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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전/서울아트시네마 개관 10주년 기념 존 카사베츠 회고전

[리뷰] 존 카사베츠의 '별난 인연'

평행선을 따라가다 만나게 되는 인연

- 존 카사베츠의 <별난 인연>

 

 

 

 

1950년대 후반, 이미 배우로서의 입지를 굳혔던 카사베츠는 가벼운 16mm 카메라로 핸드헬드 사용의 미학적 성취를 이루었다고 평가되는 <그림자들 Shadows,(1959)>부터 <사랑의 행로>까지 11편의 영화를 연출했다. 영화제의 수상이나 평단의 극찬을 받은 작품부터 그렇지 못한 작품까지 다양한 그의 연출 이력이지만 그가 독립영화의 상징적 존재가 된 이유는 할리우드 시스템의 관습에 대한 일관된 저항 때문이다. 전통적인 할리우드의 서사구조의 특징은 뚜렷한 갈등구조와 자연스러운 인과관계 그리고 군더더기 없는 편집 점의 일관된 적용에 있다. 이렇게 관습화된 구조에 대해 카사베츠는 강력한 거부감을 느끼며 이에 저항했고, 더 나아가 파괴하려는 시도를 하게 된다. <별난 인연>에서도 비 관습적이고 불친절한 장면들이 곳곳에 숨어있다. 미니가 영화를 보는 장면을 보자. 일반적인 헐리우드 서사라면 그 장면은 분명한 목적이 있어야 한다. 극 전개에 중요한 단서를 제공 하던가 적어도 주요 인물들이 의미 있는 행위를 하도록 분위기를 조성해 주어야 한다. 그러나 미니가 영화를 보는 장면은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으며 심지어 영화 내용조차 앞뒤로 거칠게 잘려 있다. 물론 이런 장면의 의도된 당당함이 카세베츠의 목적임을 알면서도 관습에 익숙해진 관객으로서는 당혹감을 피할 수 없게 된다. 그렇지만 카세베츠는 뚝심 있게 ‘단절’이라는 자신의 기획을 밀고 나간다.

 

 

미니는 미술관에서 일하는 노처녀이고, 모스코비치는 주차장에서 일하는 노총각이다. 두 남녀는 접점을 발견하기 힘들다. 살아온 환경, 사고방식, 주변 인물들까지 평행선을 긋는다.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면 둘 다 타인과 소통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사랑을 갈구하지만 어떻게 그것을 표현하고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는 미니, 역시 사랑을 갈구하지만 과잉된 표현 방식과 그것을 어떻게 상대에게 전달해야 할지 모르는 모스코비치. 사랑하고 싶은 마음은 같았지만 주고받을 통로가 달랐던 두 사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너무도 다른 두 사람은 결국 결혼이라는 결실을 맺게 된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지 카사베츠는 자신만의 거칠고 성긴 방식으로, 불친절하지만 사실은 친절하게 설명해 주고 있다. 물론 이런 설명이 관객들에게 즉각적이고 효과적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말이다.

 

 

세이모어 카젤이 연기한 모스코비치는 주차요원이 직업이지만 늘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고 이를 직설적으로 표현하는 것에 주저함이 없다. 하지만 자신이 우선이기 때문에 감정이 발생하면 상대방을 의식하거나 배려하는 것보다 어떻게든 이를 표출하는 것이 중요했다. 당연히 준비되지 않은 상대와 마찰이 생길 수밖에 없고 감정은 전달은 실패하기 일쑤일 뿐 아니라 그 결과는 고립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마치 끝없이 샘솟는 우물처럼 모스코비치는 스스로에 대한 삶의 열정을 한시도 놓지 않는다. 이런 모스코비치의 모습은 영화에 대한 끊임없는 사랑과 열정이 넘쳤지만 결코 관객을 의식하거나 배려하려 하지 않았던 그 자체로 존 카사베츠 자신의 투사체다.

 

 

카세베츠의 아내인 지나 롤랜즈가 연기한 미니는 미술관에서 일하는 고상한 계층의 여자다. 밤에도 커다란 선글래스를 쓰려는 모습은 그녀가 늘 주변을 의식하고 관습적이고 폐쇄적임을 보여 준다. 모스코비치는 자신과 마주보면서도 선글래스를 쓰고 있는 미니의 모습에 분노하고 불평하며 설득한다. 그리고 조금씩 그녀를 자신의 세계로 끌어오려고 최선을 다 한다. 카사베츠에게 있어서 관객들이 그렇다. 관습적으로 영화를 보고 관습적으로 영화를 판단한다. 다른 사람의 평가에 귀를 기울이고 다른 사람의 감상을 자신의 감정에 이입시킨다. 이런 관객들을 카세베츠는 익숙했던 관습들을 하나하나 무너뜨리고 기대했던 인과관계는 철저하게 외면하며  자신만의 세계로 끌어당기려 한다. 그래서 미니가 모스코비치를 힘겨워 했던 것처럼 관객이 카사베츠의 영화를 자연스럽고 편하게 감상하기는 처음부터 불가능한 일이 된다. 이렇게 불편한 상태로 관객을 만드는 것이 본래 카사베츠의 기획이었지만 결국 그 이면에는 결혼이라는 해피 앤딩을 맞게 된 미니와 모스코비치처럼 관습의 세계에 있던 관객들을 자신의 세계로 데려 올 자신감과 희망이 깔려있는 것이다.  

 

 

미니와 모스코비치의 사랑이야기는 존 카사베츠 감독과 관객 혹은 관객을 포함한 영화 자체와의 사랑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배우이자 감독이었던 존 카사베츠는 모스코비치가 미니에게 그랬던 것처럼 영화에 대한 사랑이 지극했다. 그러나 그 표현 방식에 있어서는 누군가의 지시나 모델을 따르려하지 않았다. 그저 순수하게 자신의 방식대로 감정을 전달하는 데에 집중했으며 그런 신념을 관철 시키는 데에 평생을 바쳤다. 물론 그의 고집과 신념의 관철은 대가를 필요로 했다. 대체로 비 상업적이었던 그의 작품들을 지속적으로 제작하기 위해 그는 스스로 제작비를 충당해야 했고 때에 따라서는 배급도 직접 해야만 했다. 다행이 뛰어난 연기자이기도 했던 그였기에 제작비 수급에 어느 가능했었고 가족과 동료 연기자들은 늘 그의 든든한 후원자가 돼 주었다.

 

 

여전히 그의 작품들은 쉽게 동화되고 이해되기를 거부한다. 가까이 가고 싶어도 이를 허락하지 않는, 부유하진 않지만 정신만은 시퍼렇게 날이 서있는 도도한 카사베츠의 고집은 곱씹을수록 설명하기 힘든 영향력 아래로 우리를 끌어들인다. 다시 영화로 돌아가 보면, 만날 수 없을 것 같았던 평행선의 두 남녀는 결국 하나가 된다. 그것은 두 사람 모두 표현 형식이 달랐을 뿐 사랑이라는 본질적 내용은 동일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미니가 모스코비치에게 그랬듯이 관객인 우리도 카사베츠의 투박하지만 직선적인 구애를 마음을 열고 받아들여 봄 직하지 않은가. 카사베츠 못지않게 우리도 영화를 사랑한다면 말이다. 지금 이 순간 카사베츠의 영화를 매개로 만나는 카사베츠와 우리 역시 참 별난 인연임이 분명하다. (김준완 / 관객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