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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전/서울아트시네마 개관 10주년 기념 존 카사베츠 회고전

[리뷰] 존 카사베츠의 '그림자들'

카사베츠 스타일의 시발(始發)을 확인할 수 있는 영화

- 존 카사베츠의 <그림자들>

 

 

 

미국에서는 스튜디오 시스템이 쇠락하고, 세계적으로는 뉴웨이브의 물결이 휩쓸고 있던 1950년대 후반 발표된 존 카사베츠의 데뷔작 <그림자들>은 미국 독립영화사의 이정표였다. 감독 데뷔 전 배우로 이름을 날린 카사베츠가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청취자들에게 십시일반 돈을 끌어 모아 4만 달러라는 저예산으로 만든 이 영화는 천편일률적인 스튜디오 영화의 대안이 무엇인가를 예증하는 기념비였다. 시나리오가 없고, 오로지 출연자들의 즉흥적인 연기를 토대로 이야기를 만들었으며, 16밀리 흑백 카메라를 들고 로케이션 촬영을 감행했고, 짧게 끊어지는 에피소드, 클로즈업의 빈번한 사용 등으로 영화의 호흡과 전개는 어떤 기성 영화들에서 보던 것과도 완연히 다르다. 흥미로운 것은 <그림자들>의 모토인 즉흥성 안에 새로운 기운들이 태동하고 있었던 당시 영화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보이는 여러 가지 특질들이 두드러지게 발견된다는 점이다.

 

 

“그림자들”이라는 제목이 가진 의미는 영화의 크레디트 시퀀스에서 상징적으로 보이는데, 작중 인물들은 하나 같이 자신의 삶 안에서 이질감을 느끼고 그로부터 떨어져 나온 인물들이다. 크레디트 시퀀스에서 핫 재즈에 심취한 클럽의 무리들 사이로 비집고 들어가는 주인공 벤(벤 카루더스)은 그 무리 속에 섞여들지 못하고 겁에 질린 듯한 얼굴로 열기에 취한 군중들을 응시하고 있다. 자신의 공간에 꼭 들어맞지 않고 그 공간을 부유하는 인물들에 대한 거친 스케치는 영화의 일관된 기조이며, 이를 형상화하는 스타일의 잉여는 영화의 고전주의를 탈피하는 하나의 방식을 보여준다. 재즈 가수인 휴와 벤, 렐리아 세 남매를 주인공으로 전개되는 이야기 속에서 완전히 흑인의 외양을 지니고 있는 휴와 달리 벤과 렐리아는 백인과 흡사한 외모를 가진 탓에 인종적인 이슈를 만들어낸다. 세 남매의 조합으로 인해 야기되는 갈등은 영화의 중심축을 이루는데, 둘째인 벤 캐릭터는 <이유 없는 반항>의 제임스 딘과 <네 멋대로 해라>의 장 폴 벨몽도를 즉각적으로 연상시킨다. 히스테리컬하고 우울하며 매사에 반항적인 벤은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며 술집에서 여자들에게 수작을 거는 목적 없는 삶을 지속하면서도 이러한 자신의 삶에 대해 의구심을 갖는다. 렐리아 또한 백인인 토니와 사랑에 빠지게 되면서 자아의 분열을 경험한다. 아버지와 같은 위치를 점하고 있는 맏이 휴는 냉혹하고 저열한 엔터테인먼트 산업 내에서 자신의 예술적 자긍심이 끊임없이 짓밟히는 수모를 겪고 이로 인해 매니저이자 가장 친한 친구인 루퍼트와 갈등을 겪는다.

 

 

<그림자들>은 거친 만듦새에도 불구하고 폭발적인 활력으로 인디의 정수를 꿰뚫고 있다. 세 남매를 주인공으로 벌어지는 세 개의 큰 이야기들은 영화 속에서 특별한 연결 고리 없이 뒤섞이며 전개된다. ‘즉흥성’이라는 연출의 기조가 캐릭터 구축에 상당한 영향을 끼치고 있으며, 히스테리, 우울함, 목표를 상실한 표랑의 상태를 시각화하는 카메라는 인물에게 밀착하여 그들의 감정을 추상화하고 있다. 정돈되지 않은 생기와 활력, 거친 에너지가 넘실대는 카사베츠 스타일의 시발(始發)을 확인할 수 있는 영화이다. (장병원 / 영화평론가)