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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4.22 자연적 공간을 삼키는 미국적 이상

[영화읽기] 엘리아 카잔의 <대하를 삼키는 여인>


엘리아 카잔의 <대하를 삼키는 여인(Wild River)>(1960)은 미국의 이상이 어떻게 실현되는지를 보여주는 영화다. 광활한 미대륙의 거친 자연을 발전이라는 미명 하에 제어해 나가는 정부(에서 파견된 인물)의 고난이 영화에 역동성을 부여하며, 그런 과정에서 개인들, 집단들 혹은 개인과 집단은 끊임없이 서로 갈등을 겪는다. 하지만 결국 갈등은 해소되어 함께 더 나은 국가를 일구어 나가는 것으로 결말이 난다. 물론 모든 갈등이 해소되는 것은 아니지만 영화의 내러티브를 이끌고 나가는 주요 인물들은 필연적으로 영화의 말미를 장식하는 아름다운 관계로 나아간다. 이런 전개에서 영화적인 장치로 본토 대륙과 섬, 그리고 그 사이를 흐르고 있는 강이라는 공간이 적극적으로 활용된다.

영화의 초반에 노파의 섬은 본토 대륙에 못지않게 많은 비중을 차지하며 등장한다. 댐 건설로 인해 강물이 차올라 섬이 잠길 것이기 때문에, 정부에서 파견된 척(몽고메리 클리프트)은 노파와 그의 가족들을 섬에서 나오도록 설득하기 위해 그곳을 지속적으로 방문한다. 그럴 때마다 영화는 섬의 울밀한 숲과 비옥한 토지를 보여주며, 그곳에서 충분히 만족하며 살아가는 섬 주민들을 보여준다. 그들은 섬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고 자신들이 섬의 일부분인 양 생활하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노파가 바로 섬이고 섬이 바로 노파라고 할 수도 있다. 이런 섬, 즉 영화 속에 기입된 섬의 자연 풍경은 척이 강을 넘을 시에만 보이는데, 이것은 강을 건넘이라는 행위를 통해서만 본토 대륙과 섬이 이어진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바꿔 말해 섬이 자신의 미시적인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시점은 척이 대륙에서 뗏목을 타고 강을 가로 질러 섬으로 건너갔을 때다. 그래서 섬의 주민이자 노파의 손녀인 캐롤(리 레믹)이 섬에서 강을 건너 대륙에 정착하려는 생각을 머금게 되면서부터, 또한 노파의 노예들(흑인 노동자들)인 샘과 여러 사람들이 대륙에서 새로운 일자리를 구하면서부터 섬은 이전의 모습과 작별하게 된다.

이제 대륙과 섬은 동등하게 연결되어 있지 않다(동등하게 등장하지 않는다). 섬은 점점 노파 개인의 고집과 그로인한 소외를 대변하는 듯이 고립되어 가며, 영화는 대륙에서의 척과 캐롤의 애정 관계와 흑인 노동자들의 일자리에 관련된 일들에 더 주목한다. 그리고 이 사건들의 무대는 도시적 공간이다. 더 이상 강이라는 공간은 대륙과 섬을 이어주던 매개물로서의 의미를 상실한 듯이 보인다. 섬과 강은 노파만큼이나 소외된 존재가 되었다. <대하를 삼키는 여인>의 처음에는 거센 강물이 대륙을 침범하고 뒤덮어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는 등의 수많은 재난을 당했지만, 최종적으로는 대륙에 사는 인간이 강물을 제어하고 통제하는 역습을 벌이기 시작하는 것이다(적어도 영화에서는 말이다). 그리고 역습의 와중에 강의 일부인 섬 또한 피해를 입고 만다. 이런 측면에서 섬과 대륙 그리고 그 사이를 흐르는 강이 아니라, 대륙과 강 그리고 강의 중심부에 솟아난 섬이라고 정정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듯 정부와 개인의 갈등, 혹은 미국이라는 나라의 국가적 이상과 그것의 실현 과정에서 겪는 개인들의 갈등이 인물들의 측면에서보다 풍경들의 대립적 모습에서 잘 드러난다. 인물들의 행태가 자연적 풍경을 무대로 한다기보다는 자연적 풍경이 인물들을 활용하고 있다고 여겨질 정도이다.


<대하를 삼킨 여인>에서 자연적 풍경은 서로 간에 대립적으로 작용하고 있고, 이 자연적 풍경 전체는 인간과 서로 대치하고 있다. 영화 속에서 표현되는 미국 정부의 목표이자 이상은 인간 생활에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는 방대한 에너지원으로서의 자연을 통제하고 제어하고 에너지로 전환하는 것이다. 이것이 인류의 발전이며, 그것을 위해서 척(과 미국 정부)은 발전을 위한 대상으로 자연에게 접근한다. 바로 이렇게 인간이 대상으로 삼아야 할 것으로서의 자연은 서서히 도시의 풍경에 잠식되어가며 점점 척의 발치에 놓이는 듯하다. 가령 대륙의 공간, 그 도시적 풍경을 담은 프레임 속에 지속적으로 내걸리는 성조기나 노파를 이끌어내는 성조기가 걸린 배는 미국의 거대한 이상이 자연을 하나씩 지배해 가는 듯한 분위기를 조성한다. 그래서인지 성조기가 새겨진 비행기가 대륙과 강, 그리고 댐을 아래에 둔 채 날고 있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척과 캐롤에게는 해피엔딩이기는 하나 섬뜩하게 다가온다. (최혁규)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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