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들이 목격자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지난 7월 28일 늦은 오후, 서울아트시네마에서는 7월 ‘작가를 만나다’로 최근 화제의 중심으로 떠오른 다큐멘터리 <두 개의 문>이 상영되었다. 독립 다큐멘터리로서는 이례적으로 6만 명이 넘게 관람하는 등 일련의 반향을 일으키는 작품답게 상영 전 극장 로비는 관객들로 붐볐다. 그리고 상영 후 이 작품의 공동연출자 중 한명인 김일란 감독과의 대화가 이어졌다. 관객과의 대화는 다큐멘터리에 대한 질문만큼이나 용산참사 자체에 대한 문제, 우리의 삶에 대한 문제들로 확대되기도 했다. 그 현장의 일부를 여기에 옮긴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디렉터): 지난 25일 용산 CGV에서 이 다큐멘터리가 상영되는 게 인상적이었다. 이 영화는 한 편의 영화라기보다 한 편의 기록보관소 같다. 영화를 보러가는 게 아니라 용산이라는 장소를 보러 가는 사람들이 참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영화가 현실에서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에 대한 중요한 사례가 이 다큐멘터리가 아닐까 싶은데, 관객이 이 다큐멘터리를 접하고 찾아올 때 예기치 않은 느낌을 받으실 것 같다. 먼저 최근 관객들의 반응이나 만났던 기억과 관련해서, 관객들의 이런 참여에 어떤 느낌을 갖고 계신지 듣고 싶다.

김일란(영화감독): 개봉하고 지금까지 찾아와주신 관객 분들이, 이렇게 말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너무 자랑스럽고 감사드리고 싶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독립다큐멘터리를 6만 명이 본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이 시대에 동참하고 싶은 관객들이 많다는 의미로 생각된다. 이 시대에 무언가를 하고 싶은 분들이 이 다큐를 보았고, 또 널리 알려주셔서 6만의 관객을 모았다고 생각한다. 그런 숫자에서 희망을 보게 되는 것 같다.

 

김성욱: 다큐멘터리를 만들어갈 때, 어디에서 출발점이 됐는지 궁금하다. 재판 자체가 미완으로 끝나버리게 됐던 것이 이런 다큐를 만들게 되는 계기가 되진 않았을까. 다큐멘터리에서 제일 궁금했던 것도 녹취를 해서 다큐에 활용했던 부분인데, 그것이 갖고 있는 힘이 느껴지기도 한다. 용산에 관한 일들은 법정 재판을 하는 과정에서 체험하고 느낀 것들이 훨씬 크지 않았나. 작업의 시발점은 어떤 부분이었는지 궁금하다.

김일란: 다큐를 정확히 언제 시작했냐는 질문이 난감할 때가 있다. 특정한 어느 순간부터 시작하지는 않는다. 계기들이 쌓이고 쌓여서 정말 해야겠구나,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저희는 용산참사 현장에서 미디어 활동을 하다가 재판에 참여했다. 재판의 속기록을 변호인단 분들이 받지 못하셔서 미디어 활동가들이 몰래 법정에 들어가서 모니터링을 하면서 방청을 하고, 법정에서 이뤄진 이야기들을 녹음을 했었다. 이 녹음들은 다큐를 위한 것이라기보다 변호인단 분들이 재판을 더 잘 하실 수 있도록 도와드리기 위해 했던 것들이다. 재판에 직접 들어가기 전에는 편견 같은 것이 있었다. 경찰특공대가 진술을 하기 위해 증인으로 출두했을 때, 그쪽에서는 철거민 분들한테 불리한 증언을 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재판을 듣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들이 재판에서 증언하는 내용을 막상 듣다보니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철거민들이 얼마나 있었는지, 망루 구조가 어떤지 전혀 알지도 못했었고 철거민들이 왜 거기 올라가야만 했었는지도 몰랐던 상태였다. 더군다나 재판에서 가장 중요한 쟁점이었던 화재의 원인이 경찰은 화염병이이라고 했지만, 망루에선 화염병을 본 적이 없다는 증언이 나온 게 신기했다. 결정적으로 진짜 놀라웠던 건, 두 개의 문이었다. 남일당 건물은 복잡한 구조로 옥상이 둘로 나눠져 있다. 옥상으로 올라가려면 문을 지나야 하는데, 어느 문으로 들어가야 하는지 몰라서 우왕좌왕했다고 진술을 하러 나왔던 경찰 특공대원들이 한두 명도 아닌데 전부 다 똑같은 얘기를 했다. 그날의 진압작전이 얼마나 성급했던 것인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망루 안의 상황을 몰라서 두려움을 표출하는 경찰 특공대원들이 많았다. 용산참사는 결국 철거민들의 문제만이 아니라 진압해갔던 경찰들의 문제이기도 한다는 생각에 닿게 됐다. 집이 없는 시민과 제복을 입은 시민, 힘없는 시민들을 붙여놓고 적개심을 키우는 거였다. 그 상황에서 누구의 안전도 고려되지 않았다는 게 신기했다. 그때만 해도 다큐를 찍어야겠다고 생각하진 않았는데 1심 판결을 보면서 너무 화가 났다. 법정에서의 증거가 전혀 고려되지 않은 채 기소내용 그대로 판결을 내릴 거면 왜 재판을 하는지 모르겠다 싶을 정도의 판결이었다. 그 법정 안에서 다양한 증거들을 대중들이 본다면 과연 이와 똑같은 판결을 내릴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그러면서 다큐를 제작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김성욱: 사건의 재구성이란 관점에서 보면 다큐멘터리의 증거들, 증언들, 동영상, 법정 진술 기록 이런 부분도 있겠지만, 다른 한편으로 재연의 부분도 많이 등장한다. 이를테면 특공대원들이 용산으로 가는 과정들을 찍은 재연이 있고, 특공대원들의 목소리를 육성으로 재연하기도 했다. 일반적으로 얘기하면 픽션에서 작용하는 것과 비슷해 보인다. 일반적인 다큐들이 재연과 관련해서 거리감을 둘 때가 있고, 반대로 활용하는 것도 있지만, 여기에선 굉장히 두드러지게 보인다. 재연이나 픽션을 작동시키는 것이 처음부터 의도한 것인지, 법정에서 지켜보는 가운데 이런 방식의 재구성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것인지 궁금하다.

김일란: 먼저 저는 한 사람의 꿈이나 가정이 다큐멘터리의 영역도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재연장면을 찍은 이유는, 우선 관객이 이 영화를 보면서 어떤 경험을 하면 좋겠는지를 고민하면서 출발했기 때문이다. 어떤 방향으로 이 사건을 관객들과 나눌 것인가 고민을 할 때 관객들이 목격자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 상황 전체를 다시 한 번 경험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관객들이 만약 용산참사 현장을 보고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바로 이 위치가 아닐까. 사건을 목격한 사람들은 갈등에 빠진다. 증언하고 함께 풀어갈 것인가, 아니면 침묵할 것인가. 용산참사 현장을 관객들과 함께 나누고 그들이 목격자의 위치에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에서 한 것이다. 그곳에서 뭘 하게 될지도 모르고 출발하는 특공대의 감정도 목격하고, 그들이 오는지도 모른 채 망루에서 무사히 시간이 지나기만을 바라는 철거민들의 입장도 목격하는 것이다.

 

김성욱: 음악이 많이 활용되고 있고, 현장음과 새로 만들어낸 듯한 소리들이 일반 다큐멘터리보다 굉장히 많이 느껴진다.

김일란: 마찬가지로 생생함의 문제다. 칼라TV나 사자후TV 소스들은 굉장히 멀리서 찍은 것이기 때문에 사운드가 그렇게 잡히진 않았다. 하지만 없는 소리를 만들어낸 것은 아니고, 현장에서 안타까운 상황을 지켜본다 했을 때의 소리와 감정을 살려내는 방식으로 음향 작업을 했다.

 

김성욱: 여러 가지 형태로 용산에 대한 기록이 삭제되어 있다. 시체 유기, 증언들의 누락, 채증영상 삭제, 제한적으로 진행된 재판 등 여러 가지 형태로 사건을 덮으려는 시도들이 있었다. 재판은 사실 규명을 해야 하고 충분한 객관적 증거가 제출되어야 하는데 그 자료들은 제거되거나 삭제되었다. 반면 영상에는 픽션으로 구성하거나 재연을 통해 누락된 구성들을 접근해 들어갈 수 있는 힘, 재구성의 힘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이 이 다큐가 갖는 본질적인 힘이 아닐까.

김일란: 이 영화에 새로운 증거는 하나도 없다. 전부 다 언론을 통해 보도됐거나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누구나 찾아볼 수 있는 정도의 정보들이다. 저희가 주목한 건, 이것들을 모두 종합했을 때 비어있는 것들을 남겨둠으로써 이걸 왜, 누가, 어떤 방식으로 은폐했는지 그 자체를 드러내기 위함이었다. 그 구멍들을 일부러 메우려고 하지 않았다. 만약 새로운 사실을 알았다면 재판을 다시 시작했을 거다. 다만 이 다큐를 통해 이해할 수 있었던 건 특공대들의 ‘감정’을 증거로 제시할 수 있었던 것이다. 감정은 법정에서 증거가 될 수 없지만 감정을 볼 수 있는 우리가 참여할 수 있는 재판이었다면 특공대가 증언하는 감정에 주목할 수 있지 않았을까. 그것만이 새로운 증거였던 것 같다.

 

 

관객1: 영화에 나온 사실들에는 비어 있는 부분들이 많다. 권력에게 불리한 사항이니까 의도적으로 누락시켰을 가능성이 큰데, 감독님께서 그려보신 공백이나 들은 내용이 있지는 않나 궁금하다.

김일란: 다큐 마지막에 쌍용자동차 진압장면을 넣었다. 망루에서도 이러지 않았을까. 쌍용자동차 진압 장면과 같은 상황이 혹시 있지 않았을까. 그렇게 부검을 빨리 서두른 건 구타의 흔적이 시신에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많은 분들이 오해하고 계시는데, 그날 시너가 망루 안에 굉장히 많았는데 그건 발전기를 돌리기 위한 거였다. 물도 안 들어오고, 전기도 안 들어와서 망루 안에서 얼마나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할지 모르는 상태여서 자가 발전기를 돌려야 했기 때문에 양이 많은 거였다. 화재가 났을 때 통을 밖으로 던지는 장면이 보이는데, 화재가 우발적으로 발생해서 더 큰 화재가 날까봐 던지는 거다. 국과수에서도 누전에 의한 화재 가능성을 전혀 배제할 수 없다고 얘기했다. 아직도 밝혀야 할 의문점이 남아있다.

 

관객2: 영화를 보면서 너무 갑갑했다. 이런 상황에 대해서 침묵하고 있는 우리가 권력에 기여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영화 속 인터뷰, ‘이런 참사가 일어났는데도 이 나라 국민은 용인을 하는 구나’ 이 부분을 보면서 분노가 조금 일었다. 감독님들께서 영화는 흥행할지 모르겠지만 용산참사가 잊혀질까봐 두렵다는 기사를 봤다. 우리가 이 영화를, 다른 영화를 보듯이 보러 오진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어떻게 이 영화가 이 사회의 갑갑함을, 분노를 해소할 수 있는 방향으로 작용할 것인가, 보면서 그런 물음들이 들었다.

김일란: 아마도 이 영화를 보신 많은 분들이 그렇게 느끼실 거라고 생각한다. 제가 드리고 싶은 말은, 옆에, 앞에, 뒤에 앉아계신 관객들을 믿어야 한다는 것이다. 많은 분들이 다큐를 보면서 절망하시거나 힘겨워하실 때, 저는 엔딩크레딧을 다시 보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정말 많은 사람들에 의해 이 다큐가 만들어졌고, 844명의 배급위원에 의해 개봉도 했고, 그런 영화를 6만 명이 봤다. 작은 숫자여도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래서 아직 우리가 좌절하기엔 이른 것 같다. 그래서 매일매일 이 영화를 찾아주시는 많은 관객들에게 너무 감사하고, 한 분 한 분 손을 잡으면서 진짜 너무 감사하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에너지를 집중할 때, 우리 안에 내적인 힘을 발휘할 사람이 내 곁에 있는지 확인하는 게 중요하고 6만의 관객은 그런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그걸 확인한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 다만 영화는 영화고 삶은 삶이니만큼, 지속적인 관심을 쏟는 건 분명 힘든 일이다. 그런데 삶이 피폐해지면 다른 사안에 관심을 갖기가 힘들어진다. 자신의 행복을 잘 지켰을 때 그것이 가능하다. 영화를 보고 지나치게 죄책감을 갖거나 너무 절망하지 마시고, 자신의 생활을 잘 유지하시면서 사안에 결합해주셨으면 좋겠다.

 

정리: 송은경(관객 에디터) 사진: 박지연(자원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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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imhere 2012.12.12 13: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트시네마에서는 항상 많은 손님들을 초대하고 흥미로운 행사를 많이 합니다.

    10분이 지나면 입장을 시켜주지 않는데 인천에서 두시간 걸려서 가고 못들어간 적도 있지요.
    (1) 어느 정도 관람시간 규정이 있다는 것은 존중합니다.
    하지만 조금 아쉬운 것은 사실이네요. 그작가를 만나다 행사의 관객이 많아서 그렇다 쳐도
    일부 행사 때는 객석점유 비율이 반 이하 일 때 있는 데 이런 경우 등일 때는 유동적으로
    한다던지의 고민도 필요합니다.

    (2) 굳이 인천 운운하기도 했지만 또 규정에 대해 앞으로는 고민해주시기를 바라지만
    우선은 존중합니다. 뭐 일이 힘들 수 있고 그런 면들이 있다고는 쳐도 이런 안내를 받는
    동안 직원분이 조금 날카롭게 말씀하신다는 인상도 있었습니다.
    시네마테크도 경쟁력을 가지려면 또는 사람대사람으로써도 조금더 기분좋은 안내나
    관계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온라인상에 다른 커뮤니티나 글을 살펴보아도 이런 인상을 받으신 분들이 꽤 있더라구요.
    운영이나 시네마테크 지키기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실 줄 아는데 이런 부분 역시 고민이
    필요합니다.

[시네토크] <당신과 나의 전쟁> 태준식 감독

최근 한국 다큐멘터리는 단순히 소재의 무거움에 함몰되지 않고 관객의 몰입도를 높이기 위한 다양한 형식의 실험과 사례의 활용으로 각광받고 있다. 이에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는 9 1일부터 8일까지 '다큐멘터리의 진실의 정치학'이란 제하로 최근 한국 다큐멘터리의 주목할 만한 8편의 작품을 모은 특별전을 열고 있다. 이 중 지난 9 1일 저녁에는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의 파업현장을 기록한 다큐 <당신과 나의 전쟁>이 상영되었고, 상영 후 이 영화를 연출한 태준식 감독과의 대화가 이어졌다. 그 현장의 일부를 옮긴다.


허남웅(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 영화를 보니 당시 현장 상황은 이렇게 보는 것 보다 훨씬 더 심각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태준식(영화감독): 시기상으로 싸움이 한창 치열했을 때는 바깥에 있었다. 오히려 싸움이 끝나고 나서 굉장히 음울하고, 죽어있는 평택을 보게 된 경우다. 그때부터 자살 시도를 하시는 분들이나 정신 질환이 생긴 분들이 나오기 시작했고, 다들 먹고 살기도 막막했다. 게다가 노동자들 역시 정리해고, 징계, 구속 등 굉장히 다양한 성격의 피해를 입었기 때문에 하나의 대오를 만들어 단결의 접점을 찾기가 굉장히 힘들었고, 노조를 재건하는 일 역시 어려웠다. 영화의 마지막에 잠깐 나오는 정리해고자특별위원회 역시 간신히 만들었던 것이다. 오히려 그런 상황에서 사람들을 찾아 다니며 인터뷰를 하는 과정에서 개인적으로는 좀 더 많은 것을 느꼈다.

허남웅:
이 작품에는 감독님이 직접 찍으신 분량 외에 다른 분들이 찍은 분량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어떻게 그런 식으로 진행하게 되셨는지?
태준식: 예전에 노동자뉴스제작단에서 오래 활동을 했었다. 쌍용차 파업이 처음 시작되었을 때 그런 영상활동가들이 꽤 많이 들어가 있었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현장에 카메라가 많다. 개인적으로 촬영하시는 분들도 많고, 칼라TV도 있고, 특히 현장에서 촬영되었던 화면은 거의 대부분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교육부장님이 촬영하신 것이다. 그런 소스들을 모으니 테이프가 300개 정도 되더라. 그것들을 프리뷰 하고, 동시에 제가 촬영을 해야 하는 부분은 다시 촬영을 진행하는 식으로 작업했다. 사실 <당신과 나의 전쟁은>, 이 작품의 프로듀서를 맡아주었던 상황실장이 현장에서 쌓아두었던 관계들, 그리고 오랫동안 미디어 영상 활동을 해왔던 사람들의 노력이 모여서 만들어진 작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저는 그것들을 편집해서 모아 두었다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다.

허남웅: 300개는 어마어마한 분량인데, 어떤 기준으로 편집을 하셨는지 궁금하다.
태준식: 사실 300개라고 해도 거의 250개가 집회다. 사실 고르는 어려움은 별로 없었다. (웃음) 어쨌든 명확하게 패배한 싸움이고 비극적인 상황이긴 했지만 애초에 노동자 계급의 가열찬 선동영화를 만들겠다는 생각이 없었다. 화면을 보기보다는 이런 저런 글 자료들을 보면서 싸움의 주요한 포인트들을 잡았고, 다행히도 그런 포인트들의 영상이 대부분 있었기 때문에 그것들을 가지고 싸움의 전 과정을 잘 정리할 수 있는 방법이 뭘까를 고민했다.

허남웅: 영화의 제목이 <당신과 나의 전쟁>이다. 결국 우리의 이야기일 수도 있는 내용들을 다루고 있는데, 영화를 시작하기 전부터 잡으신 방향성인지 혹은 영화를 만들면서 깨달으신 바인지 궁금하다.
태준식: 제목은 다른 데서 모티브를 얻은 것인데, 원래는 <당신과 나의 계급투쟁>이었다. 그런데 주변에서 그건 좀 아니라고 해서. (웃음) 조직된 대중들에게 이 작품을 보여주겠다는 생각보다는 쌍용차 파업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말을 걸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제목을 애초부터 정하고 들어간 거고, 결국 원래 하고 싶었던 이야기도 있었던 거다.

허남웅:
작품 전체가 결국 쌍용차 파업에 대한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그 안의 여러 노동자들의 이야기가 진행된다. 그 중에서도 특히 신동기 씨가 주요하게 등장하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태준식: 원래 영화의 라인을 잡아 줄 특정한 인물이 있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는 있었고, 아까 말씀 드렸듯이 싸움의 결과로 피해를 입은 여러 성격의 노동자들이 있었다. 그런데 사실 정리해고자나 구속자들을 통해 제가 생각했던 작품의 메시지를 담아내는 데는 한계가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른바 산 자였던 사람이 처음부터 끝까지 같이 싸움에 동참하게 되는 경우가 더 적합할 것 같았다. 촬영을 시작했을 때 신동기 씨는 해고는 아니었다. 징계위원회에 회부되는 정도였는데 결국 해고가 되셨다. 사실 함께 공장 안에 있는 사람이라고 해도 전쟁 같은 싸움에 동참한다는 건 쉽지 않은 결정이었으리라 생각하는데, 실제로 그런 분들이 6, 70명 가량 있었다. 자신에게 어떤 결과가 돌아올지 뻔히 알면서도 그 많은 분들이 왜 버텨내면서 함께 싸움을 했을까, 하는 부분을 사람들에게 이야기하면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처음부터 징계위원회를 찾았고 몇 분을 만나보았다. 당시 싸움이 거의 끝나는 상황이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매일을 술로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제가 주요하게 삼을 인물은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고, 마침 신동기 씨를 찾은 것이다. 쉽지 않은 결정을 했던 사람이 가지고 있는 생각들을 들어보고 싶었다. 촬영을 하면서 그 친구에게 영향을 받은 부분도 굉장히 많다.

허남웅: 사실 8월에 싸움이 끝났는데 10월에 사람들을 찾고 자료를 조사한다는 것이 어떤 면에서 그분들에게는 아팠던 기억을 되살리는 일이었을 것 같기도 하다. 신동기 씨의 경우도 설득의 과정이 많이 필요했을 것 같은데.
태준식: 영상활동가들의 숙명 같은 것이기도 하지만, 현장에 계신 분들과 '동지, 동지' 하기는 하지만 카메라를 들고 가면 딱히 믿음을 주시지 않는다. 사실 방송국도 아니고, 다큐를 만들어서 사회적으로 큰 영향력을 미치는 것도 아니고, 그런 느낌이 당연히 있다. 그래서 항상 설득하기가 상당히 힘들다. 그런데 신동기 씨 같은 경우에는 그렇게 힘들지 않았다. 흔쾌히 응해주었고, 또 다른 인터뷰이 같은 경우에는 처음 조직을 다시 추스릴 때 정리해고자특별위원회 의장을 맡으셨던 분이다. 그러다 보니 직접 인터뷰도 하시고 사람 찾는 데도 도움을 많이 주셨다.


허남웅: 그런 분들의 이야기가 부각되다 보니, <당신과 나의 전쟁>은 쌍용차 파업이 일어나게 되는 현상을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이 사안에 관심을 두지 않았던 사람들에게 교감을 얻어내거나 동의하자고 이야기하는 방식으로 편집되었다는 느낌이 든다.
태준식: 신동기 씨는 정말 전형적이고 평범한 사람이다. 자기 주위의 동료들이 부당하고 합리적이지 않은 일을 당했을 때 아주 자연스럽게 싸움을 선택하는 사람이다. 300만원 가까이 받던 급여가 80만원으로 뚝 떨어지는 삶의 고통이나 아픔 같은 것을 잘 몰랐던 사람인 거다. 그 분이 그런 일종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과정에까지 함께 있었는데, 지켜보는 것도 굉장히 힘들었다. 결국 이런 사람이, 당신이 될 수도 있고 내가 될 수도 있는 이런 사람이 어떤 과정을 겪게 되는지 사람들에게 좀 알려주고 싶었다.

정리: 박예하 관객에디터 사진: 주원탁 자원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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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토크] <청계천 메들리>의 박경근 감독

최근 한국 다큐멘터리는 단순히 소재의 무거움에 함몰되지 않고 관객의 몰입도를 높이기 위한 다양한 형식의 실험과 사례의 활용으로 각광받고 있다. 이에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는 9월 1일부터 8일까지 '다큐멘터리의 진실의 정치학'이란 제하로 최근 한국 다큐멘터리의 주목할 만한 8편의 작품을 모은 특별전을 열고 있다. 이 중 지난 9월 2일 저녁에는 탈다큐멘터리적인 다큐로 새로운 형식의 보여준 <청계천 메들리>가 상영되었고, 상영 후 이 영화를 연출한 신예 미디어 아티스트 박경근 감독과의 대화가 이어졌다. 그 현장의 일부를 여기에 전한다.


허남웅(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
이번 프로그램은 다큐멘터리 진실의 정치학이다. 보신 작품은 <청계천 메들리>. 박경근 감독님이 연출하셨는데 다큐멘터리면서 탈다큐적인 작품이었다. 다큐멘터리라고 프로그램에 넣었지만 애니메이션도 등장하고 극영화 같은 성격도 보인다. 음악사용도 독특했다. 단순히 다큐멘터리로 설명하긴 부족한 면이 있는 듯하다. 어떤 생각으로 작품 준비하셨는지 궁금하다.
박경근(영화감독, 미디어 아티스트): 2004년부터 미술가그룹에서 활동했다. 거기서 청계천 지역과 서울의 도시 환경을 기록하는 작업을 했다. 청계천을 아카이브화 하는 미술작업을 했다. 그러다가 지원을 받아 영상작업을 하게 되었고 제가 영상파트를 커미션 받아 하게 되었다. 청계천이 저에게 개인적으로 흥미로운 것은 서울의 얼마 남지 않은 역사의 흔적 같은 것이 남아있는 공간이라서 서울 어느 공간보다 자연스러운 공간인 것 같다. 흔적 같은 것이 자연스레 쌓여있는 공간, 그런 것에 매력을 느꼈다. 공포 영화세트 같은 매력적인 공간이다. 그래서 끌렸다.

허남웅
:
영화를 보면 개인사도 느껴진다. 어려서부터 감독님 아버님이 외교관이셔서 해외를 많이 돌아다녔다고 알고 있다. 그런 가족사로 들어가게 된 경위에 대해 알고 싶다.
박경근: 영화를 편집할 때 이 스토리를 어떻게 만들까 고민을 많이 하는데 사실 찍을 때는 아무 생각 없이 찍었다. 매일 가서 일상적인 것을 찍고 재미있는 일 생기면 찍었다. 다큐 작업이 거의 70~80퍼센트는 편집으로 만드는 것 같다. 편집하면서 스토리들을 만들어 나갔다. 개인적인 이야기 중 반은 픽션이고 반은 사실이다. 하지만 편집에서 지키려고 노력한 건 하나 있다. 항상 내가 외부인의 시선을 가지고 있다는 걸 숨기지 말아야겠다는 것이다. 제가 청계천에서 자란 것도 아니고, 말씀하셨듯이 외국에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외부인으로써 들어가서 카메라 앞의 대상들과 생기는 관계, 거기서 생기는 충돌들을 드러내고 싶었다. 그런 부분을 신경 많이 썼다.

허남웅: 거창하지만 다큐멘터리의 윤리라고 하면 진실을 말하는 거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감독님은 픽션이 가미 되었다고 하셨는데.
박경근: 일반적으로 그런 이야기를 하는데 다큐멘터리는 픽션적인 부분이 많다. 진실이다, 믿어라 하는 다큐멘터리는 싫어한다. 왜냐면 어차피 카메라를 들어서 들이 대는 게 가공이다. 그걸 무시하고 작업을 진행하면 허상이 너무나 자세하게 나온다. 그렇기 때문에 이미지 자체가 허상이라는 걸 인식하면서 작업하는 것과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은 차이가 많은 것 같다.

허남웅
:
이 다큐멘터리는 탈다큐멘터리적인 형식이라고 말 할 수 있을 것 같다. 영화 보면 청계천의 쇠를 다루는 노동자, 그러니까 쇠를 가지고 이야기를 다룬다.
박경근: 제가 이걸 찍을 때 이런 형식을 하겠다라는 생각은 안 했다. 찍고 편집하려다 보니 뭔가 이게 기존 방식으로 표현하려던 것들을 못하는 한계에 이르렀다. 내용이 큰 드라마가 있는 것도 아니고 투쟁을 하는 것도 아니고 중요한 건 청계천에 대한 뭔가 보편적인 의미를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이런 생각하다가 이런 형식이 되었다.

허남웅: <청계천 메들리>가 영화제에서 주로 상영되었다. 아직 정식 개봉을 한 것은 아니다. 극장에서 상영이 되기도 했지만 설치미술로 전시되기도 했다. 사실은 아핏차퐁 감독의 <엉클 분미>도 그런 형태로 작업이 이루어졌는데 그런 부분에 대해 더 자세한 설명을 듣고 싶다.
박경근: 미술하는 사람이 영화를 만들고 하는 게 많이 있는데, 요새는 더 많이 부각 되는 것 같다. 본질적인 의미에서 경계는 없다라고 생각한다. 왜냐면 영화라는 자체가 이미지로서 체험하는 것이라 내러티브가 있던 없던 우선 이미지로 체험하고 그 후에 이야기를 받아 들인다고 생각한다. 제가 미술관에서는 설치미술을 내러티브없이 이미지로만 5채널로 5개의 스크린으로 했는데 이미지로 표현이 다 되었다고 생각한다. 미술관과 영화관이 이미지를 체험하는 방식이 궁극적으로는 비슷하다고 본다.


허남웅: 갑자기 궁금해진다. 감독님의 직업이 영화감독인지 미디어 아티스트 인지?

박경근: 영화관에 오면 감독 미술관가면 작가라고 한다.

허남웅: 인간의 역사라기보다 쇠의 역사를 통해서 인간을 본다라는 느낌이 있다. 인간이 오히려 뒤로 물러나는 느낌을 받았다. 이걸 처음부터 의도 하신 건지? 편집과정에서 만들어진 것인지?
박경근: 그 아이디어는 촬영하면서, 관찰하면서 생각한 건데 여기 나오는 기술자 분들의 종목,  예를 들어 선반 돌리는 분, 쇠 주물을 하시는 분, 목형 만드시는 분, 이런 다양한 기술하는 기술자 성격이 달랐다. 주물은 작업을 같이해야 한다. 누가 쇠를 부으면 누가 받아야 한다. 영화에 나왔듯이 여러 명이 작업한다. 그래서 사람간의 관계가 더욱 친밀하고 더욱 끈적한 관계다. 맨날 작업하다가 술 마시러 간다. 그러나 정밀분야는 항상 혼자다. 정밀은 세밀하게 1mm 가지고 고민한다. 그렇다면 이분들의 성격을 사실 그러한 쇠 자체가 바꾸는 게 아닐까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따지면 인간이 쇠를 다루는 게 아니라 쇠가 인간을 다듬는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 이야기를 확장하자면 문명에 대한 이야기도 되겠다. 산업화가 인간을 위한 게 아니라 산업화를 위해 인간이 희생되는 주체 객체가 바뀌는 그런 현상이 생각 외로 많은 것 같다.

허남웅: 감독님의 작업은 정체성을 찾아가는 작업으로 보인다.
박경근: 제 생각에는 종은 창작물은 자기에 대한 성찰이나 반성이 들어가 있지 않으면 힘이 없다고 보인다. 카메라 앞의 대상만 중요시하는 진실을 봐라이런 류의 다큐의 힘이 부족한 이유가 예전 보다 정보가 많고 이야기도 많다. 그래서 무슨 이야기보다는 그 이야기를 어떻게 전달하고 누가 이야기할건지가 중요해 질 것 같다. 좋은 작품은 자아성찰이나 자기의 반성이 꼭 들어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허남웅: 이번 작업 끝내고 또 다른 계획이 궁금하다.
박경근: 다음은 군대에서 있던 일을 소재로 다루려고 한다. 악몽 시리즈의 하나다. 사회가 문제지만 나의 문제이기도 하다. 내가 가진 문제들이 사회 문제기도 하다.

허남웅: 한국인이라면 군대체계가 우리 사회에 박혀있어서 이것이 공포로 다가온다. 감독님에겐이것이 더 크게 작용하지 않았을까?
박경근: 군대는 싫다. 다 똑같이 느낄 거다.

허남웅: 이 작품을 보면 경계의 영화라는 생각이 든다. 모든 것이 경계에 있고 다큐멘터리면서 아닌 부분도 있고 말이다. 어느덧 시간이 지나 마무리를 지어야 할 때다. 끝으로 다큐멘터리 작업하시면서 매체의 매력, 여전히 알 수 없는 미지의 것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다.

박경근: 매체는 그다지 중요한 것은 아닌 것 같다. 매체를 쓸 때 그 매체를 어떻게, 누가 쓰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미디어 아트의 장점은 빛을 이용한 장점이라고 본다. 기존의 조형물 보단 더 가벼운 표현방식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동시성, 그런 것 들을 포착해내는 것이 미디어 아트가 아닌가 정의를 내리고 있다.

정리: 정태형(관객 에디터) 사진: 조유성(자원 활동가)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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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국 다큐멘터리는 단순히 소재의 무거움에 함몰되지 않고 관객의 몰입도를 높이기 위한 다양한 형식의 실험과 사례의 활용으로 각광받고 있다. 9월 1일부터 8일까지 열리는 '다큐멘터리의 진실의 정치학' 전은 언급한 특징을 보여주는 최근 한국 다큐멘터리의 주목할 만한 8편의 작품을 모은 특별전이다. 상영되는 8편의 작품을 중심으로 한국 다큐멘터리의 최근 경향이라 할 만한 움직임을 추적해본다.

서울아트시네마의 9월 프로그램 중 하나로 ‘다큐멘터리 진실의 정치학’을 마련한 건 극영화 일색의 극장가에 그 비중과 비율을 높여가고 있을 만큼 한국 다큐멘터리가 부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올 상반기만 하더라도 <쿠바의 연인> <오월愛> <종로의 기적> 같은 작품이 예술영화전용관에서 높은 좌석점유율을 기록했고 <트루맛쇼>의 경우, 관객의 입소문을 타고 멀티플렉스로 상영관을 늘려가며 1만 명을 훌쩍 넘는 관객을 동원했다. 언급한 작품의 선전에 힘입은 걸까. 이후 개봉 대기 중인 한국 다큐멘터리는 <꿈의 공장> <용산> <청계천 메들리> <하얀 정글> 등 10여 편에 달한다.

‘재미’를 사수하라
최근 들어 두드러지고 있는 한국 다큐멘터리의 부상은 관객의 인식 변화에 기댄 바가 크다. 일례로, 이충렬 감독의 <워낭소리>(2009)가 유례없는 300만 관객을 동원하고 <아마존의 눈물>과 같은 TV프로그램이 기대 이상의 시청률을 기록하면서 다큐멘터리는 지루하고 계몽적이라는 저간의 편견을 불식시키고 볼만하다는 인식을 심어줬다. 실제로 올해 화제를 모았던 다큐멘터리를 보면 진실추구라는 다큐멘터리의 본령 외에 ‘재미’를 동일선상에 두고 이야기를 풀어간 작품들이 눈에 띈다. 정호현 감독의 <쿠바의 연인>은 쿠바 남자와 한국 여자의 사랑 속에서 물과 기름처럼 섞이지 않는 양국 간의 문화적 차이를 발랄하게 풀어냈고 이혁상 감독의 <종로의 기적>은 기성세대의 편견에서 자유롭지 못한 동성애자들이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밝게 생활하는 모습을 강조했으며 <트루맛쇼>는 TV맛집 프로그램의 조작 실태를 몰래카메라라는 코믹한 형태로 구성해 고발의 경직성을 완충했다.
이들 작품이 흥행 면에서 성공을 거두었다고 말하기는 힘들지만 (<쿠바의 연인>, <종로의 기적> 5천 명, <트루맛쇼> 1만 2천 명의 관객동원) 다큐멘터리를 낯설어 하는 관객들로 하여금 극장의 문턱을 낮춘 것은 사실이다. 시대가 예전 같지 않아서 창작자의 진정성에 기대 호소하는 방식만을 가지고 관객을 극장으로 끌어들이는 시대는 지났다. 이제는 시위도 놀이로써 소화하는 세대가 등장했고 아무리 선의를 가진 목적의 행위라도 감성을 건드리지 않으면 지지를 얻기 힘든 시대가 도래했다. 유행에 민감한 메이저 극영화의 경우, 시대의 감성에 발맞춘 결과물로 발 빠르게 관객과 호흡했지만 다큐멘터리는 장시간의 제작 기간을 필요로 하고 (예컨대, 김동원 감독의 <송환>의 경우, 12년의 제작 기간, 500개의 촬영 테이프, 800시간의 촬영 분량이 소요됐다!) 소재와 주제의 성격이 직선적인 탓에 매니악한 작품으로 분류되어 다수의 관객과 만나기에는 애초에 한계가 존재했다.
<워낭소리>가 중요한 작품으로 평가받는 것은 흥행성적을 떠나 다큐멘터리로는 드물게 시대의 감성을 단적으로 드러낸 텍스트로 작용했다는 점이다. 산골 노인부부와 함께 사는 늙은 소의 이야기를 다룬 <워낭소리>는 자연과 멀어진 도시인들에게 하나의 스펙터클로 작용하며 예상 밖의 호응을 이끌어냈다. 빌딩숲에 익숙한 현대인들에게 <워낭소리>의 자연은 평상시 보기 힘든 볼거리였고 인간과 동물의 관계를 초월한 할아버지와 소의 우정은 경쟁과 약육강식의 사회생활 속에서 잊힌 가치를 떠올리게 하는 감정의 도르래였다. 그런 관점에서 <쿠바의 연인>이나 <종로의 기적>, <트루맛쇼>는 모두 어떤 시대적 감성을 자극하는데 탁월한 연출을 보여준다. <쿠바의 연인>은 한국의 익숙한 풍경으로 자리 잡은 국제커플 중 한 쌍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되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문화적 차이를 좁혀가는 에피소드가 공감대를 형성했다. <종로의 기적>은 게이커뮤니티가 활발한 종로를 상징적인 배경으로 삼지만 특정 공간에 몰아넣지 않고 여러 분야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게이들을 통해 (여전히 편견이 존재하지만) 좀 더 다변화한 우리 사회의 모습을 보여줬다. 그리고 <트루맛쇼>는 맛에 대한 관심이 과열되고 있는 이때 TV맛집 프로그램의 허구를 전시하며 천박한 우리네 맛의 감식안을 폭로했다.

모든 영화가 시대와의 접점 없이 시장에서 살아남기 힘들지만 진실 추구와 고발, 폭로와 같은 정보제공이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다큐멘터리에게 있어 동시대성은 가장 중요한 영화적 좌표다. 이에 더해 무거울 수밖에 없는 메시지의 효과를 최대화하기 위한 화법의 선택, 즉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한 유용한 방법으로써의 재미 추구는 또 하나의 필수적인 요소가 되었다. (이는 <볼링 포 컬럼바인>(2002) <화씨 9/11>(2004) 등을 연출한 마이클 무어가 선구자라 할만하다) 다만 이는 최근 한국 다큐멘터리가 보여주는 여러 경향 중 하나로 생각해야지 모든 작품에 적용되는 연출은 아니다. 한국사회에 갈수록 만연한 불순(?)세력의 정보 차단 현상과 맞물리면서 한국 다큐멘터리는 다종한 소재와 다기한 형식으로 진화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진실'을 추구하라
하반기로 접어들면서 진실과 고발이라는 다큐멘터리 본연의 기능에 충실한 한편으로 다양한 형식적 실험을 감행하는 작품이 집중되고 있다. 이런 경향의 기저에는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사회적 특수성이 어느 정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사회비리에 대한 감시 역할을 수행하던 TV시사고발 프로그램의 기능이 현저히 약화되기 시작하면서 구멍 뚫린 국민의 알권리의 일부분을 다큐멘터리가 메우고 있는 것. 개봉을 앞둔 김성균 감독의 <꿈의 공장>과 송윤희 감독의 <하얀 정글>은 물론이고, 여러 경로를 통해 관객과 소통하고 있는, 그리고 '다큐멘터리의 진실의 정치학'에서 주요하게 소개되는 태준식 감독의 <당신과 나의 전쟁>, 이강현 감독의 <보라>, 문정현 감독의 <용산> 모두 우리의 생존권과 밀접하게 관련을 맺고 있는 문제들을 정면에서 응시한다.
<꿈의 공장>은 세계적인 브랜드로 떠오른 국내 최대 기타회사 콜트/콜텍의 횡포에 맞선 노동자들의 투쟁을, <하얀 정글>은 타인의 생명을 다루는 고귀한 의료 행위가 장삿속으로 변질된 한국 의료계의 검은 실상을, <당신과 나의 전쟁>은 당신과 나, 우리 모두의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무관심 속에 그들만의 투쟁으로 전락한 쌍용 자동차 노동자들의 파업을, 1년 동안 촬영한 기록물의 형태를 취하고 있는 <보라>는 현행 산업안전보건법(상시고용 50인 이상 300인 이하 사업장의 근로자는 해당 사업장의 보건 관리 업무를 맡은 보건관리대행기관의 산업의학전문의에게 3개월에 한 번씩 보건관리를 현장에서 받는다)에 근거하여 이뤄지는 현장 보건 관리의 실체를, <용산>은 2009년 1월 거리로 내몰린 용산 철거민을 비롯해 6월 항쟁의 이한열 열사, 광주민주항쟁의 시민까지, 죽음으로 내몰리는 약한 자의 현실을 다룬다.


특히 이들 작품은 우리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상의 풍경임에도 불구하고 주류 언론의 은폐 속에 무관심으로 내몰리는 이슈를 향한 진실의 정치학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이런 종류의 다큐멘터리는 작품의 유효성이 극장 안에서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극장 밖의 현실로 연장될 때 그 진가를 발휘한다. 이를 '다큐멘터리가 현실을 바꾼다'는 의미로 비장하게 해석할 필요는 없지만 적어도 사회적인 경각심을 일깨울 수 있다는 가능성에 무게를 둘 때 비로소 관객의 접근이 용이해진다. 사실 다큐멘터리의 본질은 미처 깨닫지 못했거나, 관심을 두지 않았던 현상에 카메라를 밀착함으로써 우리의 본모습을 폭로하는 데서 찾을 수 있다. 더 정확히는 겉으로 드러난 사회적 현상의 이면을 들추는 이들 작품을 통해 우리 사회를 작동하는 시스템의 실체를 알 수 있는 것이다. 다만 앞서 언급한 다큐멘터리들이 현재는 미지의 작품으로 남아있는 만큼 관객의 호응도를 미리 재단할 수 없지만 다루는 소재는 우리 사회에서 첨예한 이슈거리인 까닭에 익숙하게 다가올 가능성이 크다.



잠시 언급을 보류했지만 박경근 감독의 <청계천 메들리>는 좀 다른 경우에 해당한다. 해당 소재가 내포한 사회적 파급 효과에 중요성을 부여하는 영화들에서 더 나아가 형식적인 실험에 더욱 힘을 기울인다. <청계천 메들리>는 서울 청계천에서 쇠를 다루는 영세한 공장을 운영하는 사람들의 삶의 현장을 카메라에 담는다. 단순한 현실의 기록을 넘어 이들의 작업을 중심으로 기록화면과 멀티이미지의 향연 속에 한국과 일본, 근대와 현대를 넘나들며 쇠의 사회학을 구성하는 것이다. 이렇게 알게 모르게 진화하고 분화되는 한국 다큐멘터리의 영토 확장 배경에는 저 너머의 진실을 찾겠다는 창작자의 용기 있는 태도가 짙게 배어있다. 이 용기의 정체는 진실 탐구에 따르는 위험과 인내심의 감수와 더불어 이를 최대한 정확하게 알리겠다는 창작자의 사명감의 결합에서 비롯된다. 다만 다큐멘터리로 세상을 바꾸겠다는 구국의 결단에 방점을 찍기보다 작품의 미학성도 놓치지 않겠다는 창작자의 정체성 또한 확연히 드러난다. 진실과 재미의 순간을 목도하라, 이것이 한국 다큐멘터리가 추구하는 미학의 현주소다.

글/허남웅(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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