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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아트시네마 소식

'시네마테크 사태'를 생각한다!

[포럼] 영진위 지원중단 50여 일째, 무엇을 고민해야 하나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가 시네마테크 운영자를 공모하는 파행적인 행각을 벌인 지 대략 넉 달이 흐른 지금도 여전히 이 사태는 진행 중이다. 이에 따라 지난 22일 저녁 시네마테크 전용관 서울아트시네마에서는 이 사태가 무엇이 문제인지에 대해 되돌아보고 점검해볼 수 있는 포럼을 열었다. 영화평론가인 김영진 교수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포럼에는 영화인 대표자연대회의 최현용 사무국장과 영화평론가인 네오이마주 백건영 편집장, 그리고 시네마테크 후원금 모집 관객 대표로 필름에 관한 짧은 사랑(이하 필사)의 강민영 편집장이 발제를 맡았고, 서울아트시네마 김성욱 프로그래머와 서울에 시네마테크 전용관을 건립하기 위한 추진위원회(이하 시네마테크 건립추진위) 간사인 정윤철 영화감독이 토론자로 참여했다. "시네마테크 사태를 생각한다"라는 주제로 열린 이 포럼은 각자 다른 입장에서 바라 본 '시네마테크 사태'에 대한 의견을 나눌 수 있는 기회였다. 본격적인 포럼에 앞서서는 서울아트시네마의 새로운 트레일러와 관객들이 시네마테크에 대한 애정을 담아 제작한 2편의 짧은 UCC 동영상도 상영되었다.

짧은 영상 상영 후 시작된 포럼은 '영진위의 공공지원시스템, 무엇이 문제인가? - 최근 공모 파행 사태와 관련하여'라는 제하의 최현용 사무국장의 발제로 포문을 열었다. 정책적, 행정적인 문제들을 주로 짚은 최 국장은 첫 번째 쟁점으로 공모의 대상이 된 사업의 성격에 대해 이야기하며, 결론적으로 전체적인 맥락에서는 지원 사업임에도, 계약 방식 상에서 위탁을 택하고 있었다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두 번째 쟁점으로는 ‘계약의 형태’를 지적하며, "적어도 영진위가 기존의 방식과 다른 일반 경쟁으로 전환하고자 했다면, 전환의 논리적, 정책적 근거를 명확히 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결론적으로 ‘협력적 영화거버넌스’라고 지칭할 수 있는 공공부문과 민간부문의 협력적 관계가, ‘관료적 영화행정’으로 지칭할 수 있는 영진위의 우월적이고 독점적인 관계로 전환됐다는 것이다. 또한 그는 “문화적 측면뿐만 아니라 산업적인 측면에서 바라봤을 때조차도 영진위의 행태는 파행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며, 정책, 행정적인 문제점과 더불어 산업적 문제점까지 꼬집었다.

뒤이어 네오이마주 백건영 편집장은 '시네마테크 사태로 본 시네필의 역할에 관한 소고'에 대해 밝혔다. 그는 '시네필의 초상'이라고 일컬어지는 프랑수와 트뤼포의 예를 들면서 한국의 시네필의 역할과 변화의 양상을 언급했다. 이어 "공모제 사태 이전의 관객이 시네필이란 무엇인가라는 것에만 몰두했다면, 이후에는 시네필이란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 혹은 시네필은 무엇으로 어떻게 세상과 맞설 수 있는가를 고민했고. 이를 행동으로 옮겼다는 데서 차이가 발견된다"고 지적했다. 또한 “시네필은 자신만의 영화박물관을 짓는 것이 아닌, 영화로 발언하고 그 발언이 영화와 영화를 둘러싼 환경까지를 돌아보는 과정 속에서 오늘에 이를 수 있도록 부단히 움직이는 자들이고 집단'이라고 언급했다. 그리고 이런 시네필의 역할들이 시네마테크를 후원하기 위한 관객운동을 형성했다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그는 "시네마테크는 세월을 벗 삼고 시간을 친구삼아 영화의 역사를 만들어 왔고, 그 기운을 간직한 공간"이라며 “서울아트시네마가 53일 동안 영진위로부터 공적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지만, 이렇게 스스로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시네필들의 이러한 적극적 참여와 역할이었고, 이런 역할이 앞으로도 요구될 것임”을 재차 강조했다.

이어 '무엇이 우리를 움직이게 만들었나? - 관객의 입장에서 본 지난 1년의 시네마테크 사태'란 제하로 발제를 한 필사 강민영 편집장은 유사한 맥락에서 젊은 시네필의 필요성에 대해서 언급했다. 그녀는 "시네마테크는 멀티플렉스의 홍수에서 벗어난 지점에서 영화를 상영하고 현재와 과거, 그리고 미래를 이어갈 수 있는 중간 지점에 영화를 놓아 끊임없이 담론을 제기하고 함께 보기를 권하는 장소로서 그 중요성이 있다”고 말했다. 또한 강 편집장은 "환경에 의한 변화, 소위 말하는 디지털 시대로부터 도착한 외부영향이 짙어지면서 극장을 찾는 시네필들은 점차적으로 휴대기기와 컴퓨터를 이용해 영화를 습득하고 공부하게 되었고, 이와 같은 방법으로 영화를 선택하는 현상은 주로 젊은 관객들에게 쉽게 일어난다"며 ‘젊은 시네필의 부재’에 대해 지적한 후 "영화에 대한 최소한의 미덕을 지키고 이어나가고자 하는 젊은 관객들이 시네마테크에는 절실히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발제가 끝난 뒤에는 토론이 이어졌다. 먼저 입을 연 김성욱 프로그래머는 “지난해 초부터 시작된 시네마테크 사태 공모 논란이 일 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해결되지 않은 채 현재 진행형으로 이야기한다는 거 자체가 부당하다”며 “이 사태와 관련된 모든 사람들의 피로감이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해 참석자들에게 웃음을 줬다. 또한 그는 “보이지 않는 내적인 문제가 있었는데, 이것은 관객들의 모금운동이나 감독들의 노고로 인해 헤쳐 나갈 수 있었다”며 감사를 표한 후 영진위가 대체 이렇게까지 계속적으로 이 문제를 무리하게 강행하는 근원적인 힘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궁금증을 던졌다. 이에 대해 최현용 사무국장은 “크게 보면 정권의 운영방식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라며 이번 정권이 영화를 바라보는 두 개의 준거 틀, 즉 정권 지지도구로서의 영화와 산업으로서의 영화에 관해 밝혔다. 최 국장에 따르면 영진위가 표면적으로는 후자(산업으로서의 영화)를 내세우고 있지만, 아마도 전자(정권을 위한 영화)에 더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것. 더불어 그는 “영진위의 인적 네트워크가 매우 열악하다”며 “조직 운영방식의 문제도 이러한 사태를 불러운 원인 중 하나”라고 지적했다.

시네마테크 건립추진위 간사인 정윤철 감독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시네마테크를 후원하고 지지하는 영화감독들이 시네마테크의 필요성을 더욱더 실감하게 됐다”며 “스크린쿼터 이후 영화인들이 합심해서 뭉친 전무후무한 일로 기록될 것”이라고 말했다. 성명서만 발표하는 것에서 그친 게 아니라 여러 방면으로 각자 혹은 함께 노력 중이라는 것 자체가 시네마테크의 필요성을 반증하는 놀라운 일이라는 것. 덧붙여 정 감독은 “여러 가지 선택 중에서 원칙을 지키며 능동적으로 행동해서 지금까지 진척되어 왔으니 이제는 장기적인 플랜을 짜야할 때”라고 주장했다.



이외에도 이날 토론에선 시네필의 정의, 역할, 행동에 대한 다양한 의견이 제기됐다. 백건영 편집장은 “시네마테크를 찾는 시네필과 그렇지 않은 시네필을 이분법적으로 구분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라며 “이런 벽을 허물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를 고민해야 할 때”라고 말했고, 최현용 사무국장은 “영화 자체에 대한 문제에서 더 나아가 영화 정책까지 고민하는 시네필의 측면에 대해서도 한번 생각해봐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최혁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