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가장 좋아하는 여배우가 누구냐는 질문을 받곤 한다. 쉬운 물음 같아도 이게, 참 곤혹스럽다. 여배우가 한 둘도 아니요 그녀들의 연기가 항상 만족스러운 것도 아닐진대, 무엇으로 기준을 삼는담. 얼굴, 연기, 아니면 공인으로서의 몸가짐? 특히 한국여배우를 꼽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특정 영화에서의 연기를 거명할 수밖에 없는 건 이 때문이다. 예컨대 <길소뜸>의 김지미, <안개기둥>의 최명길, <나의 사랑, 나의 신부>의 최진실, <박하사탕>의 김여진, <파란대문>의 이지은, <나비>의 김호정, 이런 식이다. 이는 비단 한국여배우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마릴린 먼로가 배우로서 인정을 받은 영화라고 해봐야 고작해야 몇 편에 지나지 않고, 천하의 카트린 드뇌브의 필모그래피를 살펴보아도 범작이 월등하다. 또 우디 앨런의 새로운 페르소나 스칼렛 요한슨 역시 연기파 배우와는 거리가 있지 않나.

여배우란 톱스타와 배우 사이에서 끝없이 고민하는 운명을 타고난 존재이다. 어느 쪽이 나은지를 따져 묻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영화는 예술이면서 산업이기 때문이다. 영화의 탄생이래로 스타와 배우 사이의 모호한 경계에서 호사가들의 냉소에도 아랑곳 않고 존재감 하나만으로 은막의 스타로 등극한 배우들이 있다. 우리는 그들을 ‘여신’라고 부른다. 그레타 가르보와 베티 데이비스의 뒤를 이어 나타난 마를레네 디트리히는 늘씬한 각선미 하나만으로도 관객을 사로잡았고, 마릴린 먼로의 데뷔는 <이브의 모든 것>의 단 한 컷만(어눌하지만 촉촉하고 육감적인 목소리와 발성)으로도 충분했다. 이처럼 여배우는 연기를 넘어서는 그 무엇으로 대중과 만난다. 관객에게 가슴앓이를 하도록 만든다. 신비롭고 매혹적이면서 미궁 같은 표정으로 관객을 흡입하고야 말겠다는 열망과 질투, 그래서 여신이다. 그리피스가 <인톨러런스>에서 릴리언 기시의 머리에 후광을 비춘 건, 와일더가 <7년만의 외출>의 먼로의 첫 등장 신에서 그녀의 몸을 과도한 빛으로 감싼 건 이 때문일 것이다.

여배우는 인간이 아닌 여신으로 존재한다. 내가 최고의 프랑스 여배우로 (잔느 모로와 카트린 드뇌브와 줄리엣 비노쉬를 제쳐놓고) 주저 없이 파니 아르당을 꼽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연기는 최고가 아닐지라도 여배우로서의 스타성은 아르당을 따를 자가 없으니까. 반면 지극히 인간적인 모습으로 오랜 생명력을 보장 받는 배우도 있다. 이를테면 빼어난 미모는 아니지만 묘한 매력을 발산하며 연기파 배우로 자리매김 경우거나, 주류와는 인연이 닿지 않은 B무비의 스타로 자기 영역을 충실히 지켰던 배우가 그들이다. 전자의 경우 상드린 보네르나 이자벨 위페르를 꼽을 수 있을 것이고, 후자로는 1970년대 ‘블랙엑스플로이테이션(Blacxploitation: 흑인배우를 캐스팅해 흑인관객을 대상으로 만든 흥행영화들)’의 글래머 걸로 활약했고 데뷔 20년이 지나서야 주연을 얻었음에도, 언제나 그래왔던 것인 양 할리우드 톱스타를 양옆에 거느리고 스크린을 활보했던 <재키 브라운>의 팸 그리어가 대표적이다. 그렇게 보면 윤여정도 김기영 영화 이후 오랜 휴식을 끝에 비로소 만개한 케이스라고 할 수 있다.

여배우에 관한 잡문을 적으면서 드는 생각은, 진정한 은막의 스타는 나이가 들면서 오히려 배우로서의 진가가 더해간다는 것이다. 괜히 스타고 여신이겠는가. 이쯤 되면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고 항변하는 영화애호가가 있을 터인데, 걱정 마시라. 앞서 거론한 여배우 모두를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있다. 올해로 다섯 번째를 맞아 7월 30일 개막해 8월 말까지, 서울아트시네마에서 한 달간 이어질 ‘시네바캉스 서울’이 그것이다.

이 여름을 더욱 후끈 달아오르게 만들 이번 시네바캉스가 주목하는 건 영화사를 수놓은 ‘매혹의 아프로디테’, 즉 여배우들이다. 라인업에 등장하는 모든 영화 하나하나가 주옥같지만, 사적으로는 스턴버그와 디트리히가 만난 영화들과 상드린 보네르의 <방랑자>, 파니 아르당의 <이웃집 여인>, 이자벨 위페르의 <여자이야기>, 팸 그리어의 <재키 브라운>을 필견의 영화로 꼽는다. 아울러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웨스터>에서 클라우디아 카르디날레가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신은 무슨 말이 더 필요 있을까.

연중 가장 많은 영화제와 크고 작은 행사가 겹치는 때가 8월이다. 본격적인 바캉스시즌이기도 하다. 모름지기 바캉스란 자주 찾던 익숙한 곳이 아닌 미지의 장소를 택해 떠나야 제격이다. 다소 대중적이고 이질적이기도 한 ‘2010 시네바캉스 서울’의 프로그램이 또 다른 매력으로 다가오는 까닭이다. 나는 당신이 이번만큼은 상드린 보네르와 팸 그리어와 파니 아르당을 만나보길 권한다. 진정한 ‘매혹의 아프로디테’ 로 기억 될 이 개성 만점의 여인들을 내버려둘 것인가. 아…미운 사람. (백건영_영화평론가, '네오이마주' 편집장)

[출처] 네오이마주 2010-07-24 http://www.neoimages.co.kr/news/view/2681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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