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손 웰스의 '위대한 엠버슨가'
2011. 8. 2. 15:26ㆍ2011 시네바캉스 서울/Review
“앰버슨 가의 화려함은 1873년부터 시작되었다”는 오슨 웰스의 내레이션으로 시작하는 영화는 먼저 무대인 19세기 말 인디애나폴리스 지역 사람들의 삶의 풍습과 관례, 미덕과 재미를 소소하게 묘사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마치 민속지적 다큐멘터리처럼 느껴지는 도입부는 주인공인 앰버슨 가의 대저택으로 이동하면서 한 가족의 역사를 훑는다. 메이저 앰버슨의 딸인 이사벨은 과거 유진이라는 청년을 사랑했으나 다른 남자와 결혼해 아들 조지를 낳는다. 천방지축으로 자란 조지가 대학을 다니던 즈음, 이사벨은 자동차 사업가이자 상처한 채 딸 루시를 홀로 기르고 있는 옛 연인 유진과 재회한다. 이사벨의 과묵한 남편 윌버가 타계하면서 앰버슨 가의 가세는 점차 기울어가고, 이사벨은 유진과 다시 사랑을 나누고 싶어하지만, 아들 조지는 어머니의 새로운 사랑을 가로막으며 유진을 경계한다.
<위대한 앰버슨가>의 이야기는 자유와 절제, 부흥과 몰락, 사랑과 이별, 기억과 망각, 전통과 문명, 퇴보와 혁신 등의 대립쌍을 풍부히 채집할 수 있는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무도회 시퀀스의 한 대목에서 유진은 말한다. “시간이 지나면 옛 기억은 사라지기 마련입니다. 새로운 시간이 있을 뿐이죠.” 하지만 <위대한 앰버슨가>에서 지나가는 시간에 대한 오슨 웰스의 태도는 수긍이라기보다 연민이었던 것 같다. 제작사인 RKO가 최종편집권을 가져가는 바람에 1시간 가까운 분량을 잘라내고 결말을 해피엔딩으로 바뀌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만일 오슨 웰스의 디렉터스컷으로 완성되었더라면, 전환 시대에 대한 이 영화의 논평은 훨씬 씁쓸하고 데카당트한 것이 되었을지 모른다.
글/한선희(아트하우스 모모 시네마테크 사업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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