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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아트시네마 소식

예외 없는 규칙이란 없다


연말의 시네마테크는 분주합니다. 신년 초에 열리는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를 준비하느라 바쁜 것입니다. 상영될 작품들을 수급하는 일이 쉽지 않습니다. 고전 작품들의 대다수를 해외의 배급사나 아카이브, 박물관에서 대여해야하기 때문입니다. 좋은 상태의 프린트를 찾는 것도 어렵지만, 상영 허락을 얻는 것도 꽤나 번잡한 일입니다. 영화는 감독이 연출하지만 제작의 권리는 영화사가 갖고 있기에 영화사가 도산하거나 저작권이 분쟁중일 경우 원저작자를 찾는 것이 어렵고, 설사 저작권자를 찾았다 하더라도 고액의 상영료를 청구하는 경우에는 상영을 주저하기도 합니다. 정작 영화를 만든 감독들은 상영과 관련해 아무런 권한이 없습니다. 한국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얼마 전, 시네마테크에 관한 글을 청탁받으면서 지적 재산권의 문제를 거론한 적이 있습니다. 요지는 이렇습니다. 영화는 두 가지 가치를 지니고 있다. 첫째, 경제적 관점에서 영화에는 상품의 가치가 있는데, 그런 점에서 영화는 오락, 산업, 비즈니스의 대상이다. 저작권, 지적 소유권은 이런 상품 가치를 보존하기 위해 적용된다. 둘째, 영화는 또한 20세기의 예술적이고 문화적인 유산이기에 유네스코의 선언처럼 보존되고 전승되어야만 한다. 따라서 영화는 책이나 그림처럼 모든 이들에게 개방되고 쉽게 접근 가능해야만 한다. 하지만, 여기에 역설이 있습니다. 상품을 보호하기 위한 저작권은 강력하게 지켜지지만 공공적 접근을 위한 원칙과 제도는 제대로 진행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도서관에 비치된 책과 달리 영화의 공공적 접근은 까다롭기만 합니다. 도서관에 가는 사람들이 책을 대여할 때마다 저작권료를 지불하지 않는 것처럼 영화도 쉽게 대출하거나 볼 수 있어야만 합니다. 영화가 그러나 공공적으로 소개되기 위해서도 불가피하게 저작권이란 미로를 통과해야만 합니다. 그 절차와 수속을 밟지 못하면 영화는 극장에서 소개될 수 없습니다. 그리하여 치명적인 손실이 발생합니다. 우리는 20세기에 만들어진 영화들 대부분에 쉽게 공공적으로 접근할 수 없습니다. 결국 많은 영화들이 아직까지 대중들에게 선 보이지 못하고 있습니다.

2012년은 서울아트시네마가 개관한 지 10주년을 맞는 해입니다. 서울아트시네마는 극장에서 옛 영화를 제대로 볼 수 있는 권리를 찾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사실 어려운 일도 아닙니다. 영화를 제대로 상영할 수 있으면 됩니다. 단순한 일이지만 지난 시절을 되돌아보면 쉽지 않은 일입니다. 시네마테크에서의 공공적 상영만이라도 저작권의 예외가 지켜질 수 있다면 더 많은 관객들이 영화에 접근할 수 있습니다. 외화가 어렵다면 한국영화라도 그럴 수 있었으면 합니다. 문화에는 규칙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예외도 있습니다. 문화적 다양성을 지키기 위해서는 그런 예외를 존중해야만 합니다.

글/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디렉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