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24일, <아메리카의 밤> 상영 후 지난 달에 이어 두 번째 “오픈 토크”행사가 마련되었다. 영화에 대한 공감, 영화감독이 되겠다고 마음먹은 순간부터 감독으로서의 어려움과 그럼에도 작업을 계속 이어가게 만드는 영화의 힘에 이르기까지, 네 감독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일부 옮긴다.

 

 

변영주(영화감독): 오늘은 김종관 감독, 이혁상 감독을 모시고, 트뤼포의 <아메리카의 밤>을 보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자 한다. 먼저, 오늘 영화를 보면서 가장 와 닿았던 장면은 어떤 장면이었나?

김종관(영화감독): 공감도 있지만, 어쨌든 트뤼포 감독님은 저랑 사정이 많이 다르다보니 동경의 대목도 있다. 대부분은 영화를 찍는 시간이 아니라 영화를 찍기 위해서 기다리는 시간에 대한 고민이 많고, 영화를 찍을 때는 항상 찍는 순간의 즐거움이 있다. 영화에서 감독이 배우를 달래면서 하는 말이 있다. “영화는 야간 기차 같다. 네가 살아서 숨 쉴 수 있는 장소는 여기니까 도망치지 말고 여기서 어떻게든 해봐라”는 말이 와 닿았다. 영화를 찍어야한다는 강박에도 공감이 간다.

이혁상(영화감독): 계속 극영화가 아닌 다큐멘터리를 작업해왔기 때문에, 극영화 현장 분위기에 대해선 잘 모른다. 그런데 영화를 보면서 극영화감독들은 참 난잡하다는 느낌이었다.(웃음) 영화판에 여러 가지 일들이 많지만, 그중에도 서로 정분나는 일들이 참 많다.

이해영(영화감독): 영화를 만들 때 감독들의 악몽과 무의식, 현실적인 부분 같은 것들이 잘 표현된 것 같다. 하지만 어쨌든 그는 트뤼포니까, 프랑스에서 인정받으며 좋은 시스템에서 영화를 찍던 감독이니까, 사실은 영화 속의 고민이나 갈등이 굉장히 우아하다. 여기에 냄새로 따진다면 땀 냄새, 토한 냄새, 발 냄새 같은 걸 섞어 놓으면 충무로랑 가까워지지 않을까 싶다.(웃음)

 

변영주: 재밌게도 하필 오늘 이 영화를 보는 동안 트윗으로 메시지가 왔다. 영화감독이 되고 싶은 고등학생인데, 영화감독이 되려면 19살에는 영화의 어떤 걸 공부해야 하냐고 질문을 보내왔다. 그래서 “19살에는 영화를 공부하지 않는 게 좋습니다”라고 답했다.(웃음) 오늘 이 자리에도 어쩌면 앞으로 영화를 만들고자 하는 분들도 계실 것 같다. 김종관 감독은 영화감독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던 순간은 언제였나?

김종관: 어렸을 때 영화를 보고나면 나만의 스토리를 만들면서 공상하곤 했다. <그렘린>을 보면 <그렘린2>의 이야기를 머릿속으로 혼자 만들 거보고, <슈퍼맨>의 속편을 만들어본다든지 하는 식이었다.

이해영: 그렇게 블록버스터를 상상하고서 인디영화를 만드셨다.(웃음)

김종관: 영화를 재밌게 보는 것에서 어느 순간 영화를 만들기에 대한 욕구로 자연스럽게 옮겨가는 것 같다. 20대 초반에 필름 워크샵을 한번 했었다. 한 달 동안 워크샵에 참여하면서 어깨너머로 영화를 배웠다. 그 때 재밌게 했던 기억에서 어떻게 넘어오게 되면서, 20대 후반부터는 나의 영화를 만들게 되었다.

이해영: 영화과에 비교적 늦게 들어간 편이다.

김종관: 그 전에는 장사도 하고 이것저것 다른 일을 했었다. 그런 일들이 다 잘 안되고, 뭔가 만족스럽지가 않았다. 하고 싶은 게 아니니까. 하고 싶은 걸 하고 싶었다.

 

변영주: 이혁상 감독은 ‘연분홍치마’라는 다큐멘터리 만드는 독립단체에서 활동하고 있다. ‘연분홍치마’의 첫 작품인 <마마상> 때부터 함께 했었나?

이혁상: 그렇다. 사실 애초에는 영화를 만들기 위해 모인 것은 아니었다. 다들 제작을 전공한 것도 아니었고, 이론과에서 비평을 공부한 사람들이었다. 세미나 팀을 시작하면서 여성주의와 섹슈얼리티와 관련된 세미나를 진행했는데, 세미나만 하다보니까 뭔가 실천적인 것도 해봐야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에서 ‘연분홍치마’를 만들게 되었다. 처음엔 카메라를 든다는 것 자체를 상상도 못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현장에서 활동을 하는 과정에서 실태보고서 나 자료집 같은 걸 만들게 되는데, 이걸 꼭 글로 만들 필요가 있을까, 카메라로 다큐멘터리를 찍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해서 처음 만든 작품이 <마마상>이었다.

 

변영주: 이해영 감독은 배우랑 결혼하고 싶어서 영화감독이 됐다는 게 사실인가.(웃음)

이해영: 특별하게 할 줄 아는 건 없지만, 막연하게 나에게 있는 잡다한 재능들을 모아보면 그나마 영화판에서 써먹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감독이 돼서 유명해지면 좋은 여배우와 결혼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웃음) 변영주 감독은 ‘연분홍치마’와 비슷하게 다큐멘터리의 길을 걷다가 갑자기 극영화로 전환하셨는데..

변영주: 그런 건 아닌 것 같다. 처음에는 ‘장산곶매’에 들어가서 일을 하다가 현재 영상원의 김소영 교수님과 함께 사무직 여성노동자에 관한 중편극영화의 시나리오와 촬영을 했었다. 그러니까 다큐로 시작을 했던 건 아니었다. 그리고 나서, 김동원 감독을 만나 다큐멘터리를 하게 되었는데 그렇게 만든 첫 작품이 <아시아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이었다. 그 영화를 만들고 나서야 갑자기 감독이 되고 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래서 본격적으로 영화를 시작했다.

이해영: 김종관 감독도 말했지만 사실 영화를 찍는 시간보다는 기다리거나 준비하는 시간이 훨씬 더 길다. 스스로 영화감독으로서의 자의식이 별로 없다가, <천하장사 마돈나>가 개봉하고나서 극장의 마지막 상영 때 혼자 영화를 보는데,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순간 ‘영화감독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비로소 들더라. 그때부터 ‘나는 감독이다’ , ‘감독이니까 이러이러해야 한다’는 식으로 스스로를 채근한다.

김종관: 처음에 영화를 시작했을 때는 영화가 굉장히 중요했다. 어느 정도 시기가 지나서 시작했기 때문에 스스로 배수진을 치고 뭔가 결과물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컸다. 영화 만드는 사람으로서의 자의식은 별로 없었다.

 

 

이해영: 이혁상 감독은 앞으로의 행보에 대한 고민도 있을 것 같다.

이혁상: 고민을 하고 있는데, 당장은 <두개의 문> 때문에 워낙 정신이 없는 상황이다. 한 번 더 게이 영화를 더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다큐멘터리로 한 편 정도 더 작업하고, 다큐멘터리 뿐 아닌 다른 길도 모색해보려고 한다.

변영주: 영화촬영을 하면서 가장 끔찍했던 기억이 있나? <아메리카의 밤>에서처럼, 스크립터와 배우가 사랑에 빠져서 감독은 안중에 없게 된다면, 감독 입장에서는 정말 끔찍할 것 같다.

김종관: 영화촬영 현장에선 연애가 많이 일어나는 것 같다.(웃음) 적은 예산의 영화를 해오다보니까 항상 무슨 일들이 많이 일어난다. 그래서 처음의 계획대로 촬영이 진행되는 게 아니라 항상 무언가로 떼우게 되고, 그러면서 어떻게든 살아남으려고 허덕허덕 하는 게 제일 스트레스다.

이혁상: 다큐멘터리는 일단 주인공들과의 거리 설정이 중요하다. 특히 <종로의 기적>은 스스로도 또 한 명의 주인공으로서 등장하기 때문에, 다른 주인공들과의 거리 관계가 힘들었다. 촬영 중간에는 주인공 중의 한 명이 세상을 떠났는데, 그 때 정말 힘들었다. 2~3개월 동안 방에 틀어박혀서 악몽을 꾸고 아무것도 못할 정도였다.

이해영: 뒤늦게 고백하자면 예전에 감독을 해보니까 어떠냐는 질문에, 너무 귀찮다고 대답한 적이 있다. 그때는 농담이 아니라 진짜였다.(웃음) 감독에게 계속 모든 것을 물어오고, 감독은 계속해서 일일이 선택해야한다. 이 영화를 보면서 공감했던 것이 악몽장면인데, 촬영을 하면서 실제로 악몽을 정말 많이 꾼다.

변영주: 영화현장에서는 정말 사사로운 것까지 감독에게 물어본다. 감독은 모든 걸 대답을 하면서 가야한다. 그 때 감독이 잘 대답을 못하게 되면 스탭과 감독 사이의 신뢰에 균열이 가게 된다. 언제가 선배감독으로부터 배운 요령은, 감독은 다 알고 있다는 표정으로 ‘그럼 너는 어떤 게 더 좋은데?’ 되물어보면 된다.(웃음)

 

관객1: <아메리카의 밤>에서 배우들은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헤매고, 감독은 악몽 속에서 힘들어 할 때, 스탭들은 묵묵히 작업을 하고 있던 장면이 인상 깊었다. 영화감독이라면 아마도 ‘영화라는 게 대체 뭐길래’라는 물음을 힘들 때마다 떠올리게 될 것 같다.

이해영: 그 질문은 때로는 스스로를 무기력하게 만들기도 하고, 때로는 다시 일어서게 만드는 힘이 되기도 한다. 수많은 스탭들이 고생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정말 ‘영화가 뭐길래 이들은 청춘을 다 바치고 있나’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서도 찰나적이긴 하지만 한편으로는, ‘영화가 뭐길래 이렇게 터무니없는 낙관을 하게 만들고, 이렇게 나를 계속 움직이게 하는가’라는 생각이 든다. 치유와 상처가 그 안에 다 있는 것 같다. 영화의 대사 중에 영화가 삶보다 훨씬 조화롭다는 말, 우리는 영화를 해야만 행복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얘기가 핵심인 것 같다.

 

관객2: 감독님들께서 힘들 때 마다 꼭 찾게 되는 자신만의 영화 목록이 궁금하다.

김종관: 시기마다 좀 바뀌기는 한다. 지금은 예전처럼 반복해서 보는 영화는 없는데 가끔씩 보게 되는 건 영화에서도 나왔던, 장 비고의 <라탈랑트>이다. 관객으로서 깊은 교감을 느끼게 되는 영화다.

이혁상: 새벽에 <섹스 앤 더 시티> 시리즈를 보면서 최면에 걸리듯 잠이 든다.(웃음)

변영주: <스타워즈> 시리즈와 <아라비아 로렌스>, 50~60년대 할리우드에서 대작 붐이 일어났던 시기의 대작 영화들을 찾는다.

관객3: 어떤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하게 될 때 갖는 기준이 궁금하다

이해영: 그런 생각이 들기 까지는 123가지 정도의 이유가 있는 거 같다. (웃음) 하지만 결국 이야기의 재미라는 점이 크다.

이혁상: 다큐멘터리 작업을 해와서 그런지, 사명감까지는 아니더라도 아무도 기록하지 않은 시간과 역사를 내가 남기고 싶다는 생각이 있다. <종로의 기적>도 그런 출발에서 시작했었다. 다큐멘터리가 아니더라도, 픽션의 경우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역사를 기록하고, 시간을 기록하는 기분으로 영화를 만들고 있다.

김종관: 앞의 두 얘기와 다 연결된다. 처음에 단서처럼 오는 건 기록인 거 같다. 내가 살고 있는 동네나 계절, 그때의 감정을 편지를 쓰는 느낌으로 담아낸다. 모든 단서들은 차근차근 오는 것 같다.

변영주: 어떤 이야기를 접했을 때 혼잣말처럼 메인플롯을 만들어본다. 만들어보는 순간 어떤 메인플롯이 재밌다, 그리고 그 플롯 안에서 이런 장면을 만들어 볼 수 있겠다, 이런 장면이 찍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된다.

 

정리: 장지혜(관객에디터) 사진: 최용혁(자원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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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의 시네마테크 오픈토크

 

 

 

 

 

 

서울아트시네마 개관 10주년을 기념해 열리는 ‘시네마테크 오픈토크’의 두 번째 시간은 영화 감독들의 내밀한 삶에 관한 것입니다. 영화촬영 현장을 처음 방문한 사람들은 우리가 극장에서 보는 영화들이 어떻게 이런 무질서한 현장에서 만들어질 수 있는지 의아해하곤 합니다. 프랑수아 트뤼포는 <아메리카의 밤>에서 그런 영화촬영 현장의 내막을 보여주며 그 장소가 ‘사랑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서로 입을 맞추면서 시간을 보내는 영화의 세계’라 말합니다. 영화 작업은 스크린의 세계와는 다른 또 하나의 세계입니다. 종종 영화 감독들은 배의 선장이나 비행기의 조종사로 비유되곤 합니다. 그들이 어떤 항로로 진전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그러나 관객으로서의 우리는 제대로 알지 못합니다. 게다가 항해의 흥분과 기쁨이 무엇인지 가늠하기 쉽지 않습니다. 트뤼포는 영화는 야간 열차처럼 그저 전진하는 것이며 영화 감독들은 결국 일 속에서, 영화라는 작업에서 행복을 찾아야 하는 운명이라 말합니다. 영화 감독의 삶은 그들의 영화보다 훨씬 가려져 있고, 그렇기에 두 시간 동안 보는 영화를 만들기 위해 반년, 혹은 수년의 시간을 어떻게 소진하고 있는지 알지 못합니다. 6월의 오픈토크는 스크린의 뒤에 숨겨진 영화 감독들의 삶의 내막을 함께 이야기하는 시간입니다. 그 비밀스런 자리에 많은 분들을 초대합니다.

 

일시: 6월 24일(일) 14:00 <아메리카의 밤> 상영후

장소: 시네마테크전용관 서울아트시네마

진행: 변영주 감독(<화차>), 이해영 감독(<페스티벌>)

초대손님: 김종관 감독(<조금만 더 가까이>), 이혁상 감독(<종로의 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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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로시마 내 사랑>은 누벨바그의 진정한 출발을 알리는 선구적인 작품이자 감독 알랭 레네와 누보로망 작가인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만남으로 유명하다. 관습적이고 선형적인 이야기에만 매달려온 기존의 영화 작업에 의문을 제기했던 레네는 새로운 형식과 기교를 구사하는 누보로망 작가인 뒤라스에게 직접 시나리오를 부탁했다. 뒤라스는 상식적인 전개 방식 대신 그녀의 소설에서나 접했을 법한 다양한 실험 구조를 영화에 적용시킨다. 뒤라스는 히로시마 원폭 투하 소식을 처음 접했을 때의 충격을 전하며 이후 시나리오를 쓰게 된 동기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한 바 있다. “<히로시마 내 사랑>의 시나리오를 주문받지 않았다면, 나는 히로시마에 대한 글은 아무것도 쓰지 않았을 것이다. <히로시마 내 사랑>의 시나리오를 쓰게 되었을 때, 나는 히로시마의 엄청난 사망자 수를 보고 내가 만들어 낸 유일한 연인의 죽음의 스토리를 쓰게 되었다.”

영화의 첫 장면은 밀착된 피부의 움직임에서 시작한다.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폭의 형상을 띠는 분진들이 시대를 덮는 상흔처럼 남녀의 살갗에 뿌려진다. 곧이어 히로시마에서 우연히 만나 사랑을 나누는 프랑스 여자와 일본인 남자의 관계가 드러나고, 단순한 우연을 가장하던 이들의 만남은 히로시마라는 공간과 밀접한 관계를 맺게 된다. 뒤라스는 “지리적으로, 철학적으로, 역사적으로, 경제적으로, 인종적으로 가능한 한 최대한 서로 동떨어진 두 인물에게 히로시마는 에로티시즘과 사랑, 불행의 보편적인 여건들이 강렬하게 조명될 수 있는 공통된 장소”라며, 히로시마가 이 세상에서 유일한 곳이라 말했다.


여자는 히로시마에서 모든 걸 다 보았으며 항상 히로시마의 운명에 대해 슬퍼했다고 말한다. 그녀는 영화 촬영을 위해 히로시마를 처음 방문했다. 하지만 히로시마는 이미 그녀의 의식에 깊이 각인된 공간으로 자리한다. 스무 살도 채 되기 전 느베르에서 적군 병사를 사랑했다는 이유로 삭발당한 채 지하실에 감금됐던 그녀에게는 몰래 파리로 떠나올 때 들었던 종전 소식이 아물지 않았던 아픔으로 남아 있다. 제2차 세계대전의 비극에서 기인한 히로시마와 그녀의 운명이 조응하면서 히로시마는 여자가 머물고 있는 현재의 공간이자 느베르에서 겪은 아픔에 어떤 보편성을 확인시켜주는 환상의 공간이 된다. 점차 여자는 기억을 매개로 과거와 현재를 무차별하게 넘나들며 시간이나 합리성의 경계를 망각한다. 이와 같은 의식의 흐름을 따르는 것이 바로 레네와 뒤라스가 주목했던 화법이다.

여자는 느베르에서 겪은 시간을 통해 ‘그럼에도 삶이 계속된다’는 엄숙한 진리를 알고 있다. 히로시마에서 여인들이 기형아를 낳거나 남자가 불임이 된다고 해도 그 역시 계속되는 삶이다. 그런 점에서 <히로시마 내 사랑>은 개별적인 모든 것이 보편적이던 시대의 상흔을 공간으로 은유하는 영화이자, 한 시대에 편입되어 기꺼이 살아가며 각자가 감당하고 있는 삶의 규모에 집중하는 영화다. 뒤라스는 당시 히로시마 원폭에 대한 엄격한 취재로 주목받았던 존 허시의 현지 보고 기사의 원문을 일부 이용해 다음과 같은 내용의 대본을 썼다. “보름째 되는 날 히로시마는 다시 꽃으로 뒤덮이게 되었다. 수레국화와 글라디올러스, 그리고 둥근잎 나팔꽃과 수선화들이. 그때까지 꽃들의 세계에서 알려지지 않았던 어떤 강한 생명력을 가지고 잿더미에서 다시 살아나고 있었다.”

(장미경 관객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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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7일 저녁, 알랭 레네의 <히로시마 내 사랑> 상영 후 이 영화를 추천한 김종관 감독과의 시네토크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김종관 감독은 일본 여행을 하는 동안 다시 봤는데 개인적인 위로를 많이 받았다며 추천의 말을 전했다. 공간과 인물의 내밀한 관계에 대한 지속적인 고민을 해 온 김종관 감독과 함께 이 영화를 본다는 것이 반가운 우연처럼 느껴졌던 시간이었다. 무거운 듯 가벼운 듯 다양한 맥락으로 이어지던 관객과의 대화 속에서 <히로시마 내 사랑>은 일상의 진동을 안고 사는 우리들에게도 작은 위로를 건네는 듯 보였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디렉터): 방금 상영한 <히로시마 내 사랑>은 김종관 감독이 선택한 작품이다. 이 영화를 선택하게 된 계기가 특별한데 그 경위에 대한 소개를 부탁 드린다.

김종관(영화감독): 제가 만든 영화도 아니고 어떻게 보면 이 영화는 이야기를 나누기에 적절한 영화가 아닐 수 있다. 보통 추천 영화라 하면 좋아하는 영화, 지배적인 영화에 대한 얘기를 하는데 그런 면에서 이 영화가 주는 인상이 강했던 것 같다. 저한테 어떤 지점에서 가장 강렬하고 필요하게 느껴졌던 영화라, 전반적인 것에 대해 말할 자신은 없지만 그래도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지난 늦가을에 3주 정도 혼자 일본 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었다. 영화에 나오는 여배우처럼 개인적인 컨디션이 좋지 않았고, 뭔가 마음의 광기가 있는 상태에서 혼자 돌아다니고 있었는데 그때 탔던 기차의 속도감이 느려서 굉장히 긴 여행을 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었다. 거기서 책 한 권을 읽고 영화 한 편을 봤는데 둘 다 이상한 우연처럼 그 여행에 대한 제 감상과 비슷한 느낌을 줬다. 공교롭게도 기차가 고장이 나서 후쿠시마에서 잠깐 정차했는데 그때 인상도 재미있었다. 밤에 여행을 하다 보니 로맨스 있는 낭만을 기대하기도 했는데 젊은 사람들이 많이 타질 않더라. (웃음) 어쨌든 그 공간을 보는 것 자체가 묘했다. 분명히 그 공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느낌과 어울려서 이 영화가 개인적으로 의미 있게 다가온 것 같다.

김성욱: 일본에서 이 영화의 제목은 <24시간의 정사>이다. 히로시마라는 제목이 뭇사람들에게 받아들이기가 그랬는지 개봉판 제목이 달랐는데, 이 제목에서는 영화가 그리는 시간을 명확하게 드러내고 있다. 이 영화는 낯선 도시에서 낯선 사람과 24시간 동안 연애를 하는 이야기이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불가능한 연애의 모습을 보여주는 영화이기도 하다. 김종관 감독도 낯선 도시인 일본에서 이 영화를 보면서 갖게 된 느낌이 있었을 것 같다.

김종관: 이러한 한시적인 로맨스가 기존에 장르적으로 존재하고 매력 있기는 하지만, 다년간의 여행을 해 본 결과 그런 로맨스가 잘 일어나지는 않는 것 같다. (웃음) 이 영화는 어떻게 보면 공간과 공간의 만남이지 않나. 어떤 공간과 만났을 때 겪게 되는 감정의 지점들과 이 영화가 주는 것들이 맞닿아있는 것 같다. 어떤 곳을 여행하는 것은 낯선 공간을 보는 것인데 혼자 여행을 할 때는 기억, 특히 유년에 대한 어떤 기억들을 건드린다. 이 영화가 어떤 면에서는 굉장히 정치적이고 그 시대의 상황들을 반영하고 있지만 개인적으로 읽으면 좀 통속적인 부분이 있다.


김성욱: 여주인공인 에마뉘엘 리바가 했던 대사 중 “이 도시가 나의 몸에 딱 어울린다”는 표현이 있다. 이처럼 영화의 첫 시작은 몸과 몸이 만나는 것이지 않나. 몸과 몸이 만나는 것과 느베르라는 도시와 히로시마라는 도시가 만나는 것이 교묘하게 영화에 섞여 있고, 경계지대가  무화되면서 혼합되는 느낌이 있다. <히로시마 내 사랑> 역시 출발점부터 2차적인 사랑, 즉 다시 사랑하게 되는 유부남과 유부녀의 이야기고 그런 관점에서 성인적인 영화라는 생각이 든다. 김종관 감독의 영화는 사랑에 들떠있거나 그러려고 하는 열병에 사로잡혀 있거나 헤어지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 다루고 있는데, 그런 관점에서 영화를 어떻게 느꼈는지도 궁금하다.

김종관: 기본적으로 치정극이나 불륜극을 좋아한다. 트뤼포의 <이웃집 여자>(1981) 같은 파괴적인 영화를 좋아한다. 무엇보다 각본을 뒤라스가 썼기 때문에 공간적인 것과 시간적인 것을 잘 접합시키지 않았나 싶다. 시나리오에서는 전체적으로 여자가 더 강하게 느끼는 관능이나 성적인 욕망이 있는데, 아마 뒤라스가 가지고 있는 개인적인 경험들에서 기인한 것 같다. 추억 속 공간은 이질적이고 그 안에 있는 본인은 외롭지만 바깥 대상들은 공포스럽고 하는 것들이 성적인 자극이나 욕망과 절묘하게 맞아 들어가는 부분이 있다. 그런 면에서 뒤라스가 공간과 관능에 대한 것을 유일하게 표현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한다.

김성욱: 이 영화에 대해 뒤라스는한 여인이 죽은 자와 사랑을 나누는 이야기라고 말했었다. 여자가 일본인 남자를 만날 때 여전히 아직 죽지 않았던 독일인 남자를 떠올리게 되면서 죽음과 삶이 혼동되어 있는 상태가 히로시마라는 공간 안에서 사랑 이야기로 진행이 되고 있다. 이런 것은 연애 이야기에서도 반복되는 틀일 수도 있을 것 같다.

김종관: 사회적인 상황이 있으니까 과거에 집착하고 못 벗어나는 부분이 격의 있어 보이는데 통속적인 연애담에서는 그런 모습들이 추하고 일그러지게 표현되기도 한다. 당시 만들어진 영화들 중에 <남과 여> 같은 작품도 과거에 대한 중요하게 이야기하는 비슷한 설정이 많은 것 같다.


김성욱: 영화 자체가 파편적인 느낌이고 영화적인 설정으로 보더라도 각각의 장면들이 분리되는 특징이 있는데, 사실은 전체가 서로 연결될 수 없는 것들이 연결되어 있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일종의 몽타주라고 볼 수도 있는데 그런 파격성이 느베르나 히로시마를 연결 짓는 가장 영화적인 방식이라는 생각이 든다. 불가능함이 이 영화의 기본적인 설정이 아닌가 한다.

김종관: 그렇다. 거창하거나 사소하게 풀어도 불가능한 것이 있는데 그것이 멜로 영화에서 중년의 사랑을 푸는 원칙 같다. 뒤라스가 쓴 시나리오는 거의 소설 같은데, 영상으로 구성하는 것 자체가 소설이 번역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고 그러면서 구조적으로 열려 있는 부분들도 있다.

김성욱: <히로시마 내 사랑>에서는 어떤 장면들을 인상적으로 기억하고 있나.

김종관: 처음에 다큐멘터리 장면도 기억이 난다. 그 소스를 기준으로 거의 내레이션과 같은 대화를 썼는데, 영화에 나왔던 그 공간의 이미지들은 제가 여행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더 와 닿았던 것 같다. 히로시마는 불이 꺼지지 않아서 좋다는 밤거리에 대한 대사도 기억이 난다. 이 여자의 심리 상태에서 보면 어둠을 무서워할 것 같은데, 히로시마라는 도시도 그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밤에도 불을 끄지 않는 어떤 심리가 히로시마가 가진 그런 상처와 닮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관객1: 유명한 영화라 굉장히 기대를 많이 했는데 중간중간에 심심하기도 하고 어려웠던 것 같다. 우선 영화를 보면서 음악이 좀 튄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는데 전반적으로 영화 음악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시는지 궁금하다. 또 이 영화가 원폭 투하 이후 14년이 지난 다음에 프랑스에서 만들어진 영화인데 남자 주인공이라든지 일본 사회에 대한 묘사 같은 것들이 모호한 느낌이 많았다. 제작자나 뒤라스가 일본, 혹은 히로시마라는 공간 자체에 갖고 있던 생각이 추상적이고 모호한 것 같은데 단지 개인적인 감성만 표출된 영화인지, 이 부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김종관: 일단 음악은 당시 영화에서 음악을 쓰는 스타일이 있고 관객들이 그 스타일이나 관습을 이해하는 것이 지금과는 다를 것 같다. 옛날 영화를 보면 음악을 사용하는 방식들이 다르긴 한데, 그 시대를 완전히 배제하고 음악을 아주 독특하게 쓴다고는 볼 수 없다. 그리고 남자에겐 초월적인 연인간의 무드가 있지만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은 다큐처럼 쓰이지 않나. 어쨌든 히로시마라는 공간에 대한 얘기를 하지만 여자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이기 때문에, 타자의 시선으로 이곳을 본다는 것을 확실히 인식하고 그 시선을 부정하지는 않는 것 같다.
김성욱 일본은 전범국가이면서 나치스 독일에 공조한 나라이기 때문에 파괴를 했던 나라가 동시에 파괴를 당했다는 이중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히로시마라는 장소는 여자에게는 여행을 떠나온 공간이면서 여자가 느끼는 정념과 상태 안에서의 도시이기 때문에 설정 상 현실적인 문제들이 빠진 부분도 있는 것 같다. 또 하나는 이 영화를 보는 프랑스 내부의 정치사회적인 관점들인데, 이 영화가 제작되던 58, 59년에는 독일 점령 당시 프랑스에 대한 언급이 금지되었던 시기였다. 프랑스 입장에서 보면 이 영화에서 히로시마 얘기를 하면서 독일 점령 당시 느베르에서 여자가 겪은 불편한 일들을 언급하는 지점들이 있었던 거다. 마찬가지로 알랭 레네의 전작 <밤과 안개> 역시 수용소에 대해 말하지만 당시 프랑스가 알제리에서 자행하고 있는 폭력적인 사태에 대한 얘기이기도 하다. 그렇게 간접적인 방식으로 프랑스 사회의 기억과 망각의 문제를 다뤘다는 입장도 있다. 전쟁이 끝난 이후 독일 병사를 처참하게 죽여버리는 것과 동시에 여주인공이 수용소에 수감된 유대인으로 형상화된 것처럼, 어떤 균형이 맞춰져 있다.


관객2: 통속적인 연애담이라는 말씀도 하셨는데, 독일 병사를 잊고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고 싶어 하는데 자꾸 그렇게 안 되는 것을 망각에 대한 죄책감으로 볼 수 있는지 궁금하다.

김종관: 영화의 스토리 라인에 정치적인 상황을 대어 보면 일치되는 않는 부분들이 있고 또 통속적인 연애담으로 보면 연결이 되는 부분이 있고 그렇다. 정리가 안 되는 정서들이 혼재되어 있다고 느낄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이런 것들에 대해 스토리 라인을 쫓아서 보려고 하면 힘들지 않을까 한다.

관객3: 이 영화에서 실제로 중요한 것은 여자와 히로시마와의 관계라고 본다. 여자가 독일인 병사를 사랑해서 겪게 되는 고통과 히로시마라는 도시와 그 안의 사람들이 겪는 고통이 동일시됐다고 생각한다.

김성욱: 말씀하신 것처럼 동일시라고 하는 게 이 영화의 큰 핵심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전쟁에 의해 이 여자도 상처를 입었지만 원폭으로 피해를 받은 사람들의 모습은 지리적, 상황적으로 달라서 국가에 의해 일으켜진 보편적인 상처로 연계되지는 않는 것 같다. 일본인 남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김종관: 영화에서는 여자가 화자고 그녀의 개인적인 심리를 따라가는 것이다. 과감하게 얘기하자면 말씀하셨던 대로 이 영화를 볼 수도 있지만 그렇게 상징적으로 놓아버리면 재미없어지는 부분들이 있다. 그런 부분들을 남녀간의 일상적인 플롯으로 보완을 하면서 더 모호해지고 재미있어지는 부분들이 있다. 통속 연애극으로서의 기능들도 그대로 보면 더 중의적이고 영화적으로 재미있어질 것 같다.

관객4: 마지막에 서로를 히로시마와 느베르라고 불렀던 대사가 생각이 나는데, 근사하고 결함이 없는 주인공 남자의 모습을 통해서도 히로시마가 생각했던 것과 달리 상처를 잘 치유하고 있다는 느낌을 보여주는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었다.

김종관: 이 영화가 낙관을 가지고 있는 것은 열린 결말에 따른 부분인 것 같은데 개인적으로 생각해보면 이 영화에서 낙관이라기보단 위로를 느꼈던 것 같다. 여자에게도 위로의 지점들은 있지 않았을까 한다.

관객5: 감독님의 <폴라로이드 작동법>에서도 여자가 기억하고 있는 장면은 폴라로이드 카메라에 안 담길 것 같고, <히로시마 내 사랑>에서 여자 주인공의 기억에 대한 모호한 장면은 다른 감독이 찍고 있는 그 영화에도 담기지 않을 것 같은 개인적인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연결점에 대해 여쭤보고 싶다.

김종관: 이렇게 레네 영화와 제 영화가 연결점이 있는 게 너무 좋다. (웃음) 그것을 또 연결 지어 얘기하려니 쑥스러운데 <폴라로이드 작동법>을 찍었을 때 애초에 개인적인 얘기들을 해보고 싶었다. 사진도 그렇고, 영화라는 게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순간을 담을 수 있는 거지 않나. 영화가 다루는 첫사랑도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감정의 한 부분이고, 그런 것들을 영화라는 장치로 담아볼 수 있다는 게 저한테는 가장 큰 의미인 것 같다. 소중한 공간들과 감정들, 그 시기들, 젊음들 같은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면 기억하기 싫은 부분들까지 떠올려야 하는데, 그런 부분에선 일정 부분 연결되어 있을 수도 있겠다.


김성욱: <히로시마 내 사랑>은 현대 영화 안에서 감정과 의식의 상태로 영화를 일관되게 만든 영화이기도 하다. 김종관 감독의 작품에서도 감정의 상태나 분위기, 인물의 느낌들이 많이 느껴지는데, 그런 영화들을 만들 때의 팁 같은 게 있나.

김종관: 저는 아주 작은 작업들을 많이 했고 대부분 두 사람이 주인공인 경우가 많았다. 그 관계 안에서 발생하는 것들에 초점을 맞추었다. 제가 여행도 좋아하고 공간에 대한 의미들이 크게 갖고 있어서 그런 공간에 대해 관찰을 하고 인물 간의 관계에 대한 고민을 하는 편이다.

김성욱: 올해는 굉장히 에로틱한 영화를 한 편 만들 거라고 말씀하셨는데 어떤 영화를 계획하고 있나.

김종관: 시나리오를 하나 써서 준비하고 있다. 서스펜스 애로물인데, 한시적인 시간 안에 서로의 성적인 욕망을 들여다보는 영화를 구상하고 있다.


 

정리│장미경 관객 에디터 사진│최용혁 자원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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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 새로운 작가 전략' 기획전에 맞춰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는 이번에 상영하는 데뷔작들을 만든 감독들을 한 자리에 모아 이야기를 나눠보는 두 차례의 포럼을 마련했다. 그 첫 번째 자리가 지난 3월 26일 저녁 7시부터 2시간 여에 걸쳐 ‘한국영화, 새로운 작가 전략의 돌파구를 찾다’라는 주제로 열렸다. 다양한 개성을 지닌 김동주, 김종관, 민용근, 이응일, 정호현 감독이 패널로 참여하고 김성욱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디렉터의 진행으로 펼쳐진 이색적이며 특별했던 포럼 현장의 일부를 담아본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디렉터): 최근 2009~2011년 사이에 새로운 영화들이 많이 나왔고, 이 다양한 영화를 만든 분들이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다. 한 편의 영화가 시장 안에서 나오면서도, 자신의 예술적 표현들과 함께 영화를 만들어 나갈 때 하게 되는 고민들이 말하자면 하나의 작가 전략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이런 고민들과 앞으로 어떤 영화들을 만들어나갈지에 대한 이야기들을 같이 나누는 시간이 되면 좋겠다. 우선 <빗자루, 금붕어 되다>의 경우 영화의 소재가 갖는 현실성과 영화를 만들 때의 스타일 적인 면이 굳건하게 공존한다.
김동주(영화감독): 기존의 일반적인 영화의 특징인 이야기, 즉 내러티브를 위주로 한 영화보다는 이미지 중심으로 영화적인 느낌을 살릴 수 있는 스타일 면을 더 고민하고 생각했다. 내가 이 영화를 만들기로 한 결정적인 것은 고시원이라는 공간을 보고 난 후였기 때문이다. 고시원에 대한 이미지를 한 번 만들어보자는 생각에서 떠오르는 영감을 담고 싶었다. 벌집 같이 정형화된 구조라든지 하는 것들. 한국 사회에 매우 많이 있는 고시원이라는 곳에서 너무나 많은 젊은이들과 소외받은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오년이나 십년 후에 다시 봤을 때 내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들어보고 싶었다. 그러다 보니 타협하지 않고 내가 좋아하고 구사하고 싶은 스타일대로, 없는 제작비를 쪼개서라도 해보자는 생각으로 출발했다.

김성욱: 이 자리가 동시대성 안에서 같이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는 기회인데, 이응일 감독의 경우, 비디오 세대의 역습이랄까, 비디오적인 소비나 디시갤러리에 대한 언급 등 세대적으로 다른 방식으로 영화에 접근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응일(영화감독): 개봉을 염두에 두거나 영화제에 내려고 한 것이 아니고, 입시용 포트폴리오로 단편을 만들려고 하다가 점점 불어나서 <불청객>이 되었다. 우린 비디오 세대의 끝물이고 DVD로 막 넘어가기 시작하는 끼인 세대라고 할 수 있다. 90년대 디지털 캠코더가 등장하면서 학생 영화들이 많이 만들어졌다. 그 중에는 골방 영화가 많았다. 어떡하면 간단하게 집에서 찍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신림동에서 반 지하 자취방에서 같이 살던 형들을 배우로 써서 만든 영화다. 예산의 제약으로 조명도 삼파장 스탠드에 비닐봉지 씌워서 하고, 깜빡거리는 효과는 조연출이 스위치를 껐다 켰다 하는 열악한 환경에서 만들었다. 사람들이 많이 보진 않았지만, 언론에서 생각보다 많이 다뤄줘서 스스로도 놀랐다. 국내에 이런 B급 SF가 드물다 보니까, 이슈화시키기가 좋았다는 생각도 든다.

김성욱: 김종관 감독의 경우, 특정 장르, 즉 멜로 영화를 염두에 둔 부분이 있다. 
김종관(영화감독): 이렇게 모여 있는 자리에 어떤 유대가 있는 것 같다. 모두들 상업적인 영화 시스템 안에서 만들지 않은 영화들을 가지고 개봉을 했고. <혜화,동>을 보면서도 들었던 생각이 동시대에 지나왔던 시간들의 상처를 볼 수 있다는 것이었고, 이에 많은 위로를 받았다. 또한 창작자 입장에서 영화들을 서로 많이 보고 생긴 그런 유대가 느껴졌고, 그런 동료들이 있다는 생각에 행복했다. 영화를 단순화해서 작은 작업으로 하려다보니 처음엔 멜로적인 구성이 편했다. <조금만 더 가까이>는 배우들이 조금 더 유명한 사람들이 되고 시스템이 조금 커지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기존의 작업과 크게 다르진 않았다. 그렇지만 개봉을 하게 되면서 그 전하고는 다른 책임감이 생기더라.

김성욱: <혜화,동>의 제작비는 얼마였나? 그리고 찍을 때 고심한 점이 있다면?
민용근(영화감독): 제작비는 2억 정도다. 시나리오를 쓸 때 어떤 규모의 영화로 만들어지고 어떤 배우로 하자고 정해놓은 게 전혀 없었다. 스텝들에게 미안해하지 않으면서 영화를 찍어야겠다는 생각만 있었다. 그래서 여배우를 이름이 있는 사람을 캐스팅해서 투자를 더 많이 받아보자는 생각도 했다. 어떤 상황이 되면 그 상황에 맞춰 하자는 주의인 것 같다. 운 좋게 영진위와 스튜디오 느림보에서 지원을 받으면서 촬영에 들어갔다. 그 전의 더 열악한 환경의 작업에 비하면 비교적 풍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참여했던 스태프들의 경우 다른 영화들에 비하면 빈곤했던 거다. 한겨울에 촬영해서 고생이 많았는데, 보상이 제대로 안 이뤄지니 미안함이 컸다.

김성욱: 네 분의 영화가 닫힌 세계에서 빠져나오는 느낌이었는데, 정호현 감독은 완전히 다른 세계를 다룬다. 쿠바에서 찍었고 다큐멘터리이며, 개인 작업에서 시작해서 극장에 걸리는 작품이 됐고, TV에서도 소개되면서 연관성들을 만들어냈다.
정호현(영화감독): 처음부터 극장 상영을 생각한 것은 아니었고 공동체 상영 정도를 생각했다. 그러다가 첫 극장 개봉을 하게 됐는데, 사실 극장 시스템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영화라는 게 이런 식으로 개봉되고 관객들과 이런 식으로 소통 되는구나 싶었다. 다큐멘터리의 경우 정치적 이슈나 사회적 성격이 강한 것은 이슈화하기 쉬운데 반해, 사랑이야기나 사적 이야기들은 극장에서 상영된 경우가 매우 적은 것 같다. 앞으로도 물론 상업 다큐멘터리를 만들진 않을 거지만, 그렇다 해도 이번 극장 상영을 계기로 어떤 관객들이 보겠구나 하고 미리 좀 생각해 두고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성욱: 어떤 영화를 만들 때 마이너리티 성향의 특정 관객을 염두에 두는지, 아니면 일반적인 관객들이 이정도면 즐길 수 있다고 보는지 궁금하다.
김동주: 어떤 영화든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은 반드시 한 사람이라도 생기게 된다고 생각한다. 한 번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영화를 만들었을 때 내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 조금 씩은 더 생길 수 있다는 생각으로 영화를 만든다.
김성욱: 극장 개봉에 대해 듣고 싶다. 현실적인 문제들을 경험했을 텐데.
김동주: 어느 정도의 틀이 갖춰진 영화라면 지속적으로 국가에서 상영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을 정착시켜야 하지 않겠냐는 생각을 많이 했다. 한국영화에 활력을 불어넣는 일은 거기서 출발해야 하지 않겠냐고 생각한다.

김성욱: 민용근 감독의 경우 '찾아가는 관객과의 대화'라고 해서 적극적으로 관객들과 만나는 자리를 마련했고, 이응일 감독은 퍼포먼스들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김종관 감독은 관조적으로 점잖게 보냈던 것 같은데(웃음).
김종관: 영화는 기본적으로 혼자 보려고 찍진 않고 친구를 찾는 건데, 약간 더 은밀한 방식으로 만들어서 약간 더 은밀한 친구를 사귄다는 느낌이 있다. 주어진 예산에 맞춰서 영화를 찍는 방식들에 지금은 익숙해져 있다. 꾸준하게 보는 사람들의 범위들이 조금씩 조금씩 늘어나는 것이 매우 소중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민용근: <혜화,동> 같은 경우 GV를 하면 관객들이 조금 많이 오시는 편이지만, 극장 측에 양해도 구해야 하니 번거롭기도 하고 쉽진 않다. 그래서 생각한 게 찾아가는 관객과의 대화라고 해서 10명 이상 신청을 하면, 끝나고 같이 차라도 마신다든가, 극장 로비에서 커피라도 마시든가 하는 거다. 남들이 볼 때 극성을 떤 다고 할 정도로 적극적으로 해야 좀 티가 나는 것 같다. 독립영화의 경우 2~3주 정도 극장에 걸려있어야 관객들에게 회자되고 인지되는 것 같다. 그런 리듬에 맞는 독립영화만의 마케팅 방식이 필요하다는 것을 이번에 많이 배웠다.
이응일: 열악한 상황에 뭐라도 하자 싶어서 생각한 게, 우주쇼라든가, 캐릭터의 옷을 입고 나가거나, 만담처럼 이야기를 하거나 하는 거였다. 원천적인 한계가 있는 게 인구가 너무 적은 것 같다. 결국 통일을 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웃음) 영진위에서도 저예산 영화는 무료로 DCP를 해주는 상설적인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본다. 현재는 영진위의 제작지원이나 홍보마케팅 지원제도도 사라진 상황 아닌가.

김성욱: 다큐멘터리 같은 경우는 어떤가? TV에서 상영될 수도 있지만, 극영화와는 다른 어려움이 많을 텐데.
정호현: 작품의 성격이 극장 상영에 적합한지, 아니면 시민단체라든지 하는 곳들에 가서 하는 것이 맞는지 잘 판단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극장 상영이 의미 있는 이유는, 국내에서는 극영화적인 미장센이 없거나 TV 다큐멘터리적인 클리셰가 없으면 작품의 질이 떨어진다고 생각하는 편견들이 여전히 많기 때문이다. 그 편견을 깰 수 있다는 의미와 함께, 여전히 극장에서 이런 영화들이 상영될 수 있고 관객들은 그것을 볼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의미가 있다.

김성욱: 최근 1~2년 사이에 저예산 영화의 성과가 놀라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품이 갖는 의미나 미학적인 측면들에서. 좀 더 자신감을 낸다면 영화 전체적인 활력을 낼 수도 있다고 생각이 든다. 작가 고유의 개성도 있지만, 동시대를 살아가는 공동성도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 연합적인 흐름이 큰 힘을 발휘하게 되지 않나.
김종관: 우리가 어떤 면의 내용적으로 공감을 느끼는 부분도 있고, 그런 게 아니더라도 사실은 사슬처럼 묶여있는 관계라는 생각이 든다. 요즘 트위터를 좀 하는데 여기에서 영화를 통해 만난 관객들이 있다. 어떤 영화를 본 사람들이 다른 영화들로 전파되어가는 것들을 본다. 그런 게 긍정적인 기운이라 본다. 아쉬운 건, 우리가 만든 영화들의 스태프나 배우들 다 사실은 노개런티로 찍은 거다. 그런데 계속 이렇게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좋은 영화들이 많아져서 관객들을 조금씩 늘리는 것도 중요하고, 감독과 마찬가지로 극장들도 투자사도 각자의 분야에서 꾸준히 하면서 브랜드로서 키워지면 작은 영화들의 네트워크를 생성할 수 있기 때문에 좋아질 수 있으리라 본다.
민용근: 영화를 하면서 조금씩 다른 감독님들도 알게 된다. 적극적인 행동이 아니더라도 같은 시대를 살면서 영화를 만든다는 연대가 영화를 만드는 큰 동력이 되는 것 같다. 인디 밴드의 경우 합동 공연 같은 것을 하기에 보다 용이한데, 영화도 이런 연합이 필요하다. 또한 영화만이 아니라, 음악, 문학 미술 등 다른 예술과의 공감대의 지평을 넓히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김동주: 감독들의 성향은 다들 개인적이다. 사실은 그것들을 존중해 줘야 된다. 하지만, 감독들도 결국에는 어느 정도의 프로듀서 마인드를 가져야 된다. 감독들이 스스로 서로 공유하려고,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주려고 노력하면서, 나중에는 또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관계가 형성되면 좋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나중에는 자연스러운 하나의 단체나 흐름이 나올 수 있지 않겠나 싶다.

김성욱: 극장을 하는 입장에서도 시대적인 트렌드, 젊은이들의 어떤 특정한 것들에 대해 관객들과의 접점을 만들어나가는 방식의 전략을 짜게 되지만, 동시에 또 흥행 강박이 되진 말자는 생각을 한다. 키아로스타미는 문화 활동이나 예술 활동을 지원하는 결정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영화를 둘러싼 환경에 대한 마인드가 없기 때문에 영화계가 어려움에 빠져있다고 말했었다. 그러므로 영화의 진가를 아는 사람들이 스스로 자립을 해야 한다. 자립에 대한 것이나 지속적인 영화 만들기에 대한 고민이나 모델들이 있다면 마지막으로 듣고 싶다.
정호현: 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있고 선택한 매체가 영화다. 다큐멘터리에서 가장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만나는 사람들과 발생하는 완전한 현실에서 나타날 수 있는 것에 대한 재미를 느낀다.
이응일: 영화를 업으로 삼는 사람으로서 재미있고 훌륭한 이야기가 뭘까, 영화란 무엇인가, 영화는 어디에 쓸모가 있는가, 늘 고민한다. 관객들이 영화를 보고 자신의 삶에 대한 느낌을 얻어 가게 하는 것. 그게 영화의 기능이고 영화인의 사명이 아닐까 생각한다. 거기에 각자의 전략을 만들어내야 한다.
민용근: 생계적인 전략도 중요하다. 그게 곧 작가적인 전략으로 이어진다고 생각한다. 영화를 하면서 먹고 살 수 있는 것들에 대해 고민이 많이 필요하다. 영화라는 매체가 있을 뿐이지 자기 마음을 표현하고 싶어 무언가를 만드는 건 다 비슷한 것 같다. 꼭 영화에서만 국한 짓지 않고 생활도 놓치지 않는 환경들을 꾸준히 만들어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김종관: 이야기를 할 때, 항상 나만 보면서 이야기를 하면 주제는 쉽게 메마를 수밖에 없는 것 같다. 나랑 타자의 관계 속에서 나를 찾거나, 다른 세계 안에서 내 안의 것들을 끄집어내서 그 관계들에서 주제를 찾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그리고 영화를 하면서 어떻게 늙어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항상 있다.
김동주: 창작을 할 때 자기만의 색깔을 가진 영화를 만들수록 대중성이나 흥행성이랑 멀어지기 때문에, 먹고사는 문제랑 연관이 늘 된다. 창작의 고통을 알지만, 또한 이루 말할 수 없는 기쁨을 알기 때문에 앞으로도 계속 영화를 만들 것이다. 다음 작품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라는 각오로 만든다는 생각이다. 흥행이나 생계를 위해 영화를 선택하지 않고 오로지 하고 싶은 대상으로만 영화를 대하겠다는 생각을 한다. (정리: 박영석 시네마테크 관객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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