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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고전/탄생 100주년 오슨 웰스 회고전

[시네토크] “오슨 웰스의 모순” - 김영진, 김성욱의 <위대한 앰버슨가> 시네토크

“오슨 웰스의 모순”

- 김영진, 김성욱 시네토크

“탄생 100주년 오슨 웰스 회고전”이 한창 진행 중이던 5월 17일(일), 김영진 평론가와 김성욱 프로그램 디렉터가 <위대한 앰버슨가>를 함께 본 뒤 오슨 웰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오슨 웰스의 다양한 일화들과 함께 짚어 본 그의 모순적이고 흥미로운 작품 세계를 살펴보자.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디렉터)│<위대한 앰버슨가>를 보고 김영진 평론가와 이야기를 나눠보도록 하겠다. 오슨 웰스는 평가에 비해 상대적으로 이야기가 많이 이루어지지 않은 감독 중 한 명이다. 그만큼 이야기하기 어려운 감독이기도 하다. 그는 일단 ‘천재’로 평가받는 동시에 미국 영화 내에서 ‘위대한 매버릭’의 전통을 처음으로 만든 감독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작품은 오슨 웰스가 <시민 케인> 이후 만든 두 번째 작품이다. 물론 <시민 케인>도 우여곡절이 많은 작품이지만 <위대한 앰버슨가>는 오슨 웰스로 하여금 더 큰 비운의 운명을 겪게 만들었다.

김영진(영화평론가)│오슨 웰스는 영화를 보기 전부터 전설로 먼저 접하는 감독이다. 그런데 사실 나도 오슨 웰스의 작품과 처음부터 마음으로 공명하지 못했다. 의무적으로 영화를 보던 80년대였는데, 서강대에서 <시민 케인>을 필름으로는 처음 상영한다고 하더라. 그렇게 말로만 듣던 <시민 케인>을 보러 갔는데, 졸았다. ‘전설의 걸작’을 보면서 졸다니 내가 문제가 있는 줄 알았다. 그 다음에는 <위대한 앰버슨가>의 비디오테이프를 구했다. 그런데 또 보다가 졸았다(웃음). 이후 상투적으로 <시민 케인>과 ‘딥 포커스’ 등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나중에야 DVD로 그의 작품들을 다시 보면서 진정한 매력을 느꼈고, 당시의 나에 대해 자책을 했다.

<위대한 앰버슨가>는 오슨 웰스에 대한 비하인드 스토리가 많은 영화이기도 하다. 전체적으로 50분 가량 잘렸고, 엔딩은 제작사에서 자기 마음대로 해피엔딩으로 바꿨다. 당시만 해도 오슨 웰스가 순진한 구석이 있었는지 제작사인 RKO가 자신을 속일 것이라 생각을 못 했었다. 하지만 RKO는 오슨 웰스가 미국에 없는 사이 편집을 새로 하고 재촬영까지 했다. 그래서 오슨 웰스는 오랫동안 이 영화를 보는 것도 싫어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 영화에는 오슨 웰스적인 것이 있다. <악의 손길>도 그렇고 <심야의 종소리>도 그런데, 굉장히 모던한 형식 속에 쓰러져가는 것에 대한 노스탤지어를 녹여 놓았다. 그리고 그 소멸을 안타까워하기보다는 담담히 받아들이는 어떤 영웅적 태도가 있다. 영화의 주인공인 조지는 이를테면 ‘내츄럴 본 데블’ 같은 인물이다. 좋아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그가 겪는 상실감과 아픔은 거의 완벽하게 관객에게 전해진다. 당시 갓 등장한 발명품인 자동차에 보내는 적대감과 마차를 선호하는 그의 태도만 보아도 그렇다. 변하고 있는 현실에 가진 양가적 감정이 너무나 공감이 간다. 이렇게 스산하면서 부드러운 영화가 있을까.

그런 맥락에서 오슨 웰스는 혁신가인 동시에 몰락하는 것에 대해 향수를 가진 모순적 인물이었다. 그리고 그런 모습이 영화적 어법을 통해 드러날 때 우리에게 감동을 준다. 희한한 것은 이십 대의 젊은 감독이 사십 대의 캐릭터(유진)를 통해 자기 할 말을 하는 것이다. 그런 모순, 그리고 그 차가운 모순 속에 숨어 있는 부드러움 때문에 <위대한 앰버슨가>를 <시민 케인> 보다 더 좋아한다. 개인적으로는 ‘촉촉한 영화’라고 생각한다.

김성욱│나도 오슨 웰스의 영화 중 먼저 재미있게 본 건 <상하이에서 온 여인>, <악의 손길>, <이방인> 같은 ‘오락적 경향’의 영화들이었다. 다루는 소재는 무겁지만 그걸 다루는 방식은 그 자체로 재밌다.

반면 <위대한 앰버슨가>는 상대적으로 그 재미를 늦게 알게 된 영화다. 특히 이 영화는 극장에서 일하는 입장에서 이상할 정도로 감정 이입이 잘 되는 영화다. 몰락하는 이야기라서 그런가(웃음). 고다르의 <영화사>에도 <위대한 앰버슨가>의 한 장면이 나오는데 역시 몰락의 맥락에서 인용을 하였다.

김영진 평론가도 방금 이야기했지만 20대의 조지는 옛 기술에 대한 애정을 갖고 있고, 40대의 유진이 오히려 새로운 테크놀로지를 다룬다. 그리고 새로운 기술의 등장과 함께 앰버슨가는 몰락한다. 또한 <시민 케인>은 거대 언론을 다루고 <위대한 앰버슨가>는 자동차를 다루는데, 둘 다 ‘소통’의 매개체를 다룬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리고 그 소통의 기술이 발전하며 주인공들은 몰락의 과정을 경험한다. 그런 면에서 두 영화는 동전의 양면과 같다.

김영진│오슨 웰스는 굉장한 재능의 소유자였는데 이를 펼치지 못했으니 보통 사람 같으면 화병이 걸릴 수도 있었을 것이다. 써놓은 시나리오만 백 편이 넘는데 그걸 다 못 찍었으니 얼마나 답답했을까. 그런데 그는 성격상 스튜디오의 통제 아래서 순응적으로 작업할 수 있는 사람도 아니었다. 그러니 성공의 정점에서 자신의 몰락을 이미 예견했던 건 아니었을까. 그리고 그런 태도가 영화 안에 알게 모르게 녹아든 것 같다.

실제로도 오슨 웰스는 <위대한 앰버슨가>에서부터 본격적으로 힘든 길을 걷기 시작했다. 이 영화는 당시 메이저 제작사가 아닌 RKO에서 큰 기대를 걸고 백만 달러를 투자해 만들어진 작품이었다. <시민 케인>의 여진이 가시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이런 과감한 투자가 가능했었다. 초반의 화려한 파티 장면 같은 것만 봐도 돈이 많이 들어갔다는 걸 알 수 있다. 하지만 <위대한 앰버슨가>는 완전히 망했고, 오슨 웰스는 결국 할리우드가 기피하는 감독이 됐다.

그런데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는 더 이상한 느낌을 준다. 50분이 잘려나갔다고는 하지만 신기하게도 오슨 웰스의 영화적 느낌은 충실히 살아 있다. 인물들이 들어오고 나가는 타이밍이나, 서로 다른 인물들의 시선이 편집을 통해 조응하는 것 등. 이런 ‘화음’이 감탄을 불러일으킨다. 오슨 웰스는 영화 감독이란 사람이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알게 해주는 감독이다.



김성욱│오슨 웰스는 감독이 되기 위한 수련을 따로 거치지 않았다는 점에서 확실히 천재인 것 같다. 그런데 다르게 생각하면 처음부터 영화를 만든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오히려 그런 연출이 가능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는 연극과 라디오에서 경력을 시작한 사람이다. 그래서 연극을 통해 무대 연출을 배웠고, 라디오를 통해 소리만으로 상황을 연출하는 걸 배웠다. 그 두 가지가 만나 오슨 웰스의 영화를 풍요롭게 만들어 준다. 오슨 웰스는 라디오에서 출발한 사람이라 화면에서 소리가 나오지 않는 걸 사로고 여겼다고 하는 표현을 본 적이 있다. 특히 오슨 웰스의 롱테이크는 다른 감독들과 달리 항상 변화하는 소리와 맞물려 있다.

또한 그의 영화를 보면 항상 ‘목소리’의 중요성을 느끼게 된다. <위대한 앰버슨가>에는 오슨 웰스가 출연하지 않는다(원래는 조지를 연기하려 했었다고 한다). 대신 나레이션을 하는데 그것만으로도 오슨 웰스의 존재감이 도드라진다. 그는 영화 안에 자신의 강력한 존재감을 불어넣은 감독이었다.

김영진│이 영화는 크레딧 시퀀스를 나레이션으로 처리한 첫 번째 할리우드 영화다. 당시 관객에게는 신선했겠지만 라디오 드라마를 연출했던 오슨 웰스에게는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었을까. 또한 그는 연극계에서도 파격적인 연출가였다. 당시 셰익스피어 연극을 무대에 올리면서 흑인을 주연으로 기용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었다.

당시 주위 사람들이 이야기를 들어보면 오슨 웰스는 나이 많은 배우들도 꼼짝 못하게 만들 정도로 카리스마가 엄청났다고 한다. 고독한 전제군주였던 셈인데 내적 모순이 있었을 것이다. 이성적으로는, 그리고 작품에서는 ‘휴머니즘’을 추구하지만 현장에서 영화를 만드는 자신의 모습과는 달랐기 때문이다. <제 3의 사나이>(캐롤 리드)에서 오슨 웰스는 “형제애를 가진 스위스에선 500년간 민주주의와 평화를 가졌지. 그런데 그들은 뭘 만들었나? 고작해야 뻐꾸기 시계라네” 같은 궤변을 늘어놓는 캐릭터를 연기했는데, 그 대사는 자신이 직접 쓴 것이다. 이는 자신의 모순을 정면으로 마주했기에 나올 수 있는 태도다. 또한 <악의 손길>을 보면 그렇게 비대한 모습으로, 그렇게 비참히 죽어가는 모습을 스스로 연기한다. 이 정도의 솔직함은 아무나 갖기 힘들 것이다. 그리고 이런 모순을 대하는 태도의 전조를 <위대한 앰버슨가>에서 찾아볼 수 있다.

김성욱│장 콕토가 오슨 웰스를 “아이의 모습을 한 거인”이라 묘사했는데 거꾸로 “거인의 모습을 한 아이”라고 해도 될 것 같다. <시민 케인>에서도 이십 대의 오슨 웰스는 팔순의 노인을 연기했다. 연극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이런 설정이 가능하기도 했겠지만, 결과적으로 그에게는 모순적인 것들을 양립시키는 특성이 있었다. <위대한 앰버슨가>에서 조지와 유진이 서로 동면의 양면처럼 존재한 것처럼 그의 작품에서 아이와 노년은 분리되지 않는 것이었다. 트뤼포도 <시민 케인>과 <위대한 앰버슨가>를 두고 ‘유년기에 관한 영화’라고 말했었다.

김영진│오슨 웰스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보면 <시민 케인> 개봉 당시 케인의 모델이 된 언론사에서 개봉을 막으려 했다고 한다. 실제로 개봉관을 많이 잡지 못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이처럼 그는 영화사의 간부들뿐 아니라 사회의 권력까지 불편하게 만드는 감독이었다. 보통 사람의 기질이 아니었던 것이다. 존 포드 같은 감독도 최종 편집권을 갖지 못한 스트레스를 계속 안고 활동했는데 오슨 웰스는 데뷔작에서부터 정면으로 대결한 뒤 패배를 맞았다. 흥미로운 인물인 건 분명하다.


김성욱│트뤼포는 오슨 웰스를 “천성적으로 미국적일 수 없는 감독”이자 “미국적인 유럽 감독” 이라고 묘사했었다. 결과적으로도 세계를 돌아다니며 영화를 찍었으니 미국 영화의 틀 안에 갇힐 수 없는 감독이었던 셈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진정한 ‘매버릭’이었다.


관객 1│영화가 마지막까지 어둡게 흘러가다가 갑자기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원래는 어떤 엔딩이었을까.

김영진│IMDB의 ‘트리비아’에 의하면 원래 엔딩은 앰버슨가의 저택이 허물어지는 것이었다고 한다. 다 믿을 수는 없겠지만 그걸 봤다는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끝내준다’고 한다. 참고로 지금 엔딩은 로버트 와이즈가 만든 것이다. 오슨 웰스와 로버트 와이즈 감독이 이 일을 계기로 계속 사이가 좋지 않았던 것도 유명한 일화다.

관객 2│오슨 웰스의 영화는 흑백의 대조가 특히 도드라진다. 어떻게 보면 필름 누아르, 또는 공포 영화 같기도 하다.

김영진│일단 그런 스타일이 오슨 웰스의 ‘비극적 숙명’이란 주제와 잘 어울린다. 그리고 독일 표현주의가 미국 영화에 유입된 경로는 매우 다양하다. 또한 오슨 웰스는 이미 연극에서 연출을 배웠기 때문에 조명을 쓰는 방식 등에 있어 자신만의 스타일을 갖고 있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오슨 웰스의 스타일에 대해서는 또 유명한 일화가 있다. 오슨 웰스가 <시민 케인>의 연출을 시작하기 전에 <역마차>를 50번 정도 반복해서 봤다고 한다. 영화의 기본기를 그렇게 익힌 것이다. 그는 자신의 유일한 ‘마스터’로 존 포드를 꼽기도 했다.

그리고 <시민 케인>의 촬영 감독인 그렉 톨랜드는 이미 30년대부터 존 포드와 ‘딥 포커스’를 시도해 왔었다. 게다가 그는 당시 50명의 스태프와 함께 일하는 할리우드 최고의 촬영감독이었다. 즉 오슨 웰스의 머리 속에 있던 컨셉을 그렉 톨랜드가 실제로 구현해 준 것인데, 그런 맥락에서 <시민 케인>은 할리우드의 기술력과 오슨 웰스의 구상이 잘 만난 기적적인 사례라 할수 있다. 그런데 정말 중요한 건 <위대한 앰버슨가>는 그렉 톨랜드와 작업한 것이 아닌데도 오슨 웰스의 세계가 그대로 살아있다는 것이다(물론 세부적인 느낌이 조금 다르기는 하다). 심지어 유럽에서 저예산 영화를 찍을 때도 그의 컨셉은 고르게 유지됐다는 것, 이것을 기억해야 한다.

김성욱│오슨 웰스는 닫힌 공간을 선호했다. 그리고 인물의 주관적인 심리와 기억의 문제를 즐겨 다루었다는 것도 특유의 스타일에 큰 영향을 미친 것 같다. <시민 케인>의 저택도, <위대한 앰버슨가>의 저택도 모두 닫힌 공간으로 그려진다. 그리고 그 안에서 몰락하는 사람들의 감정을 그리기에는 흑백의 콘트라스트가 강한 스타일이 적합하다. 이후 <이방인>, <상하이에서 온 여인>, <심판> 등에서는 건축적 양식까지 더해져 오슨 웰스의 일관적인 스타일이 더욱 잘 드러난다.


정리│김보년 프로그램팀

사진│장미화 자원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