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의 왕연상호 감독 GV 현장스케치

 
한국 애니메이션의 새로운 가능성을 개척하며 개봉 전부터 이례적인 화제를 모아 어느덧 2만 관객 돌파의 고지에 선 <돼지의 왕>이 지난 10일 저녁,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열린 작은 영화의 조용한 반란상영작에 포함되어 상영되었다. 화제작임을 입증하듯 많은 관객들이 모인 가운데 영화 상영이 끝난 후에는 연상호 감독과의 GV가 이어졌다. 시종일관 유쾌하면서도 차분하게 각자의 모습을 반추해보며 작품 속에서 발화하는 계급적 문제의식에서부터 제작 과정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관심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그 현장을 전한다.


허남웅(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 이번 기획전에 작은 영화의 조용한 반란이라는 표현을 썼는데 <돼지의 왕>은 개봉 전부터 화제를 모았기 때문에 이 표현이 어울리지 않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2만 명에 가까운 관객들이 본 걸로 알고 있는데, <돼지의 왕>에 쏠리는 관심의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나.
연상호(영화 감독): 부산에서 상을 받아서 그런 것 같다. (웃음)

허남웅: 아무래도 우리가 안고 있는 현실과도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군대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시나리오를 구상했다고 알고 있는데, 학창시절도 많은 연관을 맺고 있지 않나. 그런 계급적인 문제들을 중학교 때부터 갖고 있었는지가 궁금하다.

연상호: 중학교 때도 어렴풋이나마 알고 있었다. 저희 집이 연립주택이었는데 옆에 차고가 있었다. 그 차고를 개조해서 다세대 주택으로 만들었었고, 그게 바로 영화에서 철이와 철이 엄마가 사는 집의 모델이 됐다. 반 지하라 여름에 비가 오면 물이 들어갔는데, 거기서 예쁜 여자들이 나와서 물을 막 퍼내는 거다. 그때만 해도 예쁜 사람은 부자라는 인식이 있던 터라, 예쁜 여자들이 왜 굴 같은 데서 나와 물을 퍼내나 하는 생각을 했었다. 그리고 어린 나이에 사색에 빠졌었는데, 알고 보니 영동시장에 있는 가라오케에서 일하는 사람들이었다. 거기서부터 계급적 의식을 가지게 됐다.

허남웅: 군대도 굉장한 계급사회지 않나. 그런 환경도 영향을 미쳤는지.

연상호: 분명히 영향을 미쳤을 거라 생각을 하는데 소위 군대에서 말하는 풀린군번이라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는 잘 모르겠다. 군대에 있을 때에는 할 게 없어서 시나리오를 많이 썼다. 철책 근무를 섰는데 8시간 동안 나가서 임진강 물을 바라보는 일이었다. 할 게 없어서 매일 같이 이렇게 저렇게 나는 생각들을 육군수첩에 적었다. 그 수첩을 제대할 때 가지고 나왔는데 다 쓰레기였고 <돼지의 왕> 하나 건진 거다.

허남웅: 군대에 있을 때라면 십 년도 더 넘은 시간일 텐데 그때의 형태와 지금이 많이 달라졌나.

연상호: 완전히 다른 얘기였다. 일단 <1991년 우리의 영웅 철이>라는 제목이었고, 내용은 종석이와 경민이가 철이라고 하는 어렸을 때의 히어로를 회상하는 거다. 알고 보니 히어로가 아니었는데 스스로 기억을 조작해서 히어로였다고 생각을 하면서 끝이 나는 내용이었다. 그걸 가지고 있다가 본격적으로 시나리오를 쓰면서 개, 돼지가 들어갔고 <돼지의 왕>이라는 제목이 자연스럽게 나왔다. 시나리오도 많이 바뀌었다.

허남웅: <돼지의 왕>도 제작비 문제 때문에 실사 영화로의 제작도 염두에 두었다고 들었는데, 그럴 경우 지금보다 더 잔인한 모습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연상호: 그때 제작지원을 못 받으면서 <돼지의 왕>을 못 만드는 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다. 이렇게 훌륭한 작품이 못 만들어지다니 하는 마음에 가슴이 많이 아팠다. (웃음) 그러던 와중에 재정이 안정된 것 같은 제작사 분이 와서 투자를 알아봐주시면서 실사로 하면 어떨까 하는 얘기를 했는데, 그래도 투자가 잘 안됐다. 그러는 과정에서 시나리오를 다시 써보라고 해서 회사 대표님과 얘기를 하면서 시나리오를 썼고, 그 작품이 <사이비>.

허남웅: 상상마당에서 지원을 좀 받기도 했고 적은 비용으로 이 작품을 만들게 됐다고 알고 있는데, 그 과정은 어땠나.
연상호: 일단은 그 과정에 엄청난 노력이 들어가진 않았다. 스태프들도 미친 듯이 일을 한 건 아니다. 대신 내가 쓰는 시나리오가 가뜩이나 애니메이션인데다가 투자를 받기 힘든 내용이라는 걸 옛날부터 알고 있어서 제작 노하우에 대한 연구를 많이 했었다. 투자를 많이 못 받을 테니 적은 돈으로 만들 수 있는 나만의 스킬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고, 그게 점점 고도화되다 보니까 돈이 없어도 만들 수 있을 것 같은 생각도 들더라. 시나리오만 써서 기계에 넣으면 애니메이션이 나올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가끔 든다. (웃음)

허남웅: 다음 작품은 <돼지의 왕>보다 환경이 더 나아진 상황에서 진행하게 되는 건가.

연상호: 많은 분들이 환경 제안을 해 주시는데, 그런 것들이 막 당기지는 않더라. 만들기는 계속 만들면서 좀 더 시간을 두고, 투자자들의 어떤 태도나 관상 같은 것을 보고 결정해도 되지 않을까 한다. (웃음) 돈 없이도 만들 수 있는데 굳이 그럴 필요를 못 느끼는 것 같다. 노하우가 많이 축적되다 보니 그런 것 같다. 여러분들이 많이 도와주시면 좋을 것 같다. 각자의 욕구에 맞게 학교라든가 여러 프로그램 업체 등에서 도와주면 그 프로그램을 쓰면서 홍보를 해준다든가 하는 방법도 있고, 제작비 절감에 대한 얘기도 하면서 이렇게 저렇게 합치면 진행하는 데에 큰 무리는 없는 것 같다. 일단 진행하면서 상황을 보는 게 좋을 것 같아서 그렇게 하고 있다. 또 맞춤형 기술이 생기다 보니, 이제는 참 좋다. 이걸 스필버그 감독에게 알려주면 당장 나를 캐스팅할 텐데, 영어를 못해서 아쉽다. (웃음)

허남웅: 마지막 장면 같은 경우는 해석이 좀 달리 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많은 분들이 비극으로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여자친구에게 전화를 하면서 오히려 어떤 개선의 여지를 남겨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 감독님은 어떤 의도로 넣었는지 궁금하다.

연상호: 이 사회의 모든 문제를 여성에게 짐 지우는 장면을 만들어 버리게 됐는데, 원래는 엔딩에 대한 몇 개의 아이디어가 있었다. 하나는 명미(종석의 여자친구)에게 전화가 와서 나 지금 짐 싸서 나왔어라고 얘기하는 것도 있었고 전화 장면이 아예 없는 것도 있었다. 또 경민이의 시체를 보고 울다가 일어서서 도망가는 종석이의 뒷모습을 잡으면서 끝나는 내용도 있었는데, 여러 가지 중에서 제가 강하게 선택을 했던 것이 지금의 이 엔딩이다. 그건 마지막 대사 때문이기도 하다. 영화가 너무 매끄러우면 재미가 없지 않나. 영화가 리얼하게 만들기 대회도 아니고, 이 정도로 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솔직히 1억 가지고 하는 건데 망해봐야 얼마나 망하겠나 하는 생각도 했는데, 제 생각에는 잘 넣은 것 같다.



허남웅: 처음에는 피라미드 구조의 가장 상층과 하층을 나눠서 얘기를 하다가 뒤로 갈수록 약자 계급 속의 약육강식 구조를 보여주는 데, 처음부터 그런 구분을 염두에 두고 이야기를 구성했나.

연상호: 저는 쓰는 재미를 중요시 여긴다. 쓰는 게 재미가 있어야지 즐겁다. 뭐랄까, 남들이 안 쓰는 방식을 쓰는 데에 즐거움을 많이 느끼는 편이다. <돼지의 왕>이 처음 잡았던 컨셉이 있다. 보통 반전 영화라고 하면 앞에 질문을 던지고 그 질문이 무엇일까를 맞추게 하는 힘이 있어서, (관객들로 하여금) 유도를 하지 않나. ‘이게 답일 거야하다가 아니었다고 하는 게 보통 반전 영화의 구조인데, 그 질문 자체가 뒤에 와있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늦게 질문하고 연이어 빨리 답해버리는 형식이라면 그 사이에. 복선 같은 게 들어갈 필요가 없지 않나. 복선이라는 게 그것을 끌어오면서 배신감을 상쇄하기 위한 건데 그 두 개를 붙여 버리면 복선도 필요 없고 그저 질문하고 답하는 형식이기 때문에 그걸 하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처음 떠올랐다. 그러다 보니 생긴 문제가 그 앞은 무엇으로 채울까 하는 거였다. 반전 영화의 묘미는 역시 이 답을 알게 하는 재미로 끌고 가는 건데, 앞은 무엇으로 채울까 하다가 장르영화로 채우자 하는 생각이 들었던 거다. 장르 영화적인 뭔가를 찾다 보니 학원폭력물이라고 하는 주제가 또 계급 문제를 나타내기 가장 쉬운 장르이기도 해서 학원폭력물이 들어갔고, 뒤에는 그 장르물을 비꼬는 방식의 패러디가 들어가서 영화와 패러디 무비 같은 게 합쳐진 형식이 된 것이다. 앞의 장르영화는 드래곤볼의 구성을 차용했다. 하나의 적을 없애면 그 위가 있고 또 그 위가 있고 하는, 드래곤볼의 형식을 따르고 있다. 그런데 왜 드래곤볼만큼 히트가 안 되는 걸까. (웃음)

관객1: 캐릭터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다. 종석이 노무현 대통령을 닮았다는 생각이 드는데.

연상호: 무리가 아니라고 생각을 하고 실제로 많이 나오는 얘기다. 종석이는 노무현 대통령을 모델로 한 것은 아니고 양동근을 모델로 했다. (웃음) 양동근을 모델로 했는데 내용 때문인지 외형 때문인지 故 노무현 전 대통령 생각을 많이 하시더라. 의도한 것은 전혀 아니다.

허남웅: 동물을 의인화한 점 역시도 메시지를 소개하는 데 적절한 방식이었다는 생각을 하는데, 처음에 그 아이디어를 생각하게 된 계기는 어떻게 되나.

연상호: 그런 생각은 아주 예전부터 했었다. 개와 돼지가 불평등하게 대우를 받고 있다 하는 생각 말이다. 돼지는 살아있을 때부터 식량이지 않나. 돼지는 자신의 살을 스스로 쓰는 게 아니라 인간들에게 먹히기 위한 몸을 가지고 있다. 기본적으로 많은 속성들을 보고 있었다. 황우석이 그렇게 되어봐야 돌아오는 게 없는데 몰입을 하게 된다든가, 김연아의 피겨 실적이 좋다고 애니메이션이 잘 되는 것도 아닌데 하는 생각들. 솔직히 아사다 마오의 근성을 좋아했다. (웃음) 해주는 것도 없는 국가와 나라를 위해 사람들이 충성을 다하는 모습에서부터 시작해서 그런 불만들이 오랫동안 있었던 거다. 개도 마찬가지다. 어떤 노조가 데모를 할 때 먹고 살만한데 왜 그러냐, 배가 불러서 그렇다 하는 얘기들을 하는데 막상 그런 말을 하는 분들을 보면 이미 먹고 살만한데다 자식까지 먹고 살만한 재산과 별 필요도 없는 재산을 많이 가진 분들이더라. 그런 분들이 그런 얘기를 하려면 본인이 먹고 살만한 재산 외의 돈은 기부를 하면 괜찮은데 그렇지도 않지 않나. 그러면서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다. 어떤 사람들은 많은 것을 갖고 있으면서 그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또 어떤 사람들이 먹고 살만한 것 이상의 뭔가를 가지려고 하면 왜 그 이상의 것을 욕심 내냐고 말을 하는 것 자체가 이미 이 사회에 살고 있는 인간이 다 같은 인간이 아니다 하는 생각을 예전부터 했었다.

관객2: 저는 이 영화를 보면서 이와이 슌지의 <릴리슈슈의 모든 것>을 잠깐 생각했다. 그 영화를 보면서 애들 사이에 그렇게 끔찍한 문제가 벌어지고 있는데 어른들은 아무것도 모르나 하는 의문이 들었었고, 또 하나는 왜 아이들도 어른들에게 아무 말도 안 하는 건가 하는 의문이었다. 오늘 이 영화를 보면서도 역시나 학교사회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 어른들은 기계적인 균형에 의한 잣대를 들이대서 겉으로 드러나는 것으로만 체벌을 한다든가 하는 것과, 아이들 역시도 그런 문제에 대해 스스로 항변하지 않는 것 즉 소통하지 않는 단절된 부분이 부각된 것이 또 우리 사회의 단면이기도 해서, 이 두 영화를 절절하게 본 부분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너무 불편하고, 직시하게 만드는 효과 때문인지 너무 가슴 아프게 봤다. 이 부분에 대해 감독님께서는 <나는 세상이 이렇다고 본다. 그것에 대한 재론의 여지는 없다> 같은 의도를 드러내기 위해 글을 쓰셨는지 궁금하다.

연상호: 요즘 GV를 하러 다니면서 많이 인용하는 영화가 있다. <치킨 런>이라는 영화인데, <월레스와 그로밋>을 만든 아드만의 클레이 애니메이션이다. 영화에서는 양계장이 폭력적인 사회로 나오고 거기에 똑똑한 마당을 나온 암탉이 등장한다. 결과적으로는 양계장에서 닭들을 탈출시키려고 하는 거다. 나중에 온 미국 닭에게 탈출시켜달라고 하지 않나. 그러나 한 마리가 탈출을 하는 건 쉽지만 전체가 탈출을 하는 건 어렵다는 얘기가 나온다. 그 다음 각자에게 나는 법을 가르쳐달라고 해서 나는 법을 배우는데 그게 또 사기였다는 게 밝혀지고 절망을 한다. 결국은 그들이 합심을 해서 양계장을 개조한 비행기를 만들어서 탈출을 하는데, 이처럼 이 영화가 여러 가지를 많이 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한국의 기본적인 담론들을 보면, 한 명이 탈출하는 담론은 정말 쉽다. 그런데 그것을 전체에다 넣으려고들 많이 한다. ‘이렇게 살면 되지 않느냐하는 것을 따라 하려고 하는데, 그건 기득권에서 만드는 이미지라고 생각을 한다. <돼지의 왕> 개봉 이후 인터뷰를 하면서 조심하려고 했던 게, 미친 듯이 노력을 하고 고생을 많이 해서 성취했다 라고 하는 얘기를 안 하려고 했던 부분이다. 그런 얘기를 하는 게 기득권들이 이 세계는 정당해라고 말하는 증거로서 많이 쓰이지 않나. 그런 것을 원하지 않는다. 또 그 다음에 택하는 게, 개개인의 수양이나 사회를 받아들이는 개개인의 입장, 정신세계를 통해 풀려고들 많이 한다. 사람이 마음이 편해야 사회가 편하다든가 하는 접근을 많이 하는데, 결국 <치킨 런>에서 모든 닭을 날게 하려고 하는 것과 똑같은 거다. <치킨 런>에서 성공을 하는 건 연대해서 큰 구조를 만들고 그곳에서 빠져 나오는 거다. 이 작품을 통해 말하고 싶었던 건 딱 하나다. 우상을 통한 하위계급의 연대가 생각만큼 쉽지 않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상위 계급들의 연대는 쉽지만 밑으로 내려오면 내려올수록 피라미드 구조라 이해관계가 굉장히 복잡해지기 때문에 같은 방식으로의 연대는 불가능하다. 보통 상위 계급이 연대하는 방식으로 하위 계급을 연대시키려고 하다 보니 그게 안 되는 거다. <돼지의 왕>이 그런 모습을 보여주는 거라고 생각을 했고, 이런 것에 대한 일종의 큰 우화다. 학교문제도 들어갈 수 있겠지만 그것보다는 아무래도 하위 계급의 연대, 우상을 통한 연대의 허술함을 보여주는 게 심플한 목적이었다.

관객3: 시나리오를 쓰실 때 감독님은 돼지의 입장이었는지, 아니면 돼지를 바라보는 누군가의 입장이었는지가 궁금하다.

연상호: 일단 구조를 짠 다음에는 감정적으로 쓰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감정으로 쓴 영화처럼 보이게 하려고 노력을 했다. 오랫동안 한국대중에 대한 분석을 하다 보니 소위 야마를 중요하게 여기더라. 하나의 예를 들자면 다이나믹 듀오보다는 항상 리쌍이 인기가 많다는 것이다. 공신력 있어 보이지 않나(웃음). 다이나믹 듀오는 쿨한 느낌이고 리쌍은 쥐어 짜는 느낌인데, 보면 항상 리쌍이 인기가 많다. 대중적이려면 감정적으로 써야 한다고 생각을 해서 구조를 구상한 다음에 연기를 하면서 썼다. 종석이의 기분으로 많이 썼을 것이다. 그리고 저는 저를 당연히 돼지라고 생각한다. 겉으로 보셔도 그렇다. (일동 웃음) 의심스러운 게 저는 당연히 돼지라고 생각을 하는데 영화를 보고 많은 분들이 그렇다면 나는 도대체 돼지일까, 개일까하는 의문을 갖더라. 돼지인데, 왜들 그러시는지 모르겠다. (일동 웃음) 돼지라는 것을 알면서 돼지라고 절대 말을 못하는 것부터 잘못된 거라고 생각을 한다. 자기가 돼지라는 것을 빨리 인정해야 뭔가가 된다고 생각한다. 예전에 김미화 씨가 진행했던 라디오 프로그램을 얼핏 들었는데, 동학농민 운동이 일어난 지역에서 동학축제를 주도하는 전교 회장 학생의 인터뷰였다. 굉장히 똘똘한 학생이었는데 학생이 받은 마지막 질문이 학생은 그 시절에 태어났다면 어떤 사람이었을 것 같냐는 거였다. 그러자 학생이 머뭇거리면서 농민을 도와주는 착한 양반이라고 대답을 하더라. 동학농민운동에 대해 그렇게 설명하면서도 죽어도 농민은 싫은 거다. 양반이 좋은 거다. 그러지 말았으면 좋겠다. 우리는 다 돼지다. (웃음)

관객4: 그림체 얘기를 하고 싶다. 일본적이지도 않고 미국적이지도 않고 한국적인 그림체라고 느꼈다. 캐릭터들이 잘생기고 멋지고 보기 편한 얼굴들은 아닌데 포인트를 준 부분이 있나. 화면 왜곡 효과 같은 것은 만화에서만 할 수 있는 표현이라고 생각을 했었다. 또 하위 계급 학생들의 미래는 어떻게 됐는지 알 것 같은데, 시나리오 작업하실 때 상위 계급 학생들의 미래는 어떻게 생각하셨는지도 궁금하다.

연상호: 처음 시나리오 쓸 때는 강민이 커서 출판사 사장이 됐다는 느낌으로 그렸는데, 최근에 강민의 근황을 확실히 알게 됐다. 강민이 개명을 했더라. 용석으로. 그림체는 엄밀히 보자면 일본의 그림체다. 일본만화를 폭 넓게 보지 않으셔서 모를 뿐이지, <사채꾼 우시지마>라는 만화책을 보면 <돼지의 왕>과 같은 그림체라고 느끼실 거다. 또 후루야 미노루의 만화 등에서 영향을 많이 받았다. 기본적으로 좋아하는 그림체들이 있고, 삽화체를 좋아한다. 못생긴 주인공은 애니메이션을 하면서 하고 싶었다. 계급문제나 인권을 다룬 영화를 보면 보통 선과 악의 싸움으로 많이 그린다. 인권을 착취하는 쪽은 너무 악독하고 그 반대로 인권을 보호하거나 착취당하는 편은 너무 선해서 심지어 얼굴도 공유(배우)’같고 그렇다. 이 설정을 바꾸면 관객들이 혼란해할 게 분명하고 저놈은 착취당해도 마땅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할 것 같아서, 영화를 만들 때 주인공은 못생긴 주인공으로 하고 싶었다. 다음 작품에서는 제 작품 최초로 대머리를 주인공으로 삼았다. 대머리에 대한 간단한 소회를 말하자면, 바코드 머리를 비하하며 빡빡 미는 게 당당하다는 식의 노래들이 있는데 저는 절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바코드 머리는 머리의 빈 부분을 양 옆의 검은색으로 메워서 톤을 맞추려고 하는 거고, 머리를 민다는 것은 그 반대일 뿐이다. 즉 밝은 색으로 톤을 맞추는 것뿐인데 한 쪽은 왜 당당하고 한쪽은 또 왜 비굴하다는 건지, 그것에 대한 분노가 있다. 그래서 다음 작품 주인공은 대머리다.

허남웅: 이제 앞으로의 감독님의 계획을 여쭙고 이 자리를 마치고자 한다.

연상호: <사이비>라는 다음 작품을 준비하고 있는데, 굉장히 재미있다. 앞부분도 지루하지 않고 뒤에 깜짝 놀랄 만한 반전도 있다. (웃음) 사이비 종교에 대한 내용인데, 기독교와 굉장히 흡사한 사이비 종교에 대한 얘기다. <돼지의 왕> 캐릭터들은 대체로 입체적인데 비해 <사이비>에는 입체적이지 않은, 평면적인 캐릭터들이 많이 나온다. 다 평면적으로 자기 주장만 하는 캐릭터들이 나와서 죽도록 자기 주장만하다가 다 죽어버리는 재미있는 작품을 만들고 있다. (일동 웃음) 또 단편 하나를 빨리 끝내야 한다. 군대 얘기고 내년 초까지 완성을 해서 끝낼 예정이다. 이 단편이 끝나면 바로 장편 작업에 들어갈 거고, 다다음 작품 시나리오도 쓰고 있다. 또 요즘은 만화(단행본)도 한 편 그려볼까 하는 생각도 하고 있다.

정리 장미경(관객에디터) 사진 주원탁(자원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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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www.cinematheque.seoul.kr)12 6일부터  18일까지 약 2주간 주류 바깥에서 만들어져 한국영화의 신() 면모를 과시하는 소위 ‘작은 영화’들을 모아 상영하는 작은 영화의 조용한 반란이란 제하의 기획전을 개최한다.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는 지난 3월 ‘한국영화, 새로운 작가 전략’을 통해 또 다른 영화 보기의 즐거움을 선사하고 있는 신진작가들의 작품을 프로그래밍한 적이 있는데, ‘작은 영화의 조용한 반란’이란 기획전은 이 프로그램의 연장선상에서 기획된 것이다. 박스오피스의 흥행 수치를 좌지우지하는 건 주류의 영화들이지만 지금 한국영화의 신() 면모를 과시하는 건 주류 바깥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소위 ‘작은 영화’들이기 때문에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는 다시금 주류 바깥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한국영화에 주목한다는 것이다.

13편으로 이뤄진 ‘작은 영화의 조용한 반란’은 주류에서 하면 시도하기 힘든 과감한 소재 선택과 실험적인 이야기 구조로 무장한 작품 일색이다. <> <두만강> <흉터> <돼지의 왕>은 우리의 일상이지만 부러 외면하는 현실의 이면을 불러온 경우이고, <애정만세> <풍산개>, <도약선생> <에일리언 비키니>는 젊은 감각으로 무장한 오락영화의 정수를 보여준다. 또한 <애니멀 타운> <댄스 타운>은 도시의 속성을 인간과 연결시킨 색다른 연출력을, <다시 태어나고 싶어요, 안양에> <플레이>는 극영화와 다큐멘터리의 요소가 혼재한 실험적인 영화 만들기를 보여준다. 그리고 <뽕똘>은 제주도 출신 감독이 만든 토착영화라는 점에서 과거에는 보기 힘들었던 드문 사례로 평가된다.

이번 작은 영화의 조용한 반란전을 기획한 허남웅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는 일련의 영화들을 기획하면서 ‘조용한 반란’이라고 이름 지은 이유에 대하여 획일화가 가속되고 있는 한국 영화계에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하는 것은 물론 시의 적절한 메시지를 갖추고도 더 많은 관객들과 만날 기회를 충분히 가지지 못했다는 판단 때문이라며 지금은 새로운 씨앗을 받아들여 이를 싹 틔울 수 있는 영화계 토양의 건전성이 필요하고 중요해지는 시기로, 이번 ‘작은 영화의 조용한 반란’이 한국영화계에 더 큰 반향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한편 이 기간 중에는 ‘작은 영화의 조용한 반란’에서 상영되는 작품의 감독과 함께하는 일곱 차례의 상영 후 관객과의 대화의 시간이 준비되어 있다. 이 행사는 다시 한번 한국영화에 주목하며 영화에 대한 궁금증을 풀 수 있는 시간이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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