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토크

“집시들은 음악으로 숨을 쉰다, 나 또한 마찬가지다” 
- 가수 하림이 말하는 토니 갓리프의 '라쵸 드롬' 

 

지난 2월 2일, 영화 <라쵸 드롬>의 상영이 끝나고 ‘누에보 플라멩코 컴퍼니’의 열정적인 플라멩코 특별 공연이 있었다. 스크린 안에서 울려 퍼지던 집시 음악을 현실로 옮겨온 무대는 관객들로 하여금 넋을 놓게 만들었다. 뒤이어 가수 하림의 시네토크가 이어졌다. 최근 예능 프로그램에도 출연한 하림은 관객들을 시종일관 웃게 만들다가, 마지막에는 ‘연어의 노래’를 부르며 감동을 선사했다. 그 현장의 일부를 전한다.

 

  

허남웅(영화칼럼니스트): 이번 친구들 영화제에 처음 참석하시게 된 소감은.
하림(가수): 원래 처음 친구들 영화제 있을 때부터 ‘친구들’로 있었다. 나로 하여금 영화를 고르게 해주신 건 대단한 영광이다. 내가 보고 싶은 영화를 직접 필름으로 가져다 보여주셔서 정말 행복했다. 필름으로는 처음 본다.

 

허남웅: <라쵸 드롬>을 선택하신 이유는.
하림: 학교에서 강의할 때 교재로 쓰고 있다. (웃음) 여러분들께 나에 대한 오해를 풀어드리고 싶기도 했다. 왜 앨범을 안내고 저렇게 10년 넘게 돌아다니고 있는지. 이 영화를 보고 내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보면 나도 10년 넘도록 여행을 하면서 무언가로부터 끊임없이 도망치는 것이니까 내 이야기인 것 같아서 골랐다.

 

허남웅: <라쵸 드롬>은 ‘좋은 길’이라는 의미로 알고 있는데, 이 영화는 집시들이 이동하는 곳의 음악을 흡수하여 들려주는 여정을 보여주고 있다. 하림 씨도 여행을 많이 다니시고, 그 곳의 음악을 배우고 악기를 익히면서 자신의 음악을 해나가는 것으로 알고 있다. 최근에 다녀온 여행지와 그 곳에서 배운 악기 또는 음악이 무엇인지.
하림: 최근에는 아프리카 쪽을 많이 갔다. 거기엔 악기가 워낙 없으니까 음악을 딱히 배우지는 않았다. 최근에 음악 쪽으로 많이 느낀 곳은 아랍문화권이다. 이집트 쪽 음악들에 흥미가 있다. 서양 음악에 길들여진 우리로서는 이집트 쪽의 음계나 리듬이 우리 핏속에 있는 ‘그것’을 건드려준다. 영화 중간에 할머니가 담배를 물고 왔다 갔다 하시는데, 도대체 왜 그러는 것일까. 왜냐하면 우리는 노래 중간에 박수를 치는 박자에서 약간 촌스럽다고 말하는 포인트가 있다. (직접 노래하며 설명) 그게 촌스러운 게 아니라, 동양 문화권에서는 강세가 앞에 있어서 그렇다. 본능적으로 앞부분에 치는 거다. 그런 것들을 볼 때, 아랍권이 서양과 동양이 나뉘는 경계선 같은 곳인데, 나는 그 곳의 음악을 들으면서 많이 느꼈다.

 

 

허남웅: 개인적으로 나이 드신 분이 춤을 추고 나서, 아기를 받아 젖을 먹이는 장면을 재미있게 보았다. 음악이 특별한 게 아니라 생활과 밀접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다. 하림 씨가 인상 깊게 본 장면을 소개해 달라.
하림: 프랑스에서 길을 가르쳐주는 장면에서, 처음에 말을 씻기고 재주넘기 하다가 쫓겨나지 않나. 중간에 친구가 벤츠를 몰고 찾아온다. 정착 집시가 있고 유랑 집시가 있다. 부자인 정착 집시가 기타 연주를 하며 가는데, 두 갈래의 길이 나온다. 어디로 갈까 하다가 철조망에 매여 있는 꽃을 보고 따라간다. 꽃으로 길을 가르쳐주는 장면이 로맨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허남웅: 음악이 생활 속의 낭만을 만들어준다는 생각이 든다.
하림: 집시들이 너무 힘들었기 때문에, 음악을 하면서 위로 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잘하기도 했겠지만. 그래서 삶이 음악이 되는 것이고.

 

허남웅: 플라멩코가 집시의 음악으로 분류되는 것인가.
하림: 집시의 전통을 가지고 있는 음악이다. 유럽에 여러 민족들의 본연의 음악이 있다. 그 중에 집시의 영향을 받은 유럽음악들이 곳곳에 있다. 그 중에 하나이다. 스페인에도 여러 종류의 음악들이 있는데, 그 중 안달루시아 지방의 집시들이 음악을 굉장히 잘했던 것이다. 스페인의 음악이기도 하지만 뿌리는 집시족에서 흘러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허남웅: 최근에 아랍 쪽을 여행하셨다고 했는데, 아랍 쪽에도 유목민들이 많지 않나. 유럽 집시들의 음악에 특징이 있는가.
하림: 집시 음악은 북인도 라자스탄, 즉 동양에서 출발했다. 그 쪽의 동양음악들을 보면, 아까 플라멩코도 그렇고, 음절이 딱딱 끊어지는 게 아니라 한 음절에서 여러 음이 나온다. (직접 ‘산토끼송’으로 시범) 이것을 전문용어로 멜리스마라고 한다. 우리나라 국악에도 이러한 전통이 있지만, 서양음악에는 멜리스마가 없다. 그리고 강세가 앞박자에 있다. 또 도레미로 음계가 구분이 안 간다. 피아노로 표현할 수 없는 음계들이 특징이다. (정리하자면) 꺾는 창법, 앞에 있는 악센트, 음계가 도레미파솔라시도가 아니다. 박자도 세다 보면, 따라갈 수가 없다. 본능적으로 굉장히 어렵다. 이것이 집시음악을 비롯한 동양 음악의 특징이다. 토니 갓리프의 영화에서는 이런 것들을 많이 보여주었다. 루마니아에서도 서양악기들을 쓰는데도 불구하고 복잡한 음악들을 많이 보여주었다.

 

관객1: 영화 중반에 기도상 같은 것이 나오는데, 무슨 행사인지.
하림: 검은 얼굴의 성모마리아 주간이라고 해서, 프랑스에 있는 카톨릭 명절이다. 종교들이 여러 가지로 나뉘는데, 그 장면에 나오는 사람들은 프랑스에 있는 집시들이었다. 그들이 깊은 신앙을 가지고 있었나 보다. 연주를 하고 지하 동굴에 모여서 예배를 드릴 수밖에 없는 사정이 있지 않을까 추측을 할 뿐이다.

 

관객2: 영화를 보면 항상 남자들은 악기를 치고, 여자들은 춤을 춘다. 그것이 집시들의 룰인지. 여자들은 즉흥적으로 춤을 춘 것인지. 또 집시들은 항상 흥에 겨워서 숨을 쉬는 것처럼 음악을 하는지.
하림: 남자들이 춤을 추는 것보단 여자들이 춤을 추는 것이 더 멋있다. (웃음) 물론 남자들도 영화 속에서 춤을 춘다. 그리고 그들은 정말 음악으로써 숨을 쉰다. 나 또한 마찬가지다.
허남웅: 마지막 장면에서 벽으로 막힌 창문 앞에서 여성이 플라멩코 노래를 하는데, 음악에 담겨있는 가사 자체가 자신들의 처한 상황을 들어달라고 호소를 하는 것 같다.
하림: 영화의 결말에서는 집시들의 슬픈 혹은 피곤한 점을 부각시키는 것 같다. 영화 속에서 ‘프랑코부터 히틀러까지 우리는 피해자였다’라는 말이 나오지 않나. 감독이 오랜 시간 동안 집시의 역사 속에 있었던 일들을 보여주고 싶어 하는 것 같다. 중간에 아우슈비츠의 상황도 나오는데, 그 때 유대인들을 비롯한 슬라브족들, 거기에 집시들이 많이 끼어 있었다. (집시들이) 유대인들보다 훨씬 더 학살을 많이 당했다. 우리는 그러한 역사에 대해 잘 모른다. 그런 이야기들을 하고 싶었던 것 같다.

 

 

관객3: 집시라는 말이 유럽에서 안 좋게 쓰인다는데. 정확히 그들을 지칭하는 말이 무엇이 있나. 또 집시와 집시 음악에 대한 영화를 추천해주신다면.
하림: 집시라는 말은 ‘이집트 사람’이라는 말이다. 집시들이 자신들을 이집트에서 온 순례자라고 거짓말을 하고 다녔기 때문이다. 집시들이 자기 자신을 부르는 말은 ‘롬’(집시 말로 ‘사람’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보헤미안이라는 말은 동유럽의 지방을 가리킨다. 또 영화 추천은 토니 갓리프가 집시 출신인 자기 자신의 뿌리를 찾아가는 영화들이 있다. (집시 3부작 등) 동유럽 집시에 대한 영화는, 에밀 쿠스트리차 감독의 영화들도 집시를 많이 다루고 있다. 이 영화들을 보면 집시들의 성향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정리: 지유진(시네마테크 관객에디터) | 사진:  김윤슬(시네마테크 자원활동가)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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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영작 리뷰

집시의 역사, 음악으로 듣다
- 토니 갓리프의 '라쵸 드롬'

 

길 위의 한 소년이 타악기 리듬에 멜로디를 붙여 노래를 부르고 있다. 소년의 가족은 가축들을 이끌고 사막과 다를 바 없는 황무지를 지나 어딘가에 도착한다. 그들은 그곳에서 밤을 보내는 동안, 주민들은 첫날밤을 맞게 될 신혼부부를 위해 노래로 밤을 지새운다. 날이 밝으면 한 무리의 사람들이 다시 이동을 시작하고, 몇몇 소년들이 길을 가다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노랫소리에 홀려 발걸음을 멈춘다. 그리고 노래가 멈추면 다시 이동, 노래가 들리면 다시 쉬어감, 다시 이동, 다시 쉬어감의 반복. 여정은 그렇게 계속된다.
‘라쵸 드롬’이란, ‘좋은 길’을 뜻하는 로마니어다. 현재는 그 모태가 거의 사라져 남아있지 않은 로마니어는, 우리가 흔히 집시라 부르는 로마니인들의 고유 언어다. 로마니인들은 천여 년 전 인도의 북서부 지방에서 출발해 전 세계로 흩어져 유목민처럼 살아가고 있으며, 유럽으로 가장 많이 흘러들어왔다. 토니 갓리프 감독의 몸속에도 그런 로마니인의 피가 흐르고 있다. 알제리인 아버지와 로마니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파리로 이주해 연극에 뛰어들었다가 만족하지 못하고 결국, 운명처럼 로마니인에 관한 3부작을 만들기에 이르렀다. <라쵸 드롬>은 그중 <레스 프린스>와 <가쵸 딜로> 사이에 놓인 2번째 작품이다. 언뜻 다큐멘터리로 오인하기 쉬우나 실은 섬세한 연출을 거친 이 영화는, 천 년에 걸쳐 로마니인들이 걸어온 길을 그들의 음악을 들으며 따라 걷는다. 각기 다른 시대와 지역에 도착하면 그들의 음악도 그에 맞춰 조금씩 다른 옷을 입는다. 인도 라자스탄-이집트-터키-루마니아-헝가리-슬로바키아-프랑스-스페인 안달루시아에 걸친 그 길은 실크로드 버금갈 만한 집시들의 노랫길이다.
집시에 관한 이 음악적 인류학의 신비로운 흥취는 천년의 세월과 수천 킬로미터에 달하는 거리를 음악으로 이어내는 방식에 있다. 거기에는 음악에 대한 매혹이 있다. 영화는 음악이 들려오는 곳을 향해 자신도 모르게 발걸음을 옮기는 소년들을 뒤따르고, 그 순간에 힘입어 이야기도 한 시대와 지역의 로마니인들로부터 다른 시대와 지역의 로마니인들에게로 넘어간다. 각기 다른 시간과 장소를 사는 로마니인들의 때로는 쾌활하고 때로는 구슬픈 멜로디와 춤사위는 어떤 시련에도 멈추지 않는다. 그렇게 그들은 아우슈비츠가 남긴 흉터와 프랑코 독재 정권의 어두웠던 시절까지 통과한다. 어쩌면 주소 없이 살아온 그들의 유일한 주소는 음악에 새겨져 있는 지도 모른다. 그 주소의 변경을 따라 흘러가는 영화는 플롯이 있어야 할 자리에 음악을 놓는다. 신과 신 사이, 시퀀스와 시퀀스 사이의 도약은 음악이 있기에 가능하다. 그러니 로마니인들로 하여금 오랜 세월 동안 떠돌이 삶을 버틸 수 있게 해준 힘도 음악에 있고, 이 영화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힘도 음악에 있는 셈이다. 시공을 뛰어넘는 음악의 힘은 그렇게 영화에까지 전염되어 있다. 그것이, 이 영화가 스토리텔링도 아니고, 비주얼텔링도 아니고, 사운드텔링으로 집시의 역사를 전하고 있는 것처럼 여겨지는 까닭이다.

 

이후경 / 씨네21 기자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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