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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Essay

[Essay] 채플린은 왜 마지막 키스 씬을 잘라냈을까?

두 개의 다른 엔딩


1942년, 찰리 채플린은 애초에 무성영화로 만들어진 <황금광 시대>에 자신의 내레이션과 그가 작곡한 음악을 삽입했다. 이 때 몇몇 장면들이 삭제되거나 수정되면서 재개봉 버전의 러닝타임은 오리지널보다 20여 분 짧아진 형태로 완성되었다. 눈에 띄는 변화 중 하나는 다름 아닌 영화의 엔딩이다. 이번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에서 상영되는 1942년의 재개봉 버전의 엔딩은 다음과 같다. 떠돌이 찰리는 금광을 찾아내 백만장자가 되고, 그가 탄 배에서 사랑하는 여인 조지아와 우연히 재회한다. 둘은 손을 맞잡고 함께 갑판의 계단을 오르고 화면은 페이드 아웃된다. 그런데 여기에는 또 다른 엔딩이 숨겨져 있다. 1925년의 오리지널 버전에서 두 사람은 계단을 오른 뒤, 사진 기자의 카메라 앞에서 함께 포즈를 취한다. 마주 본 두 사람의 얼굴에 미소가 떠오르고, 사진 기자의 투덜거림에도 아랑곳 않고 행복한 키스를 나누며 영화는 끝난다. 그로부터 17년 후, 재개봉을 위한 편집 과정에서 채플린은 이 장면을 삭제해 버린다. 대신 그는 계단을 오르는 두 사람의 뒷모습과 함께 ‘해피엔딩’이라고 읊조리는 내레이션으로 영화를 마무리한다. 본래의 엔딩에 비하면 재편집된 버전의 엔딩은 내러티브나 화면 구도에 있어서 조금은 어색하고 불안정해 보인다. 어째서 채플린은 이 마지막 키스 씬을 잘라낸 걸까?

찰리 이후의 채플린


그의 영화에서 희극과 비극은 늘 맞물려 있지만, <황금광 시대>에는 분명 어떤 낙관주의가 남아있다. 당시 채플린은 당대의 스타 배우들, 감독과 함께 유나이티드 아티스츠 영화사를 창립했는데, 이로써 그는 기존 스튜디오와의 착취적인 계약관계로부터 독립을 선언하게 된다. <황금광 시대>는 그가 바로 이 유나이티드 아티스츠 시절에 감독과 주연을 겸하여 만든 첫 영화이다. 채플린은 종종 이 영화로 자신이 기억될 거라 말하곤 했다고 한다. ‘좋은 시절’로 기억되는 미국의 20년대, 채플린 역시 어떤 기대와 믿음, 낙관의 정서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었고, 황금과 여인, 모두를 얻는 <황금광 시대>의 이야기는 그의 영화에서 유일한 키스 씬으로 행복하게 끝맺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후 영화들에서 ‘해피엔딩’은 점차 사라진다. 마지막에 이르면, 결국 모두가 떠나버리고 홀로 남겨지거나(<서커스>(1928)), 시력을 되찾은 소녀의 앞에서 깨어진 꿈으로 남거나(<시티 라이트>(1931)), 애잔한 뒷모습으로 멀어져만 간다(<모던 타임즈>(1936)). 특히 떠돌이 찰리 캐릭터와 작별한 이후, 그의 영화는 더욱 어두워진다. <위대한 독재자>(1940)에서는 고통 받는 연인에게 목소리만이 간신히 가닿을 뿐이고, <살인광 시대>(1946)에서는 ‘살인이 사업의 연장’인 베르두 씨로 등장해 무심히 교수대에 오른다. 대공황, 산업화, 전쟁, 학살의 시간을 지나면서 그의 영화는 점점 세상을 향해 비판과 근심, 냉소를 내비치고 있었다. <황금광 시대>가 처음 만들어진 1925년의 채플린과 재편집된 1942년의 채플린, 이 둘 사이에는 간극이 존재할 수밖에 없으며, 그러한 간극의 흔적이 이 영화의 삭제된 엔딩에 남아있는 셈이다. 그런 맥락에서 곱씹어 생각하게 되는 것은 삭제된 장면 그 자체보다, 그러한 차이를 만들 수밖에 없었던 한 예술가의 ‘선택’이다. 당시 채플린은 이미 유명한 ‘할리우드 스타’ 그 이상이었다. 그것은 단지 그가 <황금광 시대>가 재개봉하던 1942년에도 전쟁과 관련된 수많은 대중 집회에서 연설하는 등 사회적 문제에 적극 참여하고 있었다는 것만을 뜻하지는 않는다. 영화사상 사람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인물을 창조해낸 그는 어느 순간 영화가 단지 대중의 꿈이 투사되는 것으로서 존재하는 것을 거부하고서, 이 통렬한 과정을 이후 자신의 필모그래피를 통해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따라서 채플린의 후기 영화들은 보는 것은 작품들 하나하나가 지닌 흥미와 놀라움 뿐 아니라, 용기 있고, 열정적인 한 예술가가 자신의 시대를 예민하게 바라보는 방식과 만나는 것이며, ‘찰리’ 이후의 시기에 재편집된 버전의 <황금광 시대> 역시 미묘하게나마 그러한 과정 안에 있다.

by 장지혜 관객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