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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고전/프랑수아 트뤼포 전작 회고전

[리뷰] 프랑수아 트뤼포의 '아메리카의 밤'

인간미 가득한 영화 속의 영화

 

'영화에 대한 영화'를 말할 때면 가장 대표적으로 언급되는 작품이 바로 <아메리카의 밤>이다. <프랑수아 트뤼포>의 저자 아네트 인스도프에 따르면 트뤼포는 이 영화의 아이디어를 <히치콕과의 대화>에서 얻었다고 전한다. 히치콕이 ‘촬영장의 현실과 영화 속 현실을 중첩하면 흥미로운 이야기로 만들 수 있다’는 요지의 말을 두고 트뤼포가 <아메리카의 밤>으로 발전시켰다는 것이다.

<아메리카의 밤>은 니스의 라 빅토린느 스튜디오에서 진행되는 영화 촬영 현장의 안팎을 다룬다. 극 중 영화는 아들과 며느리, 시아버지의 삼각관계를 소재로 한 '파멜라를 찾아서'인데 그렇다고 <아메리카의 밤>이 메이킹 다큐멘터리라는 뜻은 아니다. 몇몇 실제 인물이 등장하지만 트뤼포가 직접 극 중 감독 페랑을 연기하는 등, '파멜라를 찾아서'는 영화 속 촬영 현장에서 만들어지는 허구의 작품이기 때문이다.

대신 트뤼포는 자신이 그간 영화 현장에서 경험했던 일화들을 극 중에 녹여내며 현실과 허구를 넘나드는 페이크 다큐멘터리처럼 <아메리카의 밤>을 구성한다. 예컨대 고양이의 비협조적인(?) 연기로 우유 먹는 장면의 촬영이 지연되는 설정은 <부드러운 살결>(1964)을 연상시키고, 미국 자본과 영국 배우, 프랑스 스태프라는 다국적 현장의 혼란스러움은 트뤼포의 유일한 스튜디오 시스템 영화 <화씨 451>(1966) 당시의 반영인 듯하다. 그리고 사랑하는 여인 때문에 촬영현장에서 골칫거리로 전락한 극 중 배우 알퐁스(장 피에르 레오)의 존재는 '앙투안 드와넬' 시리즈를 떠올리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영화 현장은 어느 곳이든 전쟁터를 방불케 해서 극 중 페랑 감독은 “영화 만들기란 마차를 타고 서부를 여행하는 것과 같아서 목적지에 무사히 도착할지 걱정스럽다”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실제로 <아메리카의 밤>이 보여주는 '파멜라를 찾아서'의 촬영장은 대사를 제대로 외우지 못하는 노(老)배우의 잦은 NG, 정신병 전력을 갖고 있는 여배우의 돌출행동, 갑작스러운 배우의 죽음, 제작자의 잦은 간섭 등 예상치 못한 사건과 사고의 연속으로 어수선하다.

이런 혼란한 상황은 결국 영화 만들기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제기한다. 이 영화의 제목이 <아메리카의 밤>인 이유인데, 원제인 ‘Day for Night’는 낮에 밤 장면을 촬영하는 영화 기법을 말한다. 작품의 완성을 위해 다양한 책략을 활용한다는 영화의 주제가 제목에 고스란히 녹아있는 것이다(‘사랑의 묵시록’이라는 국내 제목은 <아메리카의 밤>을 완전히 오독하고 있다). 그래서 트뤼포는 감독인 페랑을 이야기의 중심에 두지만 그가 어떤 인물인지 묘사하기보다 돌발 변수의 현장을 어떻게 교통정리 하는지 기능적인 관점에서 바라본다.

이때 페랑 감독(이자 현실의 트뤼포 감독)이 보여주는 자세는 배우와 스태프에 대한 무한한 애정과 신뢰다. 그는 어떠한 상황이 닥쳐도 화를 내거나 신경질을 내는 법이 없다. 이들과 함께 영화를 완성하겠다는, 그리고 기어코 완성해내는 감독의 책임감이 영화에 대한 애정과 동료들에 대한 신뢰로 전면에 나서는 것이다. 이를 두고 영화학자 토드 매카시는 “현장에서 모든 사람을 평등하게 대하는 트뤼포의 성격처럼 이 영화가 보여주는 모든 관계에는 인간미가 가득하다”고 극찬했다. 제목의 좋은 기운 때문이었을까, <아메리카의 밤>은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상을 수상했고 그 여세를 몰아 미국 흥행에도 성공했다.

 

(허남웅 영화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