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의 영화감독은 그저 이미지를 만들기만 해서는 안 된다. 이미지에 대해 스스로 질문을 던져야 한다.”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클로즈업>이 영화에 대한 영화라고 했을 때, 거기엔 적어도 두 가지의 의미가 존재한다. 먼저, 키아로스타미는 이 영화를 통해 영화라는 이미지가 현실에 개입해 들어가는 방식을 그리고 있다. 이 과정은 현실과 이미지가 겹겹의 층위들로 정교하게 구성된 것으로, 단순한 개입이 아니라 현실을 변용하는 것으로서의 이미지, 이미지의 역량을 이야기한다. 다른 한편으로 키아로스타미는 영화라는 것을 구성하는 요소들을 보여준다. 그것들은 마치 퍼즐조각들처럼 주어진다. 그 조각들이 완성되는 것은 결국 관객들의 심상 안에서일 것이다. (영화를 가능하게 하는 최소한의 요소들에 대한 탐구, 그리고 그 요소에 관객까지도 포함하고 있다는 점은, 이후 2000년대에 들어 만들어진 <텐>, <파이브>, <쉬린>과 같은 영화들에서 보다 분명하게 나타난다.) 다음은 <클로즈업>에서의, 아직 완성되지 않은 퍼즐조각들에 대한 간략한 메모이다.

 

 

하나의 이미지   키아로스타미의 말을 빌리면, 영화의 시작은 언제나 ‘하나의 이미지 혹은 한 장의 사진’에서부터 비롯된다. 그것은 <클로즈업>의 경우, 신문기사로 처음 사브지안의 이야기를 접했을 때 본 사브지안의 사진이었다. 키아로스타미에겐 기사의 내용보다도 사브지안이 얼굴을 가린 사진이 더 강렬했다고 한다. 한 남자의 정체성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한 이 영화가 가려진 얼굴의 이미지에서 시작되었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픽션과 논픽션이 혼재되어 있는 가운데 우리는 영화에서 사브지안과 그가 속인 어느 가족과 그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를 보고, 듣는다. 하지만 영화가 끝나고 나면 사브지안이라는 인물은 더욱 모호한 채로 남을 뿐이다. 이미지는 더 이상 무언가를 판단하지 않는다.

 

카메라   키아로스타미는 사브지안의 재판 과정을 영화에 담는다. 첫 번째 재판 씬에서 화면 밖의 키아로스타미는 사브지안에게 두 대의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음을 먼저 설명한다. 하나는 클로즈업으로 그의 모습을 담을 것이고, 또 하나는 법정 안의 좀 더 전체적인 모습을 담아낼 것이다. 키아로스타미의 말은 관객을 향해 건네는 것이기도 하다. 법정에서 사브지안은 판사에게 이야기하기도 하지만, 상당수는 키아로스타미, 혹은 카메라나 관객을 향해 이야기한다. 그는 키아로스타미를 향해 ‘당신은 나의 이야기, 예술과 영화에 대한 나의 열정을 들어줄 관객’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클로즈업>의 법정은 죄의 여부를 판단하는 공간이 아니라, 이야기의 공간이 된다. 그리고 이 때 카메라는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대상과 관객 사이의 관계를 매개하기 위한 것이 된다.

 

캐릭터   사브지안은 법정에서 자신이 마흐말바프 감독 행세를 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었는지를 설명한다. “누군가를 연기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특히 감독의 역할을 연기한다는 것은 더욱 그렇다. 하지만 동시에 나는 그것을 좋아했다. 나는 내가 감독이라고 믿기 시작했고, 정말 그렇게 느꼈다. 나는 더 이상 연기를 하고 있지 않았다. 하지만 아한카씨의 집을 떠나 나의 집으로 돌아올 때면, 나는 나의 캐릭터와 이별해야했다. 그것은 힘든 일이었다.”

 

 

운동성   키아로스타미의 영화에서 인물들이 장소를 이동해 움직여가는 장면은 언제나 중요하게 다뤄져왔다. 그는 “움직임 속에서 삶을 느낀다”고 말하기도 했다. 영화의 마지막, 이제 막 나온 사브지안은 실제 마흐말바프 감독을 만난다. 사브지안은 그를 보자마자 울음을 터뜨리고, 마흐말바프는 ‘사브지안과 마흐말바프가 되는 것 중 어느 쪽이 나은가’ 농담을 건네며 그를 다독인다. 마흐말바프는 사브지안과 동행해 아한카씨의 집을 찾아가기로 한다. 함께 오토바이를 타고 달리는 두 사람의 이동을 따라가는 이 장면은 특별한 감흥을 자아낸다. 영화에서 처음으로 인물의 움직임이 주변 풍경들과 함께 제시되며, 카메라는 때론 그들의 뒤에서, 때론 그들을 앞서서 모습을 담아낸다. 카메라는 이 동행을 지켜보거나 제시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이들의 곁에서 함께 따라가고 있는 것이다.

 

우연성   하나의 이미지에서 출발한 영화는 특정한 캐릭터와 움직임을 카메라를 통해 담아낸다. 키아로스타미는 이러한 과정에 우연이라는 요소를 덧붙인다. 키아로스타미는 종종 영화 안에 즉흥적이거나 우연적이지 않은 것조차도 우연적인 것처럼 보이도록 만든다. 이러한 것들은 일정한 틀이나 궤도를 벗어나도록 하고, 또 방향으로 영화를 열어둔다. 사브지안이 체포되어 나오기를 기다리던 운전기사는 갑자기 차에서 내려 하늘을 바라보더니, 낙엽더미 위에서 몇 송이의 꽃을 줍기도 한다. 그가 어쩌다가 발로 슬쩍 찬 빈 스프레이 캔은 내리막길을 따라 한참을 굴러가다 멈춘다. 녹음기를 찾아서 종종거리다가 혼자 골목을 뛰어 내려가던 기자는 조금 전의 그 빈 캔을 다시 멀리 차버린다. 이처럼 영화의 오프닝 씨퀀스는 사브지안의 체포를 취재하는 기자를 따라가는 듯하더니, 중요한 순간에 슬그머니 딴청 피우듯, 다른 것들에 주위를 기울이고 있는 것이다. 우연성은 필연적이지도, 불가능하지도 않다는 사실을 지칭한다. 사브지안은 이야기 하는 자이자, 스스로를 허구화하기 시작하는 인물이다. 영화에서 그가 아한카 가족에게 처음에 거짓말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흥미롭다. 그것은 애초에 어떤 의도나 계획이 없이, 버스에서 아주 우연한 상황에서 발생했던 것이다. 키아로스타미는 영화에 우연성의 끌어들임으로서 묘사나 서사를 넘어서는 것으로서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by 장지혜 관객에디터)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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