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읽기] 마스무라 야스조의 <붉은 천사>

<붉은 천사>에서 간과하기 쉬운 부분 중에 하나는 영화가 사진들(정지 화면)로 시작한다는 점이다. 부상당한 군인들 혹은 널 부러진 시체들의 모습을 단편적으로 제공하고, 전쟁의 분위기는 총소리와 대포소리로 청각화 한다. 일종의 역사적 상흔의 재현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붉은 천사>가 전쟁의 부당함을 논리적으로 설명하기 위해 전쟁이라는 사건의 시작과 끝에 대해 파헤치기 보다는, 참전자들의 참혹한 모습, 즉 전쟁의 참상을 보여주는 쪽에 더 무게를 두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다시 말해 전쟁이라는 사회적 문제의 모순적인 거대 구조를 폭로하는 것이 아니라, 좀 더 미시적인 관점에서 어떻게 전쟁이 인간을 억압하는 지를 드러낸다.

또한 영화는 내레이션으로 진행되어 한 인물의 주관적인 회상과 입장을 반영하고 있다(영화가 끝나고 나면 화자가 살았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회상의 영화라고 해도 크게 문제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철저하다 싶은 정도로 카메라와 인물이 일정 거리를 유지하고 있고, 시점 숏을 사용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영화는 객관성을 띄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에 가려진 여주인공의 심리가 더욱 절실히 다가온다. 이처럼 <붉은 천사>는 객관적으로 보이는 이미지들 사이로 사쿠라라는 회상 주체의 내레이션이 개입하면서 자신의 심리상태를 대변한다. 즉 일어나는 사건사고에는 객관성을 부여하지만, 그것에 참여하고 있는 한 인물의 감정적 상태가 부연적으로 설명된다는 것이다. 가령, 후반부에서 동료 간호사가 참호 바깥으로 나갔을 때 '이로써 나는 세 명을 죽였다'라는 말을 한다. 이 대사는 죽었던 다른 두 명의 사람들이 있었음을 환기시키는 동시에 간호사로서 사람들 살리긴 커녕 오히려 죽게 했다는 점에 대해 자책하는 사쿠라의 심정을 알 수 있다. 단적으로 말해, 사람을 살리는 직업으로서의 간호사와 의사, 사람을 죽이는 직업으로서의 군인이 대립하고 충돌하지만 전쟁이라는 사건 속에서는 함께 공존할 수밖에 없는 모순을 드러낸다.

<붉은 천사>는 (이미지로만 드러나는) 외적인 측면에서 육체적인 억압이 발생한다. 부상으로 인해 잘린 다리와 팔 등이 프레임을 가득 메우는 숏들도 있으며, 심지어 절단하는 장면을 보여주기까지 한다. 정상적인 육체가 절단되고 잘려서 이 숏, 저 숏에서 던져진다. <붉은 천사>라는 제목과 다르게 붉은색의 피는 등장하지 않지만 섬뜩한 느낌을 주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비록 전쟁이라는 상황에서 육체가 파편화되는 것도 있지만, 영화가 갖고 있는 프레임이라는 경계에서 인물들의 육체가 잘려나가는 상황도 지속적으로 발생한다. 또한 내적으로 인물들은 심리적인 억압을 당한다. 예컨대 사쿠라와 와카베와의 사랑은 전쟁이라는 상황 속에만 꽃피울 수 있었지만, 결국 그 한계 속에서 죽음으로 좌절된다(이렇게 심리적인 억압은 육체적인 억압과 함께 얼개를 이룬다). 둘이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는 클로즈업 장면에서, 그들을 둘러싼 침대 망이 마치 그들을 가둔다는 느낌을 주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 일 것이다.

<붉은 천사>는 전쟁이 어떻게 인간을 억압하고 좌절시키는지, 다시 말해 생에 대한 인간의 (육체적이고 심리적인) 욕망과 그것을 좌절시키는 전쟁(과 그로 인한 질병)이라는 억압이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보여준다. 따라서 와카베가 죽고 쑥대밭이 되어버린 전쟁터를 보여주는 엔딩 씬은, 전쟁으로 황폐해진 것이 물리적 공간뿐만 아니라 그 너머에 있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잘 보여준다. (최혁규)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