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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전/2012 베니스 인 서울

[시네토크] 프란체스코 로지의 정치영화

미스터리를 풀어나가는 탐사 과정으로서의 정치영화

 

지난 12월 28일 금요일, 프란체스코 로지의 <마테이 사건>(1972) 상영 후 김성욱 프로그램 디렉터의 강연이 이어졌다. 프란체스코 로지의 영화적 스타일과 <마테이 사건>의 구조와 형식에 대한 이 날의 강연 일부를 옮긴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디렉터): <마테이 사건>은 프란체스코 로지의 60년대에서 70년대에 이르는 필모에서 중간쯤에 위치하는 작품이다. 로지는 61년에 <살바토레 줄리아노>, 72년에 <마테이 사건>, 73년에 <럭키 루치아노>를 만들었다. 이 영화들은 모두 특정 인물을 다루는 전기적인 작품들로 분류할 수 있다. <살바토레 줄리아노>는 시칠리 섬에서 살바토레 줄리아노의 시체가 발견되는 것으로 시작하여 그의 죽음에 연루된 미스터리들을 파악해나가는 구조를 갖는다. 그 과정에서 과거와 현재의 장면이 교차되면서 영화가 진행된다. 그러면서 마피아, 국가권력과의 관계 등에 초점이 맞춰진다. <럭키 루치아노>는 어느 마피아에 대한 영화다. <마테이 사건>까지 포함한 이 세 영화들의 공통점은 프란체스코 로지가 이태리 사회 내에서 정치인, 산업인, 범죄자 세 명의 인물들을 영화에서 전기적으로 다루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방식 자체는 일반적 의미에서의 바이오 픽쳐, 즉 인물의 연대기를 살펴보는 스타일과는 차별된다. 크게 두 가지 정도로 구분하자면, 첫째, 이런 인물을 다루는 이유가 그 인물에 대한 관심에서만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그 인물의 삶이 전후 이태리의 국가 형성기 과정에 있어서 어떻게 관련되어 있었는가에서 비롯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정치인, 산업인, 범죄자 각각의 삶과 국가의 형성 과정을 섞어서 그려내는 것이 특징이다. 두 번째로, <마테이 사건> 같은 경우가 그런 케이스인데, 누가 누구를 죽였는가를 정확하게 밝혀내는 데 몰두하기보다 인물들을 둘러싸고 있던 정치적, 경제적 맥락 안에서 이태리 사회 내의 권력 문제가 어떻게 조직화되었는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즉 어떻게 이러한 인물들이 세계와 국가를 지배하게 되었는지 그 메커니즘에 천착하는 것이다. 그러나 연대기적으로 인물을 다루면 자연스레 따라오는 것들, 삶의 디테일을 극화시키면서 발생하는 장르적 요소나 개인의 삶에 대한 부분은 많이 빠져 있다. 그런 점들이 이전의 영화들과의 차별점이고 오히려 이후의 미국 영화들에 더 큰 영향을 주었다. 특히 올리버 스톤은 <JFK>를 만들 때 <살바토레 줄리아노>와 <마테이 사건>에서 영향을 받았다.

 

 

<마테이 사건>을 보면 프란체스코 로지 감독이 영화에 계속 출연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거의 서너 번 정도 등장한다. <마테이 사건>은 다큐도 아니고 극영화라고 말하기도 어려운 애매한 구조를 갖고 있다. 감독이 그 자체로 영화의 한 부분을 장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는 마테이가 어떻게 죽게 되었는지부터 시작한다. 그런 과정에서 탐사의 과정들이 영화에 드러나 있다. 따라서 극영화임에도 불구하고 과정 중의 영화라고 말할 수 있다. 프란체스코 로지는 1922년생이고 루키노 비스콘티의 조감독이기도 했다. 그러다가 50년대 첫 번째 데뷔작을 찍었고, 실질적으론 60년대부터 영화작업을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네오리얼리즘 초기와 큰 관련성은 없다고 본다. 오히려 비스콘티적인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다. 무대극처럼 하나의 픽션을 구성해나가는 스타일이다. 오늘 보신 <마테이 사건>은 보시는 분들에 따라 감상이 갈릴 수 있는 것 같다. 잔뜩 정치적인 영화를 기대했는데 그런 게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오늘 보신 <마테이 사건>이 그의 전모라고 말할 순 없지만 좀 더 극적인 성격이 강한 작품도 만들었다.

마테이는 굉장히 유명한 사람이다. 영화엔 마테이에 대한 설명이 친절하게 제시된다. 2차 대전 당시엔 레지스탕스였는데 반공주의자였고, 해방이후엔 기독교 민주당의 멤버였다. 그는 굉장히 보수적인 사람이었다. 마테이가 이태리 산업계 전면에 등장하게 된 건 경제 부흥에 대한 열정 때문이었다. 마테이는 무솔리니 치하에 있었던 이탈리아 석유회사를 바탕으로 재건 사업을 하게 된다. 굉장히 국가주의적, 애국주의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이태리 북부지방 평원지대에서 석유와 가스를 발굴하면서 이태리 경제 성장에 혁혁한 공로를 세웠다. 당시 미국과 영국이 독점을 갖고 있던 오일 컴퍼니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아프리카와 소비에트와의 관계를 맺으면서 석유를 가져온다. 그런 면에서 국제적으로 경쟁적인 구도 안에서 마테이가 제거의 대상이 되는 상황들이 영화에서 묘사되고 있다. 미국에선 마테이가 비밀 공산당원이라는 설들이 있었고 제거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결국 마테이는 1962년 10월 27일 시칠리아를 출발해서 밀라노로 향해가는 전용 비행기가 폭파하면서 사망하게 된다. 이 영화는 마테이가 어떻게 과거의 파시스트 세력과 결합해나가면서 석유회사를 확장시켜나갔고 죽음에 이르게 되었는지 그 과정들을 그리고 있다.

 

 

<마테이 사건>은 마테이라는 인물을 따라가고 있다. 영화 제목이 영화의 근본적인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원제는 <Il caso Mattei>, 즉 케이스 스터디처럼 한 인물을 그리고 있다. 이 영화는 완성적인 느낌을 주기보다는 과정들을 담아내고 있다. 영화가 파편화된 시체에서 시작하는 것처럼 영화의 형식으로 파편화된 구조를 택하고 있는 것 같다.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과정, 인터뷰 삽입 방식이나 장면을 교차해서 연결하는 구조들이 그렇다. 파편화 되어 있기 때문에 사건의 실체의 종합을 시도할 수 없는 구조에선 파편화된 것을 어떻게 결합해서 완성시킬 것인가의 문제를 갖는다. 그리고 영화 첫 장면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장면들이 있다. 폭파 사고 현장을 취재하는 사람들, 이태리 국영방송 언론인들이 마테이의 죽음을 보도하기 위해 편집실에서 회의하는 장면 등의 10여분을 오프닝 시퀀스라고 볼 수 있다. 달리 말하자면 이 영화는 누가 마테이를 죽였는지부터 시작하지만 실질적으로 영화가 다루는 건 저널리스트, 방송, 언론이 이 인물을 어떻게 다루고 있는가이다. 실제로 마테이가 죽고 나서 프란체스코 로지는 언론한테 불만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

영화엔 프란체스코 로지가 인터뷰하는 장면이 포함되어 있다. 로지가 저널리스트 인물 안에 들어가서 취재하고 있다는 현존성 그 자체가 이태리 저널리스트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영화가 구상되고 있음을 증거한다. 특히나 여기서 중요하게 부각되는 건 방송국에서 마테이가 했던 말들을 의미 없으니 잘라버리자고 말하는 부분이다. 고양이와 개에 관한 마테이의 발언은 극영화 상에서 마테이가 다시 이야기한다. 그런데 그 부분이 영화 속 방송에서 누락되는 것이다. 방송에서 편집되는 부분이 영화에서 극화되어 표현된다. 그 충돌점은 마테이란 인물을 봤을 때도 의미 있는 부분인 것 같다. 마테이는 자기가 언론에 어떻게 비춰지는지에 대해 굉장히 민감해했던 사람이다. 방송국에서 마테이를 둘러싸고 벌어진 추문에 대해 한 저널리스트가 비판적인 이야기를 하니까 마테이는 직접 그 저널리스트를 불러다가 헬기에 태워서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보여준다. 그 장면은 마테이가 저널리스트와 맺고 있던 관계까지 이중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 영화는 비행기 폭파 잔해 더미를 자주 보여주기도 하지만 마테이란 인물 자체가 파편적으로 묘사되어 있기도 하다. 형식면에서 파편성을 연결해나가는 패턴 중 하나는 과거와 현재를 연결해나가거나 뉴스릴 화면을 병치하는 순간들이다. 예를 들어 마테이가 포 평원에서 천연가스를 채굴하기 위해 밀라노 은행장을 설득하는 장면은 샷-리버스 샷처럼 구성되어 있다. 한편으론 마테이가 수행했던 드라마 구조와 실제로 있었던 사건들을 교차편집하는 형태로 구성하고 있다. 이런 형식성이 영화에서 몇 차례 등장한다. 또 하나는 실제로 포 평원에서 천연가스가 채굴되고 이태리 전역으로 석유를 공급해나가는 라인이 완수되는 과정이 신문 표지 화면으로 등장하는 장면이다. 이 영화는 마테이라는 한 인물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인물의 초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인쇄언론의 표지 사진 정도로 등장할법한 이미지들이 영화에 많이 병치되어 있다.

 

 

프란체스코 로지가 직접 영화에 등장해서 슬라이드를 보다가 마테이에 관한 영화를 만들겠다고 이야기하는 장면이 나온다. 마테이와 관련된 슬라이드를 보다가 전화를 걸어서 조사를 의뢰하는 순간이다. 이건 로지가 <마테이 사건>를 만들어갈 때 조사, 탐구에 대한 형식적 특징들을 영화로 드러내는 구조로서 볼 수 있다. 저널리스트적인 조사, 탐구 방식은 당시로서는 꽤나 혁신적이었다. 반면 이런 방식으로 영화를 만드는 건 미국에서는 동시대적으로 있었던 것 같다. 알란 J. 파큘라의 <대통령의 음모>(1976)는 닉슨의 워터게이트 사건을 다룬다. 파큘라는 <대통령의 음모>를 만들 때 전체적인 형식을 탐사적인 구도로 하여 영화를 구성했다. 또한 60년대 말부터 70년대까지 이르는 시기에 미국 영화 내에서 이런 저널리스트적인 시도들의 영화가 등장한다. 여기서 가장 큰 문제는 현실에서 보이지 않는 권력 관계를 가시화시킬 것인가의 문제다. 프레드릭 제임슨이 이런 영화들을 일컬어 정치적인 언더그라운드라고 표현한 바 있다. 권력이나 정치관계는 눈으로 보이지 않는다. 저널리스트적인 방식은 지하로 작동하는 것들을 표면으로 드러내는 방식인데 가장 적극적으로 활용되는 것이 음모다. <마테이 사건>에서 로지가 그런 시도를 했던 것 같다. 이 영화는 언론과 맺고 있던 관계들이 영화로 드러나기도 하지만 마테이에 대한 탐사 형식 구조를 통해서도 당시 저널이나 방송이 드러내지 않았던 관계들을 드러낸다.

높은 구도에서 촬영된 장면들이 있다. 헬기에 저널리스트를 태워서 세계를 돌아다니는 장면이다. 로지가 이 영화를 만든 후에 했던 인터뷰에서 말하길, 마테이나 살바토레 줄리아노가 죽었을 때 그들의 은밀한 관계가 표면에 드러난 적은 없었다. 이러한 영화가 정치적인 영화라고 불리는 건 그런 관계들을 영화를 통해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고 그게 우리 세계의 모습이라는 거다. 영화엔 마테이가 국제적 관계에서 어떤 상황에 놓여 있는지를 설명하는 장면들이 많이 등장하고 있다. 지리적 공간 연결을 통해서 권력관계에 대한 인식론적인 이해에 도달해 가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지리적인 관계들을 묘사해 나가면서 비가시화된 역학 관계를 표현해나가는 것이다. 그 최종 도착지가 시칠리아다.

영화가 진행되다 보면 누가 마테이를 죽였는지 첫 출발 질문들은 옅어져 가는 것 같다. 오히려 이 인물이 어떻게 언론과 관계 맺고 있는지, 어떤 국제적 관계에 놓여 있는지에 대해 설명이 맞춰져 있다. 시칠리아에선 마테이가 영웅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마테이는 시칠리아에서 포퓰리즘적인 경제적 공약들을 내세운 사람으로 묘사된다. 그런 점에서 70년대 한국에서 신화적으로 묘사됐던 인물들이 상기되기도 한다. 영화가 거의 후반부에 들어서게 되면 프란체스코 로지가 두 명의 전문가와 인터뷰하는 장면이 나온다. 한번은 마테이가 어떤 상황에서 죽게 됐는지, 마피아와 연관되어 있는 측면들을 묻는다. 살인자가 누구라고 밝히는 것보다 왜 그것들이 숨겨져 있느냐에 대한 얘기가 환기된다. 다른 한편 뉴욕 학자의 발언은 마테이가 죽을 당시 프랑스와의 관계에 대한 것이다. 마테이가 프랑스 식민 하에 있었던 북아프리카와 협약을 맺으며 석유를 개발했기 때문에 프랑스와 충돌이 있었다고 한다. 영화의 최종 지점에 가면 공항에 프란체스코 로지가 다시 등장한다. 로지는 마테이가 마지막으로 비행기를 타고 떠났던 공항에서 실종된 신문 기자를 찾는 인물로 나온다. 실질적으로 이 영화는 범죄가 어떻게 발생했는지에 대해 설명하는 데 실패하는 영화다. 최종적으로 살인자가 누군지 밝혀내는 영화는 아니기 때문이다. 로지는 감독으로서 마테이의 죽음에 대한 미스터리를 해명했다기보다 미스터리를 풀어나가는 과정 중에 참여하고 있는 것이다.

 

 

이 영화가 탐사적인 플롯들을 가지고 있고 저널리스트로서 프란체스코 로지가 참여하고 있다는 건 이중적 측면을 갖고 있다. 마테이는 언론을 조작하고 대중들을 동원하는 데에 능숙했다. 또 다른 한편으론 로지가 필름 스트립, 인터뷰, 기자회견, TV 방송, 뉴스 등을 콜라주하는 형태로 구조를 마련하고 있다. 이 둘이 같이 연결된다. 그래서 이 영화는 언론의 영향이 많이 표현되어 있다. 이 영화에 나오는 대사는 아니지만 마테이의 유명한 발언이 있다. “나는 이태리 경제 개발을 위해서라면 누구와도 같이 협력할 수 있다. 파시스트 혹은 우익집단이라고 하는 건 택시와 똑같다. 우리는 택시를 탈 뿐이다. 어떤 지점에서는 내릴 것이다. 하지만 돈을 주는 걸 잊어서는 안 된다.” 마테이가 경제부흥 목적에 충실하도록 모든 부분을 동원하는 면들이 영화에서 많이 묘사된다. 그런 과정에서 이 인물이 어떻게 하나의 대중적 신화를 갖게 됐는지를 영화가 다루고 있다. 이 영화는 정치적 틀 안에서 보면 초기 작업인 것 같다. 지금에 와서 보면 완성적인 것 같진 않고 과정적인 측면에서 인물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프란체스코 로지는 인터뷰에서도 이런 얘기를 했다. “나는 정치인이 아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정치적 소명들을 갖고 있다. 이태리에서의 정치적 문제 안에 우리가 참여하도록 관련되어 있고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 가운데 최선의 방식은 내가 작품을 만드는 걸 통해 정치적 관점들을 부각시키는 것이다.” <마테이 사건>은 영화를 만들어 가는 과정 안에서 정치적 쟁점을 부각시킨다는 점에서 정치적인 것 같다. 동시에 이 인물을 다뤄가는 과정 안에서 영화를 구성해 나가는 것이 하나의 정치적 쟁점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진실의 탐구라는 최종적 도달을 해 나갈 수는 없다는 것이 <마테이 사건>을 만들어갈 때 로지의 생각이었다. 자기 스스로도 최종적인 해답을 알지는 못하지만, 진실이라고 하는 것이 공식적인 주장과 어떻게 충돌해 나가는지 의혹을 심어나가고 사람들로 하여금 논란을 만들어 나가는 그런 류의 선구적인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관객들 안에서 역사적 기억이 자라나도록 만든다는 점에서 활력 있는 역사적인 도큐멘테이션 같은 것이다.

 

정리: 송은경(관객에디터) | 사진: 김아라(자원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