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베니스 인 서울 영화제 첫 주 주말인 지난 12 14일 저녁 6 <닫힌 페이지> 상영 후 이번 행사를 위하여 내한한 베니스 국제 영화제 매니징 디렉터인 루이지 꾸치니엘로가 강사로 나서 베니스영화제와 영화 복원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고전영화의 아카이브, 복원의 중요성에 대하여 실감할 수 있었던 강연 현장의 일부를 여기를 옮긴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디렉터, 영화평론가): 베니스영화제와 영화 복원이라는 주제로 베니스영화제 매니징 디렉터로 있는 루이지 꾸치니엘로의 이야길 들어보는 시간을 마련했다. 베니스영화제에 대한 전반적인 이야기와 이번 영화제 중 한 섹션인 ’80!’에서 상영되는 영화들의 복원 작업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이번 ‘2012 베니스 인 서울을 개최하면서 마련한 ‘80!’이라는 섹션은, 베니스영화제 80주년을 기념하면서 올해 베니스영화제에서 소개됐던 영화들로 거의 극장에서 상영될 수 없었던 희귀한 영화들을 새롭게 복원해서 상영하는 섹션이다.

 

루이지 꾸치니엘로(베니스 국제 영화제 매니징 디렉터): 먼저 지금 한국에서 처음으로 열리고 있는 ‘2012 베니스 인 서울행사에 대해서 소개를 하고, 고전 영화와 베니스영화제의 과거에 대해 설명하겠다. 이번에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열리는 ‘2012 베니스 인 서울은 최근의 영화뿐만 아니라 과거의 고전영화도 소개하는 자리다. 과거가 없이는 현재의 영화가 없기 때문에 이런 부분이 중요하다. 방금 본 <닫힌 페이지>라는 영화는 과거에 베니스영화제에서 상영됐던 영화들 중에서 복원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영화다.

베니스영화제는 19327 6일 베니스의 리도 섬에서 세계 최초로 개최된 국제영화제다. 세계 대전이 끝난 후 베니스 현대예술 역사자료실(ASAC)는 중요한 영화들을 보존해왔고, 그때부터 베니스영화제는 새로운 영화들 외에도 과거의 작품들과 감독들을 소개하는 섹션을 마련해서 소개해왔다. 이런 섹션을 통해서 신문 기사와 비평만으로 접했던 영화들을 많은 사람들이 극장에서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베니스영화제는 올해로80주년이지만 실제로는 11회가 모자란 69회째다. 몇 가지 이유 중 하나는 제2차 세계대전이다. 초반에는 물류의 문제 때문에 부분적으로 중지되었다가 완전히 중지됐었다. 그리고 다시 시작했다가 1968년 페스티벌 자체에 대해 반대를 외치는 전반적인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잠시 중단됐었다. 예를 들어 칸영화제는 1968 8월부터 경쟁부문 외에 비경쟁부문을 마련함으로써 계속해서 영화제의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는데, 베니스영화제는 80년대까지 여전히 비판을 많이 받았다.

이번에 상영하는 작품들을 선별한 기준은 오늘날 보기에 불가능한 작품들을 선택하는 것이었다. 베니스 현대예술 역사자료실(ASAC)에서 보존하고 있는 필름들이 많은데, 이 필름들을 복원하는 작업 또한 중요했다. 어떤 필름들은 상태가 좋아서 복원이 쉬웠고, 어떤 필름들은 상태가 많이 좋지 않아서 복원하는데 고생을 했다. 앞으로 이런 복원 작업은 기술적으로 더 발전할 것이다. 과거를 재조명하면서 과거의 역사를 새롭게 분석하는 작업과 더불어, 베니스영화제의 임무는 영화제에서 선택된 영화들을 어떤 기준으로 선택할 것인지 고민하고, 영화를 예술적이고 정치적인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지아니 다 캄포의 <닫힌 페이지>는 이런 사회적 배경 속에서 이탈리아의 현실을 비판하는 영화다. 그 당시 이탈리아는 문화적으로 보수와 진보 사이에 충돌이 굉장했던 상태였다. 그래서 이 영화는 정식으로 상영되지 못하고 불법으로 상영되다가 결국엔 상영을 하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칸영화제에서 이 영화를 새롭게 조명함으로써 국제 사회에 다시 알리는 상황이 발생한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관객과 만나는 기회를 제대로 얻지 못했다. 이렇듯 영화가 만들어 진지 40년 후인 지금의 시점에서 이 영화를 상영하고 함께 본다는 것은, 과거의 역사를 복구한다는 의미도 있지만 오늘날에도 현실성이 있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김성욱: 복원에 대한 것과 이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닫힌 페이지>를 보면 종교적인 부분이 많이 등장하는데, 이번 베니스영화제에서 지아 다 캄포가 60년대에 열렸던 제2차 바티칸 공의회와 관련해서 언급했었다. 이 영화가 그 당시의 종교적인 상황과 종교적인 변화의 과정과 관련이 있는지 궁금하다.

루이지 꾸치니엘로: 물론이다. 68년에 제작이 들어간 이 영화는, 62년 바티칸 공의회의 내용을 어느 정도 반영하고 있다. 이 회의는 이탈리아인 삶의 많은 부분을 바꿔놨다. 영화를 보면 주인공이 종교 문제에 있어서 억압적이었던 교육 모델을 거부하고 있는데, 이는 그 당시의 상황을 잘 반영한 것이다. 또한 이 영화는 영화적으로는 비토리오 데 시카나 로베르토 로셀리니의 영화 같은 네오리얼리즘의 경향을 보여주고 있다. 현실과 일치하는 영화, 전문 배우가 아닌 일반인을 배우로 기용한 영화이기도 하다. 또한 누벨바그의 영향도 많이 받은 영화다. 소년이 가족의 문제로 인해 현실에서 도피하고자 하는 모습에서 그러한 경향이 드러나며 이것은 유럽 사회의 전반적인 문제였다.

 

김성욱: 아까 언급했던 아카이브 베니스 현대예술 역사자료실의 규모는 어느 정도 되는지,
또한 앞으로도 계속 이런 복원 작업과 영화제를 통한 상영작업을 진행할 것인지 궁금하다.

루이지 꾸치니엘로: 현재 아카이브에서는 과거 베니스영화제에서 소개됐던 영화 200편 정도를 소장하고 있다. 그리고 개막작이었던 <돼지우리> 같은 경우 베니스 현대예술 역사보관소에서 가지고 있던 것으로 얼마 전에 복원된 작품이다. 이런 식으로 과거의 영화들을 복원하고, 이 작품들을 영화제를 통해 상영하고 소개하는 작업을 계속할 것이다.

 

      

 

관객1: 페스티벌은 자유의 공간이라고 생각하는데 아까 1960년대에 페스티벌이란 공간을 반대했던 상황이 있다고 했는데 이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을 알고 싶다.

루이지 꾸치니엘로: 50년대까지는 예술적인 기준이 아닌 국가적으로 가치가 있다고 생각되는 영화들을 상영했다. 그리고 50년대를 거치면서 예술 감독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세계를 돌면서 예술성이 있는 작품들을 찾기 시작했다. 이를 통해 작가라는 개념이 형성되는데, 더 이상 한 국가의 영화가 아니라 한 감독의 영화라는 개념이 생긴 것이다. 이렇게 혁신이 되면서 장인성이 나타나게 되는 건데 이 때문에 심사위원단을 통해 영화를 경쟁시켜 상을 주는 경쟁적인 체제에 대해서 굉장한 비판이 생긴다. 실질적이고 이론적인 이유들에 있어서 경쟁 자체에 대한 비판이 심했다. 그래서 칸영화제는 비경쟁부문을 통해, 영화들이 자유롭게 탄생해서 평등하게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줬고, 이런 변화를 통해 위기 상황을 해결했다. 하지만 베니스영화제는 영화제 자체가 존폐 위기에 처하게 된다. 영화제의 상업적인 면에 대한 비판 또한 많았다.

 

관객2: 디지털 혁명으로 인해 필름이 사라지고 있는데 아쉬운 점은 없는지 디지털의 미래를 어떻게 전망하는지 듣고 싶다.

루이지 꾸치니엘로: 기술적으로는 디지털 혁명이 더 많은 기회를 준다고 생각한다. 보통 전통적인 필름들이 주지 못했던 여러 가지 긍정적인 면이 디지털에 있다. 적절한 디지털 포맷으로 변환됐을 때 우리가 영화를 잘 보존된 상태로 제대로 볼 수 있기 때문에, 기술적으로 봤을 때 디지털 혁명이 긍정적인 면을 지니고 있다. 이건 예술적인 면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안타깝지만 디지털 영화로 복원한다고 해서 배급의 문제가 해결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기술은 수단이 될 수 있지만 목적이 될 수 없다.

 

김성욱: 필름으로 상영되는 걸 보고 싶었던 사람들 안타까울 것이다.

루이지 꾸치니엘로: 고전들은 200여 개의 작품들이 전부 디지털로 복원돼서 상영됐다. 카를로스 사우라 영화는 베니스에서 상영했지만 서울에서 상영하지 못했다. 이 점이 아쉽다. 영화를 본다는 것은 참 흥미로운 행위이다. 이번 ‘2012 베니스 인 서울을 통해 현대의 영화와 고전의 영화를 볼 수 있고 한국과 먼 다른 나라의 모습도 볼 수 있다. 물론 낯선 풍경이라 이해가 어려울지도 모르지만 스스로에게 많은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한다.

 

정리: 최혁규(관객 에디터) | 사진: 김윤슬(자원 활동가)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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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를 대표하는 ‘시네마테크 프랑세즈’는 1936년 앙리 랑글루아, 조르주 프랑쥬, 장 미트리 등이 참여해 비영리 단체로 사라지는 무성영화를 보존하고, 복원하고, 새로운 세대에게 영화를 상영하는 영화박물관의 기능으로 출범했다. 앙드레 말로의 표현을 빌자면 시네마테크 프랑세즈는 상상의 박물관이었다. 시네마테크 프랑세즈가 본격화된 것은 물론 전후의 일이다. 1948년 10월 메신느 거리에 50석 규모의 작은 상영관과 영화 박물관을 개관하면서 시네마테크는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고다르, 트뤼포, 로메르, 리베트, 샤브롤 등의 미래의 누벨바그 감독들은 어느 날 랑글루아의 낡고 허름한 작은 영화의 집을 방문했고 거기서 진정으로 영화의 빛과 마주했다. 그들이 접한 빛은 당시 카누도와 델뤽을 매개로 ‘알고 있다’고 여겼던 영화들, 혹은 주말의 명화에서 접하는 그런 영화들이 아니었다. 젊은 친구들에게 진정한 영화란 아직 알려지지 않은 영화들, 볼 수 없었던 영화들이었다. 혹은, 장 콕토의 표현을 빌자면 ‘저주 받은 영화들’이었다.


랑글루아의 시네마테크는 미학적 저항의 교두보와도 같은 장소였다. 누벨바그리언들이 이곳에서 발견한 것은 영화의 되찾은 시간들, 기억들, 역사들이다. 랑글루아는 50석의 상설관에서 야심찬 기획으로 전쟁의 고아이자 과거가 없는, 혹은 과거를 원치 않았던 아이들에게 진정한 영화의 기억을 선물했다. 그 과거란 결국 언제나 뒤늦은 기억들이다. 이들은 이후에 작가주의를 주창했지만 방점은 언제나 작품에 있었다. 작가 이전에 작품이, 작가 이후에 작품이 존재한다. 작가는 부재하지만 사라진 그들의 작품은 여전히 젊고 영원하다. 누벨바그리언들은 작품에서 부재의 빛을 발견한 자들이었다. 영화를 본다는 것은 허식에 가득한 이들이 수다스럽게 본 영화들을 자랑스럽게 떠들어대는 것과는 다른 일이었다. 누벨바그리언들이 발견한 빛은 이제는 사라진 과거의 흔적과 잔재들이다. 시네마테크와 더불어 비평은 그 흔적을 더듬어 작품의 유예된 시간성을 회복하는 작업이었다.


전후, 전 세계를 통틀어 하워드 혹스의 영화를 무성에서 유성영화까지, 그리고 코미디, 스릴러, 서부극, 누아르의 영화들을 모두 볼 수 있었던 곳은 단연 랑글루아의 시네마테크 뿐이었다. 앙드레 말로가 ‘벽 없는 미술관’이라 불렀던 상상의 박물관을 랑글루아는 현실 속에서 실현했다. 영화의 박물관은 영화의 새로운 관계들을 매번의 상영을 통해 회복하는 곳이었다. 범주화나 연대기, 혹은 연상이나 연합에 의해서가 아니라 항구적인 이질성, 생산적인 혼란을 거치면서 영화의 진정한 역사가 창조된다. 랑글루아는 시네마테크의 매번의 상영을 통해 영화의 역사가 과거와의 관계에서 갱신되고 매번 변경된다고 믿었다. 이는 하나의 총체적인 역사가 아니라 일시적이고, 덧없고, 불안정하고 복수적인 영화사의 시간성을 상정하는 기획이었다. 랑글루아의 상영은 영화의 역사를 마치 초현실주의자가 그러했듯이 매번 시공간의 거리와 차이가 있는 영화들 간에 새로운 성좌를 그려낼 수 있게 해주었다. 젊은 비평가들은 랑글루아 덕분에 시네마테크에서 영화를 뒤범벅으로 볼 수 있는 자유를 누렸고, 이는 창조의 자유로 이어졌다. 시네마테크가 없었다면 트뤼포, 샤브롤, 로메르, 고다르의 새로운 영화는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시네마테크 프랑세즈는 68혁명을 거치면서 힘든 1970년대를 보냈다면, 1980년대 이래로 ‘영화의 집’의 건설계획 등을 거쳐 영화박물관의 본연의 역할을 수행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 그 결과, 2005년 영화도서관과 박물관, 시네마테크가 함께 베르시로 이전해 현재의 모습에 이르고 있다. 재정의 80%를 국가의 도움으로 받고 있지만 시네마테크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활동들은 국가의 어떤 간섭도 없이 ‘문화적 예외’의 보호를 받고 있다. 이번 ‘시네마테크 프랑세즈 특별전’은 그런 시네마테크의 역사 안에서 긴밀한 관계를 맺은 프랑스 영화들을 상영하는 행사이다. 새롭게 복원된 영화들, 시네마테크와 긴밀한 관계를 맺었던 작가들의 영화, 시네마테크가 발굴한 새로운 작가들의 작품이 있다.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와 함께한 영화들. 이는 프랑스 영화의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역사를 이해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김성욱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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