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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Review

전쟁의 부조리 보여준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의 '지옥의 묵시록: 리덕스'


1979년 개봉 이후 <지옥의 묵시록>은 베트남전에 관한 한 가장 유서 깊고 영향력 있는 영화 중 하나가 되었다. 하지만 일부 평자들에게는 사이공에서 캄보디아 정글로 향하는 윌라드(마틴 쉰)의 행적을 좇는 내러티브의 궤적이 의혹을 사기도 했다. 엔딩 장면이 김빠지고 실망스럽다는 지적에서부터 마지막 30분은 조리에 닿지 않는 억지라는 비판도 있었다. 이런 힐난이 눈엣가시였음인지 코폴라는 묵혀둔 푸티지들을 가지고 새로운 장면들을 취택하여 디렉터스컷을 내놓았다. 2001년 칸영화제에서 <지옥의 묵시록 리덕스>(이하 <리덕스>)라는 이름으로 디렉터스컷이 상영됐을 때 안팎의 관심은 비상할 수밖에 없었다. 새로운 판본에 덧붙인 코폴라의 일성은 다음과 같다. “<리덕스>에는 1979년 버전에 삽입하지 못했던 장면들을 넣음으로써 캐릭터의 내면에 설득력을 주었고, 나 자신조차 모호하게 느꼈던 라스트를 정리했다."

코폴라의 작의(作意)에 가장 근접하게 재편집되었다는 <리덕스>는 원본과 몇 가지 차이를 보여준다. 조셉 콘라드의 원작 <어둠의 심장>을 느슨하게 참조한 스토리는 변함이 없지만, 거의 50분의 분량이 첨가된 <리덕스>에서 코폴라는 두 가지 의도를 드러낸다. 하나는 통상의 전쟁영화들이 그러하듯 전쟁의 부조리를 보여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전쟁이라는 특별한 사태가 인간의 영혼을 잠식하는 과정을 묘사하는 것이다. <플래툰>(1986)이나 <풀 메탈 자켓>(1987) 같은 베트남전 영화와 다르게 <지옥의 묵시록>은 그다지 정치적이거나 논쟁적이지 않다. 리하르트 바그너의 ‘니벨룽겐의 반지’에 나오는 ‘발퀴레의 기행’이 장엄하게 깔리면서 네이팜탄을 퍼붓는 미군의 모습은 그 자체만으로 선연한 광기의 구체를 보여주지만, 이 장면을 제외하고 베트남 인민을 학살하는 미국의 흉포함을 집요하게 추궁하진 않는다. 도리어 코폴라는 베트남에서 벌어진 특별한 전쟁을 다루기보다 근원으로부터 추출된 인간의 심리, 이를테면 미스터리한 공포를 다룬다. 윌라드는 영화를 안내하는 가이드 역할을 하지만 영화 안에서 개인사와 관련된 세부묘사는 극히 빈약하다. 이야기가 클라이맥스에 도달할 무렵 우리는 윌라드의 종잡기 힘든 여정의 종착지인 커츠(말론 브란도)라는 존재를 만나는데, <지옥의 묵시록>의 진짜 목표는 이 남자의 심부로 침투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키지 않는 임무를 위해 죽어가는 윌라드의 정체성은 여전히 수수께끼이다.


창작자로서야 본래 의도를 살리고픈 심정의 발로이겠으나, 꼭 이 디렉터스컷이 원본보다 더 훌륭하리라는 보장은 없다. 종종 고난의 흔적이 여실한 상처투성이 판본이 더 웅숭깊은 의미를 갖기도 하기 때문이다. <지옥의 묵시록>의 제작과정에 대한 1991년 다큐멘터리 <어둠의 심장: 영화감독의 묵시록>은 생지옥과 같았던 영화의 제작과정을 잘 보여준다. 촬영 기간 동안 마주친 예기치 않은 문제들은 코폴라를 기진하게 만들었다. 4개월 반으로 예정되어 있던 촬영은 16개월로 늘어졌고, 동남아에 출몰하는 태풍 때문에 촬영은 중단됐으며, 로케이션 장소를 폐허로 만들었다. 주연 배우 마틴 쉰은 건강이 심각하게 악화되어 버티기 힘든 지경이 되었지만 과체중이 되어 나타난 말론 브란도는 허리 선이 카메라에 잡히지 않도록 그림자 속에서 자신을 찍어달라고 생떼(어둠 속에 웅크린 커츠의 시각화는 브란도의 고집 때문이다)를 썼다. <리덕스>가 공개되었을 때 반응은 양극으로 갈렸다. 어느 쪽이든 <리덕스>는 창작자의 의도가 반영된 디렉터스컷과 불비함의 마성이 흐드러진 원본 사이를 견주어 볼 흥미로운 텍스트임은 분명하다. (장병원_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