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로뉴 숲의 여인들>의 흥행 실패는 제작자가 파산하고 브레송 자신도 칠 년 동안 메가폰을 잡지 못했을 정도로 어마어마했다. 이후 누벨바그리언에 의해 재발견된 이 작품은 사실 브레송 특유의 금욕적인 스타일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하지만 ‘감옥’이라는 모티브와 영혼과 구원에 관한 그의 관심을 엿볼 수 있다. 또한 선악 대립 구도라는 장르적 요소를 차용했지만 기존 멜로드라마와 차별되는 여러 지점들로 당대에는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오늘날까지 호소력을 갖는다.



남편의 사랑을 시험해보는 헬렌(마리아 카사레스)은 기다렸다는 듯 서로를 자유롭게 놓아주자는 장(폴 베르나드)의 말에  분노와 모멸감을 느낀다. 한을 품은 헬렌은 은둔하며 조용히 살아가려는 전직 창녀 아녜스(엘리나 라부르데)에게 접근해 장과 결혼시킬 음모를 꾸민다. 아녜스는 도덕적으로 붕괴된 현실에 놓인 인물이지만 검은 옷을 입는 헬렌과 대비되게 순백의 복장을 한 순수와 선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그녀는 헬렌의 음모를 알아차리고 생활비를 대주는 그녀의 그늘에서 벗어나려 한다. 하지만 잊고 싶었던 과거의 늪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헬렌의 덫에서도 벗어나지 못한 채 폭로가 예견된 결혼을 택하고 만다. 그러나 구렁텅이에 빠진 아녜스의 손을 장이 붙든다.



<볼로뉴 숲의 여인들>에서 주요 등장인물은 넷이고 촬영 장소도 한 두 번 등장한 장소를 제외하면 헬렌의 집과 헬렌이 사준 아녜스의 집이 전부일 정도로 극히 제한되어있다. 이는 헬렌의 집이 ‘간수실’이고 아녜스의 집이 ‘감방’으로 연상될 만큼 과거사와 더불어 아녜스의 행동반경을 제약하는 헬렌의 지배력을 시사한다. 실내 중심의 촬영은 사실 2차 세계 대전 막바지에 찍기 시작해 전력 부족 때문에 종전 후에야 마무리된 열악한 환경에 기인한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오히려 한정된 세팅이 헬렌의 빈틈없는 계략과 맞물려 장과 아녜스의 감정을 심화시키고 영화를 절정으로 치닫게 한다.



폭로로 인한 장의 충격을 자동차 시동이 제대로 걸리지 않아 거친 소리만 요란하게 나는 것으로 형상화한 장면은 소리의 예민한 사용으로 평자들에게 두고두고 회자된다. 실내에서는 경적 소리와 사람들 걷는 소리를, 볼로뉴 숲에서는 물소리와 새 소리를 포착해 공간의 인상을 전달한 것도 브레송답다. 하지만 음악의 과용은 그의 후기작과 차이가 있고 조각난 신체를 제시하기보다 팬과 트래킹 숏을 사용한 것이나 마리아 카사레스가 섬세하고 계산된 연기를 펼친 것은 브레송스럽지 않다. 오히려 그의 인장은 인물 사이의 관계와 그들을 향한 시선에서 더 잘 드러난다. 복수심 때문에 타인을 기만하는 헬렌은 아녜스의 순수를 시험한다. 한편 성녀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 암시하듯, 비천한 존재이지만 그로부터 벗어나려 하고 연인 앞에서 솔직한  아녜스는 진실한 내면을 다룬 감독의 영화관과 맞닿아있다. 이 작품은 파리의 아름다움을 묘사하거나 시대성을 가미하지 않은 까닭에 당시 상황과 동떨어졌다는 인상을 주었을 것이다. 하지만 강렬한 캐릭터와 빈틈없는 구성이 브레송의 세계관과 당대의 연출 관습에 힘입어 강한 인상을 남기는 것은 의심할 나위 없다.(최용혁: 시네마테크 관객에디터)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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