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자크 타티는 <플레이타임>을 연출하기 전 <일루셔니스트>라는 작품을 기획 중에 있었다. 자크 타티가 직접 연기한 기존의 윌로씨 캐릭터는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든 무심하게 본인의 리듬으로 독보적인 행동반경을 확보하는 무한 긍정의 이미지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와 달리 <일루셔니스트>에서는 긍정의 이미지를 많이 버려야 했던 까닭에 자크 타티는 이를 영화화하는 대신 자신의 서랍 속에 간직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1982년 자크 타티는 유명을 달리 했고 <일루셔니스트>의 시나리오는 그 후 딸 소피 타티쉐프의 보관 하에 있다가 실뱅 쇼메의 손에 들어오게 됐다.
슬랩스틱 연기를 구사하는 ‘프랑스의 찰리 채플린' 자크 타티를 모델로 한 주인공, 첨단의 3D가 아닌 고전적 2D 애니메이션이라니, 여러 모에서 현대 영화의 리듬과 역행하는 <일루셔니스트>는 타티의 영화적 유산을 가감 없이 계승한다. 말보다 행동으로, 대사보다 이미지로, 감각적인 묘사보다 정서가 충만한 미장센으로 무장한 자크 타티의 영화에는 날로 고도화되는 사회를 풍자하면서도 한줌의 순수를 긍정하는 낭만이 풍만했다. 그래서 살아생전 자크 타티의 영화에는 ‘순수’에 대한 향수의 정서가 충만했다. <일루셔니스트>가 이들 영화와 갈라지는 지점이 바로 여기다.
<일루셔니스트>의 실뱅 쇼메는 굳이 그 순수의 정서를 되살리려 하지 않는다. 아니, 자크 타티는 그런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기 싫어 영화화를 뒤로 미룬 것일지도 모른다. 자크 타티는 그 자신의 영화 속에서 순수라는 ‘마법’을 되살려 관객의 호응을 얻는데 성공했지만 그 마법이 오래갈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은 듯 보인다. (타티가 10년을 기획해 만든 <플레이타임>은 관객의 철저한 외면 속에 흥행에 실패, 이후 거액의 빚더미에 올랐다) <일루셔니스트>에서처럼 한 순간 소녀의 순수한 마음을 혹하게 할 수는 있지만 폭풍처럼 휘몰아치는 첨단화, 디지털의 물결 속에서 마법과 같은 아날로그적 행위는 더 이상 위력을 발하기 힘든 세상이 되었다. CG로 대변되는 규모의 스펙터클에 익숙한 현대의 관객들에게 <일루셔니스트>는 한동안 잊고 있던 고전적 가치의 마법을 되살리지만 그 뒷맛은 달콤, 씁쓸하기만 하다.
글/허남웅(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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