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데리코 펠리니에 관한 '애프터 토크'

지난 6월 25일 저녁 8시, 펠리니의 <8과 2분의 1>을 보기 위해 몰려든 관객들로 서울아트시네마가 인산인해를 이루던 날 저녁, 영화 상영이 끝난 후 극장 근처 카페에서는 관객들끼리 모여 펠리니의 영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애프터 토크 자리가 있었다. '펠리니, 광대예찬'이라는 이름을 달고 진행된 이 행사는, 2010년 들어서부터 서울아트시네마의 소식지 및 웹블로그에 글을 기고하던 관객에디터들이 주체가 되어 준비하고 많은 다른 관객들을 초대하여 만들어진 자리였다. 이 자리에는 총 15명 정도의 관객들이 모였다. 비록 펠리니의 영화에 대해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마련된 자리이지만, 그래도 최소한의 이야기 거리들을 만들어내기 위해서 미리 발제를 준비해온 관객들이 있었다. 발제자들의 발제 후, 이와 관련된 내용 및 그 외 몇 가지 다른 관심사들에 대해 자유로운 이야기들이 오갔다. 두 시간 동안 진행된 유쾌하면서도 진지했던 애프터 토크의 일부를 여기에 옮긴다.


펠리니 광대예찬를 위해 모인 관객들의 간략한 자기소개가 있은 후, 본격적인 애프터 토크가 시작되었다. 사회는 관객에디터 김수현 씨가 맡았다. 사회자는 애프터 토크 자리를 마련한 취지에 대해 짧게 언급한 후, 자신이 준비해 온 '화려한 스펙터클과 소란 뒤의 애잔함'이라는 제목의 발제문을 낭독했다. 발제는 자신에게 시네마테크에서 영화를 보는 것의 의미가 무엇인지, 펠리니에 대해서 어떤 이야기들을 나누고 싶어서 이 자리를 준비했는지에 대한 내용으로 시작됐다. 주된 내용은 펠리니의 영화에서 등장하는 축제 장면들의 스펙터클함이 펠리니의 어린 시절의 경험인 버라이어티 쇼와 서커스에의 매혹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는 것, 펠리니 영화에 꼭 등장하는 아이들, 펠리니가 여성을 보는 시선, 그리고 펠리니 영화의 내러티브 전개의 에피소드적인 특징에 대한 것이었다. 그러면서 소란스럽고 스펙터클한 펠리니의 영화 뒤에 남는 비극적인 면모와 초라한 현실에 대한 묘사가 대중문화로서의 영화가 가진 속성과 연결되는 것 같다며 이야기를 마쳤다.

다음으로 양석중 씨는 '펠리니, 방랑하는 카메라'라는 제목의 발제를 진행했다. 펠리니에 대한 몇 가지의 주관적인 키워드를 가지고 풀어낸 발제였다. 그는 우선 '젤소미나'의 얼굴을 개인적인 의미에서 고전영화의 절대 쇼트이며 고전영화의 이름이기도 하다며 줄리에타 마시나를 찰리 채플린과 버스터 키튼과 겹쳐놓았다. 다음 키워드는 서커스. 그는 서커스야말로 기술, 정확성, 그리고 즉흥성의 혼합물이며 화려한 공연 뒤에는 반복된 훈련과 억압, 채찍질, 신체의 구속이 있다는 점을 강조하며, 펠리니는 서커스 화려함 뿐만 아니라 그 기저의 어두움도 거의 대등하게 다룬다는 것을 지적했다. 이어지는 내용은 리얼리즘에 대한 논의였는데, 사실적 표현을 중요시하는 네오리얼리즘 영화들과 펠리니 영화의 환상성을 대조하면서, 이러한 펠리니의 환상성이야말로 영화의 근간이며, 카메라는 온전한 진실을 보여줄 수 없고 지연된 사실의 일부, 프레임의 조각을 드러낼 뿐이라고 말했다. 마지막 키워드는 발제의 제목이기도 한 '방랑하는 카메라, 펠리니'였다. "네오리얼리즘의 맹아는 전쟁 전, 파시즘에 대한 비판에서 시작되어서 대전 이후 패전 상태의 이탈리아에서 만개했다. (......) 펠리니의 영화에서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동시대의 네오리얼리즘 작가들이 전후의 이탈리아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비판적인 시각을 통해 제시했다면, 펠리니의 영화들은 전후 변화의 시기를 살아가는 인물들의 내면에 더 주의를 기울인다. 그의 영화 속 인물들은 집이 있더라도 마치 길 위에서 살아가는 인물들 같다." 발제는 펠리니의 인물들에게 깨달음은 너무 늦게 찾아오며, 이것이 인생 자체가 회한으로 이뤄질 수밖에 없다는 펠리니 특유의 네오리얼리즘의 한 면모라는 이야기로 마무리됐다.

마지막 발제자인 장지혜 씨는 '떠나는 인물들과 그들이 꾸는 꿈'이라는 제목으로 발제를 진행했다. 발제는 로마를 동경하는 시골 소년 펠리니와 그의 영화 속 인물들을 겹쳐놓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그녀는 펠리니 영화에서 꿈과 현실은 서로 다른 층위로 존재하지 않는다고 지적하며, <백인추장>의 여주인공 완다의 "현실은 우리의 꿈 안에 있지만, 때로 그 꿈은 깊은 구렁이기도 하죠"라는 말을 인용하였다. 달콤쌉싸름한 현실 안의 꿈, 혹은 꿈 안의 현실은 이후 <달콤한 인생>에서 보여주는 로마의 모습과도 닮아있다는 것이다. 이어서 <비텔로니>의 마지막에 마을을 떠나는 인물인 모랄도가 남기는 특별한 여운에 대한 언급으로 이야기가 끝이 났다.

이렇게 세 명의 발제가 끝난 후, 나머지 시간에는 이와 관련된 내용 혹은 자신만의 관심사를 가지고 펠리니에 대한 자유로운 난상토론이 펼쳐졌다. 대부분의 관객들이 펠리니를 좋아하다 보니 아무래도 토론이라기보다는 말 그대로 '광대예찬'에 가까웠던 시간이었다. 첫 번째 나온 토픽은 펠리니 영화의 매력과 호불호가 갈리는 지점이 어디에 있는가에 대한 이야기였다. 주로 펠리니 영화의 시각성을 중심으로 논의가 오갔다. "쇼트들의 집합이 만들어내는 시네마틱한 볼거리의 단순한 힘이 펠리니 영화의 힘인 것 같다"라는 의견이 있었고, "<로마>에서 사창가의 장면과 성직자 패션쇼 장면이 연달아 나오면서 대비가 주는 충격이 컸다"는 의견이 나왔다. 이어서 펠리니에게 있어서, '사람들이 어디에서 위안을 얻을까'라는 점에서 성직자과 창녀가 크게 다르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는 지적도 있었다. 한편 어차피 눈을 통해 매혹되는 것이 영화의 속성이라면, 펠리니 영화는 아름다운 이미지와 스펙터클을 통해 관객에게 일종의 시각적 최면을 건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개인적으로 일상적으로 꿈꾸는 환상적인 부분들이 영화 속에서 그대로 나올 때, 그 쾌감이 대단하다는 것이다. 이어서 이미지 하나하나는 화려하고 매혹적이지만, 내러티브가 워낙 파편적이어서 영화를 보다보면 자주 졸게 된다는 의견이 나왔다. 이에 대해 펠리니 영화는 특정 부분의 인상이 덩어리처럼 다가오기 때문에 전체 이야기가 이해되지 않더라도 큰 문제가 없다는 의견도 있었다. 펠리니 영화의 엔딩이 주는 매력과 힘에 대해 언급하는 관객이 많았으며, 또한 펠리니 영화의 엔딩이 죽음의 느낌이 많이 들어서 슬프게 다가온다는 의견도 있었다.

또한 이 자리에서는 영화사 흐름 속에서 본 펠리니의 환상성과 리얼리티에 대해서도 언급되었다. 초기영화에서의 볼거리적인 특성부터 할리우드 고전 영화에서 이야기에의 종속으로 영화가 발전해온 과정, 이에 대비해 극적인 드라마를 구성하면서도 현실성을 담아내려 노력했던 네오리얼리즘, 그리고 이와는 또 다르게 초기영화적인 볼거리들을 에피소드로 나열하고 화려하게 꾸미고 전시하여 관객에게 쾌감을 주는 펠리니의 특성에 대한 지적이 이어졌다. 펠리니와 알프레드 히치콕과의 비슷한 점에 대해 지적한 관객도 있었다. 이미지에 매혹된다는 설정이 영화의 중심이 된다는 점에서 그렇다는 것이다. "그들의 영화는 이미지에 대한 매혹성을 주관적인 시점숏과 주관적인 카메라 워킹, 특히 트래킹 숏을 통해 표현한다. 특히 여성에 대한 이미지에 매혹된 남성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비슷한데, 펠리니는 뭔가 도덕적인 것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다면 히치콕은 늘 죄의식이 따라온다는 점에서 달라진다. 이와 함께 이미지의 매혹을 여성성의 미스터리와 연결시키는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가 떠오르기도 한다."

<길>에서의 젤소미나 캐릭터에 대한 경이로움에 대해서도 이야기가 나왔다. '영화의 시나리오와 감독과 배우의 어떠한 관계를 통해 그러한 놀라운 연기가 나왔을까'에 대한 문제제기였다. 배우가 그 이야기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야만 가능한 연기였다는 것이다. 젤소미나가 잠파노를 정말 사랑했던 것인지, 아니면 폭력 때문에 종속되어 떠나지 못하는 관계였던지에 대한 궁금증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다른 관객은 <길>의 캐릭터들은 이태리 민담에서부터 온 "미녀와 야수"와도 같은 정형화된 캐릭터들을 그대로 가져왔다고 설명했다. 줄리에타 마시나의 얼굴만 떠올려도 울컥해진다는 관객 등 그녀의 연기에 대한 예찬이 끊이질 않았다. 다른 관객은 펠리니가 사람의 마음을 잘 보고 있으며 그러한 내면적인 것들을 잘 시각화해서 보여준다는 점이 인상 깊다고 지적했는데, 후기작으로 갈수록 이야기가 아닌 시각적인 표현성 자체가 더 강해진다는 의견이었다.


한편 개개의 영화들은 좋아하는 작품은 많은데, 그래도 이상하게 펠리니 라는 감독에 대한 어렴풋한 반감이 든다고 말하는 관객도 있었다. 가령 <오케스트라 리허설>의 사회주의 혁명 같은 폭동 후 마에스트로의 전체주의적인 지도 아래서 다시 화합을 한다는 내용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그러고 보면 펠리니의 영화 중에서 정치적 공정성이라는 말에 어울리는 작품이 있었는가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다른 관객은 이태리 사회는 모든 죄를 무솔리니에게 지우고 파시즘의 시대가 종식되었다고 선언했지만, 실제로 아직 파시즘이 완전히 척결된 것이 아니며 펠리니 자체도 이러한 양가적인 측면을 아직 가지고 있음을 지적했다. 한편 <오케스트라 리허설>에서 드러나는 파시즘이 오히려 너무 뻔한 우화가 아닐지 고민해보고 있다는 의견이 있었다. (정리: 박영석)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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