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수아 트뤼포는 <여자들을 사랑한 남자>라는 제목의 영화를 만들었다. 이 제목이 사실 트뤼포 본인에게 해당된다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다. 적어도 트뤼포에게 있어서는, "자신이 사랑에 빠진 여배우들을 아름답게 담아내고 싶어서" 영화를 만들었다는 말이 그리 큰 과장은 아니리라. 트뤼포 영화의 여성 캐릭터들이 얼마나 매력적이었던가. 그의 영화를 보다 보면, 여배우들에 대한 감독의 사적인 매혹과 열정, 그리고 사랑이 영화 속에 그대로 드러나면서 영화 자체에 매력과 활력을 부여한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트뤼포가 시네필의 영원한 초상이라 불리며 불러일으키는 낭만은 그 자체로 영화와도 같았던 그의 열정적인 삶과 사랑에서 기원하는 것이다.


그런데 트뤼포가 단순히 여배우들의 외적인 매력에만 이끌렸던 것은 아니다. 가령 트뤼포는 <부드러운 살결>에 출연한 프랑스와즈 도를레악에 대해 처음에는 안 좋은 선입견을 갖고 있었는데, 책을 빌려주고 대화를 나누는 등의 감정 교류를 통해 호감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한편 도를레악은 처음에는 니콜이라는 캐릭터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는데, 이 역시 그녀의 분위기와 성격에 맞도록 많은 변경이 이루어졌다. 그녀는 극중 인물에 자신만의 음성과 율동과 동작을 불어넣었으며, 결국 니콜은 도를레악 본인과 거의 비슷한 인물이 되었다.

카트린느 드뇌브는 트뤼포가 열렬히 사랑했던 여인 중 하나다. 그녀는 루이스 부뉴엘의 <세브린느>의 촬영을 마치고, 트뤼포의 영화 <미시시피 인어>에 출연했다. 영화는 그리 성공적이지 못했으나, 그들은 영화를 촬영하며 열정적인 사랑에 빠졌다. 트뤼포는 드뇌브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으로 여겼으며, 그의 인생에서 이 관계는 하나의 축복이자 심적 동요의 근원이었다. 그들은 어쩌면 필연적이었을 결별을 맞이한다. 아이를 갖고 싶어 했던 드뇌브와 그렇지 않았던 트뤼포 간의 갈등이 그 원인이었다고 알려졌는데, 이 이별은 트뤼포를 매우 중대한 정신적 위기에 빠뜨린다. 그러나 이별 후 십여 년이 지난 후에 이 둘은 재회한다. 바로 <마지막 지하철>을 통해서이다. 트뤼포는 <마지막 지하철>의 시나리오를 쓸 때부터 카트린느 드뇌브를 염두에 두고 마리옹이라는 배역을 전개시켜나갔다 한다. 그의 판단으로 영화의 구심점을 이루는 대단히 중요한 인물, 강하면서도 냉정한 이 인물을 구현하기에 최상의 여배우가 그녀였던 것. <마지막 지하철>이 거둔 대단한 성공에 카트린 드뇌브와 제라르 드파르디외의 역할이 매우 컸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파니 아르당은 트뤼포의 마지막 거대한 사랑이었다. 트뤼포는 TV드라마에 출연한 아르당의 모습을 보고 첫눈에 반해버렸다. 트뤼포는 아르당에게 편지를 보내 만나자고 제안했으며, 곧바로 "다음 영화는 당신의 작품이 될 것"이라고 약속했다 전해진다. 트뤼포는 그녀의 큰 입, 독특한 억양을 지닌 낮은 음성, 검은 큰 눈, 역삼각형 모양의 얼굴에 매혹되었으며, 그녀의 생동감 넘치는 연기, 열정과 유머 감각, 내밀한 것을 좋아하는 내성적 성격, 다소의 비사교성, 특히 감수성이 강한 면들을 좋아했다. <이웃집 여인>을 찍을 때 그들의 사랑은 막 시작되어 아직은 비밀스러운 것이었고, 이 사랑은 분명 이 영화에서의 아르당의 치명적 매력을 만드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트뤼포는 그녀에게 "촬영이 시작되면 그녀의 얼굴은 피어나고, 침묵을 지키다가 미소를 떠올린다. 그 미소는 '나는 만족스럽고, 충족되었고, 부족함이 없어요'라고 말하는 듯하다"라는 찬사를 보냈다. 그의 유작이 된 <신나는 일요일!>은 아르당의 얼굴에서 '그녀의 외모가 필름 누아르의 여주인공과 얼마나 잘 어울리는가'를 발견한 트뤼포가 그녀에게 어울릴 만한 탐정 소설을 찾아내 각색하여 만든, 온전히 그녀를 위한 영화였다. 이 순간들이 파니 아르당의 배우 인생에 있어서 가장 빛나는 시기였음은 두말할 여지가 없다. 그들은 동거는 하지 않은 채 이웃에 살면서 독립적인 생활을 했으며 정신적으로 매우 깊이 연결되어 있었다고 한다. 아르당은 트뤼포가 병으로 죽어가던 최후의 순간까지 그의 곁에 있었고, 그의 아이를 낳았다. 파니 아르당이야말로 트뤼포의 최후의 여인이었으며, 트뤼포 영화의 마지막 여주인공인 셈이다. (박영석)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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