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5. 7. 13:51ㆍ특별전/Jiff in Seoul: 미클로슈 얀초 특별전
미클로슈 얀초의 세계 [2]
미클로슈 얀초는 역사적으로 분출되었던 ‘혁명/반혁명, 억압/피억압’의 사회구조를 인간의 폭력성과 권력에의 집착, 그리고 이에 대항한 인간성의 해방과 자유라는 테마를 통해 그려냈다. 그가 이런 테마를 구축하기 위해 사용했던 영화적인 장치들은 너무나도 독창적이어서, 그 자체로 ‘얀초의 세계’라고 불렸다. 특히 얀초의 스타일을 특징지으며 영화 전체를 구축해내는 것은, 패닝과 트래킹이 수반된 복잡한 카메라 움직임으로 이뤄진 롱테이크와 광활한 자연풍경을 담아내는 하이앵글의 롱숏이라고 할 수 있다.
얀초의 영화는 분명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의 주된 영향으로부터 시작되어 6, 70년대에 걸쳐 전개되었던 일련의 경향인 ‘정치적 모더니즘’ 계열의 영화들과 맥락을 같이 하는 측면이 있으며, 이런 영화들의 주된 특징인 ‘탈드라마화(dedramatisation)’의 경향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극적 구성을 의도적으로 억제해나간다는 뜻이다. 그러나 얀초의 탈드라마화 전략은 다른 작가들과는 다른 독창성을 띄고 있는데, 이를 보증하는 것이 바로 빠르고 역동적인 카메라 움직임이 만들어내는 운동적, 물리적 스펙터클인 것이다. 롱테이크를 잘 사용하는 작가들의 대부분이 느릿하게 움직이거나 혹은 정지된 카메라를 통해 시간의 지속을 담아내는 반면, 얀초의 롱테이크는 어디까지나 빠른 카메라 움직임을 통해 공간을 훑어 나가는데 주력한다는 특징을 보인다.
얀초의 대부분의 영화에는 개인화된 주인공이 없다. 얀초는 개인의 운명보다는 집단 역학 및 역사의 변혁에 관심이 있다. 이는 아마도 세르게이 에이젠슈테인을 비롯한 소비에트 몽타주 영화에서 받은 영향으로 보인다. 그러나 에이젠슈테인이 몽타주를 통한 감정적 파토스로써 혁명의식을 고취하고 역사의 변혁을 표상하는 결과를 얻으려 했다면, 얀초는 롱테이크를 통해 그 변화 과정 자체의 역학에 더 주목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얀초는 역사를 사실이나 결과로서 인식하지 않는 것 같다. 오히려 그는 역사를 과정과 연속, 그리고 혁명적인 관점에 의해 결정된 사회적 사건의 동시성으로서 인식한다. 고도로 양식화된 얀초 영화의 스타일은, 그의 역사의식과 정확히 조응한다. 즉 카메라 움직임과 롱테이크는 각각 운동과 지속을 머금으며, 이것은 각각 변혁의 역학과 그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 결합을 통해 전쟁 중인 역사의 역동적 움직임은 시각적으로 추상화된다. 그 추상화 끝에 남는 것은 일종의 형태를 이루는 움직임 그 자체, 마치 발레와도 같이 유려한 운동적 스펙터클이다. (박영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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