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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고전/프랑수아 트뤼포 전작 회고전

[리뷰] 프랑수아 트뤼포의 '화씨 451'

트뤼포가 만든 SF, 그리고 사회비판

 

 

<화씨 451>은 Sci-Fi 문학의 거장 레이 브래드버리의 동명소설을 영화화했다. 제목이기도 한 '화씨 451'은 책이 불타는 온도를 의미한다. 그래서 영화의 시작과 함께 등장하는 크레딧은 여느 작품처럼 관객이 읽을 수 있도록 자막으로 제공되는 것이 아니라 성우의 내레이션으로 소개된다. <화씨 451>은 사람들이 비판정신을 갖지 못하도록 책이 금지된 미래 사회를 배경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몬태그(오스카 워너)는 사람들이 숨겨놓은 책을 찾아 태우는 방화수 fireman 다. 열심히 임무를 수행하던 중 세상에 대한 온갖 호기심으로 가득한 이웃 여인 클라리세(줄리 크리스티)를 만나면서 꼭두각시 같은 삶에 의문을 갖게 된다. 자신의 삶이 텅 비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녀의 조언에 따라 책을 읽기 시작하는 것. 그때부터 몬태그의 생각과 행동은 극적인 변화를 맞지만 동료 방화수들에게 쫓기는 신세가 된다.

트뤼포는 <화씨451>을 유니버설 제작으로 영국의 파인우드 스튜디오에서 만들었지만 이 영화는 스튜디오 시스템 전통 바깥에 있는 작품이라 할 만하다. 크리스 마르케의 <방파제>(1961), 장 뤽 고다르의 <알파빌>(1965), 로제 바딤의 <바바렐라>(1967), 알랭 레네의 <사랑해, 사랑해>(1968)와 같은 Sci-Fi처럼 미래사회에 대한 현란한 볼거리의 설정은 최소화하고 의미 있는 메시지를 보다 부각하는 이야기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이 때문에 원작자 브래드버리는 "썩 반갑지만은 않은 작품이었어요. 응당 따라야 할 원작의 줄거리도 지키지 않았죠. 몇몇 중요한 캐릭터는 완전히 사라졌어요. 하지만 엔딩은 정말 멋있었어요"라며 동명영화에 대한 불만을 우회적으로 드러냈다. 전반적으로 <화씨 451>에 대해서 트뤼포의 걸작은 아닐지언정 가장 아름다운 엔딩을 가진 작품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실제로 책 한 권을 통째로 외워 후세에 전달하는 일명 '북 피블'이 모여 사는 공동체를 비추는 영화의 결말은 원작이 품고 있는 세계관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화씨 451>은 비록 책이 금지된 사회를 배경으로 하지만 이는 획일화된 사회 전체에 대한 비판에 더 가깝다(동성애의 억압을 암시하는 장면도 등장한다). 이전까지 흑백 필름으로만 작업했던 트뤼포가 첫 번째 컬러영화로 <화씨 451>을 선택한 건 획일화를 반대하고 다양성의 가치를 보호하려는 의도가 깔려있다(촬영은 <쳐다보지 마라>, <지구로 떨어진 사나이>를 연출한 니콜라스 뢰그가 맡았다). 하여 미장센은 물질과 자연의 철저한 대비 속에서 이뤄진다. 방화수의 유니폼, 비슷한 모양의 집 등과 같은 물질문명의 반대편에서 다양한 종류의 책으로 대표되는 정신문명의 회복을 역설하는 것이다.

가상현실이 실제현실을 압도하는 사회적 분위기, 즉각적인 반응에 익숙해진 세태 속에서 진지한 성찰이 사라진 시대, 그래서 책을 읽지 않아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어 보이는 현실은 <화씨 451>이 묘사하는 사회와 놀라울 정도로 닮았다. 그 때문일까, 브래드버리의 최근 인터뷰에 따르면 <화씨 451>은 프랭크 다라본트(<쇼생크 탈출>, <미스트>)에 의해 리메이크 추진 중에 있다(몬태그 역에는 톰 행크스가 물망에 올랐다). 그에 비해 트뤼포의 <화씨 451>은 오래된 과거의 작품이지만 다소 촌스럽게 보이는 화면과 달리 세월의 때를 타지 않는 메시지 덕분에 지금에도 충분히 볼만한 가치를 지닌다.

 

(허남웅 영화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