서도 시시각각 변하는 상황에 대해서 궁금했다. 아침에도 그렇고 뭘 하든 간에 계속 변화가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밖에 없었다. 극장 밖에 있으면서도 극장 안에 있는 느낌이었다. 같이 기사보고 같이 화도 내고 그런 게 참 재밌었는데 말이지.
선자: 영석이 말대로 정말 드라마틱한 날들이었다. 영화보다 TV보다 임시국회가 더 재밌지 않았나? 그런데 여러모로 시네마테크에 대한 인식은 넓어졌으나 명증하게 설명되지는 못했던 부분들도 있었던 것 같다. 사실 우리는 관객이고 자원봉사 차원에서 활동을 한 것인데, 나를 포함해 우리 모두 수위 조절을 잘 못했던 것은 아닌지 싶기도 하다. 인터뷰를 받을 때도 어떤 친구는 사무국의 입장을 대변하는 듯, 꼭 우리가 운영자인가 하는 생각이 들게 했다. 그것은 질문을 하는 사람들은 제대로 인지하지 못해서 그런 면도 있다. 그때마다 우리의 정체성이 모호하다는 생각을 했다. 원하고 스스로 필요하다 생각했으니까 이 일들을 진행하고 다들 수고하면서 고생했는데, 운영적인 측면에서도 원활하게 쉽게 할 수 는 방법을 우리가 찾지 못한 것도 있다면 추후에는 그런 지점들을 제고해봐야 할 듯 하다. 어쨌든 오프라인 모금부스는 이번 영화제를 끝으로 정리한다. 보년 씨 이야기처럼 다음 주면 또 다른 일이 시작되겠지. 시끌벅적했던 극장이 조용해질지도 모를 일이이고. 영화제를 끝맺으면서 이걸 어떤 식으로 마무리 시켜야 또 다른 시작을 잘 맞이할 수 있을까 생각하게 된다. 어떻게 연계하는 게 좋을까라는 생각. 그런 부분의 고민을 많이 하게 되는데.
성원: 예전에 할아버지 한 분이 그런 이야기를 하셨다. 서울아트시네마의 관객회원제도는 기간이 끝나면 언제 끝나는가에 대해 안내를 해주지 않는다고 불평하시더라. 메일로도 안내를 안 해주고 소식도 알려주지 않고, 이건 고쳐야 하지 않나.
혁규: 후원회원은 기간 여부에 상관없이 메일로 안내되지 않나?
선자: 확인하지 않으면 사전에 알지 못하는 게 있긴 하다.
영석: 그런 경험 나도 있었다.
지혜: 관객회원에 가입하면 온라인으로 로그인해서 기록들을 볼 수 있고 마이페이지가 뜨는 게 가능하면 좋을 텐데. 그리고 우리는 아까 말씀하신 것처럼 모호한 위치였던 것 같다. 모금활동을 진행한 사람들이 분명 필요한 부분이긴 한데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같은 관객이지만 모든 사람이 여기의 친구들 같지 않으니 거리감이 생겨서 관객들조차도 관계자에게 정보를 묻듯이 우리에게 질문하곤 한다. 그런걸 보면서 우리가 만든 거리감은 아닌데 의문이 들었다. 모두 같이 자유로웠으면 좋겠다.
영석: 관객으로서는 어디든지 말 할 수 있지만 우리는 실질적으로 눈에 보이는 주체이기 때문에 다른 데서 빌미를 잡힐 만한 위험성 있는 행동들은 자제를 해줘야 한다. 책임감도 동시에 있는 것 같다.
성원: 정치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는 건 맞는데 한쪽으로 쏠려있으니까 거부감을 가질 수도 있다. 정치적성향이 강하다보니까 정치적으로 흘러들어간다는 것으로 빠질 수도 있고.
영석: 각종 상관없는 매체들에서 우리 얘길 기사화한다고 할 때 우리가 한 얘기가 아니고 의견이 모아진 것이 아닌데도 같은 부류로 모아서 비판할 수 있다는 이야기지. 앞으로 어떤 행동을 해야 하나를 전제한 후에 고민해야 한다. 모금부스는 끝났지만 이후에도 홍보활동을 어떻게 할 건지 고민해야 할 것 같다.



선자: 우리의 활동이 훨씬 더 긍정적인 성과를 내왔다는 것은 분명한 듯 하다. 여전히 불투명한 상태이지만 그간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갈 것 같지는 않다. 가능성이 많고 오히려 더 발전적인 방향으로 나아가는 계기가 될 것 같다. 일단 지혜도 얘기했듯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생각을 많이 해봐야 할 것 같다. 아 그리고 우리는 이번 활동을 통해 많은 사람들을 만났는데 그런 모임들을 지속시켜나갈 수 있는 방안도 마련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어떤 방법들이 있을까.
혁규: 예를 들면 바자회 같은 거.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우리가 지속시킬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진행할 수 있다면 좋은 것 같다. 자연스레 관객 만남도 이뤄지고. 관객차원에서의 행사라는 것 자체가 중요한 거니까.
민영: 지금은 잘 모르겠지만 예전에 광주극장에서는 한 달에 한 번씩 회원들끼리 모여서 간식도 먹고 베이킹 파티도 하고 했었다. 같이 뭔가를 만들고 나누기도 하는 행사를 진행하는 것이 참 좋아보였다.
성원: 지금까지는 관객들이 선택한 영화가 친구들이나 시네바캉스때 상영했는데, 관객들이 원하는 영화를 DVD로라도 한 번씩 편히 볼 수 있다면 좋겠다. 상영이 없을 때 날을 잡아서 말이다.
혁규: DVD로 틀면 영사실에서 장비를 빌려와야하는 문제가 있다.
영석: 자막이 없을 경우에 우리가 자막을 만들어야하긴 한다.
신윤하(웹데일리): 관객들이 자체적으로 시네클럽을 결성하는 건 어떨까. 적정한 강의비만 내서 극장이나 카페 등 장소를 잡아서 모여서 지식을 공유하거나 강사를 초빙하는 행사. 그런 행사들이 별로 없었다.
성원: 학교강의실이나 이런 곳을 빌려서 해도 좋을 것 같다.
선자: 시네클럽이든 바자회든 뭐든 좋을 것 같다. 이제 다시 시작이니까 관객들이 지금처럼의 결속을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 웹데일리는 이제 시네마테크의 이후 프로그램을 소개하고 소통의 장이 될 수 있는 웹블로그로 전환 계획에 있다. 우리의 만남이 여기서 끝이 아니고 앞으로도 더 많은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 지난 한 달 반간의 영화제를 통해 모두 조금 성숙해진 느낌이다. 고생해서 그런가. (웃음) 이후에 더 좋은 모습으로 만났음 한다. 모두 고생 많았다. (정리: 강민영)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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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테크의 선택, 찰스 로튼의 <사냥꾼의 밤> 시네토크

1월 26일 저녁, 서울아트시네마에서는 시네마테크의 선택작인 찰스 로튼의 <사냥꾼의 밤>이 시네마테크의 필름 라이브러리로 직접 구매한 뉴 프린트로 선을 보였고, 이어 김성욱 프로그래머와 관객과의 대화가 마련되었다. 김성욱 프로그래머는 “영화의 마지막에 아이들이 자기가 할 수 있는 한계 내에서 무언가를 만들어 크리스마스 선물을 주는 것처럼, 시네마테크 역시 있는 것 가운데서 조금 포장해 놓은 선물처럼 시네마테크의 선택이라고 내놓았다. 어찌 보면 민망할 수도 있다. 뭐, 저런 게 선택이야 싶지만 크고 대단한 것만이 선물이 아니라 있는 것 중에서 마음으로 전달하는 것이 릴리언 기시의 말대로 최고의 선물일 수 있다 생각한다”고 밝혔다. 현 시네마테크의 상황을 느낄 수 있는, 비장한 심정이 흐르던 김성욱 프로그래머의 시네토크를 현장을 전한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 영화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아이들에 대한 것입니다. 사실 이 영화는 아이들을 위한 영화이고, 크리스마스 때 틀면 적합하겠다 싶다. 하지만 다른 측면도 있습니다. 여기서 아이란 예술의 아이들, 즉 예술의 유년성에 대한 것이기도 합니다. 영화에는 두 가지 측면이 있는데, 아이의 영화와 어른의 영화가 있습니다. 아주 초기의 영화는 유년기의 예술이자 아이의 영화와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무언가 새로운 것이 만들어졌던 것입니다. 나중에 영화를 접한 우리들의 경우는 그것이 어른의 예술이라고 생각을 하게 됩니다. 

50년대나 60년대 누벨바그리언들이 시네마테크에서 발견한 영화는 어른의 예술이었습니다. 하워드 혹스나 알프레드 히치콕과 같은. 하지만 어른의 예술 안에서도 예술의 유년성, 유년기를 발견하게 됩니다. 세르주 다네가 시네필에 대해 언급했던 이야기가 생각이 납니다. 그는 아이들이 등장했던 영화들 몇 편을 거론하면서-프리츠 랑의 <문플리트>, 베르히만의 <파니와 알렉산더>- 자신의 어린 시절을 이야기합니다. 어린 시절을 회상해 보면, 언제나 학교에는 이런 애들이 있었습니다. 활발하지도 않고, 두세 명 혹은 혼자 노는 애들말입니다. 그런 애들 중의 대부분이 나중에 시네필이 되기도 합니다. 그런 아이들은 어딘가 도피할 생각도 하지 않았던 아이들입니다. 저 또한 그러한데, 별로 문제를 저지르는 학생은 아니었지만, 혼자 조용히 동네 재개봉관에 가서 영화를 보러 가곤 했습니다. 어디로 도피할 자신도 없었고, 도망갈 생각을 할 만큼 상상력이 풍부하지도 않았고, 그런 가운데 들어갈 법한 곳이 극장이었던 것입니다. 적은 돈으로 오랜 시간을 보낼 수 있던 곳. 그래서 어딘가 도망갈 순 없었던 사람들이 그 안에서 거주하게 되는데, 그 안에서 다른 세상을 발견하게 되고, 그래서 동시에 두 세계에 존재하는 경험을 하게 됐던 것입니다.

 

이 영화에서 아이들은 도피할 것인가의 문제에 처합니다. 릴리언 기시가 예수의 탄생과 아이들을 죽이려고 했던 해롯왕 이야기를 들려줄 때는 도망가야만 했다고 말하지만, 실제로 이 영화의 아이들은 도망갔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들은 보호를 받았습니다. 오히려 도망가듯이 자꾸 빠져나가는 아이는 루비입니다. 다네가 지적한 것도 아마도 그런 부분일 것입니다. 어딘가 도피하지도 못하고, 혹은 더 나이가 든 루비처럼 어른들의 꼬드김에 현혹되기 전 단계의 아이들, 그리고 그 아이들의 감성 안에서 시작되고 형성된 것이 시네필이라는 사람들이 지닌 일종의 모럴리티인 것입니다. 도피하지 않으면서 대신 그 안에서 견뎌나가는 것, 그리고 동시에 두 세계에 거주하는 것. 그것이 시네필의 모럴리티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것이 이 영화에서 어린아이들의 세계와도 연결된다는 생각이 듭니다. 

 

여기서 아이들을 지키는 어머니역은 릴리언 기시로 그리피스 무성영화에 나왔던 불멸의 스타였던 배우입니다. 이 영화를 하나의 ‘영화에 대한 우화’로서 가정 했을 때, 아이들, 그리고 어른들의 세계, 그리고 루비로 표현되는 청소년기, 즉 무언가에 현혹되어 조금씩 바깥으로 빠져나가려는 그러한 시기의 인물들이 있습니다. 릴리언 기시는 “여자들은 다 저래. 다 속아 넘어가고 그리고 그렇게 해서 낳은 아이들을 내가 데리고 있을 수밖에 없어”라고 자조적이며 단호하게 말합니다. 그런 방식으로 어른에 현혹되어 빠져나가려는 루비가 동네에서 산 것은 '현대 영화'라는 잡지로, 이는 마치 당대의 현대영화 혹은 어른들의 영화라고 포장되어 미숙한 이들을 현혹하고 있었던 세계처럼 보입니다. 그런 어들들의 세계와 대항해나가며 존재하는 사람이 릴리언 기쉬로, 영화의 기원성에 존재했던 여배우입니다. 이 영화에서 매우 독특하다고 느꼈던 것은, 로버트 미첨이 “기대라. 기대라”하는 성가를 부를 때, 릴리언 기시가 총을 들고 지키면서 그 노래를 따라 부르는 순간입니다. 이 장면과 관련해서 마그리트 뒤라스가 언급했던 것처럼 로버트 미첨의 노래 소리는 세이렌의 노래 같은 것으로 사람들을 유혹합니다. 반대로 릴리언 기시는 그 동일한 노래를 부르지만, 그것은 그녀의 목소리가 들리는 공간 내의 아이들을 보호해내는 노래입니다.

 

제가 이 영화를 선택하면서 떠올렸던 것은, 시네필의 모럴리티입니다. 그것은 도피가 아니라는 것. 환상적인 세계로 빠져 돌아다니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또 다른 세계를 꿈꾸는 것입니다. 영화를 보면서, 때가 때인만큼 문득 시네마테크에 대한 생각을 했습니다. 달콤한 목소리로 들어오는 로버트 미첨과 같은 존재가 있고, 그로 인해 떠돌아다니는 아이들처럼 8살 먹은 서울아트시네마는 표류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표류하고 있는 것이지, 도망가는 것도 도망갈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아이들은 어른들보다 잘 견뎌내고 참아낸다”라고 이 영화에서 릴리언 기시는 끊임없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영화에서 보면, 미첨을 때려죽이려고 하고, 교수형에 처하려는 어른들이 있는데, 그런 가운데 굳건히 릴리언 기시가 지켜나가려는 것은 그들과는 다른 모럴리티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아이들을 보호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올해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는 가장 힘들었던 시기에 가장 돈 없이 시작이 되었지만, 우리 안에서 할 수 있는 하나의 선물들을 만들어나가려 했고, 즐겁게 받아들여 주는 관객들의 모습에 기쁨을 느끼기도 합니다. 이게 하나의 선물이었으면 합니다. 

관객1: 로버트 미첨을 보면, 노골적으로 늑대 연기를 하고 있는데, 그게 굉장히 재밌기도 하면서 너무 노골적이라는 생각도 든다. 미첨의 연기에 대해 어찌 생각하시는지.

김성욱: 과장되어 있다는 것은 다들 느낄 것 같다. 그것이 이상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전체가 하나의 동화 같은 이야기 구조를 갖고 있고, 잔혹동화 같다는 점을 생각하면, 그 정도의 과장성은 통용될 수 있고 재미도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영화의 개봉 당시엔 대중들과 비평가들에게 철저하게 외면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영화가 너무 한심하고, 톤이 맞지도 않고, 어디서는 다큐멘터리 같고 어디서는 세트에서 너무 과잉적으로 찍었기에 50년대에 만들었을법하지 않다는 거다. 그래서 컬트가 된 영화이기도 하다.

 

관객2: 영화를 보니 <엑소시스트>가 생각났다. 아이가 창문에서 가로등 밑에 서 있는 목사님 같은 장면이나, 아버지가 없는 집에 목사가 찾아오는 것이라는 점에서 유사하다. 또 하나는 영화에 동물들이 많이 나오는데, 동화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동물과 어린 아이들의 유사성을 감독이 영상으로 재현한 것은 아닌가 생각했다.

김성욱: 우화적, 우의적인 장면이 많다. 자연적 요소들을 어떻게 볼 건가와 관련해 이 영화가 어떤 시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지를 생각하게 된다. 이 영화의 전체적 시간 구조는 ‘옛날 옛적에’라는 동화적 시간인데, 그건 또 한편으로 보면 굉장히 고대적이거나 태원적, 시원적인 세계의 시간이다. 거기에 동물이나 자연적인 풍경이 어울리게 표현되어있다. 영화를 보는 자는 성인의 시간 안에 살고 있는데, 동시에 우리 안에 내재되어있는 아이의 시간으로 되돌아가는 것이기도 하다. 직설적인 표현이지만 잃어버린 시간 혹은 되찾은 시간의 느낌이 강하다. 찰스 로튼이 그리피스나 초기 미국 무성영화의 전통을 차용하려 했고, 그중 하나가 릴리언 기시의 등장인데, 그런 방식으로 좀 더 근원적인 시간 안으로 들어간다는 점이 자연적인 세트의 장면들에서 많이 나타나는 것 같다. 많은 영화들에 대한 이 영화의 영향력은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대단한 걸작보다도 오히려 이상한 컬트영화라는 점에서 테마와 특정 장면의 순간에 대한 모방이 매우 많았다고 생각된다.

 

관객3: 영화를 보면서, 종교나 기독교를 가지고 양쪽의 상반되는 것들, 반전, 극과 극의 이미지를 처음부터 끝까지 보여준다는 생각을 했다. 릴리언 기시가 총을 들고 흔들의자에 앉아 로버트 미첨과 똑같은 노래를 부를 때. 한쪽이 암전이면 한쪽이 불이 켜지는 등 동일한 것의 양면성이 드러나는 것 같다. 50년대 작품이니까 미국의 매카시 광풍과도 동떨어지지 않은 것 같다.

김성욱: 말씀하신 것은 시대의 흔적인 것 같다. 특히 미첨을 둘러싼 후반부의 에피소드에는 그런 것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 릴리언 기시가 노래 부르는 장면은 유명하기도 하고 개인적으로도 흥미롭다. 여기서 어둠이 있어야 바깥에 존재하는 무언가를 응시할 수 있는 구조가 발생된다. 어두움의 조건이라는 것 자체가, 우리에게 다가온 것이 무언지를 볼 수 있는 시선들을 제공하는 거다. 너무 들떠 있는 밝음이라는 것은 자기 주변의 어둠을 제대로 볼 수 없게 하는 현상을 만든다. 영화의 도처에 이런 표현성이 존재하는 것 같다. 영화에는 시대를 은유하는 것이 많이 느껴진다. 동시에 이 영화가 놀랍게도 지금의 시대를 은유하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현명한 게 어떤 건가. 보호 받지 못하는 이 세상 안에서 보호라는 게 도대체 뭔지. 보호받지 못하고 떠돌아다니는 사람들이 해야 하는 행동들이 무엇인지에 대한 생각이 든다. 
 

 

관객4: 위선적인 말을 하는 로버트 미첨에게서, 지금 현실을 생각하며 분노를 느낀다. 이 영화는 누아르의 요소도 있지만, 동시에 아이들의 성장 영화인 느낌이 든다. 50년대 미국 사회에 앞으로 닥쳐올 수 있는 균열 같은 것을 찰스 로튼이 예감한 것이 아닌가하는 느낌도 있다. 시네마테크가 용기를 냈으면 좋겠고, 어린아이가 참고 견뎌내듯이 능히 우리도 견딜 수 있으리라 본다.

김성욱: 존 카사베츠가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아이들이 10대를 넘겨서도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바라보면서 영화를 만든다고. 근데 10대를 넘기기가 참 어려운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세르주 다네가 시네필에 대해 한 얘기를 짧게 읽으며 자리를 마감하고자 합니다. 

“나는 도망가지 않았다. 우리가 청소년이 됐을 때는 많은 도주하는 방법들이 있다. 환상적인 세계, 공상과학 속으로, 더 나은 세계로 도주할 수도 있었다. 그것이 정치적이든 종교적이든. 그런 유토피아가 있었는데, 그런 것에 나는 관심이 없었다. 왜냐면 나는 어떤 상상력도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정말 호감이 있는 좋은 세상을 발견했다. 그리고 나는 거기에 살도록 허락되어 있다는 것이 너무나도 좋다는 것을 발견했다. 거기에 살도록 내버려 두었다. 왜냐하면 나는 내가 원하는 것을 거기에서 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우리의 생각은 이러했다. 우리는 이 세계를 가질 것이다. 이 세계에 있지만, 우리는 거기에서 결국은 살 것이다. 그것이 바로 내 시네필의 핵심이었다.” (정리: 박영석)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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