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르게이 파라자노프는 우크라이나의 카르파티아 지방의 민담을 각색하여 <잊혀진 조상들의 그림자>를 만들었다. 영화의 두 주인공, 이반과 마리치카는 서로를 사랑하는 연인이다. 하지만 둘의 집안은 서로를 원수처럼 여긴다. 이반이 마을을 잠시 떠난 와중에 마리치카는 강물에 빠져 익사하고, 이반은 슬퍼하다가 다른 여인과 결혼한다. 그러나 얼마 못가 이반의 결혼생활은 아내의 부정으로 파탄이 나고, 그는 결국 죽어버린다.

단순한 이야기 같지만 <잊혀진 조상들의 그림자>는 이 단순함이 쉬이 들어오지 않는 영화다. 스토리의 인과관계는 에피소드 사이사이에 삽입된 자막들이나 영화 속 주변인들이 입으로 전하는 이야기(민담)를 들음으로써만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들에 의존하지 않고 영상만 본다면 이야기의 미로에 빠지기 쉽다.

<잊혀진 조상들의 그림자>에서 내러티브 대신에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카메라의 움직임이다. 영화는 정적인 롱테이크보다 역동적인 카메라 움직임을 자주 보여준다. 어린 시절의 이반과 마리치카가 숲에서 뛰노는 장면은 핸드헬드로 활력을 불어넣는다. 한편 마르치카가 죽은 뒤에는 시선 둘 곳을 잃은 채 높이 솟은 나무를 바라보는 극단적인 로우 앵글이 빈번하게 등장해 절망에 빠진 인간의 시선을 느끼게 한다.

카메라 움직임과 더불어 영화에서 도드라지는 것은 화려한 색채의 사용이다. 영화가 시작하고 나면, 우리의 시선을 단박에 사로잡는 것은 하얀 눈밭과 대조되는 어린 이반의 붉은 옷이다. 붉은 컬러는 이 영화의 지배적인 색조라 할 수 있는데, 특히 영화 후반부 이반이 부상을 입고 선술집에서 빠져나오는 부분은 온통 붉은 톤으로 처리된다. 반면에 이와 대조를 이루는 부분은 이반이 마리치카를 잃고 실의에 빠졌을 때로, 몇 분가량 흑과 백으로만 이루어진 화면이 지속된다. 흑백화면이 끝나는 지점은 우크라이나 지방의 화려한 민속의상과 알록달록한 단풍이 펼쳐지는 곳에서다. 색색의 민속의상이 등장함과 동시에 귀에 들리는 것은 지방 고유의 민속 음악이다.

파라자노프는 <잊혀진 조상들의 그림자>로 세계 평론가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하지만 소비에트 당국에게 <잊혀진 조상들의 그림자>는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공식을 따르지 않는, 원칙에서 벗어난 영화일 뿐이었다. 내러티브는 온데간데없이 영화적 실험으로 가득차 있었으며, 동시에 소비에트 인민들에게 과거의 전통을 상기시키는 지나치게 민족적인 영화였던 것이다. 결국 파라자노프는 다음 영화인 <석류의 빛깔>(1969)을 만들기까지 몇 년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글 송은경 관객 에디터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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