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로우 예의 <수쥬> 


, 그리고 소년과 소녀의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하면 떠오르는 몇 편의 영화들이 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영화는 레오 까락스의 영화들이다. <소년, 소녀를 만나다>(1984) <퐁네프의 연인들>(1991)에서 강은 연인들의 내밀한 사랑의 역사를 관통하는 또 하나의 주인공과도 같다. 로우 예의 두 번째 장편 <수쥬>는 레오 까락스의 연인들처럼 세상으로부터 동떨어진 외로운 소년, 소녀, 그리고 강을 주인공으로 하고 있다. 누구와도 소통하지 못하는 황폐한 삶에서 섬광과도 같은 사랑이 솟아오를 때, 이들은 이 유일무이한 감정에 속절없이 사로잡힌다. <수쥬>는 현재에서 과거로 거슬러 올라갔다 다시 현재로 돌아오는 내러티브 구조를 지니고 있지만, 결코 영화 속에서 얼굴을 드러내지 않으며 비디오를 찍는 내레이터의 존재로 인해 시종일관 과거 시제의 느낌을 자아낸다. 이는 영화 속 사랑 이야기를 신화화하는 동시에, 내레이터의 구술로 이루어지는 일종의 메타 픽션으로 읽혀지기도 한다. 동반자살로 끝을 맺는 두 남녀의 비극은 화자에 의해 의도적으로 다양한 방식의 각색을 거듭한다. 따라서 영화 속에 펼쳐지는 이야기는 어쩌면 화자의 단순한 상상의 소산일수도 있고, 부분적으로 실제와 상상이 뒤섞여있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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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추상화될수록, 영화 속의 모든 이미지들은 점점 누군가의 기억 속의 이미지로 변모해간다. 한 여인에 대한 주인공의 죄의식과 사랑이 만들어내는 가짜 이미지에 관한 이야기는 또 한 편의 영화를 연상시킨다. 닮은꼴의 두 여성을 한 여성으로 착각하고 이에 사로잡히는 한 남자의 이야기를 중심에 놓고 본다면, 일찍이 많은 평자들이 지적했듯이 <수쥬>는 느슨하게 히치콕의 <현기증>을 참조하고 있다. 샌프란시스코의 안개 낀 구불구불한 거리는 <수쥬>의 주인공 마다르와 무단이 오토바이를 타고 달려가는 상하이 뒷골목의 미로와 닮았다. 다만 <현기증>의 스카티가 의도하지 않은 은밀한 범죄의 이용 도구였다면, <수쥬>의 마다르는 무단을 둘러싼 범죄에 좀 더 적극적으로 가담했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어떤 생명체도 살 수 없을 것처럼 보이는 오염된 강 언저리에 살고 있는 사람들로부터 시작하는 이 영화는 디지털 카메라 특유의 사적인 심상을 극대화한다. 번쩍거리는 자본주의의 금광으로부터 밀려난 사람들에 대한 연민과 동질감은 이 영화를 관통하는 가장 중요한 정서다. 인어는 고사하고 작은 물고기 한 마리도 살아남지 못할, 자본의 찌꺼기들이 밀려드는 회색 강에서 그들은 사랑하고, 그리워하고, 절망하고, 이별하며, 종국에는 사라진다. 왕가위의 초기작들을 연상시키는 푸른색과 노란색을 기조로 하는 <수쥬>의 이미지는 몽환적이다. 처음에는 다큐멘터리처럼 시작된 이 영화는 점점 판타지에 가까운 방식으로 주조된다. 그러나 로우 예 감독은 격정적 사랑의 감정적 수위를 높이는 대신 채 피어나지도 못한 사랑이 파괴되어가는 순간을 마치 오래된 기억처럼 덤덤하게 다룬다. 이러한 감독의 시선은 결국 수많은 아름다운 장면들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에 대한 가장 강렬한 기억을 영화의 첫 장면으로 되돌리게 만든다. 좁고 지저분한 강어귀에서 자신의 일생을 보내는 수많은 사람들의 평범하고 무표정한 얼굴들 속에 감독은 은밀한 감정적 역사들을 읽어낸다. 특별한 한 사람만의 이야기가 아닌, 모두에게 다가왔다 사라져가는 격정의 순간들은 거대한 강물처럼 흘러가고 있다. 가장 어두운 곳에서, 가장 비루한 얼굴로 말이다. (최은영_영화평론가)

 
시네토크
1월 28일 수요일 저녁 7시 <수쥬> 상영 후: 김태용 감독과의 대화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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