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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고전/프랑수아 트뤼포 전작 회고전

[리뷰] 프랑수아 트뤼포의 '녹색 방'

 

두 부친, 바쟁과 로셀리니, 그리고 배신과 속죄

 

트뤼포 자신이 직접 연기하는 <녹색 방>(1978)의 주인공 줄리앙은 부고(訃告) 전문 기자다. 부고 기사라는 게 불멸의 초상화를 그리는 렘브란트처럼 타인에 대한 깊은 연민이 없인 어려운 작업이다. 그런데 줄리앙은 편집장으로부터 ‘부고 기사의 대가’라는 칭호까지 듣는다. 죽은 사람은 그의 문장에 의해 부활의 명예를 누리기도 한다. 영화의 도입부, 줄리앙은 어느 정치가의 부고 기사를 쓰고 있다. 평소처럼 일필휘지로 내달리는 솜씨가 과연 대가의 풍모다. 그런데 그는 탈고를 하자마자 원고를 편집장에게 넘기며, 수정은 마음대로 하라면서 퇴근하려 한다. 편집장은 기사를 읽고, 얼굴이 사색이 된다. 급히 줄리앙을 불러 따지듯 묻는다. “당신은 죽은 사람을 두 번 죽이려합니까?”

 

 

우리는 기사 내용이 뭔지 알 수 없다. 다만 그 기사는 망자에 대한 예의가 아님을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영화가 진행되며, 우리는 줄리앙의 설명을 듣는다. 죽은 자는 자신의 젊은 시절 절친한 친구이자 동료였는데, 자기에게 용서할 수 없는 배신을 저지른 탕아라는 것이다. 그 배신에 대한 분노의 표현이 부고 기사였다. 도대체 배신의 상처가 얼마나 깊었기에 대가가 사사로운 감정으로 공적인 기사를 망쳤을까.

영화가 발표된 뒤, 그 부고 기사의 인물, 곧 줄리앙에게 배신의 상처를 입힌 현실의 인물은 누구일까에 대한 의문이 제기됐다. 영화는 헨리 제임스의 세 편의 단편을 각색한 것이니 당연히 허구다. 그러나 장편 데뷔작 <4백 번의 구타>(1959)부터 드러난 트뤼포 영화의 자전적 특성을 염두에 둔다면, <녹색 방>의 배신의 주인공에 대한 호기심은 자연스런 현상이었다. 적지 않은 영화인들이 고다르를 꼽았다. <중국 여인>(1967) 이후, 극좌파의 영화를 만들며 상대적으로 부르주아적인 장르 영화를 주로 만들던 트뤼포를 은근히 ‘경멸’했던 이유에서다. 그렇다면 여기서의 배신의 주체는 타자다.

그런데 나에게는 그 배신이 남을 탓하기만을 위한 테마일 것 같지 않다. <녹색 방>은 트뤼포가 46살 때 발표한 후기작이다(그는 52살에 요절한다). 배신과 더불어 강조돼 있는 ‘죽음’의 테마에서 짐작할 수 있듯 이때의 트뤼포는 마냥 피 끓는 청년이 아니었다. 나는 그 배신의 주체가 자기 자신이고, 그래서 그 부고 기사는 자신에 대한 처벌이자 속죄라고 본다. 이유는 두 명의 유사 부친과의 관계 때문이다.

 

두 부친, 바쟁과 로셀리니

잘 알려져 있듯 트뤼포에게는 친부의 기억이 거의 없다. 이런 가족관계는 <4백 번의 구타>에 잘 드러나 있다. 트뤼포라는 이름도 양부의 것이다. 이 관계도 18살이 됐을 때 완전히 끝났다. 고교과정도 제대로 마치지 못한 트뤼포는 천둥벌거숭이처럼 사회에 내던져졌다. 고아나 다름없는 ‘영화광’ 트뤼포를 받아준 인물이 바로 앙드레 바쟁이다. 두 사람의 관계는 웬만한 시네필이라면 다 아는 내용이다. 바쟁은 그를 일정 기간 부양도 했고, 또 영화평론가로 키웠다. <카이에 뒤 시네마>에서 바쟁의 지휘 아래 ‘누벨바그의 청년들’이 다 모여 있을 때, 누가 봐도 가장 사랑 받는 인물은 트뤼포였다. 그는 사랑의 경쟁심도 강했다.

트뤼포는 문학박사이자 정치한 평론을 써내던 에릭 로메르로부터 글쓰기를 배웠다. 그러나 트뤼포는 로메르의 논리적인 평론보다는 도발적인 테마를 담은 에세이풍의 글로 자신의 명성을 쌓는다. 말하자면 추켜세우거나 ‘떡’을 만드는 게 트뤼포의 수법이다. 중간은 없는 그런 공격성 덕분에 트뤼포는 필명을 날린다. 그런데 문제는 트뤼포의 그 유명한 글, ‘프랑스 영화의 어떤 경향’(1954)이 발표된 뒤 불거졌다.

 

 

이 글은 ‘작가 이론’을 말할 때면 빠지지 않고 거론되는 고전이다. 거칠게 요약하자면, 당대의 주류 프랑스 영화는 ‘문학의 하인 역할’이나 하는 구시대의 퇴물이라는 것이다. 영화는 일관된 미학을 지닌 ‘작가’에 의해 빚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트뤼포의 독단은 격심한 논쟁을 불러 일으켰지만, 누벨바그의 청년들은 대부분 트뤼포의 진영으로 모였다.

그런데 트뤼포의 주장, 곧 ‘작가이론’은 곧 이어 바쟁이 이끌던 <카이에 뒤 시네마>의 편집방향이 됐다. 사실 바쟁은 트뤼포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았다. 바쟁은 ‘우상 숭배’의 위험을 염려했다. 그러나 이미 <카이에 뒤 시네마>의 편집권은 청년들에게 넘어간 뒤였다. 말하자면 철학의 부친살해가 일어난 것이다. 결국 이 일이 있은 뒤, 앙드레 바쟁과 청년들 사이의 관계는 과거와는 같을 수 없었다. 이 변화의 중심에 프랑수아 트뤼포가 있었다.

이럴 때쯤 트뤼포의 새로운 (유사)부친으로 등장한 인물이 로베르토 로셀리니다. <이탈리아 기행>(1954)이 발표됐을 때다. 이 영화는 이탈리아에서 개봉 당시 비평과 흥행 모두에서 참패를 맛봤다. 네오리얼리즘의 정신을 훼손한 의고적 작품이라는 지적이 많았다. 그런데 프랑스에서 반전이 펼쳐졌다. “모던한 영화를 보고 싶으면 바로 이 영화를 보라”며, 자크 리베트는 ‘로셀리니에게 보내는 편지’(1955)라는 평론을 통해 이 작품을 적극 옹호했다. 리베트의 뒤에는 트뤼포가 있다는 사실은 다 아는 비밀이었다. 사람들은 트뤼포를 로베스피에르로, 리베트를 생쥐스트라고 불렀다. 청년들은 마치 혁명하듯 펜을 휘둘렀기 때문이다.

로셀리니는 파리로 왔고, 트뤼포, 고다르, 샤브롤, 리베트, 로메르 등 청년들은 그의 곁에 몰려들었다. 이제 그들은 새로운 아버지를 찾았다. 바쟁이 펜을 쥐어줬다면, 로셀리니는 카메라를 들려줬다. 이들은 모두 감독 데뷔를 꿈꾸고 있었다. 로셀리니는 사도들을 이끄는 예수 같았다. 여기서도 가장 돋보이는 인물은 트뤼포였다. 다른 청년들은 각자 로셀리니의 지시에 따라 독립적으로 작업했지만, 트뤼포는 그의 조수로 발탁됐다. 대략 2년간 같이 살다시피 하며 시나리오 작업에 매달렸다. 트뤼포는 로셀리니를 ‘이탈리아인 아버지’라고 불렀다. 뒷날 트뤼포가 <400번의 구타>로 칸에서 감독상을 받을 때 로셀리니는 심사위원이었는데, 두 사람의 과거와 수상이 전혀 관계없지는 않을 것이다.

 

<녹색 방>, 속죄의 영화

한편 이럴 즈음 누벨바그의 청년들 사이에서 바쟁이라는 이름은 지워져갔다. 바쟁을 만나 영화를 본격적으로 공부하던 청년들은 이제 다른 아비를 찾은 것이다. 특히 로셀리니 옆의 트뤼포는 예수를 바로 옆에서 보좌하는 요한처럼 비쳤다. 거장의 총애를 받는다는 조건이 아마 청년을 들뜨게 했을 것이다.

누벨바그의 청년들이 곁을 떠나 밖으로 나돌 때, 바쟁의 기분은 어땠을까? 특히 자식 같았던 트뤼포가 다른 아비로부터 가장 사랑 받는 존재가 됐을 때, 바쟁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여기에 대한 특별한 미담은 별로 듣지 못했다. 트뤼포는 드디어 장편 데뷔작 <4백 번의 구타>를 찍는다. 그런데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첫 촬영이 있었던 날, 곧 1958년 11월 10일에 바쟁은 백혈병으로 죽는다. 트뤼포는 데뷔작을 “앙드레 바쟁과의 기억에 바친다”고 오프닝 크레딧에서 밝혔다. 그럼으로써 두 사람의 유사 부자관계는 영화사의 미담으로, 신화로 남았다. 그런데 그 헌정, 오로지 미담의 의미뿐일까?

 

후기작인 <녹색 방>을 보면 다른 의문이 생긴다. 바쟁에의 헌정은 흠모라기보다는 속죄의 행위처럼 보인다. <토템과 터부> 속 부친살해의 자식들이 집행하는 제사의 심리 말이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이는 범죄의 대물림을 끊기 위한 희생자의 영웅화 작업이자, 가해자의 속죄의 행위다. 말하자면 부친과의 관계를 끊었던 탕아, 트뤼포의 죄의식의 산물이 도입부의 헌정처럼 보이는 것이다.

트뤼포의 영화에는 대개 아버지의 존재가 지워져 있다. 부성이 강조된 대표적인 작품이 <야성의 아이>(1970)이다. 여기서도 트뤼포는 직접 주연으로 나오는데, 루소의 <에밀>처럼, 한 야성의 아이를 교육시키는 아버지 같은 역이다. 두 영화에만 트뤼포가 주연으로 등장하는 게 우연은 아닌 것 같다. <야성의 아이>의 부자관계에서 바쟁과 트뤼포가 떠오르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다. 바쟁의 눈에는 버림 받은 소년 트뤼포가 ‘야성의 아이’가 아니었을까. 말하자면 <야성의 아이>는 바쟁과 자신의 관계를 되돌아보는 첫 속죄의 작품인 셈이다. 영화는 탈출했던 소년이 (유사)아버지의 곁으로 되돌아오는 것으로 끝난다.

<녹색 방>의 줄리앙은 죽은 아내에 대한 충절을 절대 배신할 수 없다. 그에게 배신은 최악의 죄이다. 그는 죽어서도 아내의 사당에 함께 있게 해달라는 유언을 남긴다. 이런 과도한 강조는 오히려 그의 콤플렉스를 더욱 상상하게 만든다. 그래서인지 나에겐 자꾸 아내의 초상화가 바쟁처럼 보인다. 그리고 초상화 앞에서 충절을 맹세하는 줄리앙은 배신을 속죄하는 돌아온 탕아, 곧 트뤼포의 분신처럼 보이는 것이다. 트뤼포가 진정으로 바쟁에게 헌정한 영화는 <녹색 방>으로 비치는 까닭이다.

 

(한창호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